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들어가며
2. <변강쇠가>의 갈등양상과 주제의식
(1)강쇠와 옹녀 - 만남과 갈등의 시작
(2)장승 - 강쇠의 죽음
(3)죽은 강쇠와 옹녀 - 수절과 재가
(4)죽은 강쇠와 유랑인 - 장승죽음의 의미
3. <변강쇠가>의 미적특질
(1)<변강쇠가>에 구현된 기괴미의 특질
(2)<변강쇠가>에 나타난 기괴미와 성적묘사
(3)미적특질과 주제의식
4.결말
2. <변강쇠가>의 갈등양상과 주제의식
(1)강쇠와 옹녀 - 만남과 갈등의 시작
(2)장승 - 강쇠의 죽음
(3)죽은 강쇠와 옹녀 - 수절과 재가
(4)죽은 강쇠와 유랑인 - 장승죽음의 의미
3. <변강쇠가>의 미적특질
(1)<변강쇠가>에 구현된 기괴미의 특질
(2)<변강쇠가>에 나타난 기괴미와 성적묘사
(3)미적특질과 주제의식
4.결말
본문내용
년간의 수행을 버리고 옹녀를 탐한 화류승과, 아직 남편의 치상도 마치지 못한 부녀자를 취하기 위해 달려드는 초라니와 풍각쟁이 패의 죽음은 강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쇠가 장승을 훼손하고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이들도 장승죽음을 한 강쇠의 시신을 수습하려다 죽었고, 이들의 행동의 밑바탕에는 무절제한 성욕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은 뎁득이는 왜 죽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옹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다는 점에서, 또 그에게는 집과 가족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인물들보다 더 비난받아야 마땅한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시신이 험악하다는 옹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하게 강쇠의 시신과 마주하다 죽음을 당한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강쇠의 시신을 두려워하여 강쇠의 눈을 보지 않으려 한다. 시신이지만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뎁득이는 강쇠의 아내인 옹녀를 취하려는 입장에서 그런 강쇠의 감시가 두려웠던 것이다. 갈퀴로 강쇠의 눈을 감기려다 실패하자 도망하는 모습에서 뎁득이의 두려움은 잘 나타난다. 또 그 두려움은 장승에 대한 두려움(강쇠가 장승죽음을 했다는 점에서), 즉 무절제한 성욕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며 이것이 뎁득이가 죽음을 피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것이다. 작품의 첫 부분에서 옹녀를 쫓아냈던 지역 사람들의 두려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무절제한 성욕과 그로 인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옹녀를 쫓아냈고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뎁득이가 강쇠의 시신을 넘어뜨리는 데 성공하지만 강쇠의 시신은 뎁득이의 등 뒤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뎁득이가 강쇠의 시신을 묻게 땅에 묻게 될 경우 옹녀와 함께 살림을 차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함께 유랑인들의 시신을 지고 가던 이들은 모두 시신을 묻고 떠나간 뒤에도 유독 강쇠의 시신만은 뎁득이의 등 뒤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계속 붙어 있는다. 결국 뎁득이는 절벽에 강쇠의 시신을 갈아버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가는 데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바로 뎁득이의 ‘갈이질’ 사설이다.
이 사설의 내용에는 미모의 여인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에 가족을 버리고 옹녀를 찾아온 자신의 잘못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들어있다. 절벽에서 강쇠의 시신을 가는 시간은 뎁득이에게 있어서 고통스러운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은 목숨 간신히 살았으니 좋을씨고 공세상에 오입참고 사람되세.”라고 하여 시신을 모두 갈아버린 후 옹녀를 버려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간다. 이러한 뎁득이의 모습은 ‘무절제한 성욕에 대한 경계’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더욱 더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3.<변강쇠가>의 미적특질
(1)<변강쇠가>에 구현된 기괴미의 특질
<변강쇠가>는 서사의 흐름에 따라, 크게 사건에 의해 나누어보면 전반부는 ‘강쇠와 옹녀의 만남’과 후반부는 ‘장승 동티의 징벌로 인한 강쇠의 치상(治喪)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의 기물타령에서 보이는 성적인 묘사는 두 주인공의의 호색한 성격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후반부의 갈이질 사설의 장면은 극도의 혐오스럽고 기괴하며,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즉, 전반부와 후반부의 미적특질과 작품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변강쇠가>에서는 다른 전승오가와 차별화된 미적특질이 나타나는데, 이를 기괴미라 부른다.
기괴미 김종철은 ‘기괴미’를 ‘괴기미’라 쓰고 있다.
에 대한 개념에 대해 살펴보면, 부조화, 희극적인 것과 끔찍스러운 것의 공존, 지나침과 과장, 비정상성 등의 요소가 포함되는데, 대체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과 작품 속에서의 해결 안 된 충돌’ 또는 ‘양면성이 공존하는 비정상성’으로 정의되고 있다. 예컨대 아주 혐오스러운 내용을 대단히 정중하고 차분하게 이야기 한다든지, 구역질나고 혐오스러운 내용을 희극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그것이 독자에게 환기하는 정서는 이상하고 불쾌하고 그러면서도 우스꽝스럽다는 그런 종류의 것이며, 또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즉, 이야기되는 내용과 이야기하는 방식이 서로 불일치하거니와 그것에 반응하는 독자들의 정서도 복합적이다. 비장미나 숭고미처럼 그것이 표현되는 대상과 표현하는 방식이 일치하고 또 그것이 독자에게 환기하는 정서도 순일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김종철, 앞의 글, 293쪽.
많은 연구자들은 <변강쇠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기괴미가 지배하고 있다고 논하고 있다. 김종철, 서유문, 김창현, 서종문 등의 논의에 나타나있다.
특히 기괴미가 절정에 달한 부분으로는 논자마다 공통적으로 2가지를 꼽고 있는데, 첫 번째는 육체적 실제성에 바탕을 둔 강쇠가 장승동티로 백 가지 병에 한꺼번에 걸리는 것을 풀어놓은 사설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으로 뒤덮인 강쇠의 처참한 모습과 소생 불가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창현, 앞의 책, 25쪽.
그날 저녁 일과하고, 한참 곤케 자느라니, 천만의외 온 집안이 장승이 장을 서서, 몸 한번씩을 건드리고, 말이 없이 나가거늘, 강쇠가 깜짝 놀라, 말하자니 안 나오고, 눈 뜨자니 꽉 붙어서, 만신을 결발하고, 각색으로 쑤시는데, 제 소견도 살 수 없어. 날이 점점 밝아가매, 강쇠 계집 잠을 깨니, 강쇠의 된 형용이, 정녕한 송장인데, 신음하여 앓는 소리, 숨은 아니 끊겼구나. 깜짝 놀라 옷을 입고, 마음을 급히 고아, 소금 타서 떠 넣으며, 온몸을 만져보니, 이를 아드득 꽉 물고, 미음 들어갈 수 없고, 낭자한 부스럼이, 어느새 농창하여, 피고름 독한 내가, 코 들을 수가 없다. 병 이름을 짓자 하니 만가지가 넘겠구나(283쪽)
두 번째는, 갈이질 사설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우고울 달음박질로 소나무 틈으로 쑥 나가니, 짊어진 송장짐이 우두둑 세동강이 나서, 위 아래 두 도막은 땅에 절퍽 떨어지고 가운데 한도막은 북통같이 등에 붙어 암만해도 뗄 수 없다. 요간폭포괘장천 놓은 절
여기에서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은 뎁득이는 왜 죽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옹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왔다는 점에서, 또 그에게는 집과 가족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인물들보다 더 비난받아야 마땅한 인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시신이 험악하다는 옹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만만하게 강쇠의 시신과 마주하다 죽음을 당한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그는 강쇠의 시신을 두려워하여 강쇠의 눈을 보지 않으려 한다. 시신이지만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뎁득이는 강쇠의 아내인 옹녀를 취하려는 입장에서 그런 강쇠의 감시가 두려웠던 것이다. 갈퀴로 강쇠의 눈을 감기려다 실패하자 도망하는 모습에서 뎁득이의 두려움은 잘 나타난다. 또 그 두려움은 장승에 대한 두려움(강쇠가 장승죽음을 했다는 점에서), 즉 무절제한 성욕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며 이것이 뎁득이가 죽음을 피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되는 것이다. 작품의 첫 부분에서 옹녀를 쫓아냈던 지역 사람들의 두려움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을 무절제한 성욕과 그로 인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옹녀를 쫓아냈고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뎁득이가 강쇠의 시신을 넘어뜨리는 데 성공하지만 강쇠의 시신은 뎁득이의 등 뒤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뎁득이가 강쇠의 시신을 묻게 땅에 묻게 될 경우 옹녀와 함께 살림을 차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함께 유랑인들의 시신을 지고 가던 이들은 모두 시신을 묻고 떠나간 뒤에도 유독 강쇠의 시신만은 뎁득이의 등 뒤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계속 붙어 있는다. 결국 뎁득이는 절벽에 강쇠의 시신을 갈아버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가는 데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바로 뎁득이의 ‘갈이질’ 사설이다.
이 사설의 내용에는 미모의 여인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에 가족을 버리고 옹녀를 찾아온 자신의 잘못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들어있다. 절벽에서 강쇠의 시신을 가는 시간은 뎁득이에게 있어서 고통스러운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죽은 목숨 간신히 살았으니 좋을씨고 공세상에 오입참고 사람되세.”라고 하여 시신을 모두 갈아버린 후 옹녀를 버려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떠나간다. 이러한 뎁득이의 모습은 ‘무절제한 성욕에 대한 경계’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더욱 더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3.<변강쇠가>의 미적특질
(1)<변강쇠가>에 구현된 기괴미의 특질
<변강쇠가>는 서사의 흐름에 따라, 크게 사건에 의해 나누어보면 전반부는 ‘강쇠와 옹녀의 만남’과 후반부는 ‘장승 동티의 징벌로 인한 강쇠의 치상(治喪)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의 기물타령에서 보이는 성적인 묘사는 두 주인공의의 호색한 성격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며, 후반부의 갈이질 사설의 장면은 극도의 혐오스럽고 기괴하며, 비정상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즉, 전반부와 후반부의 미적특질과 작품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후반부로 갈수록 <변강쇠가>에서는 다른 전승오가와 차별화된 미적특질이 나타나는데, 이를 기괴미라 부른다.
기괴미 김종철은 ‘기괴미’를 ‘괴기미’라 쓰고 있다.
에 대한 개념에 대해 살펴보면, 부조화, 희극적인 것과 끔찍스러운 것의 공존, 지나침과 과장, 비정상성 등의 요소가 포함되는데, 대체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의 공존과 작품 속에서의 해결 안 된 충돌’ 또는 ‘양면성이 공존하는 비정상성’으로 정의되고 있다. 예컨대 아주 혐오스러운 내용을 대단히 정중하고 차분하게 이야기 한다든지, 구역질나고 혐오스러운 내용을 희극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그것이 독자에게 환기하는 정서는 이상하고 불쾌하고 그러면서도 우스꽝스럽다는 그런 종류의 것이며, 또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즉, 이야기되는 내용과 이야기하는 방식이 서로 불일치하거니와 그것에 반응하는 독자들의 정서도 복합적이다. 비장미나 숭고미처럼 그것이 표현되는 대상과 표현하는 방식이 일치하고 또 그것이 독자에게 환기하는 정서도 순일한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김종철, 앞의 글, 293쪽.
많은 연구자들은 <변강쇠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기괴미가 지배하고 있다고 논하고 있다. 김종철, 서유문, 김창현, 서종문 등의 논의에 나타나있다.
특히 기괴미가 절정에 달한 부분으로는 논자마다 공통적으로 2가지를 꼽고 있는데, 첫 번째는 육체적 실제성에 바탕을 둔 강쇠가 장승동티로 백 가지 병에 한꺼번에 걸리는 것을 풀어놓은 사설이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병으로 뒤덮인 강쇠의 처참한 모습과 소생 불가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김창현, 앞의 책, 25쪽.
그날 저녁 일과하고, 한참 곤케 자느라니, 천만의외 온 집안이 장승이 장을 서서, 몸 한번씩을 건드리고, 말이 없이 나가거늘, 강쇠가 깜짝 놀라, 말하자니 안 나오고, 눈 뜨자니 꽉 붙어서, 만신을 결발하고, 각색으로 쑤시는데, 제 소견도 살 수 없어. 날이 점점 밝아가매, 강쇠 계집 잠을 깨니, 강쇠의 된 형용이, 정녕한 송장인데, 신음하여 앓는 소리, 숨은 아니 끊겼구나. 깜짝 놀라 옷을 입고, 마음을 급히 고아, 소금 타서 떠 넣으며, 온몸을 만져보니, 이를 아드득 꽉 물고, 미음 들어갈 수 없고, 낭자한 부스럼이, 어느새 농창하여, 피고름 독한 내가, 코 들을 수가 없다. 병 이름을 짓자 하니 만가지가 넘겠구나(283쪽)
두 번째는, 갈이질 사설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우고울 달음박질로 소나무 틈으로 쑥 나가니, 짊어진 송장짐이 우두둑 세동강이 나서, 위 아래 두 도막은 땅에 절퍽 떨어지고 가운데 한도막은 북통같이 등에 붙어 암만해도 뗄 수 없다. 요간폭포괘장천 놓은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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