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단고기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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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단고기 요약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지고 한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분명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卒本) 졸본(卒本) : 졸본(卒本)은 본래 골본(忽本)이다. 골(忽)은 고을이라는 뜻이고, 골본(忽本)은 고구려 때 수도(首都)라는 뜻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특정 지명이 아니다. 중국의 사서에는 골본(忽本)이 졸본(卒本)으로 적혀 있다. 이는 중국인들이 고구려 무리들에게 하도 당하여 고구려가 졸(卒)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고구려의 수도로 사용된 곳을 원래 용어대로 골본(忽本)으로 적지 않고 졸본(卒本)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서를 인용한 삼국사기에도 골본(忽本)이 졸본(卒本)으로 적혀 있다. 골본(또는 졸본) 중 고구려 6세 고무서(高無胥) 단제(檀帝)가 수도로 사용한 골본(忽本)은 심양(沈陽)이고, 고주몽(高朱蒙)이 초기에 수도를 둔 졸본천(卒本川)은 혼하(渾河) 상류이며, 유리(琉璃)가 고주몽을 찾아온 졸본(卒本)은 당시 고구려의 수도인 북옥저(北沃沮)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東明) 동명(東明) : 고대의 구려 무리들은 해와 달을 하늘나라 임금이라 믿었고, 해와 달이 동쪽에서 떠올라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 준다고 하여 해와 달을 동명(東明)이라 불렀다. 고대에 구려 무리의 우두머리들은 자신을 천제(天帝)의 아들이라 칭하였는데, 동명은 천제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사용한 칭호(稱號)이다.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다. <환단고기(桓檀古記)> 북부여기(北夫餘紀)에 적혀 있는 동명(東明)의 본명은 고두막(高豆莫)이고, <삼국사기(三國史紀)> 고구려본기(高句麗本紀)에 적혀 있는 동명의 본명은 고주몽(高朱蒙)이다. 동명(東明)은 천제(天帝)의 아들을 칭한 사람이 사용한 칭호(稱號)이지 특정인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분들은 <삼국사기>만 읽고 고구려(북부여)의 고두막(高豆莫) 단제(檀帝)와 (고주몽)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高朱蒙)을 동일인물로 착각하였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이라 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고열가(高列加)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乙亥三年帝自將傳所至無敵不旬月衆至五千每與戰漢寇望風而
潰遂引兵渡九黎河追至遼東西安平乃古離國之地
을해 3년(B.C.106) 제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무적이었다. 열흘이 못되어 5,000명이 모여 한나라 도둑들과 싸울 때마다 먼 곳에서 그 모습만 보고도 흩어져 버리므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九黎河)를 건너 요동의 서안평(西安平.)에 이르니 바로 옛 고리국(藁離國) 고리국(藁離國) : 고리국(藁離國)은 고리국(高離國)을 발음대로 다른 한자로 적은 것으로, 고리(古離 = 高黎)는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무리라는 뜻이다. 즉 부여(夫餘)와 같은 뜻이다. <출처 : 고기로 본 한국고대사>
의 땅이었다.
甲午二十二年是爲檀君高于婁三十四年帝遣將破裵川之漢寇與遺民幷力所向連破漢寇擒其守將拒以有備
갑오 22년(B.C.86)단군 고우루(高于婁) 34년에 제가 장수를 보내어 배천(裴川)의 한나라 도둑들을 쳐부수고 유민과 힘을 합하여 향하는 곳마다 한나라 도둑떼를 연파하더니 그 수비장수까지 사로잡았으며 방비를 잘 갖추어 적에 대비했다.
乙未二十三年北夫餘奉城邑降屢哀欲保帝廳之降封解夫婁爲候遷之陵帝前導鼓吹率衆數萬而入都城仍稱北夫餘秋八月與漢寇屢戰于西鴨綠可之上大捷
을미 23년(B.C.86) 북부여가 성읍을 들어 항복하였는데, 여러 차례 보전하고자 애원하므로 단제가 이를 듣고 해부루(海夫婁)를 낮추어 제후로 삼아 분능(陵)으로 옮기게 하고는 북을 치며 나팔을 부는 이들을 앞세우고 수만 군중을 이끌고 도성에 들어와 북부여라 칭하였다. 가을 8월에 서압록하(西鴨綠河)의 상류에서 한구(漢寇) 한구(漢寇) : 한나라 군사를 비하한 것.
와 여러 차례 싸워서 크게 이겼다.
壬寅三十年五月五日高朱蒙誕降于陵
임인 30년(B.C.79) 5월 5일에 고주몽(高朱蒙)이 분능(陵)에서 태어났다.
辛酉四十九年帝崩以遺命葬于卒本川太子高無胥立
신유 49년(B.C.60) 제가 붕어하고 유명(遺命)에 따라 졸본천(卒本川)에 장사지냈다. 태자 고무서(高無胥)가 등극하였다.
6세 단군 고무서 재위 2년(六世檀君 高無胥 在位二年)
壬戌元年帝卽位于卒本川與父老會于白岳山立約祭天頒行事例內外大悅
임술 원년(B.C.59) 제가 졸본천에서 즉위하고는 백악산에서 장로들과 함께 모여 사례(史例)에 따라 널리 하늘에 제사할 것을 약속하니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
帝生而有神德能以呪術呼風喚雨善賑大得民心有小解慕漱之稱時漢寇騷亂遍于遼左屢戰得捷
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신과 같은 덕이 있어 능히 주술로서 바람과 비를 불러 잘 구제하므로 민심을 크게 얻어 소해모수(小解慕漱)라 불렸다. 이 때에 한(漢)나라의 오랑캐들이 요하의 왼쪽에서 널리 소란을 피웠으니 여러 차례 싸워서 크게 이겼다.
癸亥二年帝巡到寧古塔得白獐冬十月帝崩高朱蒙以遺命入承大統
계해 2년(B.C.58) 제가 영고탑을 순시하다가 흰 노루를 얻었다. 겨울 10월 제가 붕어하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 이었다.
先是帝無子見高朱蒙爲非常人以女妻之至是卽位時年二十三時下夫餘人將欲殺之奉母命與烏伊摩離陜父等三人爲德友行至陵水欲渡無梁恐爲追兵所迫告水曰我是天帝子河伯外孫今日逃走追者垂及奈何於是魚鼈浮出成橋始得渡魚鼈乃解
이보다 앞서 단제는 아들이 없었는데, 고주몽을 보고 사람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딸로서 아내를 삼게 하였었는데 이에 이르러 즉위하니 이해의 나이가 23세였다. 이때에 하부여인 하부여인 : 남쪽 심양 방면에 있던 부여인을 지칭한다.
이 그를 죽이려 하였는데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과는 덕으로써 사귄 친구였던지라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서 함께 길을 떠나 분릉수(陵水)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너려고 하여도 다리가 없었으므로 뒤쫓아오는 군사들에게 몰릴까 두려워하여 물에 고하기를「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인데 오늘 도주함에 있어 추격병은 다가오고 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하니, 이때에 물고기 자라 따위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므로 주몽이 건너가자 물고기와 자라는 다시 흩어졌다.
가섭원 부여기(迦葉原 夫餘紀)
시조 해부루 해부루(海夫婁) : 4대 고우루 단제가 죽자 동생으로 왕위에 올랐으나 고두막(5대 단제)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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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05.31
  • 저작시기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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