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시대별 미용의 변화>
1. 선사시대의 미용
2. 고대 이집트 & 파라오시대
3. 그리스시대
4. 로마시대
5. 비잔틴시대
6. 로마네스크 시대
7. 고딕시대
8. 르네상스시대
9. 바로크시대
10. 로코코시대
11. 엠파이어 시대
12. 로맨틱 시대
13. 크리놀린 시대
14. 버슬시대
15. s -letter 시대
16. 1900년대 패션
17. 1910년대 패션
18. 1920년대 패션
19. 1930년대 패션
20. 1940년대 패션
21. 1950년대 패션
22. 1960년대 패션
1. 선사시대의 미용
2. 고대 이집트 & 파라오시대
3. 그리스시대
4. 로마시대
5. 비잔틴시대
6. 로마네스크 시대
7. 고딕시대
8. 르네상스시대
9. 바로크시대
10. 로코코시대
11. 엠파이어 시대
12. 로맨틱 시대
13. 크리놀린 시대
14. 버슬시대
15. s -letter 시대
16. 1900년대 패션
17. 1910년대 패션
18. 1920년대 패션
19. 1930년대 패션
20. 1940년대 패션
21. 1950년대 패션
22. 1960년대 패션
본문내용
대신 베이지, 갈색 스타킹이 유행하였다. 그리고 메이크업은 평범 했는데, 눈썹을 가늘고 길게 짙은 색으로 그렸고, 강한 색상의 립스틱들이 유행하였다.
<가르손느 스타일>
17. 1930년대 패션
성인풍의 여성다움이 요구되던 시대로 1920년대와 비교하면 보이시 스타일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스커트 길이가 조금 길어지고 웨이스트 라인이 제위치로 돌아와 전체적으로 슬림 앤드 롱 실루엣이 되었다. 옷감을 바이어스 재단하거나 여러 폭으로 스커트를 만들어서 호리호리하면서도 스커트 아래 도련이 플레어지는 형태의 옷을 입었다. 또한 1920년대의 납작한 실루엣 대신에 브래지어를 사용하여 가슴을 살린 여성적인 옷을 입게 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타운웨어, 칵테일웨어, 스포츠웨어 등 장소와 때에 따라 알맞은 옷을 가려 입었다. 이브닝드레스로는 등을 드러내고 앞가슴을 가리는 홀터 네크라인의 이브닝드레스가 선보였는데 U자형이나 V자형으로 허리선까지 등이 노출되고 스커트는 플레어지게 한 디자인이었다.1930년대의 스타일은 1960년대에 다시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의 대공황 시대(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8)에서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가 연기한 여주인공 보니의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얻은 보니룩 으로서 재조명되었다. 전체적으로 롱 앤드 내로 실루엣에 퇴폐적인 무드의 여성 이미지가 가장 큰 특징으로 미디 스커트에 롱 카디건, 심플한 테일러 재킷에 V네크라인 스웨터, 베레모 등이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1933년에 약간 변화된 실루엣이 등장하였다. 스키아파렐리가 발표한 이 디자인은 테일러 슈트의 넓고 과장된 어깨소매에 전체적으로 길고 타이트한 스타일이었다. 또한 시각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어깨에 패드를 넣거나 주름을 잡았다. 지퍼를 의복에 사용하는 것을 최초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는 셔츠웨이스트 원피스가 나왔다. 1939년의 제2차 세계대전은 여성 복식을 더욱 현대화시켰다. 전쟁 중에는 스커트의 길이를 다시 단축하고 어깨를 살린 밀리터리룩이 유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물자도 귀하고 가격은 폭등하여 경제는 침체 상태에 머물렀다. 전쟁 중 물자의 부족 현상으로 의복에 법적 제제가 가해졌다. 밑단은 2인치를 넘지 못하게 하였고 하나의 블라우스에 하나의 패치 포켓만을 달 수 있었으며 커프스를 금지시켰다. 또한 전쟁 중 남자 부족 현상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물자 부족 및 이러한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193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짧은 스커트의 테일러 슈트인 밀리터리룩이 실용적인 기능복이 되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였다. 이 시기의 초기는 직선적인 실루엣으로 옷의 기능성을 중시하였다. 스커트는 폭이 좁아지면서 길이가 무릎까지 짧아지고 어깨에는 패드를 넣어 각진 어깨가 강조되었다. 활동하기 편한 박스형의 테일러 슈트가 유행하였으며 남성적인 테일러 슈트가 여성복으로 정착되었다. 또한 1939년경에는 스웨터가 널리 보급되었다.
1930년대 스타일
18. 1940년대 패션
1940년대는 대량생산에 의한 대량소비의 경향이 표출되었으며, 헐리우드 영화 배우 멀 오베른, 잉그리드 버그만, 로렌바콜 등이 패션 모델로 등장하고, 패션을 주도하였다. 또 미국의 디자이너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중에는 실용적인 기능 복 형태의 밀리터리룩이 유행을 하였으나, 전쟁 후에는 급격하게 실루엣이 변화하여 크리스챤 디오르의 여성스러운 뉴룩이 등장하였다. 이는 여성스러운 미를 나타낸 드롭 숄더의 둥근 어깨, 가는 허리와 둥근 힙, 밑단 쪽으로 길고 풍부하게 퍼지는 플레어 스커트의 뉴룩은 귀족적 취향의 부르조아적 패션의 재생인 동시에 현대 여성의 착장미가 정착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 1950년대 패션
1950년대는 젊은이들이 패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영화배우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소녀들은 마릴린 먼로나 오드리햅번, 소년들은 엘비스, 제임스 딘과 같은 반항아, 화난 젊은이, 방관자의 이미지를 선호하였으며 디오르는 수많은 라인을 발표하였고 여성들의 바지 착용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1951년의 리바이스사사의 등장은 이러한 경향을 촉진시켰다.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는 편안한 의상을 만드는 데 주력하였으며 솔기를 적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남성 복식은 기본적으로 효율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로서 회색 프란넬이 널리 착용되었다.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오드리 햅번>
20. 1960년대 패션
1961년에는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이 즐겨 입던 버튼다운룩이 세계의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1962년에는 마크 보앙이 발표한 퀼로트 스커트가 정장의 하이패션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모너니스트의 줄인 말인 모즈 운동은 화이트 칼라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는데 스쿠터를 타고, 말쑥하고 슬림한 테일러드 옷을 입고, 재즈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을 일컬었다. 그들은 ‘푸딩 그릇’ 같은 머리나 ‘프랑스식 컷’을 즐겼다. 그 당시 로커는 하위 문화의 머스쿨린룩과 비교해 댄디라 불렀다. 비틀즈는 대중 음악을 혁신했고, 앤디 워홀은 예술을 변혁했다. 이런 매체의 하나로서 패션 또한 변화하였다. 영국의 록그룹 비틀스의 초기 복장을 모방한 비틀스룩은 모즈룩의 하나였다. 짧은 스커트, 밝은 컬러, 그래픽 패턴, 특이한 소재와 같은 요소들이 매스 마켓부터 오트쿠튀르 산업까지 패션을 변화시키면서 1960년대의 패션에 영향을 끼쳤다.또, 1960년대는 처음으로 젊은 디자이너가 젊은이의 옷을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메리 퀀트는 최초로 영룩을 창조한 런던의 디자이너였다. 그녀의 미니스커트는 무릎 위 5~6인치의 미니에서 무릎 위 8~10인치의 마이크로 미니 스타일이었다. 앞가슴의 노출이 없어지고 하이네크 라인에 짧은 스커트, 심플한 형태, 편평한 구두, 짙은 눈화장을 한 스타일을 첼시룩이라 불렀다. 첼시룩은 대중적이 되어 미국 등 다른 도시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영국은 1960년대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의 특이하고, 스마트한 멋진 옷들은 1970년대에 ‘내추럴’ 스타일로 변화하였다.
<가르손느 스타일>
17. 1930년대 패션
성인풍의 여성다움이 요구되던 시대로 1920년대와 비교하면 보이시 스타일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스커트 길이가 조금 길어지고 웨이스트 라인이 제위치로 돌아와 전체적으로 슬림 앤드 롱 실루엣이 되었다. 옷감을 바이어스 재단하거나 여러 폭으로 스커트를 만들어서 호리호리하면서도 스커트 아래 도련이 플레어지는 형태의 옷을 입었다. 또한 1920년대의 납작한 실루엣 대신에 브래지어를 사용하여 가슴을 살린 여성적인 옷을 입게 되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타운웨어, 칵테일웨어, 스포츠웨어 등 장소와 때에 따라 알맞은 옷을 가려 입었다. 이브닝드레스로는 등을 드러내고 앞가슴을 가리는 홀터 네크라인의 이브닝드레스가 선보였는데 U자형이나 V자형으로 허리선까지 등이 노출되고 스커트는 플레어지게 한 디자인이었다.1930년대의 스타일은 1960년대에 다시 주목을 받았는데, 미국의 대공황 시대(193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8)에서 여배우 페이 더너웨이가 연기한 여주인공 보니의 이미지에서 모티브를 얻은 보니룩 으로서 재조명되었다. 전체적으로 롱 앤드 내로 실루엣에 퇴폐적인 무드의 여성 이미지가 가장 큰 특징으로 미디 스커트에 롱 카디건, 심플한 테일러 재킷에 V네크라인 스웨터, 베레모 등이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1933년에 약간 변화된 실루엣이 등장하였다. 스키아파렐리가 발표한 이 디자인은 테일러 슈트의 넓고 과장된 어깨소매에 전체적으로 길고 타이트한 스타일이었다. 또한 시각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어깨에 패드를 넣거나 주름을 잡았다. 지퍼를 의복에 사용하는 것을 최초로 시도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중반에는 셔츠웨이스트 원피스가 나왔다. 1939년의 제2차 세계대전은 여성 복식을 더욱 현대화시켰다. 전쟁 중에는 스커트의 길이를 다시 단축하고 어깨를 살린 밀리터리룩이 유행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물자도 귀하고 가격은 폭등하여 경제는 침체 상태에 머물렀다. 전쟁 중 물자의 부족 현상으로 의복에 법적 제제가 가해졌다. 밑단은 2인치를 넘지 못하게 하였고 하나의 블라우스에 하나의 패치 포켓만을 달 수 있었으며 커프스를 금지시켰다. 또한 전쟁 중 남자 부족 현상으로 인해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물자 부족 및 이러한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193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짧은 스커트의 테일러 슈트인 밀리터리룩이 실용적인 기능복이 되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였다. 이 시기의 초기는 직선적인 실루엣으로 옷의 기능성을 중시하였다. 스커트는 폭이 좁아지면서 길이가 무릎까지 짧아지고 어깨에는 패드를 넣어 각진 어깨가 강조되었다. 활동하기 편한 박스형의 테일러 슈트가 유행하였으며 남성적인 테일러 슈트가 여성복으로 정착되었다. 또한 1939년경에는 스웨터가 널리 보급되었다.
1930년대 스타일
18. 1940년대 패션
1940년대는 대량생산에 의한 대량소비의 경향이 표출되었으며, 헐리우드 영화 배우 멀 오베른, 잉그리드 버그만, 로렌바콜 등이 패션 모델로 등장하고, 패션을 주도하였다. 또 미국의 디자이너들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중에는 실용적인 기능 복 형태의 밀리터리룩이 유행을 하였으나, 전쟁 후에는 급격하게 실루엣이 변화하여 크리스챤 디오르의 여성스러운 뉴룩이 등장하였다. 이는 여성스러운 미를 나타낸 드롭 숄더의 둥근 어깨, 가는 허리와 둥근 힙, 밑단 쪽으로 길고 풍부하게 퍼지는 플레어 스커트의 뉴룩은 귀족적 취향의 부르조아적 패션의 재생인 동시에 현대 여성의 착장미가 정착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 1950년대 패션
1950년대는 젊은이들이 패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고 영화배우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소녀들은 마릴린 먼로나 오드리햅번, 소년들은 엘비스, 제임스 딘과 같은 반항아, 화난 젊은이, 방관자의 이미지를 선호하였으며 디오르는 수많은 라인을 발표하였고 여성들의 바지 착용이 일반화되었다. 특히 1951년의 리바이스사사의 등장은 이러한 경향을 촉진시켰다. 크리스토벌 발렌시아가는 편안한 의상을 만드는 데 주력하였으며 솔기를 적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남성 복식은 기본적으로 효율적이고 단순한 이미지로서 회색 프란넬이 널리 착용되었다.
<마릴린 먼로> <제임스 딘> <오드리 햅번>
20. 1960년대 패션
1961년에는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이 즐겨 입던 버튼다운룩이 세계의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1962년에는 마크 보앙이 발표한 퀼로트 스커트가 정장의 하이패션에 등장하였다. 그리고 모너니스트의 줄인 말인 모즈 운동은 화이트 칼라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는데 스쿠터를 타고, 말쑥하고 슬림한 테일러드 옷을 입고, 재즈 음악을 듣는 젊은이들을 일컬었다. 그들은 ‘푸딩 그릇’ 같은 머리나 ‘프랑스식 컷’을 즐겼다. 그 당시 로커는 하위 문화의 머스쿨린룩과 비교해 댄디라 불렀다. 비틀즈는 대중 음악을 혁신했고, 앤디 워홀은 예술을 변혁했다. 이런 매체의 하나로서 패션 또한 변화하였다. 영국의 록그룹 비틀스의 초기 복장을 모방한 비틀스룩은 모즈룩의 하나였다. 짧은 스커트, 밝은 컬러, 그래픽 패턴, 특이한 소재와 같은 요소들이 매스 마켓부터 오트쿠튀르 산업까지 패션을 변화시키면서 1960년대의 패션에 영향을 끼쳤다.또, 1960년대는 처음으로 젊은 디자이너가 젊은이의 옷을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메리 퀀트는 최초로 영룩을 창조한 런던의 디자이너였다. 그녀의 미니스커트는 무릎 위 5~6인치의 미니에서 무릎 위 8~10인치의 마이크로 미니 스타일이었다. 앞가슴의 노출이 없어지고 하이네크 라인에 짧은 스커트, 심플한 형태, 편평한 구두, 짙은 눈화장을 한 스타일을 첼시룩이라 불렀다. 첼시룩은 대중적이 되어 미국 등 다른 도시로 널리 퍼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영국은 1960년대 패션과 디자인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의 특이하고, 스마트한 멋진 옷들은 1970년대에 ‘내추럴’ 스타일로 변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