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국의 조사에서 특별한 문제점이 없었다. NT는 일부 투자자들이 Madoff가 비정상적으로 항상 꾸준한 수익을 올린 점, 불투명한 투자전략과 회계 등에 의문을 제기했던 경고에도 불구하고 헤지펀드와 금융회사들은 Madoff의 펀드를 계속 권유했다고 전했다. (매일경제 2008년 12월 14일, 뉴욕타임즈)
Ⅲ. 결론
1) 한국판 Wall Street 금융 다단계 사기는?
2008년 10월 경 M&A 전문 외국회사를 사칭해 수 천명으로 부터 350억 원 상당을 가로챈 금융다단계 사기조직 40여개가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다. 충북경찰청 수사과는 외환딜러, M&A 전문회사를 사칭해 투자자를 끌어들인 후 투자금 명목으로 수 십억원을 받아 가로챈 10명을 특경법상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이다.
이들로부터 사기당한 피해자만 4000여명, 피해금액만 350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외환딜러, M&A전문회사로 명성이 높은 자본금 14조원의 MEGAeFORX라는 유령회사를 홍보한 뒤 투자유치를 위해 ‘1구좌당 110만원을 투자하면 다음 주부터 매주 8만원씩 40주에 걸쳐 320만원을 지급하고, 또 다른 투자자를 유치하면 3명은 13%, 6명이상 17%, 9명 이상 21%를 지급’이라는 명목으로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이런 수법으로 정모씨(54.여)등 400여명으로부터 31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건이다.
가정주부와 노인들인 피해자 대부분은 자녀들의 학원비와 노후 대비 등을 위해 모아두었던 쌈짓돈을 투자했다 손해를 보았다. (아시아 투데이)
2)1974년 ‘금융사기 원조’
박영복(69)씨는 1970년대 초대형 금융사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검찰의 추가 수사결과 그가 중소기업은행과 서울은행에서 사기 대출받은 금액은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74억 원이었다. 한국 최초의 조직적 금융사고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중소기업은행장과 서울은행장 등 금융계 인사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거나 사표를 썼다.
그는 한국해양대를 졸업 후, 대한해운공사에서 5년간 선원으로 일하다 선원 생활을 그만두고 무허가 벌목에 손대며 사기 행각을 시작했다. 1968년 중앙합동이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관급공사를 따내려는 사기 혐의를 시작으로 1974년의 초대형 금융사기를 계획했다.
그는 우선 회사를 설립해 무역업자 자격을 갖추거나 수출실적이 있는 무역회사를 인수했다. 이렇게 만든 회사가 18개나 됐다. 사채시장에서 빌린 돈을 은행에 예금해 신용을 쌓은 뒤 부동산권리증과 수출신용장을 위조해 거액의 무역금융을 받아 내고, 모두 22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었다.(동아일보 2006년 2월 2일 판)
Ⅳ. 참고자료
블룸버그 통신 2008년 12월 12일, 14일
동아일보 경제면 2006년 2월 2일 판
뉴욕타임즈 2008년 12월 13일, 14일
매일경제 2008년 12월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2008년 12월 10~15일
파이낸셜 타임즈 2008년 12월 12일
EDaily ECONOMY, BUSINESS AND FINANCE
네이버 백과사전
Ⅲ. 결론
1) 한국판 Wall Street 금융 다단계 사기는?
2008년 10월 경 M&A 전문 외국회사를 사칭해 수 천명으로 부터 350억 원 상당을 가로챈 금융다단계 사기조직 40여개가 경찰에 적발된 적이 있다. 충북경찰청 수사과는 외환딜러, M&A 전문회사를 사칭해 투자자를 끌어들인 후 투자금 명목으로 수 십억원을 받아 가로챈 10명을 특경법상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이다.
이들로부터 사기당한 피해자만 4000여명, 피해금액만 350억원에 달한다.
이들은 외환딜러, M&A전문회사로 명성이 높은 자본금 14조원의 MEGAeFORX라는 유령회사를 홍보한 뒤 투자유치를 위해 ‘1구좌당 110만원을 투자하면 다음 주부터 매주 8만원씩 40주에 걸쳐 320만원을 지급하고, 또 다른 투자자를 유치하면 3명은 13%, 6명이상 17%, 9명 이상 21%를 지급’이라는 명목으로 투자자들을 유치했다.
이런 수법으로 정모씨(54.여)등 400여명으로부터 31억5000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건이다.
가정주부와 노인들인 피해자 대부분은 자녀들의 학원비와 노후 대비 등을 위해 모아두었던 쌈짓돈을 투자했다 손해를 보았다. (아시아 투데이)
2)1974년 ‘금융사기 원조’
박영복(69)씨는 1970년대 초대형 금융사기로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이다. 검찰의 추가 수사결과 그가 중소기업은행과 서울은행에서 사기 대출받은 금액은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74억 원이었다. 한국 최초의 조직적 금융사고로 기록된 이 사건으로 중소기업은행장과 서울은행장 등 금융계 인사들이 줄줄이 법정에 서거나 사표를 썼다.
그는 한국해양대를 졸업 후, 대한해운공사에서 5년간 선원으로 일하다 선원 생활을 그만두고 무허가 벌목에 손대며 사기 행각을 시작했다. 1968년 중앙합동이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관급공사를 따내려는 사기 혐의를 시작으로 1974년의 초대형 금융사기를 계획했다.
그는 우선 회사를 설립해 무역업자 자격을 갖추거나 수출실적이 있는 무역회사를 인수했다. 이렇게 만든 회사가 18개나 됐다. 사채시장에서 빌린 돈을 은행에 예금해 신용을 쌓은 뒤 부동산권리증과 수출신용장을 위조해 거액의 무역금융을 받아 내고, 모두 22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었다.(동아일보 2006년 2월 2일 판)
Ⅳ. 참고자료
블룸버그 통신 2008년 12월 12일, 14일
동아일보 경제면 2006년 2월 2일 판
뉴욕타임즈 2008년 12월 13일, 14일
매일경제 2008년 12월 14일
월스트리트저널(WSJ) 2008년 12월 10~15일
파이낸셜 타임즈 2008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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