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본론
1.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
A. 현존재 분석
B. 성서의 비신화화
C. 말씀의 재해석
1) 구속 사건에 대한 실존론적 해석
2) 종말에 대한 실존론적 해석
2.불트만 비판
A. 역사관 비판
B. 불트만의 성서 해석방법 비판
결론
본론
1.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
A. 현존재 분석
B. 성서의 비신화화
C. 말씀의 재해석
1) 구속 사건에 대한 실존론적 해석
2) 종말에 대한 실존론적 해석
2.불트만 비판
A. 역사관 비판
B. 불트만의 성서 해석방법 비판
결론
본문내용
이 훨씬 살기가 쉽기 때문이다. 비인격화된 대중의 일윈이 되어 그런 삶의 방식에 만족하고 그런 가치관에 안주하여 사는 일이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삶에 비해 자결의 길, 본래적 실존의 길을 선택하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본래적 실존이란 인간이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가능성들을 선택하는데 대한 완전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어쨌던 인간은 누구도 이 두 유형의 실존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선택하지 않으려는 결정도 역시 비본래적인 실존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된다. 이리하여 결국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체적으로 형성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사물들에 의해 형성되어 가도록 내 던져 버릴 것인지에 대해 선택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번에 결판나는 선택은 아니다. 오히려 삶은 두가지 실존 가운데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든 현재는 자유로운 결단의 순간이다. 그리고 이같은 지속적인 선택의 필요성이 삶의 주요한 성격인 불안을 조장한다. 이것이 하이덱거의 주장이다.
불트만은 역사내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주요 특징을 불안이라 생각하였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사이의 영원한 긴장 가운데서 실존한다. 매 순간마다 인간은 세계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개별적인 인격을 상실하거나 아니면 모든 안전을 버리고 미래의 자신을 던져 본래적 존재를 성취하거나 해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자신의 실존에 대해 느끼는 불안을 달래기 위해 비본래적인 실존을 선택하게 되면 그것은 결국 자신을 세계에 내어 줌으로써 보다 확실하게 사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질 뿐이다. 그리고 주체성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사물이 그의 주인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참다운 자아로 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게 된다.
다른 한편 자신에게 열려져 있는 두가지 선택의 길 가운데서 본래적 실존의 길을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란 질문에, 마르틴 하이덱거는 일단 인간이 본래적 실존의 길을 선택하고 나면 스스로 본래적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보는 반면에 불트만은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본래적인 실존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본다. 불트만은 본래적 실존의 성취는 오로지 하나님의 도움만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면 본래적 실존을 위한 선택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자유를 위한 결단을 의미한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그러한데 첫째는, 이 세상으로 부터 즉 사믈에 대한 예속 상태로 부터 그리고 집합체의 비인격적 구조로 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결단이다. 둘째, 본래적 실존을 위한 선택은 결국 미래를 위한 결단이기 때문에 과거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온갖 예속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결단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의 실패와 죄책, 그리고 다른 삼에게 종속되어 참다운 자아로 부터 소외된 상태를 모두 내어버리는 선택이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책임에 전념하겠다는 결단이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한 것도 바로 인간에게 열려있는 새 가능성에 대한 선언이후 동시에 그 가능성에 대한 자신을 개방할 때에만 비로소 참 인간으로서의 구원이 있음을 계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인간에게 열린 새로운 가능성이다. 인간은 도래하는 것에 의해서만 참 자기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불트만이 이해한 성서 특유의 인간관이다. 그래서 나를 얽어매고 있는 낡은 사슬을 끊고 새 세계로의 탈출을 종용하는 말이 바로 예수의 회개하라는 외침이고 그것이 곧 본래적 실존을 위한 결단의 촉구라는 것이다.
B. 성서의 비신화화
불트만의 성서에 대한 주요 관심은 신약의 표상 세계와 현대인의 표상세계의 깊은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된다. 불트만에 의하면 현대인들의 세계상은 자연과학과 기술에 의해 이해되는 합리적이고도 차안적인데 비해 성서는 모두가 신화적 세계상에 기초하고 있다. 성서는 이 세계를 삼중구조로 이해한다. 위는 하늘, 아래는 지옥, 중간은 신과 사탄의 싸움터로서의 이 세상이다. 불트만은 이렇게 말한다 “신약성서의 세계상은 신화적인 세계상에 일치한다”. 그러니까 신약성서는 그 내용의 핵심적인 구속사건 조차도 신화론적 표상으로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트만의 그리스도상은 그는 선재했던 신적인 존재이다. 그러다가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어쨌던 인간은 누구도 이 두 유형의 실존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선택하지 않으려는 결정도 역시 비본래적인 실존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 된다. 이리하여 결국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체적으로 형성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사물들에 의해 형성되어 가도록 내 던져 버릴 것인지에 대해 선택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단번에 결판나는 선택은 아니다. 오히려 삶은 두가지 실존 가운데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모든 현재는 자유로운 결단의 순간이다. 그리고 이같은 지속적인 선택의 필요성이 삶의 주요한 성격인 불안을 조장한다. 이것이 하이덱거의 주장이다.
불트만은 역사내의 존재로서의 인간의 주요 특징을 불안이라 생각하였다.
인간은 과거와 미래사이의 영원한 긴장 가운데서 실존한다. 매 순간마다 인간은 세계에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개별적인 인격을 상실하거나 아니면 모든 안전을 버리고 미래의 자신을 던져 본래적 존재를 성취하거나 해야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자신의 실존에 대해 느끼는 불안을 달래기 위해 비본래적인 실존을 선택하게 되면 그것은 결국 자신을 세계에 내어 줌으로써 보다 확실하게 사물의 지배 아래로 떨어질 뿐이다. 그리고 주체성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사물이 그의 주인이 된다. 따라서 인간은 참다운 자아로 부터 철저하게 소외되게 된다.
다른 한편 자신에게 열려져 있는 두가지 선택의 길 가운데서 본래적 실존의 길을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란 질문에, 마르틴 하이덱거는 일단 인간이 본래적 실존의 길을 선택하고 나면 스스로 본래적 삶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고 보는 반면에 불트만은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스스로는 본래적인 실존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본다. 불트만은 본래적 실존의 성취는 오로지 하나님의 도움만으로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면 본래적 실존을 위한 선택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곧 자유를 위한 결단을 의미한다. 이는 두가지 측면에서 그러한데 첫째는, 이 세상으로 부터 즉 사믈에 대한 예속 상태로 부터 그리고 집합체의 비인격적 구조로 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따라서 그것은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스스로 지겠다는 결단이다. 둘째, 본래적 실존을 위한 선택은 결국 미래를 위한 결단이기 때문에 과거가 인간에게 가져다준 온갖 예속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는 결단을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의 실패와 죄책, 그리고 다른 삼에게 종속되어 참다운 자아로 부터 소외된 상태를 모두 내어버리는 선택이다.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책임에 전념하겠다는 결단이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회개를 촉구한 것도 바로 인간에게 열려있는 새 가능성에 대한 선언이후 동시에 그 가능성에 대한 자신을 개방할 때에만 비로소 참 인간으로서의 구원이 있음을 계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인간에게 열린 새로운 가능성이다. 인간은 도래하는 것에 의해서만 참 자기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불트만이 이해한 성서 특유의 인간관이다. 그래서 나를 얽어매고 있는 낡은 사슬을 끊고 새 세계로의 탈출을 종용하는 말이 바로 예수의 회개하라는 외침이고 그것이 곧 본래적 실존을 위한 결단의 촉구라는 것이다.
B. 성서의 비신화화
불트만의 성서에 대한 주요 관심은 신약의 표상 세계와 현대인의 표상세계의 깊은 차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된다. 불트만에 의하면 현대인들의 세계상은 자연과학과 기술에 의해 이해되는 합리적이고도 차안적인데 비해 성서는 모두가 신화적 세계상에 기초하고 있다. 성서는 이 세계를 삼중구조로 이해한다. 위는 하늘, 아래는 지옥, 중간은 신과 사탄의 싸움터로서의 이 세상이다. 불트만은 이렇게 말한다 “신약성서의 세계상은 신화적인 세계상에 일치한다”. 그러니까 신약성서는 그 내용의 핵심적인 구속사건 조차도 신화론적 표상으로 진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트만의 그리스도상은 그는 선재했던 신적인 존재이다. 그러다가 땅에 인간으로 태어나서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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