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스타일의 역사
본 자료는 7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해당 자료는 7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7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업스타일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고대 시대
1. 이집트(B.C. 3200년 경)
2. 그리스(B.C. 3000~B.C. 400)
3. 로마(B.C.8세기~3세기)

Ⅱ. 중세 시대
1. 비잔틴 시대(4~10세기)
2. 로마네스크 시대(11~13세기)
3. 고딕시대(14~15세기)

Ⅲ. 근세시대
1. 르네상스(16세기)
2. 바로크 (17세기)
3. 로코코(18세기)

Ⅳ. 근대 시대
1. 엠파이어 시대
2. 로맨틱 시대
3. 크리놀린 시대
4. 버슬 시대
5. 근대의 화장 형태

본문내용

게 나타났고 자수기법이 발달하였다.
<머리 형태 >
남자들의 머리모양은 종래와 같이 짧은 단발이 주를 이루었으나 어깨까지 늘어지는 형도 있었다. 귀족이나 특수층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자를 쓰지 않는 대신 후드와 케이프가 붙은 모양의 얼굴만 내놓는 형이 매우 유행했다. 특정 신분을 벗어나 남녀공용으로 널리 애용되었다. 후드의 또 다른 유형인 코이프(coif)가 상류층에서 애용되기 시작했는데 어린 아이의 모자와 같이 턱에 끈으로 묶는 작은 것으로 13세기의 대표적인 모자가 되었다. 농부들은 일광이나 비를 막기 위해 챙이 있는 모자를 쓰기도 했다.
여자들은 비잔티움의 영향을 받아 앞 가리마를 타서 머리를 두 가닥이나 세 가닥으로 땋아 길게 내려뜨린 형태가 주를 이루었는데, 자신의 머리 외에도 가발이나, 리본으로 감아내려 거의 발까지 닿을 정도로 타래를 드리웠다.
귀부인들은 관을 쓰기도 했고, 베일을 쓰기도 했고 처녀들은 베일은 거의 쓰지 않았으며 리본이나 꽃 등으로 만든 머리띠를 두르거나 관을 썼다.
12세기 들어오면서 길게 땋아 늘어뜨렸던 머리는 위로 올려 꼭 붙게 망으로 쌓으며 여기에 두 개의 띠 바비트와 필레를 사용하여 머리를 둘렀다. 특히 미망인이나 슬픔을 지닌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였다.
12세기 말에는 윔플이라고 하는 장방형의 긴 천을 목 위에 느슨하게 두르거나 머리 위에 고정시키고 그 위에 반원형의 베일을 쓴 머리쓰게가 있었다. 이것은 종교적 관습에서 수녀나 미망인에게는 필수적인 것이었고 일반 부녀들은 외출 시나 종교적 행사에만 덮어 쓴 것으로 일반적으로 백색 마나 비단, 면 등으로 만들었으며 한 때는 노란색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이외 윔플과 비슷한 고젯이 있었고 외투용의 맨틀을 머리까지 두르고 가슴에서 끈으로 여민 샤프가 있었다.
머리 전체를 덮은 머리 쓰개는 신체를 많이 가린 의복과 함께 기독교의 영향을 나타내었으며 윔플과 바비트는 중세 후반에도 사용되었다.
<화장 형태 >
십자군 전쟁 이후 동양으로부터 안티몬과 향유 등 진기한 화장재료들과 회교도의 화장 풍습으로 전해져서 여자들 사이에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나게 되었고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아랍과학을 거쳐 유럽으로 들어오면서 의학이 발전되어, 13세기와 14세기에는 알드브랑댕 드 시엔의 육체의 식이 요법론과 랑프랑 드 밀랑의 대 외과학 등 중요한 의학 개론서들이 편찬되었으며, 파르(화장품)라는 명사가 생겨난 것은 12세기인데. ‘채색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프랑스어 ‘파르주안’ 또는 ‘파르위동’에서 파생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3. 고딕시대(14~15세기)
<복식 형태 >
봉건주의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형식과 의례가 중요시 여겨졌다. 복장은 점차 인공적으로 발달되어 갔는데 14세기에는 소매와 몸통이 꼭 낀 상의와 로우 웨이스트 드레스의 스커트를 착용하였다. 12세기의 로마네스크 스타일로서 몸의 윤곽선을 나타내던 의상이 13세기에 질병과 천재지변을 치른 후 밀착된 의상에 대한 반발로 잠사 무겁고 헐렁하게 인체를 감추는 듯하였으나, 다시 부드러운 옷감을 사용하여 육체의 곡선미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14세기에는 수세기 동안 거의 없었던 남녀의복의 성차가 처음으로 뚜렷해지기 시작하였는데, 남자의 의상은 짧아지고 여자의 의상은 몸에 꼭 끼게 되어 몸의 윤곽이 드러났으며 화려한 장식을 하였다. 특히 15세기경에는 고딕 건축의 첨두적 외관이 복식에 그대로 영향을 미쳐 의상이 전체적으로 길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이고 앞이 뾰족한 구두, 높고 뾰족한 모자, 소매나 옷단이 톱니 모양으로 되었다.
고딕 건축이 첨두형 외관은 복식에도 영향을 미쳐, 의상이 전체적으로 길고 흐르는 듯한 실루엣에 앞이 뾰족하고 긴 신발, 높고 뾰족한 모자, 소매나 옷단의 톱니 모양 장식 등은 이러한 고딕 감각을 반영한 것이다. 달라붙는 상체와 밑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스커트는 허리를 더욱 가늘어 보이도록 하였으며, 깊게 파인 V자형 목둘레와 머리에 높이 솟은 에넹(henin)을 착용하여 머리로부터 상체, 스커트에 이르기까지 균형과 조화, 리듬 등을 갖추며 예각형을 더욱 강조하여 아름다운 형태미를 나타내었다. 군복이 일상복으로 유행하게 되었는데 패드(pad)를 댄 조끼형태의 지퐁이나 사막의 햇빛, 먼지로부터 갑옷을 보호하기 위한 겉옷인 쉬르코 등이 그럿이다. 또 사라센풍의 단추 장식이나 군복의 칼자국인 슬래쉬, 전리품이나 십자가를 간수하기 위한 주머니 등 세부장식이 성행하였다. 14세기의 남자의 기본 복식은 꼬따르디(chtehardie)나 뿌르쁘앵(pourpoin)을 위에, 아래에는 호즈(hose)를 입고 그 위에 여러 종류의 외투를 입었다. 여자들은 꼬따르디를 입고 여러 형태의 쉬르코나 외투를 입었는데, 의복의 앞 중심에 단추를 촘촘하게 장식하는 것을 당시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머리 형태 >
고딕시대의 남자는 머리를 중앙에서 나누어 컬을 해서 어깨까지 늘어뜨렸고 그 위에 관을 쓰기도 하였다. 모자는 중세 초기나 로마네스크 시대의 것이 그대로 내려온 것도 있었고, 시대감각에 맞게 변화하여 새로운 형이 된 것도 많아서 복잡한 고딕 문화의 단면을 보여 준다.전자는 칼로트, 토크, 피리지안 본넷이고, 후자는 샤프롱, 샤포 등이다.
14세기에 가장 보편적으로 쓰인 것이 샤프롱으로 이것은 후드와 케이프가 붙은 형태이다.
14세기에는 의복이 전보다 점차 화려해지고 사치해지므로 머리 형태와 장식에 새롭고 과장된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여자의 머리 형태와 장식을 고딕 시대에 본격적인 발달을 보이게 되었다. 머리는 길게 땋거나 목덜미 위에서 부드럽게 롤을 하고 머리 위에는 띠를 두르거나 관을 쓰기도 하였다. 특히 여성들은 금발을 좋아하여 황색으로 머리를 염색하였고 올리브 기름과 향수를 사용하여 부드럽고 향기가 나도록 많은 신경을 썼다.
윔플은 턱밑에 꼭 맞도록 하여 목의 형태가 더욱 강조되었으며 바비트와 함께 사용되었던
필레는 더 넓고 빳빳하게 하고 머리 위에는 베일을 써서 마치 위가 편편하고 납작한 챙이 없는 모자를 쓴 것 같이 보였다.
여자는 교회에 그냥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서 꼭 베일을
  • 가격2,000
  • 페이지수20페이지
  • 등록일2009.02.06
  • 저작시기2009.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17958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