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 론
1.개요
Ⅱ.본 론
1.석장리 선사유적이란?
2.석장리 유적의 형태
가.쌓임층
나.문화층
3.집 터
4.석장리 박물관
Ⅲ.결 론
Ⅳ.답사자료
1.개요
Ⅱ.본 론
1.석장리 선사유적이란?
2.석장리 유적의 형태
가.쌓임층
나.문화층
3.집 터
4.석장리 박물관
Ⅲ.결 론
Ⅳ.답사자료
본문내용
다. 그리고, 석장리에서 발굴된 석기를 보면 처음에는 원석괴(몸돌석기)를 도구로 사용하였던 것이 점차 거기서 떼어낸 박편(격지)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도 처음에는 한쪽면만 날을 만든 외날찍개였다가 뒤에 양쪽 면에 날을 만든 양날찍개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유치한 도구를 사용한 구석기인의 경제생활은 초보적인 식량채집단계에 머물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이런 생각이 더욱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모든 먹을 것을 담당한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주로 채집을 한다는 것이다. 조사한 결과 석장리 주거지에서는 그들의 예술활동을 보여주는 유물도 발굴되었다. 즉, 움막집 문앞 정면에는 개모양의 석상을 세웠고 또한 고래멧돼지 등의 조각이 있으며, 이 밖에도 자갈에 사람이나 새사슴같은 동물을 새긴 선각화가 발견되어 소박하나마 구석기인의 솜씨를 엿보게 하였다. 이러한 입체조각은 그들의 예술뿐 아니라 어떤 신앙생활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이들 동물조각의 제작은 사냥을 주로 하는 구석기인의 주술적인 신앙과 깊은 관계에서 나온 것이다.짐승을 잡으면서도 그들의 석상을 만들어 짐승의 번성을 비는 데서 그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고, 또 이것이 그들의 토템이 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이 구석기의 석장리 사람들은 사냥도 하였다.다시말하면, 구석기 시대의 석장리 사람들의 먹는 것 즉 식은 지리적위에 따라서 채집을 위주로하고 사냥도 한 것 같다.
둘째, 석장리 지역을 보면 석회암 지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즉 동굴이 없어서 집을 만들어 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1, 2, 3기의 석장리 집터의 발견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도 강이 넘쳐서 곤욕을 치루었는데 과연 그 지점에서 구석기인들이 살었을까? 하고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구석기 시대와 지금과의 자연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강의 흐르는 지점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를 같는다. 깍이고 쌓이면서 강의 둑은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터의 위치는 지금처럼 강에서 가까운 지점이 아니고 강보다 더 떨어진 지점이라고 생각하는게 옳지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공주에서 청주까지 오는 버스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과제를 핑계로 한 유적지 답사였지만 이번 답사로 인해 교과서에서 느껴보지 못한 선사유적지의 매력을 한층 느낄 수 있었다.
석장리 유적지역은 앞에서도 말한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역사가 단군시대(청동기시대)보다 앞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이땅에 사람이 살아왔다는 중요한 사실을 밝힌 대단한 발굴이라고 보여진다.답사를 하면서 약간 아쉬움점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중요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사람들이 너무 외면한다는것이다.지방자치에서도 좀더 홍보에 힘써서 이 유적지역을 관광상품으로 연결시킨다면 충분히 볼거리와 역사교육을 겸비한 좋은 체험학습장이 될텐데, 그점이 너무 아쉬웠다.
석장리 유적지역에서 늦가을에 금강변의 시원하고 상쾌한 강바람을 맞으며 선사시대의 먼 옛날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던 이번 답사.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꺼 같다.
둘째, 석장리 지역을 보면 석회암 지역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즉 동굴이 없어서 집을 만들어 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1, 2, 3기의 석장리 집터의 발견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발굴 과정에도 강이 넘쳐서 곤욕을 치루었는데 과연 그 지점에서 구석기인들이 살었을까? 하고 의문이 생겼다.
그것은 구석기 시대와 지금과의 자연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강의 흐르는 지점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를 같는다. 깍이고 쌓이면서 강의 둑은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터의 위치는 지금처럼 강에서 가까운 지점이 아니고 강보다 더 떨어진 지점이라고 생각하는게 옳지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공주에서 청주까지 오는 버스 시간이 너무 짧게만 느껴졌다.과제를 핑계로 한 유적지 답사였지만 이번 답사로 인해 교과서에서 느껴보지 못한 선사유적지의 매력을 한층 느낄 수 있었다.
석장리 유적지역은 앞에서도 말한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우리의 역사가 단군시대(청동기시대)보다 앞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이땅에 사람이 살아왔다는 중요한 사실을 밝힌 대단한 발굴이라고 보여진다.답사를 하면서 약간 아쉬움점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중요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사람들이 너무 외면한다는것이다.지방자치에서도 좀더 홍보에 힘써서 이 유적지역을 관광상품으로 연결시킨다면 충분히 볼거리와 역사교육을 겸비한 좋은 체험학습장이 될텐데, 그점이 너무 아쉬웠다.
석장리 유적지역에서 늦가을에 금강변의 시원하고 상쾌한 강바람을 맞으며 선사시대의 먼 옛날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던 이번 답사. 쉽게 잊혀지지는 않을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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