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 론
1) 르완다에 대한 간략한 개관
Ⅱ.본론
2) 르완다 내전에 대한 전반적 설명
① 르완다 내전의 역사적 배경
② 독립이후 르완다의 진행과정
③ 르완다 내전의 발발
④ 르완다 내전 진정 후 상황
3) 르완다 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Ⅲ.결론
※ 참고문헌
1) 르완다에 대한 간략한 개관
Ⅱ.본론
2) 르완다 내전에 대한 전반적 설명
① 르완다 내전의 역사적 배경
② 독립이후 르완다의 진행과정
③ 르완다 내전의 발발
④ 르완다 내전 진정 후 상황
3) 르완다 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
Ⅲ.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같은 학교를 다니며, 같은 마을에 살고,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 그들은 서로 간의 결혼도 자유로웠고,(벨기에 이후에는 불가능했다.) 소속 부족을 바꾸기도 했다. 르완다인의 4분의 1은 투치족과 후투족 모두의 후예이다. 그리고 르완다 북서부의 마을에서는 단 한명의 투치족을 제회하고는 모두 후투족인데, 마을 사람 5%(르완다 전체 평균학살양은 11%)가 학살당했다. \"종족 간의 대립\"이 있을 수 없는 곳에서.
르완다 대학살의 대상은 오직 투치족 뿐 만이 아니었다.
대학살 당시 르완다의 인구밀도는 1평방마일 당 760명꼴로, 인구과밀이 엄청난 나라다. 인구 증가율은 말할 것도 없으며, 1인당 경지 면적은 0.14에이커였다. 결국엔 이 비좁은 땅에서, 모두가 최하층의 삶을 살았으며 부유층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소작인으로 받아줄 형편도 못되었다 그리고 자녀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다자녀는, 유아사상률이 높을 때에는 그나마 실효를 보았으나, 유아사상률이 사라진 때, 거의 필요가 없었다. 다만 다자녀는 가족 간의 분란만 만들 뿐, 결국에는 가족간의 소송도 계속되었고, 조금의 경지라도 찾아보려는 움직임도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중오하고, 서로가 대립하는 상태였다. 굳이 투치족, 후투족 나누지 않더라도, 후투족, 투치족 내에서도 이런 대립이 존재했었던 것이다. 게다가 르완다는 전체적으로도 환경문제로 인하여 경제성장이 거의 멈춘 상태였다. 결국 이러한 인구 압력과 서로간의 대립, 중오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단순한 여론 조작으로 후투족, 투치족간의 중오로 이어졌고, 결국엔 폭발한 것이다 문명과 대량학살의 역사
.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구 과밀과 압박이었다. 종족간의 가들보다 더 심각하고도 가까우면서도 먼 문제, 말 그대로 그들은 \"사람다운 삶\"을 누리지 못할 만큼 경지가 적었고, 부유층도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인구학자인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성장을 억제하지 않고 단지 식량 생산량을 닐림으로써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거론했다.
인구가 두배로 늘어나는 데 35년이 걸린다면, 2000년에 100명이었던 사람이 2035년에는 200명, 2070년에는 400명, 2105년에는 800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한다고 해서 식량까지 그 속도에 맞추어 증가해 주지는 않는다, 즉 인구는 많이 증가하지만, 식량은 조금만 증가하여 결국 식량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멜더스 ‘인구론’
르완다는 그의 예였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땅은 부족했다. 1인단 경지가 0.14에이커에 불과했으며, 유산을 둘러싼 가족간의 싸움, 그리고 땅을 둘러싼 이웃간의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엔 투치족과 후투족의 대립으로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나타났다. 하지만 내막은 인구 과밀로 인한 갈등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두려운 진실을 알려준다. 인구 과밀로 인한 재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도 먼 이야기이다. 그런 그 이야기가 결국에는 대학살로 표출
르완다 대학살의 대상은 오직 투치족 뿐 만이 아니었다.
대학살 당시 르완다의 인구밀도는 1평방마일 당 760명꼴로, 인구과밀이 엄청난 나라다. 인구 증가율은 말할 것도 없으며, 1인당 경지 면적은 0.14에이커였다. 결국엔 이 비좁은 땅에서, 모두가 최하층의 삶을 살았으며 부유층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소작인으로 받아줄 형편도 못되었다 그리고 자녀가 많은 것도 문제였다. 다자녀는, 유아사상률이 높을 때에는 그나마 실효를 보았으나, 유아사상률이 사라진 때, 거의 필요가 없었다. 다만 다자녀는 가족 간의 분란만 만들 뿐, 결국에는 가족간의 소송도 계속되었고, 조금의 경지라도 찾아보려는 움직임도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중오하고, 서로가 대립하는 상태였다. 굳이 투치족, 후투족 나누지 않더라도, 후투족, 투치족 내에서도 이런 대립이 존재했었던 것이다. 게다가 르완다는 전체적으로도 환경문제로 인하여 경제성장이 거의 멈춘 상태였다. 결국 이러한 인구 압력과 서로간의 대립, 중오는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단순한 여론 조작으로 후투족, 투치족간의 중오로 이어졌고, 결국엔 폭발한 것이다 문명과 대량학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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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구 과밀과 압박이었다. 종족간의 가들보다 더 심각하고도 가까우면서도 먼 문제, 말 그대로 그들은 \"사람다운 삶\"을 누리지 못할 만큼 경지가 적었고, 부유층도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인구학자인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성장을 억제하지 않고 단지 식량 생산량을 닐림으로써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리고 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거론했다.
인구가 두배로 늘어나는 데 35년이 걸린다면, 2000년에 100명이었던 사람이 2035년에는 200명, 2070년에는 400명, 2105년에는 800명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인구가 증가한다고 해서 식량까지 그 속도에 맞추어 증가해 주지는 않는다, 즉 인구는 많이 증가하지만, 식량은 조금만 증가하여 결국 식량이 부족해지는 것이다. 멜더스 ‘인구론’
르완다는 그의 예였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땅은 부족했다. 1인단 경지가 0.14에이커에 불과했으며, 유산을 둘러싼 가족간의 싸움, 그리고 땅을 둘러싼 이웃간의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엔 투치족과 후투족의 대립으로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나타났다. 하지만 내막은 인구 과밀로 인한 갈등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두려운 진실을 알려준다. 인구 과밀로 인한 재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도 먼 이야기이다. 그런 그 이야기가 결국에는 대학살로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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