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의식주, 한국전통춤, 한국전통악기, 한국전통음식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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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전통의식주, 한국전통춤, 한국전통악기, 한국전통음식 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개요

Ⅱ. 한국전통의식주
1. 의생활
2. 식생활
3. 주생활
4. 디딜방아
5. 한지
6. 짚신

Ⅲ. 한국전통춤
1. 시대별 춤
1) 삼국 시대의 춤
2) 고려시대의 춤
3) 조선시대의 춤
2. 현전하는 한국춤과 종류별 특징
1) 정재 및 일무
2) 불교의식무(나비춤, 바라춤, 법고춤)
3) 무당춤(경기무속, 호남무속, 강원. 경상무속, 서도무속, 제주도무속)
4) 민속춤(살풀이, 승무, 한량무 등)
5) 탈춤

Ⅳ. 한국전통악기
1. 대금
2. 중금
3. 소금
4. 당적
5. 퉁소
6. 약
7. 적
8. 단소
9.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
10. 지
11. 소

Ⅴ. 한국전통음식

참고문헌

본문내용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6. 약
약은 지공이 3개밖에 없다. 3개의 지공으로 12음을 내기 때문에 고대의 약은 갈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모양은 크기와 굵기가 적과 비슷하다. 고려 때부터 사용된 이 악기는 지금도 문묘제례악의 연주와 일부의 투구로 쓰이고 있다.
7. 적
적은 원래 지공이 4개 였으나 점차 개량되어 지금은 뒤에1개 앞에5개 모두6개가 있고 아래 끝에 2개의 허공이 있다. 그리고 죽관 밑의 끝마디 중앙에는 지처럼 십자공이 있었으나 지금은 십자공을 뚫지 않는다. 적은 고려 때부터 사용 되었는데 지금도 문묘제례악에 쓰인다.
8. 단소
단소는 퉁소보다 작고 지공이 위에1개 앞에4개가 있다. 단소는 양금과 함께 악학궤범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조선왕조 후기에 생긴 듯 하되 영산회상과 자진한날과 같은 관현합주에 사용되고 관현합주 외에 생황의 이중주나 양금, 해금과의 삼중주 또는 독주에도 이용된다.
9.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
피리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의 세 종류가 있는데 모두8개의 지공을 가진 죽관에 겹으로 된 서를 꽂아 분다. 향피리는 고구려 때부터 사용되었으며 세피리는 조선왕조 후기부터 사용되고 있다. 세피리는 향피리나 당피리보다 죽관이 가늘어서 입김이 통하는 내경이 좁고 서가 작기 때문에 쌓기 힘든 악기이다. 따라서 당피리를 먼저 공부하여 힘을 얻고 향피리로 훈련을 쌓은 다음에 비로소 세피리를 부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다.
10. 지
지는 대금, 중금, 소금, 당적과 함께 횡족에 속하는 죽관악기이다. 취공에다 따로 취구를 박고 접한 부분을 공기가 세지 않게 말로 때웠다. 지공이 옆에 1개위에 4개 모두5개가 있고 왼쪽 끝마디 중앙에 십자공이 있다. 수서의 동이전에 의하면 백제 이전에 벌써 있었고 지금은 문묘 제례악에 쓰인다.
11. 소
소는16개의 죽관을 나무틀에 꽂고 관의 끝에 말로 막았다. 관의 길이는 양쪽 끝이 가장 길고 가운데로 갈수록 점점 짧아진다. 모양이 봉황의 날개와 같아서 일명 봉소 라고도 한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 소의 그림이 보이나 문헌상으로는 고려 때부터 사용되었고 지금은 문묘 제례악에 쓰인다.
Ⅴ. 한국전통음식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자연환경에 알맞은 전통발효식품을 만들어 왔으며, 현재 우리의 식생활에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발효식품은 병원성 미생물과 유독 물질을 생성하는 생물체의 발육을 억제하는 병원성 유해 생물의 오염을 막아 음식의 맛과 향을 증진시킬 수 있다. 발효된 식품은 미생물의 효소활성화에 의하여 원료보다 더 바람직한 식품으로 전환된 것이며, 영양가치와 저장성이 원료보다 더 개선 된 것으로, 전통적인 제조방법은 복잡하지 않고 비싼 기구가 요구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농경을 시작하여 곡물음식이 발달하였다. 또한 높은 저장기술로 각종곡류나 콩류, 채소류, 어패류를 이용한 저장 발효음식이 많이 나왔으며, 양조기술이 발달하여 술은 통일신라시대 이전에 이미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는 농작물의재배로 농경의례, 고사행위, 토속신앙을 배경으로 한 각종 행제 무속행위, 부락제 같은 의식에 이미 술을 빚었고, 콩의 재배로 장류의 발생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졌다. 채소의 재배가 안 되는 겨울철의 저장을 위해 염장했던 데서 김치류가 생겨났고, 삼면이 바다인 자연적인 지형으로 염장생선 발효된 젓갈류 등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염장기술과 양조기술의 조기 정착으로 또한 이들의 융합기술에 의해 장류, 김치류, 젓갈류, 식초류, 주류 등의 저장 발효식품 문화권이 정립되었다. 초기의 우리조상들은 유목계로 가축을 많이 사육하면서 단백질은 주로 섭취하였다. 신석기후기에는 중국의 농경문화가 유입되었고 곡류를 주로 섭취하면서 대두재배를 통한 장류를 담그기 시작했다. 장류는 삼국시대에 이르러 기본 식품이 되었는데 삼국시대의 해동역사에 발해의 명물로 책성의 시를 들고 있다. 시란 콩 찐 것에 소금을 혼합하여 어두운 곳에서 발효시킨 청국장, 된장의 원료가 되는 짠맛의 메주덩이를 말한다. 이 기록으로 보아 고구려 사람들이 3세기경 콩으로 장류를 만들었으며, 이것이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에는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젓갈류와 술을 만들었고, 주식과 부식이 분리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무, 가지 등을 소금에 절여 먹는 일종의 김치를 제조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의 초기에 혼용장, 간장과 된장이 따로 분리된 단용장이 만들어졌다. 신라 선덕여왕 19년에는 속리산 법주사에 돌로 김치독이 설치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융성과 사찰음식의 발달로 식물성 식품의 섭취가 증가되어 채소를 이용한 나물, 부각, 튀김, 장아찌 등의 음식이 보편화되었다. 이규보가 고려중엽에 지은 동국 이상국집에는 장아찌에 대해 무청을 장 속에 박아 넣어 여름철에 먹고 소금에 절여 겨울에 대비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조선시대로 들어들면서 조선 왕조는 유교를 숭상하게 되어 식생활도 숭유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되었으며, 차 문화가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농경을 중시하여 곡식과 채소의 생산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차차 식생활 문화가 발달하면서 한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등이 나오고 밥, 국, 김치, 반찬으로 식단이 체계화되고 상차림의 구성법이 정착하게 되었다. 조선시대 중엽에는 남방에서 고추가 유입되어 새로운 김치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지봉유설에 고추가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니 왜개자라고 하는데 요즘 이것을 간혹 재배하고 있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일본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붉은 색깔의 고추를 넣고 여기에 채소와 젓갈을 결합시켜 김치를 만들었으니, 우리 조상이 개발한 콩으로 만든 장과 더불어 김치는 우리의 대표적인 음식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온 음식으로 여러 가지 김치가 있으며 요즘은 세계적인 음식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김치라는 말의 기원은 \"채소의 소금절임\"을 의미해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沈菜」→「딤채」→「김채」→「김치」로 변화하면서 현재의 「김치」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에는 딤채라는 말이 보이는데,1518년 조선 중중 때의 『벽온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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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1.06
  • 저작시기2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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