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사라센제국
1. 문화의 형성
2. 문화의 발전
3. 동과 서의 이슬람 세계(슈마리크와 마그리브)
Ⅱ. 비잔틴제국
1. 비잔틴 제국의 발전과 멸망
2. 비잔틴 제국의 역사적 의의
3. 비잔틴 문화
Ⅲ. 로마제국
Ⅳ. 몽골제국
1. 몽골제국의 건국
2. 대제국의 건설과 4한국
3. 쿠빌라이의 즉위와 몽골제국의 분열
4. 원의 중국 통치
Ⅴ. 무굴제국
Ⅵ. 페르시아제국
참고문헌
1. 문화의 형성
2. 문화의 발전
3. 동과 서의 이슬람 세계(슈마리크와 마그리브)
Ⅱ. 비잔틴제국
1. 비잔틴 제국의 발전과 멸망
2. 비잔틴 제국의 역사적 의의
3. 비잔틴 문화
Ⅲ. 로마제국
Ⅳ. 몽골제국
1. 몽골제국의 건국
2. 대제국의 건설과 4한국
3. 쿠빌라이의 즉위와 몽골제국의 분열
4. 원의 중국 통치
Ⅴ. 무굴제국
Ⅵ. 페르시아제국
참고문헌
본문내용
마저 유폐시킨 뒤 왕위에 오른 아우랑제브는 처음부터 무굴제국을 철저하게 이슬람 세계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궁정 안의 힌두교적 요소를 없애고, 사원을 파괴·폐쇄하고, 힌두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차별 부과하는 등 편협된 타종교 억압정책을 썼다. 이는 결국 많은 힌두교도의 반항과 반란을 야기시키고 결과적으로 무굴제국 쇠퇴의 한 원인이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열강의 본격적인 인도 침입이 시작되면서 네덜란드프랑스를 거쳐 영국이 인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델리술탄 시대와는 달리 무굴제국에서는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특권을 소유할 수 있는 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실제로 무굴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민족의 귀족화가 이루어졌다. 무굴제국에서 귀족계급의 급성장은 한편으로는 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서민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시대에 많은 산업들이 발전했지만 그 중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유럽 상인들의 인도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곳의 무역항을 통해 곡물과 직물류를 수출했으며, 금과 은을 수입해 들였다.
무굴제국의 문화는 굽타 시대 이래 북인도 문화의 제 2의 정통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시대에 형성된 건축, 문학, 음악 등은 힌두 문화와 터키-페르시아계 문화의 융합으로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적 특성은 전통의 힌두 문화와 터키-이란계 문화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건축분야의 두드러진 발전을 가져왔으며, 미술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공헌을 했다. 주로 페르시아 양식을 종래의 힌두 양식과 접목하는 가운데 무굴제국의 미술은 제항기르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음악 역시 힌두와 이슬람 양식의 결합이 주를 이루었다.
Ⅵ. 페르시아제국
페르시아만에 접근해 있는 이란 고원 서남부 지구에는 페르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 6세기 초엽에 페르시아인들은 10개 종족으로 나뉘어졌다. 그중 6개 종족은 농업에 종사하였고, 4개 종족은 목축업에 종사하였다. 당시 그들의 원시 공동체 제도는 점차 해체되고 있었다. 후에와서 귀족 출신인 키로스(기원전 559529년 재위)가 페르시아 각 종족을 통일하고 강대한 노예제 국가인 페르시아 국가를 건립하였다. 더욱 많은 재부를 모으고 더욱 많은 노예를 소유하려는 귀족들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키로스는 침략 전쟁을 도발하였다. 기원전 546년에 키로스는 페르시아 군대를 거느리고 소아시아에 침입하여 에게해 동안까지 쳐들어가 많은 금은보화를 약탈한 다음, 군대를 돌려 양강 유역을 진공하여 바빌로니아를 점령하였다.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쳐 페르시아의 판도는 동쪽 이란 고원으로부터 서쪽 소아시아 연안에 이르는 광대한 지구로 확장되었다. 기원전 529년에 키로스는 또 군대를 거느리고 동쪽 국경을 넘어 중앙아시아에 침입하였다. 중앙아시아의 인민들은 일어나 저항하였다. 키로스의 군대는 처음에는 일부 지방을 점령하였으나, 후에 북부초원의 유목 종족과 싸우다가 포위 섬멸 당하였다. 페르시아 군대는 패배하고 키로스도 이 싸움에서 죽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이미 건립되었던 것이다.
키로스 이후의 페르시아 국왕도 계속 대외 침략을 감행하였다. 기원전 525년에 캄비세이스가 전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후에 와서 다리우스가 또 인더스강 유역의 일부 지방을 정복한 동시에 세력을 발칸 동남부의 트라비키아에까지 확장하였다. 이리하여 불과 몇십 년 동안에 폐르시아는 강토가 전례없이 광할한 노예제 대제국으로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무력에 의하여 건립된 나라로서 국내 각 지구의 발전이 불균형하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서부에서는 노예 제도가 일찍 확립되었지만, 제국의 동부에서는 여러 종족들이 이제 원시 공동체 제도가 해체되고 노예 제도가 형성되는 단계에 처해 있었다. 노예주 계급의 독재를 공고히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다리우스는 전 제국을 약 7개 주로 나누고 귀족들을 각 주의 통치자로 파견함으로써 전제통치를 실시하였다. 페르시아 주 이외의 모든 주들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수량의 금, 은과 현물을 중앙에 바쳐야 하였다. 수탈한 많은 금은 재부는 끊임없이 페르시아 국왕의 보물고에 흘러들었다. 다리우스는 또 전국의 화폐 제도를 통일하고 사통 팔달한 도로를 닦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긴 한 갈래는 수사로부터 소아시아 해안의 에페스까지 뻗은 ≪왕도≫였다. 이러한 조치는 객관적으로 각 지구간의 경제적 연계와 무역의 발전을 추진시켰다. 그러나 지배 계급의 가렴 잡세와 병력, 무력에 대한 남용은 인민들에게 막대한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침략적 군사 국가로서 노예주 계급은 강대한 군사력에 의거하여 통치를 실시하면서 각 민족 인민들을 탄압하였다.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은 그리이스를 정복하는 원정에서 참패를 당하였으므로 군사적으로 우세하던 지위가 크게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제국내부의 여러 가지 모순은 더욱 뚜렷하게 폭로되었다. 잔혹한 착취와 압박으로 하여 농민들은 나날이 파산되어 갔으며, 페르시아의 군사 원천도 나날이 고갈되어 갔다. 기원전 5세기로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의 기간에 각지에서 독립 투쟁과 봉기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급속하게 쇠퇴하여진 페르시아 제국은 끝내 기원전 330년에 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 왕국은 그리이스 북부에 위치하였다. 기원전 4세기 후반기에 그 세력이 날로 강성하여 먼저 그리이스를 통제하고, 이어서 국왕 알렉산더가 동쪽으로 나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곧바로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군하여 방대한 제국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제국은 얼마 못 가서 분열되었다.) 국왕 알렉산더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참고문헌
○ 김호동(2007), 몽골제국과 고려, 서울대학교출판부
○ 민경진, 페르시아 제국시대의 유대 역사 재구성
○ 미셀 카플란(2006), 비잔틴 제국, 시공사
○ 스기야마 마사아키(1999), 몽골 세계제국, 신서원
○ 위렌 트레드골드(2005), 비잔틴 제국의 역사, 가람기획
○ 지동식(1982), 로마제국은 왜멸망했는가, 대학출판사
○ 황건 역(1991), 로마제국 쇠망사, 기본, 까치
한편 이 시기에 포르투갈을 비롯한 유럽 열강의 본격적인 인도 침입이 시작되면서 네덜란드프랑스를 거쳐 영국이 인도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델리술탄 시대와는 달리 무굴제국에서는 사회 경제적으로 많은 특권을 소유할 수 있는 귀족이 될 수 있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실제로 무굴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민족의 귀족화가 이루어졌다. 무굴제국에서 귀족계급의 급성장은 한편으로는 왕권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서민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간의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 시대에 많은 산업들이 발전했지만 그 중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유럽 상인들의 인도진출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곳의 무역항을 통해 곡물과 직물류를 수출했으며, 금과 은을 수입해 들였다.
무굴제국의 문화는 굽타 시대 이래 북인도 문화의 제 2의 정통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시대에 형성된 건축, 문학, 음악 등은 힌두 문화와 터키-페르시아계 문화의 융합으로 오늘날까지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적 특성은 전통의 힌두 문화와 터키-이란계 문화의 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건축분야의 두드러진 발전을 가져왔으며, 미술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공헌을 했다. 주로 페르시아 양식을 종래의 힌두 양식과 접목하는 가운데 무굴제국의 미술은 제항기르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음악 역시 힌두와 이슬람 양식의 결합이 주를 이루었다.
Ⅵ. 페르시아제국
페르시아만에 접근해 있는 이란 고원 서남부 지구에는 페르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다. 기원전 6세기 초엽에 페르시아인들은 10개 종족으로 나뉘어졌다. 그중 6개 종족은 농업에 종사하였고, 4개 종족은 목축업에 종사하였다. 당시 그들의 원시 공동체 제도는 점차 해체되고 있었다. 후에와서 귀족 출신인 키로스(기원전 559529년 재위)가 페르시아 각 종족을 통일하고 강대한 노예제 국가인 페르시아 국가를 건립하였다. 더욱 많은 재부를 모으고 더욱 많은 노예를 소유하려는 귀족들의 탐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키로스는 침략 전쟁을 도발하였다. 기원전 546년에 키로스는 페르시아 군대를 거느리고 소아시아에 침입하여 에게해 동안까지 쳐들어가 많은 금은보화를 약탈한 다음, 군대를 돌려 양강 유역을 진공하여 바빌로니아를 점령하였다. 여러 차례의 전쟁을 거쳐 페르시아의 판도는 동쪽 이란 고원으로부터 서쪽 소아시아 연안에 이르는 광대한 지구로 확장되었다. 기원전 529년에 키로스는 또 군대를 거느리고 동쪽 국경을 넘어 중앙아시아에 침입하였다. 중앙아시아의 인민들은 일어나 저항하였다. 키로스의 군대는 처음에는 일부 지방을 점령하였으나, 후에 북부초원의 유목 종족과 싸우다가 포위 섬멸 당하였다. 페르시아 군대는 패배하고 키로스도 이 싸움에서 죽었다. 당시 페르시아 제국은 이미 건립되었던 것이다.
키로스 이후의 페르시아 국왕도 계속 대외 침략을 감행하였다. 기원전 525년에 캄비세이스가 전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후에 와서 다리우스가 또 인더스강 유역의 일부 지방을 정복한 동시에 세력을 발칸 동남부의 트라비키아에까지 확장하였다. 이리하여 불과 몇십 년 동안에 폐르시아는 강토가 전례없이 광할한 노예제 대제국으로 되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무력에 의하여 건립된 나라로서 국내 각 지구의 발전이 불균형하였다. 페르시아 제국의 서부에서는 노예 제도가 일찍 확립되었지만, 제국의 동부에서는 여러 종족들이 이제 원시 공동체 제도가 해체되고 노예 제도가 형성되는 단계에 처해 있었다. 노예주 계급의 독재를 공고히하고 중앙 집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다리우스는 전 제국을 약 7개 주로 나누고 귀족들을 각 주의 통치자로 파견함으로써 전제통치를 실시하였다. 페르시아 주 이외의 모든 주들에서는 해마다 일정한 수량의 금, 은과 현물을 중앙에 바쳐야 하였다. 수탈한 많은 금은 재부는 끊임없이 페르시아 국왕의 보물고에 흘러들었다. 다리우스는 또 전국의 화폐 제도를 통일하고 사통 팔달한 도로를 닦았는데, 그중에서 가장 긴 한 갈래는 수사로부터 소아시아 해안의 에페스까지 뻗은 ≪왕도≫였다. 이러한 조치는 객관적으로 각 지구간의 경제적 연계와 무역의 발전을 추진시켰다. 그러나 지배 계급의 가렴 잡세와 병력, 무력에 대한 남용은 인민들에게 막대한 재난을 가져다주었다.
페르시아 제국은 침략적 군사 국가로서 노예주 계급은 강대한 군사력에 의거하여 통치를 실시하면서 각 민족 인민들을 탄압하였다.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 제국은 그리이스를 정복하는 원정에서 참패를 당하였으므로 군사적으로 우세하던 지위가 크게 동요되었다. 그리하여 제국내부의 여러 가지 모순은 더욱 뚜렷하게 폭로되었다. 잔혹한 착취와 압박으로 하여 농민들은 나날이 파산되어 갔으며, 페르시아의 군사 원천도 나날이 고갈되어 갔다. 기원전 5세기로부터 기원전 4세기까지의 기간에 각지에서 독립 투쟁과 봉기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급속하게 쇠퇴하여진 페르시아 제국은 끝내 기원전 330년에 마케도니아(마케도니아 왕국은 그리이스 북부에 위치하였다. 기원전 4세기 후반기에 그 세력이 날로 강성하여 먼저 그리이스를 통제하고, 이어서 국왕 알렉산더가 동쪽으로 나가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곧바로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군하여 방대한 제국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제국은 얼마 못 가서 분열되었다.) 국왕 알렉산더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참고문헌
○ 김호동(2007), 몽골제국과 고려, 서울대학교출판부
○ 민경진, 페르시아 제국시대의 유대 역사 재구성
○ 미셀 카플란(2006), 비잔틴 제국, 시공사
○ 스기야마 마사아키(1999), 몽골 세계제국, 신서원
○ 위렌 트레드골드(2005), 비잔틴 제국의 역사, 가람기획
○ 지동식(1982), 로마제국은 왜멸망했는가, 대학출판사
○ 황건 역(1991), 로마제국 쇠망사, 기본, 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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