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조사] 남북관계와 통일논의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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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석/조사] 남북관계와 통일논의의 방향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탈냉전하 한반도 주변 정세

Ⅲ. 분단구조와 남북관계
1. 분단구조
2. 남북관계의 전개

Ⅳ. 통일논의의 방향모색
1. 통일문제의 재인식
2. 통일논의의 방향

Ⅴ. 결론

본문내용

해 좌익세력이 거세되고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념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분단은 고착화되고 안보를 명분으로 내건 과도한 군사기구와 비대한 관료제도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시민사회의 형성을 배제한 강력한 국가가 형성되었고, 이 국가는 구조적 결합으로 말미암아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원조에 의존하면서 미국 주도하의 세계자본주의에 종속적으로 편입되었다.
우리민족은 오랜 세월을 상대적으로 안정된 영토적 경계 내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근대적 민족형성을 위해 유리한 객관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이제 국민국가 건설을 통해 이를 현실화하는 것만 남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미소 냉전이라는 대외적 요인과 동서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대내적 요인을 극복하고 완전한 국민국가를 건설하기에는 우리의 내부적 역량이 모자랐던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의 대공산주의 봉쇄정책의 전진기지로 남한이 자리매김됨에 따라 한반도에서 냉전은 제도적으로 공고화된 \'냉전체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그 문명사적 함의의 심대함만큼이나 남북한의 분단을 심화시켰다. 한국전쟁은 서구의 냉전을 담보해준 東亞의 열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서구의 민족국가들이 전쟁을 통해 형성했던 것과 유사하게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두 상이한 근대 민족국가가 탄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비록 잠정분단적 양축구조의 형성에서 외인의 우세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한국전쟁의 결과 형성된 고정분단적 양축구조는 외인이 내재화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한반도의 분단구조가 냉전구조의 와해와 함께 자동적 해소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동서독 대치상황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지게 된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통해 봉인된 남한의 분단체제가 지닌 기본성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국제체제적 수준에서 유엔과 브레턴우즈체제로 대표되는 미국중심의 세계체제에 통합(incorporation)되었다. 특히 미국과의 연대는 한국군 작전권의 미군으로의 이양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계 등 군사적 측면에서 두드려졌다. 둘째, 지역체제적 수준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하부구조로 편입되었다. 결국 동아시아 지역체제에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은 미국에 대한 정치적 유독성을 걸러낸 형태로 복원되었다. 셋째, 국내체제적 수준에서는 한국전쟁을 통해 봉건적 지주-소작관계가 효과적으로 청산되었고, 지주계급을 대신해서 신흥자본가들의 지원을 받는 권위주의 정권이 출현하였다. 넷째, 사상의식적 수준에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확립되고 기독교를 비롯한 서구사상이 급속히 유입되었다.
반면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분단체제가 지니게 된 기본성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국제체제적 수준에서 미국중심의 세계체제로부터 결정적으로 이탈하여, 사회주의적 국제체제로 통합되었다. 둘째, 지역체제적 수준에서 중국과의 전통적인 맹방관계가 복원되었다. \'중국인민의용군\'의 형식을 빌린 중국의 참전은 사회주의 국제연대라는 명분에 따른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전통적인 중국중심적 지역질서를 강화시켜다. 셋째, 국내체제적 수준에서 지주-소작관계의 잔재가 효과적으로 청산됨으로써 사회주의적 집단화를 급속히 추진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고, 이에 따른 권력의 중앙집중 현상은 김일성 유일체제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넷째, 사상의식적 수준에서 전쟁의 참화와 전후 복구사업의 경험은 위정척사적 반미의식과 강고하고도 농밀한 집단의식을 형성시켰다.
한국전쟁을 통해 남과 북이 각기 상이한 서구체제에 편입됨으로써 한반도 분단구조는 세계화되었고, 세계적 냉전체제는 한반도 안으로 내화되었다. 한국전쟁은 폭발적 토지개혁 효과, 인구의 수평수직적 대이동, 戰禍로 인한 경제구조의 파괴, 그리고 다수인구의 사망 등으로 인해 不隨意的 시민혁명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남북한은 공히 전통적 지역공동체의 파괴를 경험하였다. 이와 같은 지역공동체의 파괴는 전근대적 인간관계로부터 근대적 인간관계로의 변화를 촉진시키기도 했지만, 반대로 전통적 가치체계를 심대하게 교란시킴으로써 전통과 근대가 조화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수축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국내외적으로 武士국가적 지향에서 문화국가적 지향으로의 변화를 요구받았던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볼 때, 한국전쟁 이후 남한과 북한은 공히 선비문화적 중심이 호전성과 단순성을 미덕으로 하는 군사문화적 중심에 종속되는 병영국가적 길을 걸었다.
남북이 각각 이러한 길을 걸어가게 된 배경은 일차적으로 자체 내재적 원인에 의해서라기 보다 오히려 냉전체제적 대립에서 오는 \'외생적 위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리고 이러한 위기상황을 안보국가전쟁국가로서 대처해 나가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하여 북쪽은 \'자본주의의 포위\' 속에서 고립된 섬이라는 \'생존\'의 압력을 만성적으로 느꼈으며, 이에 반하여 남쪽은 북한의 군사화와 호전적 태도를 \'생존\'의 절대적 위협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이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계자본주의 질서에 의한 \'포위\'와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의한 외적 \'위협\'이라는 이러한 현실을 북쪽은 사회운영의 원리로 내재화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강한 전투성과 헌신성 및 일사분란한 행동양식과 전체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여 전체사회를 군사화병영국가화하였다.
그리하여 북쪽 사회는 주체개념을 중심으로 한 민족적 자존심과 정체의식에서 내적으로는 \'거대가족\'에 해당하는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외적으로는 배타성과 폐쇄성을 가진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분단은 \'1민족 2국가\'의 체제모순을 배태할 뿐, \'2민족 2국가\'라는 민족 자체의 해체와 재형성을 이미하지는 않았다. 이념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남북한은 상호 연결된 미완의 국민국가이지 별개의 국민국가로 확립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복수의 분단국가(divided states) 혹은 분할국가(partitioned states)가 아닌 하나의 민족에 두 개의 국민을 갖는 단수의 \'결손국가\'(a broken nation-state)라는 개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1천만 이산가족으로 표현되듯이 장구한 역사 속에 형성된 혈연에 기초한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민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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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12.26
  • 저작시기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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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08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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