목차
Ⅰ. 서론
Ⅱ. 개념적․철학적 인물
Ⅲ. 철학의 요소들간의 관계
Ⅳ. 마르크스 관념론
Ⅴ. 마르크스주의(Marxism)와 근대성
1. 마르크스주의(Marxism)와 철학 : 근대로의 회귀
2. 마르크스주의(Marxism) 철학의 근대적 형태
1) 실증주의
2) 실천철학
3. 프롤레타리아트와 과학 : 프롤레타리아트적 진리를 향하여
1) 실증주의에서의 계급적 진리로
2) 실천철학에서의 계급적 진리로
4. 프롤레타리아트적 주체 ꡐ형성formationꡑ의 문제 : 전위와 대중의 변증법
Ⅵ. 구조화된 계급관계들의 제수준들 간의 관계
Ⅶ. 대중과 당, 국가
Ⅷ.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
1. 착취와 잉여가치
2. 자본의 자기증식(自己增殖)
Ⅸ. 마르크스주의(Marxism) 노동자 계급
Ⅹ. 마르크스주의(Marxism) 사회변혁
1. 누가 명령을 내리는가
2. 노동자 국가
3. 국가의 사멸
Ⅺ. 결론
Ⅱ. 개념적․철학적 인물
Ⅲ. 철학의 요소들간의 관계
Ⅳ. 마르크스 관념론
Ⅴ. 마르크스주의(Marxism)와 근대성
1. 마르크스주의(Marxism)와 철학 : 근대로의 회귀
2. 마르크스주의(Marxism) 철학의 근대적 형태
1) 실증주의
2) 실천철학
3. 프롤레타리아트와 과학 : 프롤레타리아트적 진리를 향하여
1) 실증주의에서의 계급적 진리로
2) 실천철학에서의 계급적 진리로
4. 프롤레타리아트적 주체 ꡐ형성formationꡑ의 문제 : 전위와 대중의 변증법
Ⅵ. 구조화된 계급관계들의 제수준들 간의 관계
Ⅶ. 대중과 당, 국가
Ⅷ. 자본주의 체제의 형성
1. 착취와 잉여가치
2. 자본의 자기증식(自己增殖)
Ⅸ. 마르크스주의(Marxism) 노동자 계급
Ⅹ. 마르크스주의(Marxism) 사회변혁
1. 누가 명령을 내리는가
2. 노동자 국가
3. 국가의 사멸
Ⅺ. 결론
본문내용
들의 대표자가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했는지 아닌지 직접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국가는, 대다수 노동계급과 분리되어 그들에게 거스르는 힘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공산주의\" 국가를 자칭했던 동류럽 국가들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동시에 노동자 평의회 체제는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자기들의 공장을 운영하는 수단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결정된 전국적 계획에 따라 산업을 운영하려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통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현대의 컴퓨터 과학 덕택으로 모든 노동자들은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제적 대안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노동자 다수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바---예컨대, 핵무기와 군수 산업에 자원을 낭비할 것인가 혹은 값싸고 믿을 만한 공공 교통 체계에 자원을 쓸 것인가, 사치품을 만들 것인가 혹은 학교와 병원을 지을 것인가---를 자기들의 대표가 선택하도록 지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3. 국가의 사멸
새로운 국가 권력은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보다는 강제성이 훨씬 덜 문제가 될 것이다. 새로운 국가 권력이 통제할 구사회의 잔재들이 혁명의 성공에 머리를 숙이고 여러 혁명들이 외국의 지배계급들을 타도함에 따라, 강제력은 점점 덜 필요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는 노동자들이 경찰과 군대 일을 보기 위해 일자리를 비울 필요가 없을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국가는 사멸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뜻했던 바이다. 국가는 사람들한테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 대신 재화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노동자 평의회의 단순한 하나의 기구가 될 것이다.
노동자 평의회는 자본주의에서 여러 계급 사이의 투쟁이 실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을 때마다 이러저러한 형태로 생겨났다. \"소비에트\"란 러시아인들이 1905년과 1917년의 노동자 평의회를 부르기 위해 사용했던 단어이다.
1918년 독일에서는 노동자 평의회가 간단히 말해 유일한 권력이었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다양한 노동자 정당들과 다양한 노동조합들이, 지방 치안과 행정을 맡았고 노동자 평의회와 아주 비슷한 민병대 위원회(militia committees)로 통일되어 있었다. 1956년 헝가리에서 노동자들이 소련 군대와 싸울 때, 공장과 지방의 치안과 행정을 맡기 위해 평의회를 구성했다. 1972~73년 첼레에서는 \"꼬르돈\"(cordones)---대공장들을 연결한 노동자 위원회---이라는 노동 권력 기관을 만든 바 있다.
노동자 평의회는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활용하는 기구로서 시작된다. 노동자 평의회는 파업 기금을 모으는 것과 같은 아주 평범한 기능들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은, 대표자들이 노동자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되고 소환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전체 노동계급의 노력을 수렴할 수 있다. 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 권력(workders\' power)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것이다.
. 결론
레닌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사상과 학설의 체계인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의 3가지 정신적 주조(主潮), 즉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및 프랑스의 혁명적 학설과 결합된 프랑스 사회주의를 그 원천 또는 구성부분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체계는 G.W.F.헤겔, L.포이어바흐 등 19세기 독일의 고전철학에서 변증법과 유물론을, 또 영국의 고전경제학 중에서도 특히 D.리카도의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을,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통일시킴으로써 형성되었다.
소련의 《철학교정(哲學敎程)》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철학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의 학설의 모든 구성부분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며, 레닌은 경제학의 전체를 근본으로부터 개조하는 일, 즉 역사?철학?자연과학?노동계급의 정책과 전술 등에 유물론적 변증법을 적용하는 일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하였다. 즉, 마르크스는 철학에 관한 책은 따로 쓰지 않았으나, 자연과 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운동?변화한다는 변증법적 견해를 인간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일반적 법칙을 설명하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정립한 다음 공산주의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도덕적 감정을 근거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경제학을 통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필연적 붕괴 위에 건설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설명원리로 삼고 잉여가치론(剩餘價値論)을 분석장치로 삼아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힘으로써 그 필연적 멸망을 증명하는 데에 반생을 바쳤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혁명가가 된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의 결과가 아니다. 그가 혁명을 믿고 주장하게 된 것은 이미 1843~1844년이고, 이 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엥겔스에 따르면 사적유물론과 잉여가치론은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이며 이의 발견으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비하여 이전의 R.오언, F.M.C.푸리에, 생시몽 등의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하였다. 이 같은 이론체계에 입각하여 마르크스는 노동자계급이야말로 혁명의 유일한 주체세력이라고 믿었으며, 이 계급의 계급투쟁으로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계급이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그의 사후 K.카우츠키에 의한 사회민주주의와 레닌에 의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갈라져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수정과 그에 이은 유러커뮤니즘의 강력한 비판으로 결정적 시련에 봉착하였다. 사회민주주의는 1951년 7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새로 등장한 민주사회주의(民主社會主義)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대치(代置)되었다. 따라서 지난 1세기 이상을 두고 사회사상?정치사상?혁명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온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그 하향길에 접어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국가는, 대다수 노동계급과 분리되어 그들에게 거스르는 힘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공산주의\" 국가를 자칭했던 동류럽 국가들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었다.
동시에 노동자 평의회 체제는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자기들의 공장을 운영하는 수단이 아니라, 민주적으로 결정된 전국적 계획에 따라 산업을 운영하려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통합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현대의 컴퓨터 과학 덕택으로 모든 노동자들은 사회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제적 대안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노동자 다수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 바---예컨대, 핵무기와 군수 산업에 자원을 낭비할 것인가 혹은 값싸고 믿을 만한 공공 교통 체계에 자원을 쓸 것인가, 사치품을 만들 것인가 혹은 학교와 병원을 지을 것인가---를 자기들의 대표가 선택하도록 지시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3. 국가의 사멸
새로운 국가 권력은 노동자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에서보다는 강제성이 훨씬 덜 문제가 될 것이다. 새로운 국가 권력이 통제할 구사회의 잔재들이 혁명의 성공에 머리를 숙이고 여러 혁명들이 외국의 지배계급들을 타도함에 따라, 강제력은 점점 덜 필요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는 노동자들이 경찰과 군대 일을 보기 위해 일자리를 비울 필요가 없을 때가 오고야 말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국가는 사멸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뜻했던 바이다. 국가는 사람들한테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그 대신 재화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노동자 평의회의 단순한 하나의 기구가 될 것이다.
노동자 평의회는 자본주의에서 여러 계급 사이의 투쟁이 실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을 때마다 이러저러한 형태로 생겨났다. \"소비에트\"란 러시아인들이 1905년과 1917년의 노동자 평의회를 부르기 위해 사용했던 단어이다.
1918년 독일에서는 노동자 평의회가 간단히 말해 유일한 권력이었다. 1936년 스페인에서는 다양한 노동자 정당들과 다양한 노동조합들이, 지방 치안과 행정을 맡았고 노동자 평의회와 아주 비슷한 민병대 위원회(militia committees)로 통일되어 있었다. 1956년 헝가리에서 노동자들이 소련 군대와 싸울 때, 공장과 지방의 치안과 행정을 맡기 위해 평의회를 구성했다. 1972~73년 첼레에서는 \"꼬르돈\"(cordones)---대공장들을 연결한 노동자 위원회---이라는 노동 권력 기관을 만든 바 있다.
노동자 평의회는 처음에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 활용하는 기구로서 시작된다. 노동자 평의회는 파업 기금을 모으는 것과 같은 아주 평범한 기능들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들은, 대표자들이 노동자들의 손으로 직접 선출되고 소환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전체 노동계급의 노력을 수렴할 수 있다. 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 권력(workders\' power)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것이다.
. 결론
레닌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사상과 학설의 체계인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의 3가지 정신적 주조(主潮), 즉 독일의 고전철학, 영국의 고전경제학 및 프랑스의 혁명적 학설과 결합된 프랑스 사회주의를 그 원천 또는 구성부분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체계는 G.W.F.헤겔, L.포이어바흐 등 19세기 독일의 고전철학에서 변증법과 유물론을, 또 영국의 고전경제학 중에서도 특히 D.리카도의 경제학으로부터 노동가치설을, 그리고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사회주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발전?통일시킴으로써 형성되었다.
소련의 《철학교정(哲學敎程)》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철학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은 그의 학설의 모든 구성부분을 꿰뚫고 있다는 것이며, 레닌은 경제학의 전체를 근본으로부터 개조하는 일, 즉 역사?철학?자연과학?노동계급의 정책과 전술 등에 유물론적 변증법을 적용하는 일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고 하였다. 즉, 마르크스는 철학에 관한 책은 따로 쓰지 않았으나, 자연과 사회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운동?변화한다는 변증법적 견해를 인간사회에 적용함으로써 인간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관한 일반적 법칙을 설명하는 유물사관(唯物史觀)을 정립한 다음 공산주의에 관한 자신의 주장을,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도덕적 감정을 근거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경제학을 통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필연적 붕괴 위에 건설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을 설명원리로 삼고 잉여가치론(剩餘價値論)을 분석장치로 삼아 자본주의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밝힘으로써 그 필연적 멸망을 증명하는 데에 반생을 바쳤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혁명가가 된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의 결과가 아니다. 그가 혁명을 믿고 주장하게 된 것은 이미 1843~1844년이고, 이 혁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하여 경제학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엥겔스에 따르면 사적유물론과 잉여가치론은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이며 이의 발견으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하나의 과학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비하여 이전의 R.오언, F.M.C.푸리에, 생시몽 등의 사회주의를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하였다. 이 같은 이론체계에 입각하여 마르크스는 노동자계급이야말로 혁명의 유일한 주체세력이라고 믿었으며, 이 계급의 계급투쟁으로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계급이 없는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그의 사후 K.카우츠키에 의한 사회민주주의와 레닌에 의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갈라져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의 수정과 그에 이은 유러커뮤니즘의 강력한 비판으로 결정적 시련에 봉착하였다. 사회민주주의는 1951년 7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계기로 새로 등장한 민주사회주의(民主社會主義)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대치(代置)되었다. 따라서 지난 1세기 이상을 두고 사회사상?정치사상?혁명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온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그 하향길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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