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기사자료
2. 진보와 보수
3. 좌익과 우익
4. 이념논쟁의 전제조건
5. 내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
2. 진보와 보수
3. 좌익과 우익
4. 이념논쟁의 전제조건
5. 내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
본문내용
서는 집단들도 포함될 수 있다.
좌익과 우익
‘좌우’의 구분은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루이16세가 소집한 일반회의에서 왕의 우측에 귀족계급과 성직계급이, 왕의 좌측에 시민계급이 앉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19세기를 지나면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적 운동들이 전개되고 20세기 초 사회주의가 현실국가로 성립하면서,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적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우파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착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 콤플렉스’가 형성되면서 좌파보다는 좌익이라는 개념으로, 우파보다는 우익이라는 개념이 고착되게 되었다. 논자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체제’에 대한 태도, 특별히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논쟁의 전제조건
개혁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보수주의자들 내에는 기존의 권위주의체제를 개혁하는 개혁적 보수주의자가 있을 수 있고 아예 개혁에 반대하는 반개혁적 보수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
개혁의 성격과 관련하여 진보적 개혁, 자유주의적 개혁, 보수적 개혁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다. 주한미군 철수, 언론개혁, 재벌개혁,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 다양한 입장에 대해서 좌파적이냐 아니냐는 것이 쉽사리 정의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 노동진영은 노무현 후보가 오히려 우파적 입장에 경도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가 급진적이라고 비판하는 정간법 개정안 등 언론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는 개혁적이기는 하지만 좌파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색깔논쟁의 본질적 문제점은 개혁이냐 반개혁이냐의 차이를 좌파적이냐 우파적이냐는 차이로 ‘과잉규정’하는 데에 있다. 색깔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매개적 논의 없이 좌파적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의 반공주의적 풍토 속에서 좌파라는 말속에 함의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덧씌우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도 이념논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실정에서는 정책적 쟁점을 중심으로 채 논쟁도 하기 전에 색깔공방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차이를 가려버리게 된다. 따라서 현실적 쟁점들에 대하여 서로의 입장 차이를 먼저 명확하게 하려는 노력을 선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여러 쟁점을 둘러싸고 드러날 입장 차이에 대해서 손쉬운 색깔공방이나 ‘좌파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지 않고 상호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이다. 그런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책적 차이를 규정하는 총괄적인 논쟁으로서의 이념논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
진보와 보수는 그 시대의 사회적 움직임에 대한 태도로 구분한다. 현재사회의 움직임에 만족하고 지금의 상태를 유지시키길 원하는 것이 보수 현재사회의 움직임에 만족하지 못하여 변화를 원하는 것이 진보다. 그런데 이런 원론적인 기준으로 바라보자면 보수, 진보를 가르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다.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은 진보정당이라고들 한다. 그 기준은 정당정책수준에서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인데, 열린우리당 안에서 국회의원들끼리 진보와 보수를 또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나눈 사람들을 또 나눌 수도 있다. 흔히 우리나라 문화가 보수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 다른 기준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진보적 문화도 존재한다. 여자들의 옷차림 트랜스섹슈얼 등등 은 국내에선 진보적인 문화이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야한 옷차림 여자들을 모아놓고 또 그중에서 나눠보려고 하면 또 그 안에서 보수적인 여자는 존재한다. 이렇듯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은 판단하는 대상과 사회상황 등에 따라 한없이 다양할 수 있다.(기사 1, 2)
정치문화에서는 사회의 기득권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입장이므로 일반적으로 보수, 노동자나 기득권세력이 아닌 자들이 기득권을 획득하려는 입장,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 더 향상시켜보려고 현재사회를 변화시키려 하므로 일반적으로 진보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업 옹호론자들은 보수, 노동자 옹호론자들은 진보처럼 되버린 것이다. 사실상 기업옹호 했다고 보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분의 편의를 위해서 편의상 진보진영 보수진영으로 나눠버린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지난 수 십년간 정권을 유지해오던 기득권 세력이며 기업우선의 정책을 펴는 한나라당은 보수, 지난 수 십년간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지 못했으며 최근 정권을 잡아본 노동자 우선 정책의 열린우리당이 진보라고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면 FTA와 재벌강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라고 불리는 이유는 FTA가 결국 기업위주의 자유주의노선이 주장하는 정책이므로 이를 추진했으니 이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인물이라 평해오던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적인 정책을 실행했다고 하는 것이다.(기사 8, 10)
그런데 대북포용정책이 왜 진보인지 이해안될수도 있다. 이건 한국 진보, 보수의 태생이 독특해서 그런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의 입장을 옹호, 대변하는 입장이라고 해서 진보라고 불릴 이유는 진보, 보수의 용어정의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기사 3, 4, 5)
끝으로 진보는 보호무역주의 보수는 자유무역주의라는 것 또한 현재 한국사회에서만 국한되는 개념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을 포함해서 특히 동유럽쪽 국가들의 경우 진보정당이 자유무역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펼친다. EU라는 자유무역지대에서 살기위해선 진보정당이건 보수정당이건 자유무역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쳐야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몇 십년 동안 외쳐오던 사회당이 유럽경제침체분위기에 힘입어 하원에서 집권당이 되자 노동자들은 환호했지만 실제로 기대한 노동법, 의료법은 수박 겉좍기였고 노동자들의 이익이 아닌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들을 우선순위로 내놓았다. 사회의 변화에 소극적인 보수세력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우선시 할 때도 많다. 그때 그때의 정치, 문화적 상황에 따라 처신하기에 항상 변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상반되게 나타날 수도 있다.(기사 12)
좌익과 우익
‘좌우’의 구분은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루이16세가 소집한 일반회의에서 왕의 우측에 귀족계급과 성직계급이, 왕의 좌측에 시민계급이 앉은 데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 19세기를 지나면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혁명적 운동들이 전개되고 20세기 초 사회주의가 현실국가로 성립하면서, 좌파와 우파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급진적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우파는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정착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빨갱이 콤플렉스’가 형성되면서 좌파보다는 좌익이라는 개념으로, 우파보다는 우익이라는 개념이 고착되게 되었다. 논자에 따라 다양할 수 있지만, 좌파와 우파의 개념은 ‘체제’에 대한 태도, 특별히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념논쟁의 전제조건
개혁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보수주의자들 내에는 기존의 권위주의체제를 개혁하는 개혁적 보수주의자가 있을 수 있고 아예 개혁에 반대하는 반개혁적 보수주의자가 있을 수 있다.
개혁의 성격과 관련하여 진보적 개혁, 자유주의적 개혁, 보수적 개혁으로 나누는 경우도 있다. 주한미군 철수, 언론개혁, 재벌개혁, 공기업 민영화 문제 등 다양한 입장에 대해서 좌파적이냐 아니냐는 것이 쉽사리 정의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 노동진영은 노무현 후보가 오히려 우파적 입장에 경도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조선일보가 급진적이라고 비판하는 정간법 개정안 등 언론에 대한 노무현의 태도는 개혁적이기는 하지만 좌파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색깔논쟁의 본질적 문제점은 개혁이냐 반개혁이냐의 차이를 좌파적이냐 우파적이냐는 차이로 ‘과잉규정’하는 데에 있다. 색깔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매개적 논의 없이 좌파적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의 반공주의적 풍토 속에서 좌파라는 말속에 함의되는 부정적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덧씌우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우리 사회에도 이념논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 실정에서는 정책적 쟁점을 중심으로 채 논쟁도 하기 전에 색깔공방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차이를 가려버리게 된다. 따라서 현실적 쟁점들에 대하여 서로의 입장 차이를 먼저 명확하게 하려는 노력을 선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것은 여러 쟁점을 둘러싸고 드러날 입장 차이에 대해서 손쉬운 색깔공방이나 ‘좌파적’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지 않고 상호 존중하는 성숙한 태도이다. 그런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책적 차이를 규정하는 총괄적인 논쟁으로서의 이념논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와 보수
진보와 보수는 그 시대의 사회적 움직임에 대한 태도로 구분한다. 현재사회의 움직임에 만족하고 지금의 상태를 유지시키길 원하는 것이 보수 현재사회의 움직임에 만족하지 못하여 변화를 원하는 것이 진보다. 그런데 이런 원론적인 기준으로 바라보자면 보수, 진보를 가르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다. 예를 들어 열린우리당은 진보정당이라고들 한다. 그 기준은 정당정책수준에서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인데, 열린우리당 안에서 국회의원들끼리 진보와 보수를 또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나눈 사람들을 또 나눌 수도 있다. 흔히 우리나라 문화가 보수적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사실 다른 기준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굉장히 진보적 문화도 존재한다. 여자들의 옷차림 트랜스섹슈얼 등등 은 국내에선 진보적인 문화이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야한 옷차림 여자들을 모아놓고 또 그중에서 나눠보려고 하면 또 그 안에서 보수적인 여자는 존재한다. 이렇듯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은 판단하는 대상과 사회상황 등에 따라 한없이 다양할 수 있다.(기사 1, 2)
정치문화에서는 사회의 기득권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입장이므로 일반적으로 보수, 노동자나 기득권세력이 아닌 자들이 기득권을 획득하려는 입장,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 더 향상시켜보려고 현재사회를 변화시키려 하므로 일반적으로 진보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오래 지속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업 옹호론자들은 보수, 노동자 옹호론자들은 진보처럼 되버린 것이다. 사실상 기업옹호 했다고 보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구분의 편의를 위해서 편의상 진보진영 보수진영으로 나눠버린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지난 수 십년간 정권을 유지해오던 기득권 세력이며 기업우선의 정책을 펴는 한나라당은 보수, 지난 수 십년간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지 못했으며 최근 정권을 잡아본 노동자 우선 정책의 열린우리당이 진보라고 구분되는 것이다. 그러면 FTA와 재벌강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라고 불리는 이유는 FTA가 결국 기업위주의 자유주의노선이 주장하는 정책이므로 이를 추진했으니 이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인물이라 평해오던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적인 정책을 실행했다고 하는 것이다.(기사 8, 10)
그런데 대북포용정책이 왜 진보인지 이해안될수도 있다. 이건 한국 진보, 보수의 태생이 독특해서 그런 것이다. 사실 공산주의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의 입장을 옹호, 대변하는 입장이라고 해서 진보라고 불릴 이유는 진보, 보수의 용어정의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기사 3, 4, 5)
끝으로 진보는 보호무역주의 보수는 자유무역주의라는 것 또한 현재 한국사회에서만 국한되는 개념이다. 프랑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을 포함해서 특히 동유럽쪽 국가들의 경우 진보정당이 자유무역주의적인 경제정책을 펼친다. EU라는 자유무역지대에서 살기위해선 진보정당이건 보수정당이건 자유무역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쳐야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노동법 개정을 몇 십년 동안 외쳐오던 사회당이 유럽경제침체분위기에 힘입어 하원에서 집권당이 되자 노동자들은 환호했지만 실제로 기대한 노동법, 의료법은 수박 겉좍기였고 노동자들의 이익이 아닌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들을 우선순위로 내놓았다. 사회의 변화에 소극적인 보수세력이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우선시 할 때도 많다. 그때 그때의 정치, 문화적 상황에 따라 처신하기에 항상 변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는 상대적인 개념으로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 상반되게 나타날 수도 있다.(기사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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