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들어가며
1. 68혁명의 배경
2. 68운동의 진원지 낭테르대학, 소르본대학
3. 1968년 5월-6월 사건은 시작됐다
4. 68의 사상과 문화
5. 68혁명의 영향과 의미
6. 68운동의 재해석
*긍정적 측면
*부정적 측면
7. 결론
1. 68혁명의 배경
2. 68운동의 진원지 낭테르대학, 소르본대학
3. 1968년 5월-6월 사건은 시작됐다
4. 68의 사상과 문화
5. 68혁명의 영향과 의미
6. 68운동의 재해석
*긍정적 측면
*부정적 측면
7. 결론
본문내용
전)의 이른바 6·29선언이 불을 지른 셈이었다. 이글의 내용을 발취하면
6·29선언이 다른 분야는 몰라도 생산 현장에 미친 영향은 컸다. 정치적 격변에 굴복해 6·29선언이 나온 지 불과 3개월 만에 전국적으로 3500여 기업에서 크고 작은 분규가 발생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였다.
이것은 외국의 선진국에서 심각한 사례로도 잘 나와 있다. 그것은 네덜란드의 소득 2만불을 올라가기 직전 계속 국민 GDP는 올라가지 않고 대량 실업 및 생산성 악화, 즉 네덜란드 병이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알수있다. 이 사례를 제대로 다루어 설명하기엔 우리들의 실력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 노조는 무분별한 파업의 최고봉이라 본다. 심지어 지금은 고인이신 정세형 회장의 말을 인용한다면,
“도대체 파업의 명분도 이유도 없어. 노조가 처음에는 회사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었다고 데모를 했다고. 누가 어떻게 어용노조를 만드나? 6·29 전에는 시위 자체가 없었는데 회사에서 뭣 때문에 어용노조를 만들어요? 전부 저들이 만든 노조고 저들이 뽑은 대표 아니냐고. 그래놓고 막 데모를 하더니 자기들이 뽑은 대표를 갈아치우고, 그 다음에는 자기네 대표들하고 회사가 합의해서 결정한 임금 인상률을 하루아침에 또 뒤집는 거요.
그래놓고는 임금 인상을 다시 요구하면서 무작정 시위에 돌입해 작업을 거부하니 이런 논리도 명분도 없는 작태가 어딨냔 말이야. 이런 시위는 세계 어디에도 없어. 선진국 같으면 언론하고 시민들한테 된통 얻어맞아.”
한마디로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계기를 6.29 선언에서 얻었다면, 그것을 악용하여 현재까지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나름대로의 분석을 해본다면 이기주의와 68운동의 시위문화가 만나, 이익에 집착한 권익보호 무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분명 3고 현상으로 각 기업들이 3Time 풀가동이라는 노동력 갈취를 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 거의 100%로를 넘어서는 120%로 가동률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며 그로인해 사회적 불만으로 표출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발견하고 서로가 타협을 이룰 수 있는 문제를 거의‘배째’라는 형식의 횡포는 우리사회의 경제 발전을 늦추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유럽의 잦은 노사분규는 유럽의 성장 없는 발전이라는 한 요인 되었고 현재 프랑스 대선에서 오랜만에 우익정당의 대선주자가 대통령이 된 것을 본다면 그들의 문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한 가지 더 보충하자면 현재 프랑스 대통령 선출자의 별명은 “양복 입은 대처“라고 불린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옳다고 보기엔 조금 힘들 수 있지만 한조원의 개인적 정치성향에 입각하여 글을 쓴것으로 위에서 설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당시 그것을 저지하기위해 애썼으며, 친 노정권의 중심으로 뭉쳐 만들어진 열린 우리당이 68운동의 부정적 측면을 들 수 있는 사례로 생각한다며 글을 쓴 부분이다.
이것은 그 학생이 정치학과 출신의 학생은 아니지만 지극히 개인적 주장에 입각하여 설명한 것으로 조금은 조심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학생의 말에 따르면
민주화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을 물러나게 했던 세력(386세대)이 이룬 업적이며 그것으로 그들의 정치활동의 발판을 삼아 정계로 나섰으며, 그들의 세력이 약하므로 민주당(야권의 최고봉인 김대중 전 대통령 중심으로 만들어짐)에서 힘을 기른 뒤 자신들의 정치체제로 바꾸기 위해 인터넷이라는 신세대를 유혹할 만한 무기와 서로간의 생각과 의견은 차이가 나지만 그들의 담합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려 했던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본다면 과연 68운동의 대표주자들이 과연 나라를 위해 움직였는가? 아님 자신들의 빠른 성공을 위해 쇼를 하였는가?
라는 글을 썼다. 세상이 예전같이 엄격하지 않아 이렇게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조금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라 생각되며, 유럽에서는 시민사회과 성숙하긴 하나, 아직까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시민운동의 역사가 불과 20~30년 밖에 안됐는데 우리가 그것을 따라 그들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무리가 있다고 우리조원들의 어느 정도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7. 결론
“우리가 열장이라는 분량을 다 채울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은 들지만 우리에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68운동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도 혁명적이라 느낄 정도로 큰 사건이며 분명하며 그때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발생했을 것이라는 우리들의 생각이 든다. 그러나 68운동은 생각 없이 의욕과 충동만 앞서 일을 처리하다간 더 큰문제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교훈을 남겼다고 본다.
마지막 정리자의 특권으로 내 생각 그대로 글을 써본다면 Golden Age의 끝, 68운동의 발생그것은 수학공식의 표현한다면
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바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말 많고 탈 많은 신자유주주의 시작을 초래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유혹‘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 1970년대부터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이것은 68운동을 겪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참을 수 없는 유혹,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그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너무나도 큰 현실을 지니고 있는 무서운 사상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것도 불확실한 보장 속에 우리 미래를 걸고 나가야하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 같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렇게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안 좋지만 우리 스스로가 68운동을 좋은 운동으로 남게 하려면 우리들 각자가 도덕적 메커니즘을 반듯이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도덕적 측면에서만 보아선 안 되면 이것이 우리사회가 다이내믹하게 바뀔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잠시 글이 벗어난 기미가 있지만 지금 현재에서 68운동을 재해석한다면 개인적 이기기주의 시발점이라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다. 이것으로 글을 마치겠다.
6·29선언이 다른 분야는 몰라도 생산 현장에 미친 영향은 컸다. 정치적 격변에 굴복해 6·29선언이 나온 지 불과 3개월 만에 전국적으로 3500여 기업에서 크고 작은 분규가 발생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였다.
이것은 외국의 선진국에서 심각한 사례로도 잘 나와 있다. 그것은 네덜란드의 소득 2만불을 올라가기 직전 계속 국민 GDP는 올라가지 않고 대량 실업 및 생산성 악화, 즉 네덜란드 병이라 불리는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알수있다. 이 사례를 제대로 다루어 설명하기엔 우리들의 실력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 노조는 무분별한 파업의 최고봉이라 본다. 심지어 지금은 고인이신 정세형 회장의 말을 인용한다면,
“도대체 파업의 명분도 이유도 없어. 노조가 처음에는 회사에서 어용노조를 만들었다고 데모를 했다고. 누가 어떻게 어용노조를 만드나? 6·29 전에는 시위 자체가 없었는데 회사에서 뭣 때문에 어용노조를 만들어요? 전부 저들이 만든 노조고 저들이 뽑은 대표 아니냐고. 그래놓고 막 데모를 하더니 자기들이 뽑은 대표를 갈아치우고, 그 다음에는 자기네 대표들하고 회사가 합의해서 결정한 임금 인상률을 하루아침에 또 뒤집는 거요.
그래놓고는 임금 인상을 다시 요구하면서 무작정 시위에 돌입해 작업을 거부하니 이런 논리도 명분도 없는 작태가 어딨냔 말이야. 이런 시위는 세계 어디에도 없어. 선진국 같으면 언론하고 시민들한테 된통 얻어맞아.”
한마디로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계기를 6.29 선언에서 얻었다면, 그것을 악용하여 현재까지도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나름대로의 분석을 해본다면 이기주의와 68운동의 시위문화가 만나, 이익에 집착한 권익보호 무기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분명 3고 현상으로 각 기업들이 3Time 풀가동이라는 노동력 갈취를 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 거의 100%로를 넘어서는 120%로 가동률을 보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며 그로인해 사회적 불만으로 표출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발견하고 서로가 타협을 이룰 수 있는 문제를 거의‘배째’라는 형식의 횡포는 우리사회의 경제 발전을 늦추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 유럽의 잦은 노사분규는 유럽의 성장 없는 발전이라는 한 요인 되었고 현재 프랑스 대선에서 오랜만에 우익정당의 대선주자가 대통령이 된 것을 본다면 그들의 문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단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한 가지 더 보충하자면 현재 프랑스 대통령 선출자의 별명은 “양복 입은 대처“라고 불린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생각이 든다.
이 부분은 옳다고 보기엔 조금 힘들 수 있지만 한조원의 개인적 정치성향에 입각하여 글을 쓴것으로 위에서 설명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당시 그것을 저지하기위해 애썼으며, 친 노정권의 중심으로 뭉쳐 만들어진 열린 우리당이 68운동의 부정적 측면을 들 수 있는 사례로 생각한다며 글을 쓴 부분이다.
이것은 그 학생이 정치학과 출신의 학생은 아니지만 지극히 개인적 주장에 입각하여 설명한 것으로 조금은 조심해서 들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학생의 말에 따르면
민주화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을 물러나게 했던 세력(386세대)이 이룬 업적이며 그것으로 그들의 정치활동의 발판을 삼아 정계로 나섰으며, 그들의 세력이 약하므로 민주당(야권의 최고봉인 김대중 전 대통령 중심으로 만들어짐)에서 힘을 기른 뒤 자신들의 정치체제로 바꾸기 위해 인터넷이라는 신세대를 유혹할 만한 무기와 서로간의 생각과 의견은 차이가 나지만 그들의 담합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려 했던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본다면 과연 68운동의 대표주자들이 과연 나라를 위해 움직였는가? 아님 자신들의 빠른 성공을 위해 쇼를 하였는가?
라는 글을 썼다. 세상이 예전같이 엄격하지 않아 이렇게 글을 쓸 수는 있지만 조금은 위험천만한 행동이라 생각되며, 유럽에서는 시민사회과 성숙하긴 하나, 아직까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우리나라는 유럽에 비해 시민운동의 역사가 불과 20~30년 밖에 안됐는데 우리가 그것을 따라 그들과 같이 움직인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무리가 있다고 우리조원들의 어느 정도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7. 결론
“우리가 열장이라는 분량을 다 채울 수 있을까?” 라는 불안감은 들지만 우리에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68운동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도 혁명적이라 느낄 정도로 큰 사건이며 분명하며 그때 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발생했을 것이라는 우리들의 생각이 든다. 그러나 68운동은 생각 없이 의욕과 충동만 앞서 일을 처리하다간 더 큰문제와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교훈을 남겼다고 본다.
마지막 정리자의 특권으로 내 생각 그대로 글을 써본다면 Golden Age의 끝, 68운동의 발생그것은 수학공식의 표현한다면
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바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말 많고 탈 많은 신자유주주의 시작을 초래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의 유혹‘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이론. 1970년대부터 케인스 이론을 도입한 수정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적하고 경제적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두’이것은 68운동을 겪은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참을 수 없는 유혹,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그것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너무나도 큰 현실을 지니고 있는 무서운 사상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떠한 것도 불확실한 보장 속에 우리 미래를 걸고 나가야하는 한 마리의 하이에나 같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렇게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안 좋지만 우리 스스로가 68운동을 좋은 운동으로 남게 하려면 우리들 각자가 도덕적 메커니즘을 반듯이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것은 도덕적 측면에서만 보아선 안 되면 이것이 우리사회가 다이내믹하게 바뀔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잠시 글이 벗어난 기미가 있지만 지금 현재에서 68운동을 재해석한다면 개인적 이기기주의 시발점이라는 게 우리들의 생각이다. 이것으로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