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커피란 이름의 유래
2. 커피의 기원
(1) 칼디의 설
(2) 오마르의 발견설
(3) 이디오피아 기원설
(4) 커피에 대한 문헌기록
3. 커피의 역사
4. 커피하우스의 번창
5. 한국에서의 커피의 역사
6. 커피의 수난
7. 커피나무가 자라 원두가 되기까지
8. 커피나무
(1) 로부스타
(2) 아라비카
(3) 리베리카
9. 커피의 주성분
10. 커피의 효능
2. 커피의 기원
(1) 칼디의 설
(2) 오마르의 발견설
(3) 이디오피아 기원설
(4) 커피에 대한 문헌기록
3. 커피의 역사
4. 커피하우스의 번창
5. 한국에서의 커피의 역사
6. 커피의 수난
7. 커피나무가 자라 원두가 되기까지
8. 커피나무
(1) 로부스타
(2) 아라비카
(3) 리베리카
9. 커피의 주성분
10. 커피의 효능
본문내용
항해중 자신에게 할당받은 식수까지 커피나무에 주며 그는 한 그루의 나무를 마르티니크 섬에 옮겨심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무성하게 자란 커피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옮겨져 번성했다.
4. 커피하우스의 번창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기독교들도 마음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자 1645년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이후 1687년에는 군인이었던 게오르그 콜스치스키(Georg Kolschitsky)가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 ,그는 비엔나를 점령하고 있던 터키군을 물리친 공로로 터키가 남겨 놓고 간 커피 500포대를 받았던 것이다. 아랍풍습에 익숙했던 그는 커피 추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따. 그는 터키를 물리친 기념으로 이스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는데, 오늘날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1650년경 에닌젤이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스미르나에서 커피맛을 보고 돌아온 한 영국 상인과 그에게 커피를 끓여준 하인 파스카 로제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의 커피 마시는 일이 유행하게 되자 이 상인은 1652년에 콘힐의 외곽지대 에 있는 세인트 미셸 산책로에 오두막을 하나 세우고 그 하인으로 하여금 일반인들에게 커피를 팔 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말 런던에는 무려 2천개 이상의 커피 하우스가 있었고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있는 커피 하우스들도 있었다. 어떤 커피 하우스안에서는 최신의 해외 소식들을 접할 수 있고 이민 티켓이나 보험 증서, 주식을 살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흑인,이상한 새들 또는 식물의 경매에 입찰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변호사,의사,아일랜드인,군인,노름꾼,성직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커피 하우스도 있었다. 프랑스의 카페는 그 번창속도가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최초의 카페는 1643년에 파리에서 문을 열었지만 커피마시기가 유행하기 시작한때는 1669년 르방의 한 대사가 부임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한다. 파리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커피가 심한 질병과 무력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경고 때문에 이를 멀리하고 있었다.이러한 프랑스에 커피하우스를 보금하는데 공헌한 루이 14세는 1664년에 처음 커피를 마셔본 뒤 1670년경에는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왕실 전용 커피를 수입토록 하였다
1715년에는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 커피나무를 이식함로써 커피나무가 아메리카에 처음 소개되었다. 1718년,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서 커피를 재배했다. 1720년에는 프랑스 해군제독 클리에가 가져온 커피묘목을 마르티니크 섬에 실었다.1723년 ~ 1852년까지 남미에 커피재배가 확산되었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부인이 화려한 꽂다발 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로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조건 위에서 잘 자라 두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커피가 전파된 것은 17세기 말로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의 부유층 사이에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북미에서는 기호음식으로 차를 마셨는데, 1773년 4월 영국 의회가 차세법을 통과시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 차를 가득 싣고 보스턴항에 정박중이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이 \'보스턴 차 사건\'이후 북미에서도 차를 대신해 커피가 보편화되었다.
한편, 동양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78년 경 일본에 들어온 것(묘목)이 처음이라고 하며 1888년 일본 동경에 커피점이 생겼다. 1690년~1699년사이에는 네덜란드인이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커피나무를 심어 재배에 성공했으며 1740년에는 자바섬에서 필리핀으로 커피가 전파되었다. 1840년에는 영국인들이 인도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커피의 공급지로 삼았다.
5. 한국에서의 커피의 역사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역사는 1895년 (고종 32년)에 을미사변 (아관파천시)때 러시아 공사가 커피 나무의 열매를 한국에 가져 오면서부터였다. 이때 러시아는 이미 커피가 국내에 많이 전래되어 일반화될 무렵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공사는 가지고 온 커피 열매를 건조하여 잘 으깬 다음 끓인 물을 놓고 맛있게 만든 다음 고종황제에게 진상하여 시음하게 한 것이 최초라고 전하여 진다. 당시 고종은 세자(후에 순종)와 함께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커피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커피는 궁중내의 기호 식품으로, 주로 벼슬아치들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바로 숭늉 문화에서 커피 문화로 가는 하나의 선구자 역할 노릇을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은 그로 인해 독살될 뻔하기도 했다. 1889년 러시아 역관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홍륙이 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 쫓겨나고 또 러시아와의 통상에 거액을 착복한 사건이 들통나 흑산도 유배가 결정되자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김홍륙은 덕수궁에서 일하던 두 하사인을 매수, 고종의 생일에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시게 하려다 발각되었다고 한다. 그 후 독일여자 손탁이 러시아 공사관(정동 위치) 근처에 정동구락부라는 커피점을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이다. 커피가 처음으로 판매되게 되었는데 당시 커피 한잔 값이 너무나 비싸 부유한 사람만이 사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6.25 동란이 발발하여 미군이 진주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하여 무질서하게 유출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그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과음을 하게 되면 불면증에 걸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였다고 한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그 기업이 동서식품이었다.
6. 커피의 수난
커피가 꼭 쉽게 일반인들에게 대중화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 특이한 커피에 대해 과세를 물리거나 커피
4. 커피하우스의 번창
17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기독교들도 마음놓고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자 1645년 베니스에서 처음으로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이후 1687년에는 군인이었던 게오르그 콜스치스키(Georg Kolschitsky)가 비엔나에 커피하우스를 열었는데 ,그는 비엔나를 점령하고 있던 터키군을 물리친 공로로 터키가 남겨 놓고 간 커피 500포대를 받았던 것이다. 아랍풍습에 익숙했던 그는 커피 추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따. 그는 터키를 물리친 기념으로 이스람 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의 케이크를 커피와 함께 손님들에게 내놓기도 했는데, 오늘날 케이크를 곁들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1650년경 에닌젤이라는 이름의 커피하우스가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다. 영국에서의 커피하우스는 스미르나에서 커피맛을 보고 돌아온 한 영국 상인과 그에게 커피를 끓여준 하인 파스카 로제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에서의 커피 마시는 일이 유행하게 되자 이 상인은 1652년에 콘힐의 외곽지대 에 있는 세인트 미셸 산책로에 오두막을 하나 세우고 그 하인으로 하여금 일반인들에게 커피를 팔 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17세기 말 런던에는 무려 2천개 이상의 커피 하우스가 있었고 그 중에는 이따금 꽤 특색있는 커피 하우스들도 있었다. 어떤 커피 하우스안에서는 최신의 해외 소식들을 접할 수 있고 이민 티켓이나 보험 증서, 주식을 살 수도 있었으며 때로는 흑인,이상한 새들 또는 식물의 경매에 입찰을 할 수도 있었다.
또한 변호사,의사,아일랜드인,군인,노름꾼,성직자, 그리고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커피 하우스도 있었다. 프랑스의 카페는 그 번창속도가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다.최초의 카페는 1643년에 파리에서 문을 열었지만 커피마시기가 유행하기 시작한때는 1669년 르방의 한 대사가 부임하고 난 뒤부터였다고 한다. 파리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커피가 심한 질병과 무력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들의 경고 때문에 이를 멀리하고 있었다.이러한 프랑스에 커피하우스를 보금하는데 공헌한 루이 14세는 1664년에 처음 커피를 마셔본 뒤 1670년경에는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왕실 전용 커피를 수입토록 하였다
1715년에는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 커피나무를 이식함로써 커피나무가 아메리카에 처음 소개되었다. 1718년, 네덜란드인이 가이아나에서 커피를 재배했다. 1720년에는 프랑스 해군제독 클리에가 가져온 커피묘목을 마르티니크 섬에 실었다.1723년 ~ 1852년까지 남미에 커피재배가 확산되었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총독부인이 화려한 꽂다발 속에 커피묘목을 숨겨 잘생긴 스페인 연대장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묘목은 콜롬비아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고 ,이어 브라질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브라질과 콜로비아로 보내진 커피는 최상의 재배조건 위에서 잘 자라 두나라를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으로 만들었다.
한편, 북아메리카에 커피가 전파된 것은 17세기 말로 뉴암스테르담(지금의 뉴욕)의 부유층 사이에서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북미에서는 기호음식으로 차를 마셨는데, 1773년 4월 영국 의회가 차세법을 통과시켜 엄청난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 차를 가득 싣고 보스턴항에 정박중이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를 파괴해 버린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이 \'보스턴 차 사건\'이후 북미에서도 차를 대신해 커피가 보편화되었다.
한편, 동양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78년 경 일본에 들어온 것(묘목)이 처음이라고 하며 1888년 일본 동경에 커피점이 생겼다. 1690년~1699년사이에는 네덜란드인이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에 커피나무를 심어 재배에 성공했으며 1740년에는 자바섬에서 필리핀으로 커피가 전파되었다. 1840년에는 영국인들이 인도를 자국에서 소비하는 커피의 공급지로 삼았다.
5. 한국에서의 커피의 역사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역사는 1895년 (고종 32년)에 을미사변 (아관파천시)때 러시아 공사가 커피 나무의 열매를 한국에 가져 오면서부터였다. 이때 러시아는 이미 커피가 국내에 많이 전래되어 일반화될 무렵이었다고 한다. 러시아 공사는 가지고 온 커피 열매를 건조하여 잘 으깬 다음 끓인 물을 놓고 맛있게 만든 다음 고종황제에게 진상하여 시음하게 한 것이 최초라고 전하여 진다. 당시 고종은 세자(후에 순종)와 함께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커피를 찾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커피는 궁중내의 기호 식품으로, 주로 벼슬아치들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 바로 숭늉 문화에서 커피 문화로 가는 하나의 선구자 역할 노릇을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은 그로 인해 독살될 뻔하기도 했다. 1889년 러시아 역관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홍륙이 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 쫓겨나고 또 러시아와의 통상에 거액을 착복한 사건이 들통나 흑산도 유배가 결정되자 앙심을 품었던 것이다. 김홍륙은 덕수궁에서 일하던 두 하사인을 매수, 고종의 생일에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시게 하려다 발각되었다고 한다. 그 후 독일여자 손탁이 러시아 공사관(정동 위치) 근처에 정동구락부라는 커피점을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이다. 커피가 처음으로 판매되게 되었는데 당시 커피 한잔 값이 너무나 비싸 부유한 사람만이 사 마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6.25 동란이 발발하여 미군이 진주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하여 무질서하게 유출됨으로써 일반화되었다. 그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 있어 과음을 하게 되면 불면증에 걸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였다고 한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를 생산하게 되었는데 그 기업이 동서식품이었다.
6. 커피의 수난
커피가 꼭 쉽게 일반인들에게 대중화가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 특이한 커피에 대해 과세를 물리거나 커피
추천자료
[경영전략]Starbucks의 경영 사례 “스타벅스, 그 커피 한잔에 담긴 성공신화”
[터키][터키의 역사][터키의 수도 이스탄불][터키의 고대도시][터키의 민족문화][터키의 정치...
광고의 역사, 산업구조, 광고대행사에 대해서 설명한 레포트입니다.
로이즈의 역사와 발전 과정, 보유불명 차사고, 변액보험,
[홍차][홍차 종류][홍차 역사][홍차 나라][영국][홍차 우리는 방법]홍차의 종류, 홍차의 역사...
[소주광고][소주][광고][소주광고 역사][소주광고 목표][소주광고 사례][소주광고 매체전략]...
[음료][음료수][음료 정의][음료 역사][음료 산업구조][음료 산채]음료(음료수)의 정의, 음료...
패스트푸드점(맥도날드), 아이스크림전문점(롯데제과 나뚜루), 홈쇼핑(GS홈쇼핑), 패밀리레스...
[차][茶][차(茶) 개념][차 유형][차 역사][차 정신][차 효능][차 대접예절][차 우리는 법]차(...
종이컵의 역사-종이컵의 발명,종이컵의 발전과정,종이컵의 재질과 구조,종이컵의 환경문제,종...
[세계의역사E]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고 감상평을 쓰되, 아프리카인의 시각에서 독자...
독일맥주의 역사 (PPT)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