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시조의 발생과 기원
2. 시조 담당층의 문학세계
2-1. 조선전기 사대부 시조
2-1.1 시조의 발생과 담당층
2-1.2 사대부의 가악관(가악관)과 시조
2-1.3 조선전기 시조의 변천과정과 작품 감상
2-2. 조선전기 기녀 시조
Ⅲ. 맺음말
☺ 참고문헌 및 논문
Ⅱ. 본문
1. 시조의 발생과 기원
2. 시조 담당층의 문학세계
2-1. 조선전기 사대부 시조
2-1.1 시조의 발생과 담당층
2-1.2 사대부의 가악관(가악관)과 시조
2-1.3 조선전기 시조의 변천과정과 작품 감상
2-2. 조선전기 기녀 시조
Ⅲ. 맺음말
☺ 참고문헌 및 논문
본문내용
시조의 변천과정과 작품 감상
2-2. 조선전기 기녀 시조
Ⅲ. 맺음말
참고문헌 및 논문
Ⅰ. 머리말
우리 문학사에서 시조(시조)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시가이자, 사대부의 시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조의 정의를 이태극은 “보통 시조라면 단시조(평시조)를 말하는데, 그 단시조라는 것은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별곡 등의 영향에 힘입어 고려 중 말엽경에 그 형태가 확립된 우리나라 고유시가의 하나다. 그 형식은 3장 6구요, 한 구의 구성 자수는 7자 내외가 되고, 4율박(율박)의 등시율(등시율)을 갖춘 정형시오, 자수율 44자(보통 42자에서 46자로 된 것이 대부분임) 중심으로 된 조선조 시가의 대표가 되는 단형시(단형시)로서 오늘에도 그 형식의 시조가 창작되고 있다.” 라고 하였다.
본 발표조는 조선조 시가문학의 꽃이자 ‘국민문학’이라 평가받은 시조에 대해 고찰하면서 고려말 조선초의 시대에 한해 평시조에 국한하여 조선전기 시조의 전개양상과 모습을 살펴보았다. 시조의 발생과 기원을 논함에 있어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여러 학설들을 검토하였으며, 시조의 문학 당담층인 사대부와 시조와의 연관성을 찾으며 조선 전기의 시조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또한 사대부 이외 또 다른 시조의 담당층인 기녀들을 중심으로 창작된 기녀 시조를 함께 살펴보겠다.
Ⅱ. 본문
1. 시조의 발생과 기원
시조의 명칭은 조선 영조때 시인 신광수(신광수)의 『관서악부(관서악부)』에 의해 알려진 것으로 “일반으로 시조의 장단을 배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이라 한 것이 문헌상으로 나타난 최초의 기록이며 명칭이다. 시조라는 명칭의 본래 뜻은 시절가조(시절가조)로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다. 엄밀히 따진다면 ‘시조’라는 명칭은 문학상의 용어가 아니라 음악상의 용어이지만, 오늘날 문학상의 용어로 정착되었고 음악상 용어로는 ‘시조창’이란 명칭을 따로 쓴다.
시조는 시가장르로서 음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아직까지 시조의 기원과 발생시기에 관해 많은 이설이 공존하고 있지만 음악과의 연관성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성호경은 “고전시가들이 대체로 가사가 중심이 되고 악곡(선율)이 부수적인 것이 되는 문학 위주의 양상을 많이 보인다. 한국고전시가 작품들은 그 대부분이 ‘노래하기 위한 시’이기보다는 ‘노래할 수 있는 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래함’과 관련으로써 한국고전시가의 예술적 본질을 규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문학으로서의 시(시)가 그 예술적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시조의 발생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① 13세기 발생설
시조의 발생시기를 언제로 볼 것이냐에 관한 문제에서 우탁, 이존오, 이조년, 정몽주, 이방원 등 믿을만한 작가명이 등장한 시기인 고려말엽이라는 주장이 있다. 13세기 발생설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주장은 ‘향가나 백제가요 도는 고려가요 등에서 그 선행형태의 궤적(궤적)을 탐색하는 한편, 고려말엽에 이르러 새로운 이념을 표방하며 등장한 신흥사대부들이 시조의 발생에 관여한 주요 작가 층이었을 가능성’을 검토함으로써 시조학계 전반에 걸쳐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방원의 <하여가>나 정몽주의 <단심가> 등이 후대인의 의작일 가능성이 높고 명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구체적인 작가의 등장을 곧 시조의 발생시기와 연관짓는다는 결함도 가지고 있다.
② 한시기원설
외래기원설과 재래기원설은 13세기 발생설과 달리 시조의 선행형태를 찾는 기원론으로 선행형태를 찾음으로써 시조의 발생과 기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이다. 외래기원설 중 대표적인 것이 시조의 형식이 한시의 형식에서 연유했다는 가설(가설)이다. 한시기원설은 한시의 시상 전개 방식이 시조의 그것과 상통한다는 것과 시조의 한 구가 7음절을 기준으로 구성된다는 점 등이 논거가 된다. 그러나 시조 종장 첫머리의 3음을 ‘절구의 전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한시와 시조가 다같이 4단 구성의 시상 전개방식을 지닌 형식이라고 설명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다.
③ 향가기원설
재래기원설로 향가에서 시조가 기원하였다는 향가기원설이다. 10구체 향가의 경우 전체가 3분되고 낙구(락구)가 있고 음보가 4음보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전하는 향가의 해독이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파악이 어렵고 3단 구성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는 선형행태가 향가뿐만이 아니라 우리 시가 속에서 다수 파악된다는 점에서 향가가 시조의 직접적인 기원이라는 주장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④ 무가기원설
이외에도 무가(무가)기원설이 있지만 근거가 빈약하며, 현재 무당들이 부르는 무가가 오히려 시조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을 가능성 정재호, 앞의 책, 42쪽
이 있다.
⑤ 악곡기원설
악곡과 관련된 기원설은 속요의 음악적 분화와 곡에서 시조형의 모태(모태)를 찾으려 한 것이다. 정재호, 앞의 책, 46~48쪽
고려속요는 다양한 양상(양상)을 가진 시가의 총칭이기 때문에 단순히 ‘고려속요기원설’ 이라고 부른다면 오해가 따를 수 있다. 시조발생을 고려속요 중에서 ①<북전북전>기원설과, ②고려시대의 속요를 담은 악곡의 형태에서 초기 시조의 시형을 먼저 찾고 악곡<만대엽>을 통해 완성된 시조형을 찾으려는 시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 <북전> 기원설
<북전>은 고려 후기 충혜왕(1315~1344) 때에 궁중에서 연행되었던 악곡인데 그 곡에 붙여 부르던 노랫말이 온전하게 전하지 못하는 수난을 겪었던 작품으로, 세조 때의 음악을 반영하고 있다는 『대학후보』에 그 악보가 전하고, 성종 때 원 노랫말이 음란하다고 해서 고쳐 쓴 노랫말이 『악학궤범』에 전한다. 또 조선 전기에 편찬된 국악자료인 『금합자보』와 조선 후기에 편찬된 시조집 『청구영언』,『해동가요』등에는 ‘북전’이란 곡조명과 그 곡조에 붙인 노랫말이 남아 있다. 권두환, 앞의 논문, 25~26쪽
성호경(성호경)은 이들 노랫말이 조선 초의 사대부들에 의하여 속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 노랫말들에 순서를 부여함으로써 <북전>의 원형이 다음과 같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1연) 흐리누거 괴어시든 어누거 좃니져러
젼젼 벋늬
2-2. 조선전기 기녀 시조
Ⅲ. 맺음말
참고문헌 및 논문
Ⅰ. 머리말
우리 문학사에서 시조(시조)는 조선조의 대표적인 시가이자, 사대부의 시가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조의 정의를 이태극은 “보통 시조라면 단시조(평시조)를 말하는데, 그 단시조라는 것은 신라의 향가나 고려의 별곡 등의 영향에 힘입어 고려 중 말엽경에 그 형태가 확립된 우리나라 고유시가의 하나다. 그 형식은 3장 6구요, 한 구의 구성 자수는 7자 내외가 되고, 4율박(율박)의 등시율(등시율)을 갖춘 정형시오, 자수율 44자(보통 42자에서 46자로 된 것이 대부분임) 중심으로 된 조선조 시가의 대표가 되는 단형시(단형시)로서 오늘에도 그 형식의 시조가 창작되고 있다.” 라고 하였다.
본 발표조는 조선조 시가문학의 꽃이자 ‘국민문학’이라 평가받은 시조에 대해 고찰하면서 고려말 조선초의 시대에 한해 평시조에 국한하여 조선전기 시조의 전개양상과 모습을 살펴보았다. 시조의 발생과 기원을 논함에 있어서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여러 학설들을 검토하였으며, 시조의 문학 당담층인 사대부와 시조와의 연관성을 찾으며 조선 전기의 시조 작품들을 분석하였다. 또한 사대부 이외 또 다른 시조의 담당층인 기녀들을 중심으로 창작된 기녀 시조를 함께 살펴보겠다.
Ⅱ. 본문
1. 시조의 발생과 기원
시조의 명칭은 조선 영조때 시인 신광수(신광수)의 『관서악부(관서악부)』에 의해 알려진 것으로 “일반으로 시조의 장단을 배한 것은 장안에서 온 이세춘”이라 한 것이 문헌상으로 나타난 최초의 기록이며 명칭이다. 시조라는 명칭의 본래 뜻은 시절가조(시절가조)로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뜻이다. 엄밀히 따진다면 ‘시조’라는 명칭은 문학상의 용어가 아니라 음악상의 용어이지만, 오늘날 문학상의 용어로 정착되었고 음악상 용어로는 ‘시조창’이란 명칭을 따로 쓴다.
시조는 시가장르로서 음악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아직까지 시조의 기원과 발생시기에 관해 많은 이설이 공존하고 있지만 음악과의 연관성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성호경은 “고전시가들이 대체로 가사가 중심이 되고 악곡(선율)이 부수적인 것이 되는 문학 위주의 양상을 많이 보인다. 한국고전시가 작품들은 그 대부분이 ‘노래하기 위한 시’이기보다는 ‘노래할 수 있는 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노래함’과 관련으로써 한국고전시가의 예술적 본질을 규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문학으로서의 시(시)가 그 예술적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시조의 발생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① 13세기 발생설
시조의 발생시기를 언제로 볼 것이냐에 관한 문제에서 우탁, 이존오, 이조년, 정몽주, 이방원 등 믿을만한 작가명이 등장한 시기인 고려말엽이라는 주장이 있다. 13세기 발생설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주장은 ‘향가나 백제가요 도는 고려가요 등에서 그 선행형태의 궤적(궤적)을 탐색하는 한편, 고려말엽에 이르러 새로운 이념을 표방하며 등장한 신흥사대부들이 시조의 발생에 관여한 주요 작가 층이었을 가능성’을 검토함으로써 시조학계 전반에 걸쳐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이방원의 <하여가>나 정몽주의 <단심가> 등이 후대인의 의작일 가능성이 높고 명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과 구체적인 작가의 등장을 곧 시조의 발생시기와 연관짓는다는 결함도 가지고 있다.
② 한시기원설
외래기원설과 재래기원설은 13세기 발생설과 달리 시조의 선행형태를 찾는 기원론으로 선행형태를 찾음으로써 시조의 발생과 기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이다. 외래기원설 중 대표적인 것이 시조의 형식이 한시의 형식에서 연유했다는 가설(가설)이다. 한시기원설은 한시의 시상 전개 방식이 시조의 그것과 상통한다는 것과 시조의 한 구가 7음절을 기준으로 구성된다는 점 등이 논거가 된다. 그러나 시조 종장 첫머리의 3음을 ‘절구의 전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하여 한시와 시조가 다같이 4단 구성의 시상 전개방식을 지닌 형식이라고 설명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다.
③ 향가기원설
재래기원설로 향가에서 시조가 기원하였다는 향가기원설이다. 10구체 향가의 경우 전체가 3분되고 낙구(락구)가 있고 음보가 4음보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전하는 향가의 해독이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파악이 어렵고 3단 구성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는 선형행태가 향가뿐만이 아니라 우리 시가 속에서 다수 파악된다는 점에서 향가가 시조의 직접적인 기원이라는 주장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④ 무가기원설
이외에도 무가(무가)기원설이 있지만 근거가 빈약하며, 현재 무당들이 부르는 무가가 오히려 시조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을 가능성 정재호, 앞의 책, 42쪽
이 있다.
⑤ 악곡기원설
악곡과 관련된 기원설은 속요의 음악적 분화와 곡에서 시조형의 모태(모태)를 찾으려 한 것이다. 정재호, 앞의 책, 46~48쪽
고려속요는 다양한 양상(양상)을 가진 시가의 총칭이기 때문에 단순히 ‘고려속요기원설’ 이라고 부른다면 오해가 따를 수 있다. 시조발생을 고려속요 중에서 ①<북전북전>기원설과, ②고려시대의 속요를 담은 악곡의 형태에서 초기 시조의 시형을 먼저 찾고 악곡<만대엽>을 통해 완성된 시조형을 찾으려는 시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 <북전> 기원설
<북전>은 고려 후기 충혜왕(1315~1344) 때에 궁중에서 연행되었던 악곡인데 그 곡에 붙여 부르던 노랫말이 온전하게 전하지 못하는 수난을 겪었던 작품으로, 세조 때의 음악을 반영하고 있다는 『대학후보』에 그 악보가 전하고, 성종 때 원 노랫말이 음란하다고 해서 고쳐 쓴 노랫말이 『악학궤범』에 전한다. 또 조선 전기에 편찬된 국악자료인 『금합자보』와 조선 후기에 편찬된 시조집 『청구영언』,『해동가요』등에는 ‘북전’이란 곡조명과 그 곡조에 붙인 노랫말이 남아 있다. 권두환, 앞의 논문, 25~26쪽
성호경(성호경)은 이들 노랫말이 조선 초의 사대부들에 의하여 속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 주목하여 그 노랫말들에 순서를 부여함으로써 <북전>의 원형이 다음과 같았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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