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1. 축제의 기원
2. 축제의 의의
3. 축제의 기능
Ⅱ. 본 론
1. 망통레몬 축제
2. 토마토 축제
3. 보졸레누보와인 축제
4. 나이아가라와인 축제
5. 옥토버(맥주) 축제
Ⅲ. 결 론
* 참고문헌
1. 축제의 기원
2. 축제의 의의
3. 축제의 기능
Ⅱ. 본 론
1. 망통레몬 축제
2. 토마토 축제
3. 보졸레누보와인 축제
4. 나이아가라와인 축제
5. 옥토버(맥주) 축제
Ⅲ. 결 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숙박 시설, 음식시설, 각종 오락시설 등 관광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큰 경제적 효과를 얻지는 못하고 있지만 토마토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패키지 투어를 하면서 주변의 큰 관광지에서 소비를 함으로써 그 지역의 경제에 큰 이득이 되고 국가 전체의 경제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토마토 축제가 가지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크다고 말 할 수 있다.
3. 보졸레 누보 와인 축제
1) 축제의 내용과 유래
\"보졸레의 햇와인\" 이란 뜻의 보졸레 누보는 오랫동안이 지방에서 그 해에 생산된 햇와인으로 겨울이 오기 전 훈훈한 인정을 서로 나누며 행복을 기원하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보졸레 누보 Beaujolais Nouveau는 매년 늦가을 첫 수확을 자축하며 보졸레 지방이나 리용의 작은 카페에서 동네 농부들이 마시거나 파리의 비스트로(bistro:작은 술집)에서 연말연시에 막와인 (free-flowing wine)으로 마시던 일개 지방의 대중적인 술이었다. 그러던 것이 깊어가는 프랑스의 늦가을 정취와 가장 먼저 출하된 그 해의 햇 포도주라는 상큼한 이미지를 조화시켜 1951년부터 보졸레 지방 와인 생산업자 등이 와인의 출하시기를 매년 일정하게 하자는 논의로 11월 15일을 출하 날짜로 잡았다가 1985년부터는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로 결정되었다. 여기엔 보졸레 지역의 유능하고 정열적인 와인제조자 \'죠르쥬 듀보에 Georges Duboeuf\' 의 노력이 주효했다. 죠르쥬 뒤뵈프는 심혈을 기울인 연구를 거쳐 가메이 품종이 지닌 개성을 충분히 살려낸 독특하고 품질이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 냈으며, 매년 아름답고 독창적인 라벨을 디자인 하여 오늘날 보졸레 와인의 마케팅과 프로모션에서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이제는 온 세계의 모든 카페와 레스토랑, 팝, 비스트로 그리고 한적한 시골집에서까지 한 와인을 마시면서 동일한 축제에 참가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매년 한동안 이 신드롬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보졸레 누보 축제 Beaujolais Nouveau Fastival이다.
2) 보졸레 누보의 역사
프랑스는 1951년 11월 9일의 규정에서 포도주의 이른 출하에 대한 관습을 공식화하였다. 이때부터 보졸레 누보가 리용에서처럼 파리에도 입성하게 되었다. 보졸레 누보의 파리 입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을 받지 않은 이곳으로 몰린 젊은 기자들이 보졸레 누보를 맛보고 감명을 받아 이를 언론에 알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후 보졸레 누보는 파리의 술집에서 가장 사랑 받는 포도주로 자리 잡게 된다.
- 1960년부터 보졸레 누보의 승인된 양은 40,000헥토리터에 이르렀지만, 당시에는 출하량이 승인된 양의 3/4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어느 곳에서도 사용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된 슬로건 <보졸레 누보가 출하되었다> 라는 문구가 나온 것이 바로 이 60년대이다. 이 슬로건을 기치로 보졸레 누보는 불어권 유럽 국가인 스위스, 벨기에와 영국과 같은 영어권 국가에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규정 조항은 계속해서 정비되었고, 보졸레 누보의 품질 관리 규제는 더욱 엄격해진다.
- 1974년부터 보졸레 포도주가 지켜야 하는 조항에 적합한지를, 시음을 거쳐 인증하는 품질 관리 담당 기관인 특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보졸레 누보의 인기가 치솟자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보졸레 누보 출하일에 맞춰 동시에 마실 수 있도록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운송을 미리 할 수 있도록 허가되었다.
- 1985년에는 보졸레의 출시 날짜가 변경된다. 보졸레 누보 출하일은 전통적으로 11월 15일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이때부터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바뀌게 된다. 그 후 미국, 캐나다, 그리고 독일(현재 보졸레 누보의 가장 큰 시장), 네덜란드 등 대서양 외의 지역이 뒤를 이었다.
- 1982년 호주 시장 개척에 이어 85년 이태리와 일본 시장에 소개되면서 80년대에 세계시장에 조금씩 더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가장 많은 양의 보졸레 누보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 1990년대에는 보졸레 누보가 동남아 시장(특히 한국, 태국, 대만)으로 진출하게 된다. 라이트하면서도 과일 향이 감미로운 보졸레 누보는 아시아 요리와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
- 1995년부터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 체코 공화국, 루마니아와 같은 동구권 국가들이 보졸레 누보 축제에 큰 관심을 보이며 참가하게 된다. 남아메리카는 1997년에 12번째 큰 시장으로 성장한 브라질과 함께 매우 촉망받는 시장이다. 1997년 상하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후, 보졸레 누보는 그 이듬해인 98년 11월에 이 도시의 호텔 드 라 뻬에서 대대적인 공식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 1998년은 중국 만리장성에 보졸레 누보가 도착한 해이기도 하다.
- 1999년에는 모스크바에 입성한다. 2000년에는 한국 서울의 문이 열렸고, 2001년에는 태국 방콕에서 출시되었다. 2002년부터 (보졸레 생산자 연합회 Inter Beaujolais)는 중앙 유럽과 동유럽에서의 자리를 견고하게 굳히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3) 보졸레의 지리, 기후, 지형
보졸레 지방은 지리적으로 크게 다음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동쪽 : 발 드 쏜
서쪽 : 녹지대인 보졸레 산악 지대
중앙 : 보졸레 포도재배지
보졸레의 지리적 위치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의 보졸레 지방은 1,601 km² (160,100 헥타르)에 이르며 그 중 AOC 포도원이 22,500 헥타르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최소 행정 단위인 147 개의 꼬뮌느가 속해 있으며, 주민 2,000명 미만의 농촌 꼬뮌느(일반적으로 2,000명 이상이 거주하는 꼬뮌느를 \'도시 꼬뮌느\' commune urbaine, 그 이하를 \'농촌 꼬뮌느\' commune rurale라고 부른다 )가 90%를 차지한다. 또한 이들 꼬뮌느는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꼬뮌느가 연합해서 형성된 15개의 \'공동체 꼬뮌느 intercommunalites\'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11개의 코뮌느가 쏜 에 루와르 도(道)의 샤
3. 보졸레 누보 와인 축제
1) 축제의 내용과 유래
\"보졸레의 햇와인\" 이란 뜻의 보졸레 누보는 오랫동안이 지방에서 그 해에 생산된 햇와인으로 겨울이 오기 전 훈훈한 인정을 서로 나누며 행복을 기원하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보졸레 누보 Beaujolais Nouveau는 매년 늦가을 첫 수확을 자축하며 보졸레 지방이나 리용의 작은 카페에서 동네 농부들이 마시거나 파리의 비스트로(bistro:작은 술집)에서 연말연시에 막와인 (free-flowing wine)으로 마시던 일개 지방의 대중적인 술이었다. 그러던 것이 깊어가는 프랑스의 늦가을 정취와 가장 먼저 출하된 그 해의 햇 포도주라는 상큼한 이미지를 조화시켜 1951년부터 보졸레 지방 와인 생산업자 등이 와인의 출하시기를 매년 일정하게 하자는 논의로 11월 15일을 출하 날짜로 잡았다가 1985년부터는 매년 11월 셋째 목요일로 결정되었다. 여기엔 보졸레 지역의 유능하고 정열적인 와인제조자 \'죠르쥬 듀보에 Georges Duboeuf\' 의 노력이 주효했다. 죠르쥬 뒤뵈프는 심혈을 기울인 연구를 거쳐 가메이 품종이 지닌 개성을 충분히 살려낸 독특하고 품질이 뛰어난 와인을 만들어 냈으며, 매년 아름답고 독창적인 라벨을 디자인 하여 오늘날 보졸레 와인의 마케팅과 프로모션에서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이제는 온 세계의 모든 카페와 레스토랑, 팝, 비스트로 그리고 한적한 시골집에서까지 한 와인을 마시면서 동일한 축제에 참가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매년 한동안 이 신드롬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보졸레 누보 축제 Beaujolais Nouveau Fastival이다.
2) 보졸레 누보의 역사
프랑스는 1951년 11월 9일의 규정에서 포도주의 이른 출하에 대한 관습을 공식화하였다. 이때부터 보졸레 누보가 리용에서처럼 파리에도 입성하게 되었다. 보졸레 누보의 파리 입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습을 받지 않은 이곳으로 몰린 젊은 기자들이 보졸레 누보를 맛보고 감명을 받아 이를 언론에 알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후 보졸레 누보는 파리의 술집에서 가장 사랑 받는 포도주로 자리 잡게 된다.
- 1960년부터 보졸레 누보의 승인된 양은 40,000헥토리터에 이르렀지만, 당시에는 출하량이 승인된 양의 3/4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어느 곳에서도 사용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이 된 슬로건 <보졸레 누보가 출하되었다> 라는 문구가 나온 것이 바로 이 60년대이다. 이 슬로건을 기치로 보졸레 누보는 불어권 유럽 국가인 스위스, 벨기에와 영국과 같은 영어권 국가에도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규정 조항은 계속해서 정비되었고, 보졸레 누보의 품질 관리 규제는 더욱 엄격해진다.
- 1974년부터 보졸레 포도주가 지켜야 하는 조항에 적합한지를, 시음을 거쳐 인증하는 품질 관리 담당 기관인 특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보졸레 누보의 인기가 치솟자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보졸레 누보 출하일에 맞춰 동시에 마실 수 있도록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운송을 미리 할 수 있도록 허가되었다.
- 1985년에는 보졸레의 출시 날짜가 변경된다. 보졸레 누보 출하일은 전통적으로 11월 15일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이때부터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바뀌게 된다. 그 후 미국, 캐나다, 그리고 독일(현재 보졸레 누보의 가장 큰 시장), 네덜란드 등 대서양 외의 지역이 뒤를 이었다.
- 1982년 호주 시장 개척에 이어 85년 이태리와 일본 시장에 소개되면서 80년대에 세계시장에 조금씩 더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 가장 많은 양의 보졸레 누보가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 1990년대에는 보졸레 누보가 동남아 시장(특히 한국, 태국, 대만)으로 진출하게 된다. 라이트하면서도 과일 향이 감미로운 보졸레 누보는 아시아 요리와 완벽한 궁합을 이룬다.
- 1995년부터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 체코 공화국, 루마니아와 같은 동구권 국가들이 보졸레 누보 축제에 큰 관심을 보이며 참가하게 된다. 남아메리카는 1997년에 12번째 큰 시장으로 성장한 브라질과 함께 매우 촉망받는 시장이다. 1997년 상하이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후, 보졸레 누보는 그 이듬해인 98년 11월에 이 도시의 호텔 드 라 뻬에서 대대적인 공식 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 1998년은 중국 만리장성에 보졸레 누보가 도착한 해이기도 하다.
- 1999년에는 모스크바에 입성한다. 2000년에는 한국 서울의 문이 열렸고, 2001년에는 태국 방콕에서 출시되었다. 2002년부터 (보졸레 생산자 연합회 Inter Beaujolais)는 중앙 유럽과 동유럽에서의 자리를 견고하게 굳히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3) 보졸레의 지리, 기후, 지형
보졸레 지방은 지리적으로 크게 다음의 세 지역으로 나뉜다.
동쪽 : 발 드 쏜
서쪽 : 녹지대인 보졸레 산악 지대
중앙 : 보졸레 포도재배지
보졸레의 지리적 위치는 프랑스 대혁명 시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겪어왔다. 지금의 보졸레 지방은 1,601 km² (160,100 헥타르)에 이르며 그 중 AOC 포도원이 22,500 헥타르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최소 행정 단위인 147 개의 꼬뮌느가 속해 있으며, 주민 2,000명 미만의 농촌 꼬뮌느(일반적으로 2,000명 이상이 거주하는 꼬뮌느를 \'도시 꼬뮌느\' commune urbaine, 그 이하를 \'농촌 꼬뮌느\' commune rurale라고 부른다 )가 90%를 차지한다. 또한 이들 꼬뮌느는 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 꼬뮌느가 연합해서 형성된 15개의 \'공동체 꼬뮌느 intercommunalites\'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11개의 코뮌느가 쏜 에 루와르 도(道)의 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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