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지니고 있었다.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약식동원(藥食同原)이 그것이다.
산과 들, 바다와 강, 나는 것과 기는 것, 그리고 헤엄치는 것... 나물, 과일, 곡식, 짐승, 물고기, 새 등 자연에 사는 모든 것들이 먹는 것이고, 그것들의 이치를 알아 잘 먹음으로써 약이 되게 하여 건강을 지킨다... 이것이 예로부터 전해져 온 먹는 것에 대한 철학이다.
꽃을 먹는 것 또한 꽃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섭취하여 건강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식품으로서의 영양분만이 아니라 꽃이 가진 아름다움, 색채, 향기, 감촉, 그것이 전해주는 계절감... 그런 것들일 것이다.
자연을 고스란히 미각으로 옮겨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나 할까?
꽃은 식물의 생식기에 해당해서 우리 조상들은 꽃을 벽사나 기복을 위해 먹기도 했다.
풍년을 기원하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 소원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어떻게 꽃을 먹었을까?
꽃을 가장 많이 이용한 음식은 술이다.
옛날 조리서로 알려진 책들을 보면 집집마다 꽃을 넣어 향기가 나는 특별한 술을 담그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두견주, 도화주, 국화주, 개나리주, 매화주, 연화주, 해당화주, 인동꽃주, 송화주 등등 그 종류가 아주 많다.
찹쌀가루 반죽을 기름에 지지며 꽃을 붙여 모양을 내는 떡, 화전도 우리는 진달래꽃밖에 알지 못하지만 옛 사람들은 두견화전, 노란장미화전, 흰찔레꽃전, 국화전 같은 화전을 해 먹었다고 한다.
또한, 요즘 꽃차를 많이 마시는데, 옛날에도 매화, 국화, 귤화, 해당화, 인동꽃, 연꽃, 진달래, 장미꽃 같은 꽃들을 차로 해 마셨다.
또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꽃 자체를 나물이나 장아찌, 국, 밥으로도 해먹었다.
원추리꽃, 부추꽃, 참등꽃, 치자꽃, 유채꽃, 호박꽃, 솔꽃 등이 대표적이다.
궁중음식에서는 두견화, 호박꽃, 한련화, 국화, 노란장미, 황화채를 많이 사용했다.
원추리꽃은 넘나물, 광채라고도 하며 어린 싹과 꽃을 먹는다.
산림경제(1715년)에는 \"6-7월 꽃이 필 무렵 꽃술을 따서 버리고 한소끔 끓여내어 초를 쳐서 먹는데 입에 넣으면 신선음식 같아 보드랍고 담백함이 송이보다 나아 나물중에 으뜸이다\"라고 이 꽃을 소개하고 있다.
또 본초강목(1596년)에는 <원추리꽃을 삶아 먹으면 오장육부가 편하고 몸이 가벼워지고, 눈을 밝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을 잊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 조선 사람들이 원추리꽃 말린 것을 중국인에게 팔았다>고 되어 있다.
◎전골의 시초
대장금에서는 버섯 전골, 두부 전골, 꿩 전골, 도미면 등 재료와 그릇(전골틀) 모양을 달리하며 여러 차례 등장을 했다.
전골은 여럿이 모인 식탁 한가운데에 불을 지피고 그 위에 큰 냄비를 놓고 갖가지 재료를 스스로 넣어 익혀 가면서 즐기는 음식이다.
‘큰 냄비’라고 한 것은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전골을 만들 때 사용하는 그릇은 끓이는 일과 굽는 일,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 별나게 생겼다.
아래에 전골에 관해 서술한 옛 문헌들을 소개하니 한번 그 그릇을 상상해 보자.
장지연의 만국사물기원역사(1909)에 씌어 있기를 <전골은 그 기원을 잘 모르나 상고시대 진중의 군사들이 머리에 쓰는 전립(氈笠)을 쇠로 만들어 썼기에 기구가 변변치 않은 진중에서 그 안에 고기, 생선 등 먹을 수 있는 것을 되는 대로 넣어 끓여 먹은 것이 습관이 되어 보통집들도 그리 해먹었고 이름도 전골이라 불렀다.>라 한다.
또,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에 이르기를 <토정선생이(1517-1578) 늘 철관을 쓰고 유람하며, 그 철관에 음식을 끓여 먹었다 하여 그의 별호를 철관자라 한다>라 한다.
경도잡지(1700년대말)에는 <냄비 이름에 전립투란 것이 있다. 벙거지 모양으로 생긴 데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에 채소를 데치고 변두리 편편한 곳에 고기를 굽는다. 술안주나 반찬에 모두 좋다>고 씌어 있다.
옹희잡지(1800년초)에는 <적육기(炙肉器)에 전립을 거꾸로 눕힌 것과 같은 모양이 있다. 도라지, 무, 미나리, 파무리를 세절하여 복판 우묵한 곳에 넣어둔 장국에 담근다. 이것을 숯불 위에 놓고 철을 뜨겁게 달군다. 고기는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유장에 적시고 젓가락으로 집어 사면의 테두리에 지져 굽는다. 그리하여 3~4인이 먹는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재료를 고기, 채소 따로 준비해두고, 방안에 둔 화로 위에 냄비와 프라이팬 겸용으로 쓸 수 있는 테가 달린 둥근 모자 모양의 기구를 올려 놓고 서로 어울리며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납작하고 넓은 냄비로 변했다. 그것은 화로가 사라지고 취사할 수 있는 불도 가스나 전기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 즐기는 일본 음식인 샤브샤브나 냄비요리, 스끼야끼 같은 것도 전골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옛날 궁중에서도 섣달 사냥철에 임금님과 무사들이 들에 나가 잡아온 산돼지, 사슴, 노루, 꿩, 토끼 같은 짐승들의 고기를 양념하여 갖은 채소와 함께 끓이다가 구워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납평전골이라 부르는데, 중국의 징기스칸 요리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수라상에서 전골의 의미는 그보다는 즉석에서 바로 익혀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있으니 임금께 그것을 대접하고 싶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인 듯하다.
◎궁금했던 음식들
냄비안에 각종 버섯과 양지머리편육,달걀삶은 것,파 등의 재료가 빠른 속도로 담겨지던 음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버섯전골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평안도 음식인 어복쟁반에서 생각해 낸 것이다.
실제 어복쟁반은 놋쟁반에 육수를 따뜻하게 덥히면서 소의 유통,양지,사태 등 여러부위를 삶아 얇게 썬 것을 넣으면서 여럿이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 고기는초장에 찍어 먹고 녹두전도 얇게 부쳐 넣는다.
이 어복쟁반을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이 있는데 메밀국수나 만두를 넣어 같이 먹기도 한다.
대하찜은 궁중음식이 잣을 많이 쓴다고 했었던 음식 중 하나이다.
만드는 법은 큰새우를 쪄서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갈라 어슷어슷 여러쪽으로 나눈다. 그리고 오이절여 볶은 것,죽순
산과 들, 바다와 강, 나는 것과 기는 것, 그리고 헤엄치는 것... 나물, 과일, 곡식, 짐승, 물고기, 새 등 자연에 사는 모든 것들이 먹는 것이고, 그것들의 이치를 알아 잘 먹음으로써 약이 되게 하여 건강을 지킨다... 이것이 예로부터 전해져 온 먹는 것에 대한 철학이다.
꽃을 먹는 것 또한 꽃이 가지고 있는 효능을 섭취하여 건강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꽃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식품으로서의 영양분만이 아니라 꽃이 가진 아름다움, 색채, 향기, 감촉, 그것이 전해주는 계절감... 그런 것들일 것이다.
자연을 고스란히 미각으로 옮겨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나 할까?
꽃은 식물의 생식기에 해당해서 우리 조상들은 꽃을 벽사나 기복을 위해 먹기도 했다.
풍년을 기원하고 아들을 낳게 해달라 소원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어떻게 꽃을 먹었을까?
꽃을 가장 많이 이용한 음식은 술이다.
옛날 조리서로 알려진 책들을 보면 집집마다 꽃을 넣어 향기가 나는 특별한 술을 담그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두견주, 도화주, 국화주, 개나리주, 매화주, 연화주, 해당화주, 인동꽃주, 송화주 등등 그 종류가 아주 많다.
찹쌀가루 반죽을 기름에 지지며 꽃을 붙여 모양을 내는 떡, 화전도 우리는 진달래꽃밖에 알지 못하지만 옛 사람들은 두견화전, 노란장미화전, 흰찔레꽃전, 국화전 같은 화전을 해 먹었다고 한다.
또한, 요즘 꽃차를 많이 마시는데, 옛날에도 매화, 국화, 귤화, 해당화, 인동꽃, 연꽃, 진달래, 장미꽃 같은 꽃들을 차로 해 마셨다.
또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꽃 자체를 나물이나 장아찌, 국, 밥으로도 해먹었다.
원추리꽃, 부추꽃, 참등꽃, 치자꽃, 유채꽃, 호박꽃, 솔꽃 등이 대표적이다.
궁중음식에서는 두견화, 호박꽃, 한련화, 국화, 노란장미, 황화채를 많이 사용했다.
원추리꽃은 넘나물, 광채라고도 하며 어린 싹과 꽃을 먹는다.
산림경제(1715년)에는 \"6-7월 꽃이 필 무렵 꽃술을 따서 버리고 한소끔 끓여내어 초를 쳐서 먹는데 입에 넣으면 신선음식 같아 보드랍고 담백함이 송이보다 나아 나물중에 으뜸이다\"라고 이 꽃을 소개하고 있다.
또 본초강목(1596년)에는 <원추리꽃을 삶아 먹으면 오장육부가 편하고 몸이 가벼워지고, 눈을 밝게 하며, 사람으로 하여금 근심을 잊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 조선 사람들이 원추리꽃 말린 것을 중국인에게 팔았다>고 되어 있다.
◎전골의 시초
대장금에서는 버섯 전골, 두부 전골, 꿩 전골, 도미면 등 재료와 그릇(전골틀) 모양을 달리하며 여러 차례 등장을 했다.
전골은 여럿이 모인 식탁 한가운데에 불을 지피고 그 위에 큰 냄비를 놓고 갖가지 재료를 스스로 넣어 익혀 가면서 즐기는 음식이다.
‘큰 냄비’라고 한 것은 달리 설명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전골을 만들 때 사용하는 그릇은 끓이는 일과 굽는 일,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라 별나게 생겼다.
아래에 전골에 관해 서술한 옛 문헌들을 소개하니 한번 그 그릇을 상상해 보자.
장지연의 만국사물기원역사(1909)에 씌어 있기를 <전골은 그 기원을 잘 모르나 상고시대 진중의 군사들이 머리에 쓰는 전립(氈笠)을 쇠로 만들어 썼기에 기구가 변변치 않은 진중에서 그 안에 고기, 생선 등 먹을 수 있는 것을 되는 대로 넣어 끓여 먹은 것이 습관이 되어 보통집들도 그리 해먹었고 이름도 전골이라 불렀다.>라 한다.
또, 유몽인(1559-1623)의 어우야담에 이르기를 <토정선생이(1517-1578) 늘 철관을 쓰고 유람하며, 그 철관에 음식을 끓여 먹었다 하여 그의 별호를 철관자라 한다>라 한다.
경도잡지(1700년대말)에는 <냄비 이름에 전립투란 것이 있다. 벙거지 모양으로 생긴 데서 이름 붙여진 것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에 채소를 데치고 변두리 편편한 곳에 고기를 굽는다. 술안주나 반찬에 모두 좋다>고 씌어 있다.
옹희잡지(1800년초)에는 <적육기(炙肉器)에 전립을 거꾸로 눕힌 것과 같은 모양이 있다. 도라지, 무, 미나리, 파무리를 세절하여 복판 우묵한 곳에 넣어둔 장국에 담근다. 이것을 숯불 위에 놓고 철을 뜨겁게 달군다. 고기는 종잇장처럼 얇게 썰어 유장에 적시고 젓가락으로 집어 사면의 테두리에 지져 굽는다. 그리하여 3~4인이 먹는다.>고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재료를 고기, 채소 따로 준비해두고, 방안에 둔 화로 위에 냄비와 프라이팬 겸용으로 쓸 수 있는 테가 달린 둥근 모자 모양의 기구를 올려 놓고 서로 어울리며 먹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납작하고 넓은 냄비로 변했다. 그것은 화로가 사라지고 취사할 수 있는 불도 가스나 전기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 즐기는 일본 음식인 샤브샤브나 냄비요리, 스끼야끼 같은 것도 전골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옛날 궁중에서도 섣달 사냥철에 임금님과 무사들이 들에 나가 잡아온 산돼지, 사슴, 노루, 꿩, 토끼 같은 짐승들의 고기를 양념하여 갖은 채소와 함께 끓이다가 구워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납평전골이라 부르는데, 중국의 징기스칸 요리와 마찬가지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수라상에서 전골의 의미는 그보다는 즉석에서 바로 익혀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있으니 임금께 그것을 대접하고 싶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인 듯하다.
◎궁금했던 음식들
냄비안에 각종 버섯과 양지머리편육,달걀삶은 것,파 등의 재료가 빠른 속도로 담겨지던 음식이 있었는데 그것은 버섯전골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평안도 음식인 어복쟁반에서 생각해 낸 것이다.
실제 어복쟁반은 놋쟁반에 육수를 따뜻하게 덥히면서 소의 유통,양지,사태 등 여러부위를 삶아 얇게 썬 것을 넣으면서 여럿이 나누어 먹는 음식이다. 고기는초장에 찍어 먹고 녹두전도 얇게 부쳐 넣는다.
이 어복쟁반을 전문적으로 파는 식당이 있는데 메밀국수나 만두를 넣어 같이 먹기도 한다.
대하찜은 궁중음식이 잣을 많이 쓴다고 했었던 음식 중 하나이다.
만드는 법은 큰새우를 쪄서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갈라 어슷어슷 여러쪽으로 나눈다. 그리고 오이절여 볶은 것,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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