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법상종의 정의
2. 법상종의 성립
(1) 현장
(2) 기
(3) 원측
3. 법상종의 명의
(1) 소의경론
(2) 교판설
(3) 종명의 종종
4. 법상종의 교리
5. 법상종의 쇠퇴
6. 맺음말
7. 참고자료
2. 법상종의 성립
(1) 현장
(2) 기
(3) 원측
3. 법상종의 명의
(1) 소의경론
(2) 교판설
(3) 종명의 종종
4. 법상종의 교리
5. 법상종의 쇠퇴
6. 맺음말
7. 참고자료
본문내용
은 난, 頂, 忍, 世第一法의 四位로 나뉘어진다. 통달위는 불교가 자기의 것이 되는 단계이다. 空, 無相의 진리가 정말로 자기의 것이 된다. 수습위는 몸에 스며든 俱生起의 나쁜 바릇을 고쳐 나가는 기간이다. 수습위는 열 단계로 나누어 보살의 十地라고도 불려지며 인간이 한 발자국씩 성숙하며 심화해가는 과정이다. 수행의 마지막에 설명되는 것은 구경위이다. 수행의 완전원만한 완성이다.
5. 법상종의 쇠퇴
唐 高宗의 시대에 번창했던 법상종도 현장과 자은대사가 죽자 급속히 쇠퇴하였다. 그것은 아마 호법의 유식사상 그 자체의 중국에서의 적응성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법상종에서의 心의 분석은 점차로 미세한 데까지 이르러 필경에는 사람이 활용하는 것과는 유리된 번쇄철학에 이르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의 경제적 토대 및 계급투쟁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현장의 법상종 건립과 그의 오랫동안 기울인 모든 노력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경제적 토대에서 비교적 벗어난 종교와 같은 상부구조라 할지라도, 결국은 그 경제적 토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부구조를 밖에서 움직이더라도 겉모습을 고치지 않으면 잠시동안은 어떠한 바깥원인에 의지하여 일시적이나마 작용을 일킨다 할지라도 끝내 안으로 뿌리를 드리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더구나 발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법상종이 일시적이나마 발전하여 전파된 것은 당태종의 요구와 직접 관련이 있고 또한 당 초기의 종교정책과도 관련있는 것이며, 동시에 현장 개인의 자기 종파를 세우기 위한 적극적인 정치활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6. 맺음말
당대의 법상종 학설의 대부분은 인도 世親 이후 所謂十大論師 就中에서도 護法에 학설을 正義로 하는 宗學이 인도에서보다도 중국에 전래되어 중국인사들에 의해 충분히 발휘되었다. 基-慧沼-智周 道邑 如理等에 의해 유식교학은 완성을 본 셈이요 그후 중국에서는 큰 발전을 보지 못하였으며, 신라, 일본에도 전번되었으나 중국당대유식이 주장하는 이외의 아무런 획기적인 新學說을 파생하지는 못하였다.
이상으로 법상종의 성립에서 쇠퇴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남는다.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던가. 물론 현장과 기는 탁월한 불교이해와 수도자적 인품을 가졌었지만 원측 또한 유식법상 계통의 새로운 불교 종파는 형성하기까지 그 나름대로 학문적 소양을 갖춘 한 사람이 당당한 기성학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텃세에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쇠퇴한 유식이 한국이나 일본에서 번영하게 되는 건 왜인지? 현장의 화려한 등장에 비해서 그 전등의 불꽃은 왜 그리도 빨리 꺼졌던 것일까? 현장이 귀국한 후 겨우 6, 70년 밖에 되지 않아서 말이다.
7. 참고자료
중국불교사, 長元圭 著, 고려원
중국불교사, 鎌田茂雄 著, 鄭舜日 譯, 경서원
중국불교사상사, 木村淸孝 著, 朴太源 譯, 경서원
중국중세불교사상사 比判, 추만호, 안영길 譯, 민족사
불교의 심층심리, 太田久紀 著, 鄭柄朝 譯, 현음사
5. 법상종의 쇠퇴
唐 高宗의 시대에 번창했던 법상종도 현장과 자은대사가 죽자 급속히 쇠퇴하였다. 그것은 아마 호법의 유식사상 그 자체의 중국에서의 적응성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법상종에서의 心의 분석은 점차로 미세한 데까지 이르러 필경에는 사람이 활용하는 것과는 유리된 번쇄철학에 이르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유물론의 입장에서는 그 당시의 경제적 토대 및 계급투쟁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현장의 법상종 건립과 그의 오랫동안 기울인 모든 노력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경제적 토대에서 비교적 벗어난 종교와 같은 상부구조라 할지라도, 결국은 그 경제적 토대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부구조를 밖에서 움직이더라도 겉모습을 고치지 않으면 잠시동안은 어떠한 바깥원인에 의지하여 일시적이나마 작용을 일킨다 할지라도 끝내 안으로 뿌리를 드리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더구나 발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법상종이 일시적이나마 발전하여 전파된 것은 당태종의 요구와 직접 관련이 있고 또한 당 초기의 종교정책과도 관련있는 것이며, 동시에 현장 개인의 자기 종파를 세우기 위한 적극적인 정치활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6. 맺음말
당대의 법상종 학설의 대부분은 인도 世親 이후 所謂十大論師 就中에서도 護法에 학설을 正義로 하는 宗學이 인도에서보다도 중국에 전래되어 중국인사들에 의해 충분히 발휘되었다. 基-慧沼-智周 道邑 如理等에 의해 유식교학은 완성을 본 셈이요 그후 중국에서는 큰 발전을 보지 못하였으며, 신라, 일본에도 전번되었으나 중국당대유식이 주장하는 이외의 아무런 획기적인 新學說을 파생하지는 못하였다.
이상으로 법상종의 성립에서 쇠퇴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남는다.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하던가. 물론 현장과 기는 탁월한 불교이해와 수도자적 인품을 가졌었지만 원측 또한 유식법상 계통의 새로운 불교 종파는 형성하기까지 그 나름대로 학문적 소양을 갖춘 한 사람이 당당한 기성학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텃세에 밀려나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쇠퇴한 유식이 한국이나 일본에서 번영하게 되는 건 왜인지? 현장의 화려한 등장에 비해서 그 전등의 불꽃은 왜 그리도 빨리 꺼졌던 것일까? 현장이 귀국한 후 겨우 6, 70년 밖에 되지 않아서 말이다.
7. 참고자료
중국불교사, 長元圭 著, 고려원
중국불교사, 鎌田茂雄 著, 鄭舜日 譯, 경서원
중국불교사상사, 木村淸孝 著, 朴太源 譯, 경서원
중국중세불교사상사 比判, 추만호, 안영길 譯, 민족사
불교의 심층심리, 太田久紀 著, 鄭柄朝 譯, 현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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