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팔레스티나
기구한 운명의 땅, 팔레스티나
팔레스티나 유대 인의 수난사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건국
중동 전쟁과 팔레스티나 아랍 인의 난민 문제 발생
PLO 결성과 팔레스티나 아랍 인의 저항 운동
팔레스티나 자치 협정의 체결과 중동 평화의 모색
기구한 운명의 땅, 팔레스티나
팔레스티나 유대 인의 수난사
시오니즘과 이스라엘 건국
중동 전쟁과 팔레스티나 아랍 인의 난민 문제 발생
PLO 결성과 팔레스티나 아랍 인의 저항 운동
팔레스티나 자치 협정의 체결과 중동 평화의 모색
본문내용
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오슬로 협정은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향한 획기적인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협정체결 2년뒤 라빈 총리는 이스라엘 극우파 천년이 쏜 총에 숨을 거두었다. 라빈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개인적 비극일뿐 아니라, 중동의 비극이었다.
이후 1996년 5월 29일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의 아랍 국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주장하는 우익 리쿠드 당의 ‘네타냐후’ 당수가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5월의 총선거에서는 시오니즘으로 대변되는 유대 인의 정체성을 공약으로 내건 종교 정당들이 크게 약진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특히 아랍 국가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시오니즘을 강조하는 정당들은 이 총선거에서 세력을 크게 확대하였다.
이를 이유로 독립국가 선포일은 2000년 9월 13일로 늦춰졌지만 협상은 타결을 보지 못했고, 팔레스타인은 독립선포 시한을 다시 2개월 연기했다. 2000년 9월 28일 팔레스티나 아랍 인들의 2차 인티파다가 발발하게 되었고 아라파트는 2001년 12월부터는 신체적 자유도 박탈당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라파트 수반과는 더 이상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시의 자치정부청사 내에 연금해 버렸다. 그리하여 자치정부 수립 이후 이팔 평화협상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이처럼 중동 평화의 중요한 이정표였던 오슬로협정을 먼저 손상시킨 것은 이스라엘 강경파였다.
1996년 이후 현재까지 팔레스티나 아랍 인은 자치정부를 수립했지만 독립은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의 강경한 정책은 계속되고 있어서 ‘피의 악순환’은 언제나 끝날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민간인에 대한 무장공격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2004년 3월 팔레스티나의 무장투쟁조직 하마스의정신적 지도자로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맞아 사망한 아흐메드 야신은 사지가 마비된 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종교 지도자로서, 팔레스티나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는 생전에 행한 인터뷰에서 일제에 대항 했던 한국의 독립투사들과 자신들이 다를 게 무엇이냐고 말했다. 남의 땅을 침략한 이스라엘과 그 침략자를 지원하는 미국이야말로 테러 국가이며, 그런데도 왜 굴종을 거부하는 희생자들이 테러리스트냐고 항변하였다.
불과 몇 시간 전..
3일(현지시간) 한 이스라엘 군인이 가자지구 외각에 위치한 키부츠 메팔심 인근에서 탱크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의 로켓 공격이 급증하자 가자지구와 그 인근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있다. 5일은 이스라엘이 지난 1967년
이스라엘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와의 6일전쟁후 이스라엘은 서안 및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을 수중에 넣은지 40주년이 되는날이다. [로이터/동아닷컴특약]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가자 경계지역에서 눈에 띈 이스라엘군 무장 불도저. 이 불도저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이 있은 뒤 팔레스타인 군사시설을 깨끗이 밀어버리기 위해 투입된 것으로, 전투지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불도저 운전석을 무장했다.
오슬로 협정은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향한 획기적인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협정체결 2년뒤 라빈 총리는 이스라엘 극우파 천년이 쏜 총에 숨을 거두었다. 라빈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개인적 비극일뿐 아니라, 중동의 비극이었다.
이후 1996년 5월 29일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의 아랍 국가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할 것을 주장하는 우익 리쿠드 당의 ‘네타냐후’ 당수가 새로운 총리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5월의 총선거에서는 시오니즘으로 대변되는 유대 인의 정체성을 공약으로 내건 종교 정당들이 크게 약진하는 결과가 나타났다. 특히 아랍 국가에 대한 강경한 입장과 시오니즘을 강조하는 정당들은 이 총선거에서 세력을 크게 확대하였다.
이를 이유로 독립국가 선포일은 2000년 9월 13일로 늦춰졌지만 협상은 타결을 보지 못했고, 팔레스타인은 독립선포 시한을 다시 2개월 연기했다. 2000년 9월 28일 팔레스티나 아랍 인들의 2차 인티파다가 발발하게 되었고 아라파트는 2001년 12월부터는 신체적 자유도 박탈당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라파트 수반과는 더 이상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그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시의 자치정부청사 내에 연금해 버렸다. 그리하여 자치정부 수립 이후 이팔 평화협상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이처럼 중동 평화의 중요한 이정표였던 오슬로협정을 먼저 손상시킨 것은 이스라엘 강경파였다.
1996년 이후 현재까지 팔레스티나 아랍 인은 자치정부를 수립했지만 독립은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의 강경한 정책은 계속되고 있어서 ‘피의 악순환’은 언제나 끝날지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민간인에 대한 무장공격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2004년 3월 팔레스티나의 무장투쟁조직 하마스의정신적 지도자로 이스라엘의 미사일에 맞아 사망한 아흐메드 야신은 사지가 마비된 채 휠체어에 의지해야 했던 종교 지도자로서, 팔레스티나 저항의 상징이었다. 그는 생전에 행한 인터뷰에서 일제에 대항 했던 한국의 독립투사들과 자신들이 다를 게 무엇이냐고 말했다. 남의 땅을 침략한 이스라엘과 그 침략자를 지원하는 미국이야말로 테러 국가이며, 그런데도 왜 굴종을 거부하는 희생자들이 테러리스트냐고 항변하였다.
불과 몇 시간 전..
3일(현지시간) 한 이스라엘 군인이 가자지구 외각에 위치한 키부츠 메팔심 인근에서 탱크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은 최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하마스의 로켓 공격이 급증하자 가자지구와 그 인근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있다. 5일은 이스라엘이 지난 1967년
이스라엘과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와의 6일전쟁후 이스라엘은 서안 및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을 수중에 넣은지 40주년이 되는날이다. [로이터/동아닷컴특약]
5일(현지시간) 이스라엘-가자 경계지역에서 눈에 띈 이스라엘군 무장 불도저. 이 불도저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격이 있은 뒤 팔레스타인 군사시설을 깨끗이 밀어버리기 위해 투입된 것으로, 전투지역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불도저 운전석을 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