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아가멤논
2. 안티고네
3.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 슬픔의 노래
5. 날 보러와요
6. 신태평천하
7.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8. 늙은 도둑 이야기
2. 안티고네
3.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4. 슬픔의 노래
5. 날 보러와요
6. 신태평천하
7.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8. 늙은 도둑 이야기
본문내용
가지고 있으나, 드러내 보이지 않고, 숨기려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절제적인 음색이 구슬프다. 연극이 끝난 후에도 그 음악이 생각이 나서 나는 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반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5. 날 보러와요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았다. 이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곧바로 느낀 감정이란 서늘함이었다. 인간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에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이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예전의 ‘늙은 도둑 이야기’ 생각에 한시간 정도 할 것이란 생각을 하고 갔는데 거의 두시간 이상을 상연했다. 하지만 그리 지루했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내용자체가 진지하기도 했지만 그 진지함 속에서 우러나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지루함을 덜어주었던 것 같다.
연극을 보고 나온 전체적인 느낌은 대단히 파격적인 내용전개와 약간의 내용부실에서 오는 산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용자체가 어떠한 결론이 없는, 미궁에 빠진 사건 자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내용구성은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너무나 큰 내용들을 제한된 시간 속의 연극에 담으려 했기 때문에 약간의 부실함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정의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그리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팜플렛을 참조해보면 상연시간으로 인해서 약간 잘라냈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부분은 연극을 하는 동안은 잘 떠오를만한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내 앞으로 놓여진 세 묶음의 책상들과 한 켠의 다방 분위기 나는 의자와 탁자, 그리고 무대 뒷편으로 놓여진 자그마한 책상들과 의자가 눈에 띄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다만 거기서 가장 많이 특이한 느낌을 주었던 것은 배경처럼 놓여진 들풀들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 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계속 염두해 두겠다는 의지로서 놓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사건의 용의자만 나타나고, 그들이 범인이 아님이 밝혀질 때마다 그 들풀들은 눈에 더욱 자주 띄었다. 아마도 마구 자라난 들풀들 같이, 사건은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자꾸만 파고 들어갈수록 묘연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극이 처음 상연될 때 음향으로 처리된 살인현장의 모습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리고서 등장되는 인물들의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욕설들에 대해서도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흔히 공공장소- 대중에게 노출이 된 장소에서는 속어를 잘 쓰지 않는 우리사회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그러한 장면이어서 ‘이래도 되는가?’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한 부분들로 인해서 연극 처음부터 너무나도 나는 혼이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첫 번째 정신병자 용의자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금치 못했었는데 살인 사건과 관련이 된 것이라 웃어야 할지 진지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용의자를 데려오기 전에 사건의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 사진의 공개는 그 연극에서 사실성과 그들-물론 넓게 말한다면 우리들-이 풀어나가야 할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야 할 동기를 부여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 같다. 연극속의 영상매체인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연극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또다른 느낌을 받았다. 만약 연극만으로 그 사건이 묘사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연극에서 끌어올 수 있는 최대한의 다양한 영상매체 이용으로 그 연극에서는 많은 플러스적 요소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진 공개와 더불어 본격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 조사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여러 장면에선 웃지 않을 수 없는 많은 경우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그 좁은 경찰서 안에서의 웃음이었다. 비록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들이 시도하는 윈초적인 노력들이, 지금 현재 그저 방관자의 자세에 있는 우리들은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목욕탕을 드나드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든가, 들판의 흙을 파와서 그 속에서 체모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라든가,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게 처리되었다. 어쩌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과정들조차도 진지하게 전개가 된다면 아마도 관객들은 지루한 나머지 사건의 결과를 보기도 전에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용의자가 나타나고, 주위 사람들의 여러 가지 엇갈리는 진술 가운데, 용의자 자신은 불분명하지만 사실과 맞아들어가는 진술을 시도하지만 물증이 불분명한 관계로 그는 다시 풀려나가게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용의자의 자살로 인해 또다시 좌절을 하게 되고 마지막 세 번째 용의자를 찾게된다. 그는 자꾸만 아니라고 하지만 형사의 약간의 꾸며진 사건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동변화를 일으킨다. 이를 보고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 저 사람이 범인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지만 DNA검출에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로 인해 모두가 포기를 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까지 한다.
마지막 박형사 마저 떠나고 경찰서에 남은 단 한사람, 김형사가 넋이 나간 채로 남았을 때 갑자기 캐비넷 문이 덜컥 열리고서는, 여지껏 용의자 역을 해 왔던 배우가 나체로 들어가 희미한 종이를 경계로 서있다. 그의 모습에 마지막 남은 형사는 놀라서 누구냐고-물론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면서- 반문을 하지만 그는 “난 네 속에 살고 있어. 날 느껴봐.”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그. 나는 그 사람의 모습, 물론 내면의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완전히 풀리지 않은 사건들을 너무나도 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출 의도에 이러한 것들이 포함되었으리라 보지만, 나는 사건의 결말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말을 어떻게 지을까에 너무나 궁금해했었다.
연극을 다 보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연극 포스터를 다시 보는 것이었다. 이 연극의 제목은 “날 보러와요”이다. 처음엔 이 연극의 제목을 보고서는 제목이 너무나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극을 다 보고 나올 때는 제목의 말처럼 섬
5. 날 보러와요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았다. 이 연극을 보고 나오는 길에 곧바로 느낀 감정이란 서늘함이었다. 인간에 대한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음에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이 연극을 보러 갈 때는 예전의 ‘늙은 도둑 이야기’ 생각에 한시간 정도 할 것이란 생각을 하고 갔는데 거의 두시간 이상을 상연했다. 하지만 그리 지루했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마도 내용자체가 진지하기도 했지만 그 진지함 속에서 우러나는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지루함을 덜어주었던 것 같다.
연극을 보고 나온 전체적인 느낌은 대단히 파격적인 내용전개와 약간의 내용부실에서 오는 산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용자체가 어떠한 결론이 없는, 미궁에 빠진 사건 자체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내용구성은 아주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너무나 큰 내용들을 제한된 시간 속의 연극에 담으려 했기 때문에 약간의 부실함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정의되지 않고 넘어간 부분이 그리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팜플렛을 참조해보면 상연시간으로 인해서 약간 잘라냈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부분은 연극을 하는 동안은 잘 떠오를만한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처음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내 앞으로 놓여진 세 묶음의 책상들과 한 켠의 다방 분위기 나는 의자와 탁자, 그리고 무대 뒷편으로 놓여진 자그마한 책상들과 의자가 눈에 띄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딘가 하는 생각도 해보고. 다만 거기서 가장 많이 특이한 느낌을 주었던 것은 배경처럼 놓여진 들풀들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 사건이 일어난 사실을 계속 염두해 두겠다는 의지로서 놓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사건의 용의자만 나타나고, 그들이 범인이 아님이 밝혀질 때마다 그 들풀들은 눈에 더욱 자주 띄었다. 아마도 마구 자라난 들풀들 같이, 사건은 아무렇게나 놓여있고 자꾸만 파고 들어갈수록 묘연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극이 처음 상연될 때 음향으로 처리된 살인현장의 모습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리고서 등장되는 인물들의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욕설들에 대해서도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흔히 공공장소- 대중에게 노출이 된 장소에서는 속어를 잘 쓰지 않는 우리사회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그러한 장면이어서 ‘이래도 되는가?’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한 부분들로 인해서 연극 처음부터 너무나도 나는 혼이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첫 번째 정신병자 용의자의 말을 들으며 웃음을 금치 못했었는데 살인 사건과 관련이 된 것이라 웃어야 할지 진지한 표정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 망설여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곧 나는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 용의자를 데려오기 전에 사건의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너무나도 끔찍했다. 그 사진의 공개는 그 연극에서 사실성과 그들-물론 넓게 말한다면 우리들-이 풀어나가야 할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야 할 동기를 부여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 같다. 연극속의 영상매체인 그 사진을 보면서 나는 연극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또다른 느낌을 받았다. 만약 연극만으로 그 사건이 묘사되기만 한다면 얼마나 추상적일 수밖에 없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연극에서 끌어올 수 있는 최대한의 다양한 영상매체 이용으로 그 연극에서는 많은 플러스적 요소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진 공개와 더불어 본격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 조사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여러 장면에선 웃지 않을 수 없는 많은 경우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그 좁은 경찰서 안에서의 웃음이었다. 비록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들이 시도하는 윈초적인 노력들이, 지금 현재 그저 방관자의 자세에 있는 우리들은 그저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목욕탕을 드나드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라든가, 들판의 흙을 파와서 그 속에서 체모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라든가, 그 모든 것이 너무나도 재미있게 처리되었다. 어쩌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과정들조차도 진지하게 전개가 된다면 아마도 관객들은 지루한 나머지 사건의 결과를 보기도 전에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용의자가 나타나고, 주위 사람들의 여러 가지 엇갈리는 진술 가운데, 용의자 자신은 불분명하지만 사실과 맞아들어가는 진술을 시도하지만 물증이 불분명한 관계로 그는 다시 풀려나가게 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용의자의 자살로 인해 또다시 좌절을 하게 되고 마지막 세 번째 용의자를 찾게된다. 그는 자꾸만 아니라고 하지만 형사의 약간의 꾸며진 사건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동변화를 일으킨다. 이를 보고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 저 사람이 범인이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지만 DNA검출에서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로 인해 모두가 포기를 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까지 한다.
마지막 박형사 마저 떠나고 경찰서에 남은 단 한사람, 김형사가 넋이 나간 채로 남았을 때 갑자기 캐비넷 문이 덜컥 열리고서는, 여지껏 용의자 역을 해 왔던 배우가 나체로 들어가 희미한 종이를 경계로 서있다. 그의 모습에 마지막 남은 형사는 놀라서 누구냐고-물론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를 보면서- 반문을 하지만 그는 “난 네 속에 살고 있어. 날 느껴봐.”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그. 나는 그 사람의 모습, 물론 내면의 보이지 않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완전히 풀리지 않은 사건들을 너무나도 잘 처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출 의도에 이러한 것들이 포함되었으리라 보지만, 나는 사건의 결말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결말을 어떻게 지을까에 너무나 궁금해했었다.
연극을 다 보고 나오면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연극 포스터를 다시 보는 것이었다. 이 연극의 제목은 “날 보러와요”이다. 처음엔 이 연극의 제목을 보고서는 제목이 너무나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극을 다 보고 나올 때는 제목의 말처럼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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