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사상과 유교사상.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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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사상과 유교사상.hwp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편의 제목은 각각의 내용을 나타내 주 는 것도 있으나, (外篇) 15편과 (雜篇) 11편 이다. 각 편의제목은 각각의 내용을 나타내 주는 것도 있으나, (外篇) 과 (雜篇) 의 경우에는 각 편의 첫 구절에서 몇 글자를 취해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여기에서 각 편의 내용을 미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내편> 7 편을 보면,다음과 같다.
제 1편 <소요유>(逍요유) 여기에서 속된 세상을 초월해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지인(지인) 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
제 2편 <제물론>(祭物論) 초월적인 입장에서 만물은 제일(第一)하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제 3편<양생주>(養生主) 인간의 육신이라는 것은 한갓 부수물일뿐, 생명의 근본, 곧 주인은 될 수 없으며, 이런 의미에서 양생주한 생명이 근본이 되는 자연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라 풀이된다.
제 4편 <인간세>(人間世)인간세란 사람이 살아가는 해상을 가리키며 , 장자는 이 속세에서 처신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고 보았다.
지 5편 <덕충부> (德充符) 이 편에서는 덕이 마음속에 충만하면 외부의 사물에 부응할 수 있으며, 그렇게 되려면, 자신의 형구아(形軀我) 를 잊고 자연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제 6편 <대종사>(大宗師) 대종사란 크게 받들어야 한 스승을 말하며, 이것은 곧 자연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제 7편<응제왕>(應帝王) 응제왕이란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기고 자기의 형세를 잊을 수 있으면, 제왕(帝王) 조차도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외편> 15 편은 모두 첫 구절의 몇 글자를 취하여 제목으로 삼았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8편 <변무> (辯拇) 아름다움과 추함 등이 존재하는 속세를 부정하고, 시비의 개념이 없는 도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 9편 <마제>(馬蹄) 천하의 정치에 대한 무위(무위)의 석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 10편 <거협>(거협) 자연의 본성에 거스른 이의(仁義)는 세상에 해로움을 줄 뿐 이라는 내용으로 , 제목의 의미는 상자를 열고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다는 뜻이다.
제11 편 <재유>(在宥) 노자의 설을 부연 설명하고 있으며, 그 내용이 다음의 <천도>(天道), <천운>(天運) 으로 이어진다.
제 13편 <천도>(天道) 이 편은 특히 노자와 장자의 사상과 먼 내용이 많아 후세의 학자가 다시 쓴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제 14편 <천운>(天運)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없애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제 15편 <각의>(刻意)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으며, 장자의 후대에 쓰여졌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 16편 <선성>(繕性) <刻意>편과 마찬가지로 장자의 글이 아니라는 것이 후세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로 내용 역시 보잘 것이 없다.
제 17편 <추수>(秋水) 모두 일곱 개의 우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장자] 가운데에서도 명편으로 알려져 있다.
제 18편 <지락>(至樂) 인생에 있어서의 지극한 즐거움이란 무엇인가를 논하면서 그 해답을 무위(무위)에서 갖고 있다.
제 19편 <달생>(撻生) <내편>의 <양생주>를 부연 설명한 것으로 <양생 (양생) 에 통달한다> 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제 20편 <산목>(山木) <내편> 가운데 ,인간세>의 내용을 재미있는 우화로 바꾼 것이다.
제 21편 <전자방>(田子方) <내편>의 <덕충부>의 내용을 확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잡편>11편 역시 본문의첫째 구절에서 제목을 따 왔으며,그내용은 <외편>과 마찬가지로 <내편>의 내용을 부연한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장자의 자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소요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읍니다.소요유란 정처없이 헤매며 노닌다는 뜻이다.
북명에 물고기가 있다.그 이름은 곤이라 한다.그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 지 모른다.변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이라 한다.그 붕의 등은 몇 천리인지 모른다.힘찬 기세로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이면 곧 남명으로 날으려고 한다.남명이란 천지를 말한다.제해란 괴(怪)를 아는 자이다.해가 이르기를 ‘붕이 남명으로 옮길 때 물이 삼천 리를 치고,바람을 타고 오르기를 구만 리,여섯 달을 난 뒤에야 쉬는 자’라고 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상상력을 펼치는 이야기이며,우리 인간이 생각지 못한 넓은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여기서 제해란 세상에서도 이상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적고 있는 사람이다.
야먀며,티끌이며,생물의 숨결로서 뒤섞여 있는데도 하늘이 창창함은 바로 제 빛일까.멀어서 끝이 없어서일까.
그 아래를 굽어보아도 또한 그러할 뿐이다.또 무릇 물이 얕으면 큰배를 띄울 수 없다.물 한 잔을 봉당의 움푹한 곳에 쏟으면 티끌이 바로 배가 되지만 잔을 놓으면 곧 땅에 닿는다.물은 얕은데 배가 크기 때문이다.바람이 약하면 그것이 큰 날개를 띄울 수 없다.그러므로 하늘로 구만 리나 올라가야 바람이 비로소 아래에 있게 된다.그런 뒤에야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지게 되어 붕(鵬)의 진로를 가로막는 자가 없다.그리하여 남명을 향하여 나르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야먀(野馬)라는 것은 아지랑이를 뜻하며,들을 달리는 말을 닮았기 때문이라 한다.구만 리의 높은 하늘에 있는 대붕의 눈으로 본다면,지상의 온갖 빛의 차이는 사라지고 다만 청 일색이 있을 뿐이다.
장자는 근본적 사상인 만물제동(萬物齊同),절대 무차별의 경지를 암시하고있다.이는 기존의 유교사상에 반하는 것으로 유교에서 군과 신하 그리고 백성의 행동을 구분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조와 학구가 이것을 비웃으며 가로되,
‘나는 결심하고 날아야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가 닿는다. 때로는 닿지 못하고 땅에 떨어진다.그런 형편인데,어찌 구만 리나 남쪽으로 갈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교외에 가는 사람은 세 끼만 먹고 돌아와도 매가 아직 부르다.백 리를 가는 사람은 저녁에 양식을 마련하고 천리를 가는 사람은 석 달 전부터 양식을 모은다.하지만 이 두 벌레야 그런 것을 어찌 알겠는가?
조와 학구는 매미와 산비둘기를 말하며,이는 더 큰 세상을 모르고 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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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2.19
  • 저작시기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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