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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가톨릭 정의 및 역사
Ⅱ. 가톨릭의 조직(교계제도)
1. 사제와 평신도의 분리 / 성직계급체제
2. 교황
1) 교황에 대한교리(교황무오설)
2)교황직의 변호
3) 교황직에 대한 비판
(1)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2)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3. 주교단
4. 신부
5. 부제
6. 평신도
6. 수도자(수사,수녀)
Ⅲ 가톨릭교리(1) : 구원
1. 천주교의 은총론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은혜관(무상의 은혜, 성화의 은혜)
2) 은총의 종류
3). 은총을 받는 방법
4) 천주교의 은총론 비판
2. 천주교의 칭의관
1. 가톨릭교의 구원 :칠성사
(1) 성세성사
(2) 견진성사(confirmation)
(3) 성체성사(Holy Eucharist)
(4) 고해성사 (Penance)
(5) 종부성사(병자성사)
(6) 신품성사(Holy orders)
(7) 혼배성사
2. 구원의 다른 방편 : 교회
교회 구원론 비판
Ⅱ. 가톨릭의 조직(교계제도)
1. 사제와 평신도의 분리 / 성직계급체제
2. 교황
1) 교황에 대한교리(교황무오설)
2)교황직의 변호
3) 교황직에 대한 비판
(1) 그리스도의 대리자 교황 (The Pope: Vicar of Christ)
(2) 오류가 없는 교황 (The Pope: Infallible)
3. 주교단
4. 신부
5. 부제
6. 평신도
6. 수도자(수사,수녀)
Ⅲ 가톨릭교리(1) : 구원
1. 천주교의 은총론
1) 토마스 아퀴나스의 은혜관(무상의 은혜, 성화의 은혜)
2) 은총의 종류
3). 은총을 받는 방법
4) 천주교의 은총론 비판
2. 천주교의 칭의관
1. 가톨릭교의 구원 :칠성사
(1) 성세성사
(2) 견진성사(confirmation)
(3) 성체성사(Holy Eucharist)
(4) 고해성사 (Penance)
(5) 종부성사(병자성사)
(6) 신품성사(Holy orders)
(7) 혼배성사
2. 구원의 다른 방편 : 교회
교회 구원론 비판
본문내용
야 하고, 둘째 그것이 어떤 감각적인 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셋째 감각적인 표시를 통해서 눈에 안 보이는 은총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4) 천주교의 은총론 비판
a. 은총과 은총의 결과를 동일시한다.
천주교는 은총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점은 “은총(은혜)”을 어떤 초자연적 첨가물로 인식하고 있는 점과 은총의 종류를 나눈 점이다. 은혜는 헬라어로“카리스(καριs)\"인데, 호의 또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은혜의 결과를 동일시하여서 은총의 종류도 생기고 그것을 얻었다. 잃었다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b. 구원의 확실성이 없다.
저들은 상존은총(생명은총)은 세례를 받으므로 얻어지는데, 대죄를 지으면 소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통해서 대죄를 용서받고 상존은총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가톨릭은 구원을 받았다가 잃었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요 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얻었고’라는 단어는<εχει>로서 “현재형”이고, ‘옮겼느니라’는 <μεταββηκε>로써 “완료형”이다. 즉, 현재 영생을 가졌고, 사망에 서 생명으로 옮긴 것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영생은 단회적 사건이다.
d. 은총을 받는 방법이 비성경적이다.
가톨릭은 성사를 통해서 은총이 주어진다고 한다. 성사는 사제에 의해서 집행되어지는 것이고, 사제 없이는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결론이 될 것이므로, 결국은 이것도 사제권의 확립은 가져올 것이겠지만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이나 일정한 의식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천주교의 구원론에 있어서 은총이란 결국은 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그것이 은총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2. 천주교의 칭의관
칭의를 정의하기 전에 천주교의 신앙관에 대해서 알아본다.
천주교의 신앙관은 13C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앙에 대한 정의를 ‘트렌트회의’와 ‘제1차 바티칸회의’가 공인한 것이다.
즉, “신앙은 은혜에 의해 고취되고 계시자인 성령의 권위에 의해 동기화된 의지의 명령에 의해 계시된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라고 설명되었다.
단순한 지적 동의는 믿음이랄 수 없다.
a. 칭의의 정의
천주교에 있어서 칭의는 죄의 용서뿐 아니라 중생과 성화를 포함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의인(칭의와 같은 의미)은 인간영혼의 어떤 변화, 영혼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초자연적인 주입된 힘으로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을 의인으로 생각하고, 그 의인의 토대는 우리를 사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죄를 사람에게 돌리지 않으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면죄가 의인의 목적이 아니게 되었다. “의인에 있어서 죄의 용서를 얻는 것도 주입된 은혜로 되는 것이고 의인의 태도도 하나님의 사랑이며 또 사랑이 형성시켜주는 신앙이 아니면 완전한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는 칭의란 “사람을 의롭게 만드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라고 본다. 신약성경의 말(dikaio-o, δικαιοψ)는 “옳게 여기다, 정당화하다”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어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b. 칭의의 근거
이태리의 트랜트에서 개최된 가톨릭교 회의(1545 -1563)에서 가톨릭 지도자들은 “신덕 이란 ‘인간 구속’의 시초이며 의롭다하심의 근원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말하기를 “만일 어느 사람이 그의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믿음으로 사죄와 구속함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신덕)이 죄 사함에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프릿츠 리데나워, 『무엇이 다른가』,(서울: 생명의말씀사, 1980), 54
한마디로 말해서 천주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부인하고, 인간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말이고, 곧 세례(성례전)라는 교회의식을 통해서 되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천주교가 말하는 구원론에는 적어도 3가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3가지 잘못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는 선행과 공로늘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세례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며, 셋째로는 “만인구원설”이라는 점이다.
1.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구원의 근본조건이 믿음이란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은 “선행”으로 완성되어야 하며 천주교회를 통해서만 완전한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믿기 이전의 선행을 ‘적합공로(merit of congruency)’로, 그리고 믿은 후에 공로를 ‘정당공로(merit of condignity)로 간주하고 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8권(서울:기독교문사,1983), 1156
2. 구원은 세례를 통해서 온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혈세나 화세를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혈세란 천주교 신앙이나 덕행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는 것이고, 화세란 자기가 지은 죄를 뉘우치고 영세할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화세나 혈세는 인호가 주어지지 않고 수세(물로 세례 받음)를 받으면 인호가 주어지는데 인호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도장을 찍는 것으로써 지옥에 가든 천당에 가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다는 내용이다. 박도식 『무엇하는 사람들인가』20판,(서울:가톨릭출판사,1983), 290
3.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는다.
이들은 천주교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확고히 말한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천주교 밖에서도, 더 나아가서 복음을 듣지 못한 불신자들도, 이미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배제하지 않는다.
인간 영혼을 철저하게 사랑하여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는 교회는 성세를 받아야 된다는 그리스도의 계명은 모르되 다만 착하게 살기로 노력하며, 하나님의 뜻을
4) 천주교의 은총론 비판
a. 은총과 은총의 결과를 동일시한다.
천주교는 은총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점은 “은총(은혜)”을 어떤 초자연적 첨가물로 인식하고 있는 점과 은총의 종류를 나눈 점이다. 은혜는 헬라어로“카리스(καριs)\"인데, 호의 또는 호의를 베푸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과 은혜의 결과를 동일시하여서 은총의 종류도 생기고 그것을 얻었다. 잃었다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b. 구원의 확실성이 없다.
저들은 상존은총(생명은총)은 세례를 받으므로 얻어지는데, 대죄를 지으면 소멸한다고 한다. 그러나 고해성사를 통해서 대죄를 용서받고 상존은총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결국 가톨릭은 구원을 받았다가 잃었다를 반복하는 것이다.
<요 5:2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하셨다.
여기서 ‘얻었고’라는 단어는<εχει>로서 “현재형”이고, ‘옮겼느니라’는 <μεταββηκε>로써 “완료형”이다. 즉, 현재 영생을 가졌고, 사망에 서 생명으로 옮긴 것은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영생은 단회적 사건이다.
d. 은총을 받는 방법이 비성경적이다.
가톨릭은 성사를 통해서 은총이 주어진다고 한다. 성사는 사제에 의해서 집행되어지는 것이고, 사제 없이는 은총을 받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이 결론이 될 것이므로, 결국은 이것도 사제권의 확립은 가져올 것이겠지만 성경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이나 일정한 의식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신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천주교의 구원론에 있어서 은총이란 결국은 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있으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그것이 은총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2. 천주교의 칭의관
칭의를 정의하기 전에 천주교의 신앙관에 대해서 알아본다.
천주교의 신앙관은 13C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앙에 대한 정의를 ‘트렌트회의’와 ‘제1차 바티칸회의’가 공인한 것이다.
즉, “신앙은 은혜에 의해 고취되고 계시자인 성령의 권위에 의해 동기화된 의지의 명령에 의해 계시된 진리에 대한 지적 동의”라고 설명되었다.
단순한 지적 동의는 믿음이랄 수 없다.
a. 칭의의 정의
천주교에 있어서 칭의는 죄의 용서뿐 아니라 중생과 성화를 포함한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의인(칭의와 같은 의미)은 인간영혼의 어떤 변화, 영혼의 회복”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초자연적인 주입된 힘으로 사람을 의롭게 만드는 것을 의인으로 생각하고, 그 의인의 토대는 우리를 사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죄를 사람에게 돌리지 않으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면죄가 의인의 목적이 아니게 되었다. “의인에 있어서 죄의 용서를 얻는 것도 주입된 은혜로 되는 것이고 의인의 태도도 하나님의 사랑이며 또 사랑이 형성시켜주는 신앙이 아니면 완전한 신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는 칭의란 “사람을 의롭게 만드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것”이라고 본다. 신약성경의 말(dikaio-o, δικαιοψ)는 “옳게 여기다, 정당화하다”라는 뜻을 나타내고 있어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b. 칭의의 근거
이태리의 트랜트에서 개최된 가톨릭교 회의(1545 -1563)에서 가톨릭 지도자들은 “신덕 이란 ‘인간 구속’의 시초이며 의롭다하심의 근원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말하기를 “만일 어느 사람이 그의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믿음으로 사죄와 구속함이 완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아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단순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신덕)이 죄 사함에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프릿츠 리데나워, 『무엇이 다른가』,(서울: 생명의말씀사, 1980), 54
한마디로 말해서 천주교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부인하고, 인간의 행위가 필요하다는 말이고, 곧 세례(성례전)라는 교회의식을 통해서 되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천주교가 말하는 구원론에는 적어도 3가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말로 말하면 3가지 잘못된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로는 선행과 공로늘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세례를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며, 셋째로는 “만인구원설”이라는 점이다.
1.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기독교와 천주교는 구원의 근본조건이 믿음이란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믿음으로 시작한 구원은 “선행”으로 완성되어야 하며 천주교회를 통해서만 완전한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믿기 이전의 선행을 ‘적합공로(merit of congruency)’로, 그리고 믿은 후에 공로를 ‘정당공로(merit of condignity)로 간주하고 있다 『기독교대백과사전』, 8권(서울:기독교문사,1983), 1156
2. 구원은 세례를 통해서 온다.
세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혈세나 화세를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 혈세란 천주교 신앙이나 덕행을 지키기 위해 순교하는 것이고, 화세란 자기가 지은 죄를 뉘우치고 영세할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화세나 혈세는 인호가 주어지지 않고 수세(물로 세례 받음)를 받으면 인호가 주어지는데 인호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도장을 찍는 것으로써 지옥에 가든 천당에 가든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다는 내용이다. 박도식 『무엇하는 사람들인가』20판,(서울:가톨릭출판사,1983), 290
3. 모든 사람이 다 구원 받는다.
이들은 천주교 밖에서는 구원이 없다고 확고히 말한다. 그러면서도 저들은 천주교 밖에서도, 더 나아가서 복음을 듣지 못한 불신자들도, 이미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음을 배제하지 않는다.
인간 영혼을 철저하게 사랑하여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잃지 않으려 끊임없이 걱정하고 있는 교회는 성세를 받아야 된다는 그리스도의 계명은 모르되 다만 착하게 살기로 노력하며, 하나님의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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