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추격자 실화 유영철의 사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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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 추격자 실화 유영철의 사건일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학위까지 받은 김용화 수사부장이 차분히 추궁하자 유영철은 이내 자백하기 시작했다.
우선 4건의 부유층 노인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임을 자백했다. 자백 내용이 구체적이고 상세하며 범인이 아니면 모를 이야기들을 하거나 현장 상황을 정확히 재현해 그리는 점 등으로 보아 범인이 분명했다.
진술에 뒤이은 현장 답사에서도 정확히 피해 주택들을 찾아내고 사건 현장의 처음 모습을 재현해냈다. 11시간 도주하는 동안 증거가 될 만한 물건들을 버렸다는 진술에 따라 수색한 결과 유영철의 하숙집에서 멀지 않은 골목길 구석에서 범행에 사용한 해머가방도 발견해 수거했다. 나중에 이 해머의 손잡이 플라스틱 안쪽에서 피해자의 혈흔을 발견했다.
이상한 것은 이미 4건의 연쇄살이을 자백한 유영철이 정작 체포된 이유인 출장 마사지사 실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는 것이었다. 수사부장은 계속해서 유영철이 소지하고 있던 여성용 발찌와 손목시계, 여분의 휴대전화에 대해 그 출처를 집중 추궁했다.
꿋꿋하게 거짓말에 거짓말을 거듭하던 유영철은 마침내 스스로의 거짓말에 지쳐 모두 피해 여성들의 사건들이고 여성들을 모두 살해해서 토막 낸 후 유기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 2004년 7월 16일 저녁 7시 반. 김용화 수사부장이 직접 앞장 선 수사진은 유영철을 앞세워 사체 1구를 매장했다는 신촌 대학 부근에 있는 야산으로 올라갔다. 지역 주민들이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등산로를 따라 8부 능선쯤에 이르자 유영철은 한 켠에 있는 고목나무 뿌리 밑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태연자약하게 말했다.
\"저기 파보세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표시나 흔적도 없는 뿌리만 남은 고목 나무 밑둥을 들춰내고 흙을 조금 파내자 이내 물컹한 것이 손에 잡혔다. 비닐 봉지에 담은 사체 조각이었다. 모두 18조각. 사체는 이미 심하게 부패해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였다.
서울 경찰청 과학수사요원들이 장비를 갖추고 세심하게 비닐을 벗겨낸 다음 사진을 찍고 오랜 시간에 걸쳐 조각들을 인체 형태로 맞추어 나갔다. 사체들은 손가락들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였다. 지문을 통한 신원 확인을 하지 못하도록 한 짓이었다.
그러나 감식 요원들의 일만 어렵게 할뿐 잘려나간 손가락 마디에서도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다. 지문을 현출하여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한 다음 가족들과의 DNA 비교 분석으로 확인했던 것이다.
24살의 나이에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시골에서 올라와 일자리를 찾던 끝에 전화방 도우미 일을 하던 여성이었다. 유영철이 지목한 다음 장소 역시 신촌 지역의 다른 대학교 인근 산자락으로 계곡물이 흐르고 한 켠에서는 대형 빌딩 신축 공사가 진행중이라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곳이었다.
계곡 이쪽과 저쪽. 공사 현장 뒤켠 등에서 모두 11구의 사체들을 찾아냈다. 이번에도 사체들은 모두 조각나 있었고 손가락 지문 부분이 잘려나갔으며 일부 사체에서는 장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유영철은 이후 조사에서 사체의 장기 일부를 믹서기에 갈아 마셨다고 진술했다.
18개의 토막으로 절단된 11구의 사체들 중 일부는 서로 뒤섞여 있기도 하고 부패가 많이 진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과수사요원들과 국과수법의학자들이 총동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별로 조각들을 맞추어 몸형태를 재구성해내는 작업에 몇일 밤낮이 걸렸다.
지문감식. 전국의 실종자 및 가출인 명단과의 대조. 사체와 예비 유족들의 DNA 비교분석등­ 신원을 파악하는 작업도 엄청난 일이었다. 피해자들은 모두 2.30대 여성들이었고 끝까지 가족이 나서지 않아 DNA 비교를 하지 못한 2명을 제외한 9명의 신원이 모두 밝혀졌다. 대부분은 출장 마사지 업소나 전화방 등에 종사하는 여성들이었지만 결혼을 하루 앞둔 채 실종되었던 예비 신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유영철은 발굴된 사체 외에도 5명의 여성을 더 살해해서 같은 장소에 매장했다고 주장했다. 그 말에 따라 수차례에 걸쳐 유적 발굴에 버금가는 수색과 발굴 작업을 벌였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 유영철은 인천 월미도에서 손목이 잘린 채 불에 탄 차량 안에서 발견된 서울 황학동 노점상 사체 역시 자신이 살해한 것이라고 자백했고, 공개되지 않은 현장 상황을 정확히 진술해서 범인임이 확인되었다.
인천 살인사건 현장 검증 때는 몰려든 취재진과 인근 주민들 속에 피해자 유가족들이 있었는데 너무도 태연한 유영철의 태도에 분노한 고인의 아내는 울다가 실신했고, 동생은 웃옷을 벗어던진 채 \"유영철, 이 비겁한 놈아. 우리 형님 대신 나랑 한판 하자.\" 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어, 경찰과 주민, 휘재진을 물론 이 장면을 텔레비전 뉴스로 본 국민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피해자의 동생이 그 후 사건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결국 자살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누누이 지적해왔던 범죄 피해자 대책이 여전히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발생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매우 크다.
경찰 구속 기간이 끝나갈 무렵 유영철은 마치 보너스를 준다는 듯이 이문동 출근길 여성 살해 사건도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자백했다.
역시 범인이 아니면 모를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진술했기 때문에 경찰은 현장 검증을 마친후 유영철사건 목록에 포함시켰고, 검찰 역시 다른 사건들과 함께 기소했지만 법정에서 유영철이 진술을 번복하고 범행을 부인하는 바람에 결국 이문동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문동 사건 역시 범죄 피해자 보호와 지원 측면에서 큰 문제를 드러낸 경우인데, 유영철을 검찰에 송치하기 직전에 취재진들이 운집해 있는 상황에서 이문동 사건 피해자의 어머니가 우산을 들고 유영철 앞으로 달려나오자 유영철을 호송하던 경찰관이 반사적으로 다리를 올려 피해자 어머니가 그 발에 맞고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진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었다.
언론과 여론에서는 경찰이 살인마 유영철을 보호하기 위해 비탄에 잠겨 이성을 잃은 연약한 피해자 유가족을 발로 차는 과잉행동을 했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경찰관이나 사회복지사가 전혀 없는 우리 제도가 문제의 원인이지, 해당 경찰관 역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경찰청장이 공개석상에서 고개 숙여 사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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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5.05
  • 저작시기2008.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6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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