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 6 장 산업혁명과 성장
유용한 비교
혁명: 복잡하고 모호한 용어
하류 쪽으로의 관찰: 오늘날의 저개발국들
상류 쪽으로의 관찰: 실패한 혁명들
알렉산드리아의 이집트
유럽 최초의 산업혁명 11-13세기의 말과 물레방아 및 풍차
아그리콜라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시대의 산업혁명
존 네프와 영국 최초의 산업혁명, 1560-1640년
영국의 산업혁명: 분야별 분석
가장 중요한 요소: 영국의 농업
인구증가
기술: 불충분한 필요조건
면직업은 “하찮은”것이 아니다
원거리 교역의 승리
국내 수송의 증대
느린 진화
유용한 비교
혁명: 복잡하고 모호한 용어
하류 쪽으로의 관찰: 오늘날의 저개발국들
상류 쪽으로의 관찰: 실패한 혁명들
알렉산드리아의 이집트
유럽 최초의 산업혁명 11-13세기의 말과 물레방아 및 풍차
아그리콜라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시대의 산업혁명
존 네프와 영국 최초의 산업혁명, 1560-1640년
영국의 산업혁명: 분야별 분석
가장 중요한 요소: 영국의 농업
인구증가
기술: 불충분한 필요조건
면직업은 “하찮은”것이 아니다
원거리 교역의 승리
국내 수송의 증대
느린 진화
본문내용
업 등 항해 분야의 분업이 발달해 있었다. 상업혁명만으로 산업혁명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국 경제가 그 자신의 수준 이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상업의 발달이 컸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들이 그 가치를 최소화하려는데 이 것은 자본주의적인 성장을 국내적인 발전만으로 설명하려는 사람과 국외에서 체계적으로 전 세계를 이용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려는 사람들 사이의 치열한 논쟁과 연결된다. 캉디용 같은 인물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외국에 판매한 액수나 외국에서 구매한 액수가 늘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영국이 수행한 교역이 무역균형을 이루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국내무역이 중요하지만 결코 해외무역의 중요성을 반감시키지는 않는다. 1800년 이 후 해외 무역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산업혁명에서 국내와 해외라는 두 승수는 서로가 연관관계를 맺었다.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작동하지 못 했을 것이다.
국내 수송의 증대
산업혁명은 활기찬 유통 경제에 직접 연결되는데 영국에서는 왜 이것이 그렇게 일찍 발달한 것일까? 그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관계망들이 정교화되고 근대화되며 갈수록 스스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송수단이 증대했다는 점인데 이 것은 당면한 교역의 요구 이상으로 발달하고 더 나아가서 교역의 발달을 보장해 주었다. 영국의 유통은 항구와 항구 사이를 잇는 거대한 연안항해를 통해서 시작되고 확보되었다. 많은 것들이 연안을 따라 수송되었고, 영국의 해안을 따라 위치한 20여 개의 항구들이 거의 연속적으로 교환을 중개했다. 그리고 강이 유통의 두 번째 기회를 제공했다. 해상의 배를 직접 이용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상품을 내륙 깊숙이 들여옴으로써 영국 해안의 연안항해와 바로 연결되는 강에서의 수송이 가지는 혁명적인 중요성을 보여준다. 강의 수로를 차차 개선해 나갔고, 일부 곡류를 짧게 끊어버리고 수문을 설치했다. 운하의 건설의 광기는 투자였으며, 이 운하는 석탄의 운반에 이용되었고, 운하계획을 잘 수립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육상의 도로 역시 그런 대로 쓸만한 도로망을 건설했다. 이 도로는 개인의 주도로 건설되었고, 옛날 도로들은 유로도로들로 대체되었다.
도로나 운하건설로 풀리지 않았던 탄광입구로부터 도크까지의 문제는 18세가 말에 가서 금속레일이 등장하면서 풀렸다. 초기의 레일은 단순한 나무 막대기였고, 그 위로 차량의 목제 바퀴가 굴러갔다. 후에 바깥에 테를 둘러서 보완한 레일 위로 말이 차량을 끌고 갔는데 보통의 도로에서보다 3배 이상의 짐을 끌었다. 1767년경에 주물로 만든 레일이 나무 레일을 대신했다. 영국의 운송설비에서 레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성장과 수송설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느린 진화
모든 것은 느리게 진행된다. 코크스를 이용한 제련, 직조의 기계화, 진정한 농업혁명, 진정한 증기기관, 진정한 철도…… 산업혁명은 끊임없이 탄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해서 움직여가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파괴, 정비, 그리고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영국에서의 산업혁명은 이미 왕정복고 당시에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터무니없이 지체된 세기인 17세기 동안 앙시앵 레짐은 기반이 허물어지고 쓰러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전통적인 농업구조, 토지수요 파괴, 길드제의 해체, 항해조례 갱신) 영국은 생산, 생활수준, 복지가 증가했고, 경제의 도구가 완성되어갔다. 그리고 각각의 분야들이 충분히 발달해서 위기가 닥쳤을 때 어느 한 분야가 다른 것들에 대해서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일이 없게 되었다. 영국은 어느 방향으로 잡든지, 어떤 기회가 닥치든지 간에 발전을 이룰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산업혁명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으로서 의도적으로 추진되었고, 영국의 경제와 사회가 기계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 줄곧 노력했다는 식의 잘못된 인상을 준다. 사전에 규정된 것으로서 산업혁명을 경험한다는 이미지는 오늘날 산업혁명을 추구하는 경우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에는 이미 알려진 모델들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될 길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경험은 이런 것과는 다르다. 영국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강력한 삶의 상승과정에서 그 목표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삶의 상승은 산업혁명을 앞으로 밀고 가는 무수히 많은 엇갈리는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며 그 많은 흐름들이 모두 하나의 틀에 맞추어져 흐르는 것이 아니다.
국내 수송의 증대
산업혁명은 활기찬 유통 경제에 직접 연결되는데 영국에서는 왜 이것이 그렇게 일찍 발달한 것일까? 그 이유를 간단히 요약하면 관계망들이 정교화되고 근대화되며 갈수록 스스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수송수단이 증대했다는 점인데 이 것은 당면한 교역의 요구 이상으로 발달하고 더 나아가서 교역의 발달을 보장해 주었다. 영국의 유통은 항구와 항구 사이를 잇는 거대한 연안항해를 통해서 시작되고 확보되었다. 많은 것들이 연안을 따라 수송되었고, 영국의 해안을 따라 위치한 20여 개의 항구들이 거의 연속적으로 교환을 중개했다. 그리고 강이 유통의 두 번째 기회를 제공했다. 해상의 배를 직접 이용하든지 아니면 적어도 상품을 내륙 깊숙이 들여옴으로써 영국 해안의 연안항해와 바로 연결되는 강에서의 수송이 가지는 혁명적인 중요성을 보여준다. 강의 수로를 차차 개선해 나갔고, 일부 곡류를 짧게 끊어버리고 수문을 설치했다. 운하의 건설의 광기는 투자였으며, 이 운하는 석탄의 운반에 이용되었고, 운하계획을 잘 수립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육상의 도로 역시 그런 대로 쓸만한 도로망을 건설했다. 이 도로는 개인의 주도로 건설되었고, 옛날 도로들은 유로도로들로 대체되었다.
도로나 운하건설로 풀리지 않았던 탄광입구로부터 도크까지의 문제는 18세가 말에 가서 금속레일이 등장하면서 풀렸다. 초기의 레일은 단순한 나무 막대기였고, 그 위로 차량의 목제 바퀴가 굴러갔다. 후에 바깥에 테를 둘러서 보완한 레일 위로 말이 차량을 끌고 갔는데 보통의 도로에서보다 3배 이상의 짐을 끌었다. 1767년경에 주물로 만든 레일이 나무 레일을 대신했다. 영국의 운송설비에서 레일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성장과 수송설비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느린 진화
모든 것은 느리게 진행된다. 코크스를 이용한 제련, 직조의 기계화, 진정한 농업혁명, 진정한 증기기관, 진정한 철도…… 산업혁명은 끊임없이 탄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해서 움직여가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파괴, 정비, 그리고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영국에서의 산업혁명은 이미 왕정복고 당시에 잠재되어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표면적으로는 터무니없이 지체된 세기인 17세기 동안 앙시앵 레짐은 기반이 허물어지고 쓰러진 것이나 다름없었다.(전통적인 농업구조, 토지수요 파괴, 길드제의 해체, 항해조례 갱신) 영국은 생산, 생활수준, 복지가 증가했고, 경제의 도구가 완성되어갔다. 그리고 각각의 분야들이 충분히 발달해서 위기가 닥쳤을 때 어느 한 분야가 다른 것들에 대해서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일이 없게 되었다. 영국은 어느 방향으로 잡든지, 어떤 기회가 닥치든지 간에 발전을 이룰 준비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산업혁명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으로서 의도적으로 추진되었고, 영국의 경제와 사회가 기계의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가능케 하기 위해서 줄곧 노력했다는 식의 잘못된 인상을 준다. 사전에 규정된 것으로서 산업혁명을 경험한다는 이미지는 오늘날 산업혁명을 추구하는 경우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에는 이미 알려진 모델들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될 길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경험은 이런 것과는 다르다. 영국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나아간 것이 아니라 강력한 삶의 상승과정에서 그 목표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삶의 상승은 산업혁명을 앞으로 밀고 가는 무수히 많은 엇갈리는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며 그 많은 흐름들이 모두 하나의 틀에 맞추어져 흐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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