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토지사유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2. 토지사유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
3. 로마시대와 봉건시대의 토지제도
4. 근대문명의 토지제도-영국
2. 토지사유제에 대한 역사적 고찰
3. 로마시대와 봉건시대의 토지제도
4. 근대문명의 토지제도-영국
본문내용
상당부분이 공동토지였다. 프랑스의 공동토지는 드 라블레이에 의하면 4백만 헥타르(9,884,400에이커)에 달했다. 4. 근대문명의 토지제도-영국 그러나 봉건시대 이후 근대문명은 토지의 공동소유라는 자연적이고 근본적인 관념을 뒤집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역석적이지만, 봉건적 굴레로부터의 해방과 더불어 생긴 새로운 토지소유제도에 의해 노동계층이 예속되는 경향이 발생하였다. 이 제도가 문명세계 전체를 쇠로 만든 멍에처럼 얽어 메고 있음을 점점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정치적인 힘이나 개인적 자유의 신장에 의해서는 이 멍에를 벗어날 수 없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이 멍에를 자연법칙의 압력이라고 오해하고 있고 노동자층은 이를 자본의 압박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영국 국민의 토지에 대한 권리는 봉건시대 보다 분명히 못해졌다. 토지소유자의 비율은 줄어들고 소유권은 더 절대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한때는 하층민에게 독립성을 부여해주었던 방대한 면적의 공동토지는 별 가치 없는 땅에서나 겨우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고 대부분의 토지는 사유화되고 말았다. 본질적으로 공공 목적에 충당되던 공동재산이라고 할 수 있었던 교회토지도 개인의 소유로 바뀌고 말았다. 군대토지에서 나오던 수입도 없어지고 군대를 유지하는 비용과 전쟁에 의해 생긴 거대한 부채에 대한 이자는 국민전체의 부담이 되어 생활 필수품 내지 편리품에 대한 조세로 충당되고 잇다. 군주의 토지도 사유토지로 바뀌었다. 왕실과 그 인척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국 노동자는 맥자 한잔, 담배 란 대에도 세금을 문다. 영국에서는 3만 명이 국토의 6분의 5에서 국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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