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 론
1) 신경림의 발자취
2) 시집 ‘농무’에 대해
2. 본 론
1) -표현론(작가)적 관점에서 본 신경림 시의세계
2) -시대적 관점에서 본 작품집『농무』
3) -민요시적 특성 계승& 서술적 구조
4) -효용론적 관점에서 살펴본 농무
3. 결 론
1) 신경림의 발자취
2) 시집 ‘농무’에 대해
2. 본 론
1) -표현론(작가)적 관점에서 본 신경림 시의세계
2) -시대적 관점에서 본 작품집『농무』
3) -민요시적 특성 계승& 서술적 구조
4) -효용론적 관점에서 살펴본 농무
3. 결 론
본문내용
(작가)적 관점에서 작가의 어린 시절, 독서편력, 특히 낙향 후 체험들을 알아본다. 두 번 째로 리얼리즘 문학 작가로써 신경림의《농무》시대적 관점을 살펴본다. 그리고 효용론적 관점에서 살펴본 농무를 언급하고 마지막으로 민요시적 특성 계승과 서술적 구조상의 《농무》를 짚어본다.
\'어쩌면 시는 언젠가는 버려질 방언 같은 것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삶이 안고 있는 갈등과 고통을 덜어줄 빛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 신경림은 최근 10번째 시집《낙타》를 출간하며 반세기 넘은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수학 공식 외우듯 공부했던 농무가 들어있는 작품집 《농무》에 대해 민중 문학적 농민시를 출발시킨 중요한 역사적 함의를 주지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Ⅱ 본론
-표현론(작가)적 관점에서 본 신경림 시의세계
표현론적 관점은 작가의 전기적 사실이나 심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전기적, 심리적 사실이 작품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둔다.
[출처] 한국문학의 이해 3주째 수업자료-문학의 기초이론 p.7
1. 시인의 어린시절
흔히 신경림 시인이 농민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시골이었지만 자라난 곳이 아주 농촌은 아니었다. 집성촌에 딸린 마을로 장터를 끼고 개울 하나 건너서 뒤로는 광산이 있었던 충북 충주의 고향은 ‘농무’ 시집 속에 자주 등장하는 광산, 장터등지의 시인의 시적 배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내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일들은 대개 광산에 관계되는 것들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 뒤 언덕길을 지나가던 밤 대거리들의 칸델라 불빛, 장날이면 으레 싸전 뒤 밤나무 아래서 벌어지던 광부들의 싸움질, 콩을 팔러 집으로 찾아오던 광부의 아낙네들의 억센 사투리, 어머니를 따라가 들여다본 단칸 움막 속의 흐린 십 촉 전등, 금방앗간에서 흘러와 냇물바닥에 깔리던 복대기흙.
내 마음속에서 광산이라는 것이 그토록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기실 삼촌으로 해서였다. 전쟁 말기에 삼촌은 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는데, 그 얼마 뒤에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어 광산은 폐광되었다. (경림의 삼촌은 6.25 발발시 시류에 휩쓸려 희생을 당한다. 당시 소년 신경림은 그의 삼촌의 억울한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후에 그때 겪은 아픈 경험을 살려 시 ‘폐광’으로 옮겨 놓는다.)
해방이 되면서 광산은 전성기를 이루었다. 다닥다닥 붙은 움막들이 몇 백 채에 이르렀고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진종일 청승스러운 유행가 가락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우리 집은 본격적으로 광산과 맺어지기 시작했다. 삼촌은 자본주의를 끌어들여 덕대로서 분광의 경영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아버지마저 연상이 되어 광산에 손을 대게 되었다. 명절이 오면 이십여 명의 광부들이 우리 집에 모여 돼지를 잡고 순대를 삶으며 웅성대던 모습이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중 ‘내 시의 뒷이야기’
[출처] 신경림 문학앨범 / 웅진출판 p.35, 36
廢 鑛 (폐 / 광)
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리개차가 감석을 날라 붓던 버력더미 위에
민들레가 피어도 그냥 춥던 사월
지까다비를 신은 삼촌의 친구들은
우리 집 봉당에 모여 소주를 켰다.
나는 그들이 주먹을 떠는 까닭을 몰랐다.
밤이면 숱한 빈 움막에서 도깨비가 나온데서
칸데라 불이 흐린 뒷방에 박혀
늙은 덕대가 접어준 딱지를 세었다.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
빈 금구덩이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
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
[출처] 신경림 / 農舞|창작과 비평사 p.48
신경림의 집안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당숙, 삼당숙 되는 사람 가운데는 일본 유학생도 많고, 형제 항렬의 사람들은 거의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일찍 공부를 시작해서 말하자면 출세지향적인 집안이었다. 시인의 아버지도 그냥 농사꾼이 아니라 시골에서 농업학교를 나와서 금융조합 서기도 하고 광산과 관련된 일도 하였다. 어머니는 시골의 일반 아낙네와는 달리, 신학문ㆍ신교육은 안 받았지만 상당히 교양 있는 집안의 딸이었다. 이런 집안 분위기는 경림을 문학의 길에 일찍 들어서게 해주었다.
2. 다양한 독서편력
신경림의 집안에는 항상 책이 많이 있었던 관계로 이광수ㆍ김동인의 작품들을 중학교 1, 2학년 때 독파하였다. 소설을 먼저 접하였는데 탐정소설에서 도스또예프스끼 전집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다. 시인으로는 정지용, 백석, 이용악 등의 시를 즐겨 보았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독백보다는 서사적인 얼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백석이나 이용악의 시를 즐겨 읽고 마음에 두었고 소설을 많이 읽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여우난골족(族)
-白石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적거리는 하루
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
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
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
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어쩌면 시는 언젠가는 버려질 방언 같은 것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서 삶이 안고 있는 갈등과 고통을 덜어줄 빛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시인 신경림은 최근 10번째 시집《낙타》를 출간하며 반세기 넘은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수학 공식 외우듯 공부했던 농무가 들어있는 작품집 《농무》에 대해 민중 문학적 농민시를 출발시킨 중요한 역사적 함의를 주지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본다.
Ⅱ 본론
-표현론(작가)적 관점에서 본 신경림 시의세계
표현론적 관점은 작가의 전기적 사실이나 심리적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작가의 전기적, 심리적 사실이 작품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둔다.
[출처] 한국문학의 이해 3주째 수업자료-문학의 기초이론 p.7
1. 시인의 어린시절
흔히 신경림 시인이 농민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시골이었지만 자라난 곳이 아주 농촌은 아니었다. 집성촌에 딸린 마을로 장터를 끼고 개울 하나 건너서 뒤로는 광산이 있었던 충북 충주의 고향은 ‘농무’ 시집 속에 자주 등장하는 광산, 장터등지의 시인의 시적 배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렸을 때 내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일들은 대개 광산에 관계되는 것들이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집 뒤 언덕길을 지나가던 밤 대거리들의 칸델라 불빛, 장날이면 으레 싸전 뒤 밤나무 아래서 벌어지던 광부들의 싸움질, 콩을 팔러 집으로 찾아오던 광부의 아낙네들의 억센 사투리, 어머니를 따라가 들여다본 단칸 움막 속의 흐린 십 촉 전등, 금방앗간에서 흘러와 냇물바닥에 깔리던 복대기흙.
내 마음속에서 광산이라는 것이 그토록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기실 삼촌으로 해서였다. 전쟁 말기에 삼촌은 광산에서 광부로 일했는데, 그 얼마 뒤에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어 광산은 폐광되었다. (경림의 삼촌은 6.25 발발시 시류에 휩쓸려 희생을 당한다. 당시 소년 신경림은 그의 삼촌의 억울한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후에 그때 겪은 아픈 경험을 살려 시 ‘폐광’으로 옮겨 놓는다.)
해방이 되면서 광산은 전성기를 이루었다. 다닥다닥 붙은 움막들이 몇 백 채에 이르렀고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진종일 청승스러운 유행가 가락이 끊이지 않았다. 이때부터 우리 집은 본격적으로 광산과 맺어지기 시작했다. 삼촌은 자본주의를 끌어들여 덕대로서 분광의 경영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아버지마저 연상이 되어 광산에 손을 대게 되었다. 명절이 오면 이십여 명의 광부들이 우리 집에 모여 돼지를 잡고 순대를 삶으며 웅성대던 모습이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삶의 진실과 시적 진실」 중 ‘내 시의 뒷이야기’
[출처] 신경림 문학앨범 / 웅진출판 p.35, 36
廢 鑛 (폐 / 광)
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리개차가 감석을 날라 붓던 버력더미 위에
민들레가 피어도 그냥 춥던 사월
지까다비를 신은 삼촌의 친구들은
우리 집 봉당에 모여 소주를 켰다.
나는 그들이 주먹을 떠는 까닭을 몰랐다.
밤이면 숱한 빈 움막에서 도깨비가 나온데서
칸데라 불이 흐린 뒷방에 박혀
늙은 덕대가 접어준 딱지를 세었다.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
빈 금구덩이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
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
[출처] 신경림 / 農舞|창작과 비평사 p.48
신경림의 집안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당숙, 삼당숙 되는 사람 가운데는 일본 유학생도 많고, 형제 항렬의 사람들은 거의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굉장히 일찍 공부를 시작해서 말하자면 출세지향적인 집안이었다. 시인의 아버지도 그냥 농사꾼이 아니라 시골에서 농업학교를 나와서 금융조합 서기도 하고 광산과 관련된 일도 하였다. 어머니는 시골의 일반 아낙네와는 달리, 신학문ㆍ신교육은 안 받았지만 상당히 교양 있는 집안의 딸이었다. 이런 집안 분위기는 경림을 문학의 길에 일찍 들어서게 해주었다.
2. 다양한 독서편력
신경림의 집안에는 항상 책이 많이 있었던 관계로 이광수ㆍ김동인의 작품들을 중학교 1, 2학년 때 독파하였다. 소설을 먼저 접하였는데 탐정소설에서 도스또예프스끼 전집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었다. 시인으로는 정지용, 백석, 이용악 등의 시를 즐겨 보았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독백보다는 서사적인 얼개를 가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띄는데 이것은 백석이나 이용악의 시를 즐겨 읽고 마음에 두었고 소설을 많이 읽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여우난골족(族)
-白石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적거리는 하루
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
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
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려(承女)
아들 승(承)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 끝에
섧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 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러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엄매 사춘누
이 사춘 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끼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