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지방의 문헌들, 그중에서도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문헌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분명한 유사한 점들과 비슷한 점들을 고찰해 보아야 한다. 영감을 받은 원역사의 저자는 만물의 기원에 대해서 말할 때 자기가 살고 있는 문화권과 문헌 전통에서 자료와 문체를 빌려왔음이 분명하다. 현재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메소포타미아의 기록과 원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유사성을 드러내는 부분은 홍수에 대한 기록이다. 또 메소포타미아와 가장 분명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11:1-9의 바벨탑 이야기일 것이다. 이 탑은 메소포타미아의 가장 특징적인 탑인 지구라트, 즉 층계를 가진 인공 진흙산을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하다.
저자는 문명의 발흥과 함께 일어난 태도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타락, 그 다음에는 형제 살해, 그리고 이제는 잔인하고 유혈 낭자한 복수를 자랑거리고 삼는 행위! 라멕의 노래 이후에 6:5에 나오는 하나님의 선고는 더 이상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6:1절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여러 가지 견해를 가져올 수 있다. 첫 번째 견해는 셋 계보의 경건한 후손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두 번재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적인 존재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제 남자와 여자에 대한 심판에서도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기로 하자. 여자와 남자는 벌을 받기는 하였지만 저주를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에게 떨어진 심판은 그들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최고의 예이자 전형은 홍수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자연과 그 자연의 힘들을 초월해 계시며, 그 힘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들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벨탑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인간의 집단적인 죄에 대해서도 역시 내려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사업을 너무 일찍부터 어그려뜨려 놓았던 죄와 사망은 이 아브라함의 자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정복된다.
제 8장 창세기 : 족장사
앞장에 1-11장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문학기법, 즉 소위 톨레도트 공식을 사용하여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 야곱의 이야기, 요셉에 대한 긴 이야기와 나머지 두부분은 간략한 족보 부분들을 도입하는데 사용된다.
구약의 모든 전승들은 족장들의 시대를 출애굽의 시대보다 이전의 시대로 보고 있다. 이천녀기의 근동 지방의 중요한 문명지들의 역사에 대해서 밝은 빛이 던져진 이후로 족장들의 이야기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금세기 초의 지배적인 견해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게 되었다. 이 견해의 가장 뛰어난 주장자는 올브라이트(W. F. Albright)이고, 이것을 고전적인 이론으로 형성한 사람은 브라이트(J. Bright)이다.
고대 세계의 재발견을 통해서 족장들의 이야기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이 이야기들이 현대적인 의미의 “역사”임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역사가가 자신이 기록할 사건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하는 것 등에 많은 것이 의존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일어난 일 모두를 다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자의 목적인 무엇이냐하는 것에 따라 자료를 취사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족장사는 구전전승을 통하여 전승되었음이 분명하다. 일부 전승들은 역사와 조화를 이루기에는 극히 어렵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의미의 역사로 해석할 때에만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의 중심 목적은 신학적이다. 이 점은 가장 처음 부분의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굵은 선으로 두두러지게 드러내 놓은 부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이후의 장들은 이 약속들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으며, 아브라함이 상속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약속을 실행시켰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다신 숭배의식을 물려받았다는 기록이 여호수아 24:2,3에 있다. 비록 아브라함이 여전히 자기 시대의 종교적인 환경속에서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가나안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또한 그가 자신에게 계시하신 한 분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기 위해 과거의 다신론 신앙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족장들의 종교는 외형으로 동시대의 사람들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한 관념, 그리고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 밀접한 인격적 관계로 맺어져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창세기 12-50장에는 구속사의 시작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제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과 그의 후손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였으며, 그들을 통해서 “땅이 모든 족속이 ... 복을 얻게” 하셨다. 그러나 어떻게 이 약속이 실현되고,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밝혀지기까지는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또한 이 본문속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의 언약 백성이 되기로 헌신한 사람들이 어떤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즉 그러한 자들의 삶은 부르신 자를 의지하고 믿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제 9장 출애굽기: 역사적 배경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구속사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족장들에게 주신 땅과 민족의 약속을 역사적으로 성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수단이었다. 출애굽 사건을 시공 속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출애굽이 일어난 시기 - 이집트 제국의 전성기 -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제 18왕조 때에 아흐모시스의 통치하에서 힉소스의 멍에를 전복시킨 후에 이집트는 자기 주변의 적들을 굴복시킴으로써 국경의 안전을 도모하기로 하고 아시아 정복의 길을 떠났다. 오랫동안의 전투와 외부적인 문제들 때문에 이집트와 히타이트인들은 조역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라암세스 2세의 말년은 평화와 거대한 건축물 축조의 시대였다. 라암세스 2세가 죽었을 때 그이 열셋째 아들인 메르넵타가를 그를 계승했다. 그는 1220년경에 한 떼의 해양 민족들을 상대하게
저자는 문명의 발흥과 함께 일어난 태도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타락, 그 다음에는 형제 살해, 그리고 이제는 잔인하고 유혈 낭자한 복수를 자랑거리고 삼는 행위! 라멕의 노래 이후에 6:5에 나오는 하나님의 선고는 더 이상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6:1절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은 여러 가지 견해를 가져올 수 있다. 첫 번째 견해는 셋 계보의 경건한 후손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두 번재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적인 존재들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제 남자와 여자에 대한 심판에서도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하기로 하자. 여자와 남자는 벌을 받기는 하였지만 저주를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자와 여자에게 떨어진 심판은 그들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최고의 예이자 전형은 홍수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자연과 그 자연의 힘들을 초월해 계시며, 그 힘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도구들로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바벨탑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인간의 집단적인 죄에 대해서도 역시 내려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사업을 너무 일찍부터 어그려뜨려 놓았던 죄와 사망은 이 아브라함의 자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정복된다.
제 8장 창세기 : 족장사
앞장에 1-11장에 사용된 것과 동일한 문학기법, 즉 소위 톨레도트 공식을 사용하여 다섯 부분으로 구분되어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 야곱의 이야기, 요셉에 대한 긴 이야기와 나머지 두부분은 간략한 족보 부분들을 도입하는데 사용된다.
구약의 모든 전승들은 족장들의 시대를 출애굽의 시대보다 이전의 시대로 보고 있다. 이천녀기의 근동 지방의 중요한 문명지들의 역사에 대해서 밝은 빛이 던져진 이후로 족장들의 이야기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금세기 초의 지배적인 견해보다 훨씬 더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게 되었다. 이 견해의 가장 뛰어난 주장자는 올브라이트(W. F. Albright)이고, 이것을 고전적인 이론으로 형성한 사람은 브라이트(J. Bright)이다.
고대 세계의 재발견을 통해서 족장들의 이야기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 시대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바로 이 이야기들이 현대적인 의미의 “역사”임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중요한 두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는 역사가가 자신이 기록할 사건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하는 것 등에 많은 것이 의존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일어난 일 모두를 다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자의 목적인 무엇이냐하는 것에 따라 자료를 취사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족장사는 구전전승을 통하여 전승되었음이 분명하다. 일부 전승들은 역사와 조화를 이루기에는 극히 어렵다. 이러한 자료들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현대적인 의미의 역사로 해석할 때에만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의 중심 목적은 신학적이다. 이 점은 가장 처음 부분의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약속들을 굵은 선으로 두두러지게 드러내 놓은 부분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이후의 장들은 이 약속들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으며, 아브라함이 상속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약속을 실행시켰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다신 숭배의식을 물려받았다는 기록이 여호수아 24:2,3에 있다. 비록 아브라함이 여전히 자기 시대의 종교적인 환경속에서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가나안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또한 그가 자신에게 계시하신 한 분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기기 위해 과거의 다신론 신앙을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족장들의 종교는 외형으로 동시대의 사람들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한 관념, 그리고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이 밀접한 인격적 관계로 맺어져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창세기 12-50장에는 구속사의 시작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제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과 그의 후손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였으며, 그들을 통해서 “땅이 모든 족속이 ... 복을 얻게” 하셨다. 그러나 어떻게 이 약속이 실현되고,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밝혀지기까지는 더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또한 이 본문속의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의 언약 백성이 되기로 헌신한 사람들이 어떤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즉 그러한 자들의 삶은 부르신 자를 의지하고 믿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제 9장 출애굽기: 역사적 배경
출애굽 사건은 구약의 구속사 사건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족장들에게 주신 땅과 민족의 약속을 역사적으로 성취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신 수단이었다. 출애굽 사건을 시공 속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출애굽이 일어난 시기 - 이집트 제국의 전성기 -의 역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제 18왕조 때에 아흐모시스의 통치하에서 힉소스의 멍에를 전복시킨 후에 이집트는 자기 주변의 적들을 굴복시킴으로써 국경의 안전을 도모하기로 하고 아시아 정복의 길을 떠났다. 오랫동안의 전투와 외부적인 문제들 때문에 이집트와 히타이트인들은 조역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라암세스 2세의 말년은 평화와 거대한 건축물 축조의 시대였다. 라암세스 2세가 죽었을 때 그이 열셋째 아들인 메르넵타가를 그를 계승했다. 그는 1220년경에 한 떼의 해양 민족들을 상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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