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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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울의 종말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제1장 바울 종말론의 구조

제2장 종말론과 구원론의 상화작용

제3장 바울 종말론의 종교적 윤리적 동기

제4장 주의 “강림”과 그 전조들

제5장 불법의 사람

제6장 부활

제7장 바울의 부활 교훈에 있어서 발전을 추정하는 견해에 대하여

제8장 부활-변화

제9장 부활의 범위

제10장 바울에게 있어서의 천년왕국 문제

제11장 최후의 심판

제12장 영원한 상태

본문내용

종교적 비난이 그 자체로서 고려된 개념들의 의도와 내용에 부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종말론과 구원론의 전체 구조와의 밀접한 뒤섞임에 관하여 우리가 발견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처음에는 복음주의적으로 종교적이며, 고도로 윤리적인 바울을 찬양하며 높이 사면서, 곧 단숨에 그의 종말론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게 비난하는 것은 아주 부자연스러워 보이다.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종말론 안의 초자연주의에 대한 강한 반동이 있으니, 이는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와 같이 바울에게서도 종말론은 무한히 초자연주의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강경한 것으로 사도의 종말론이 가진 타계성에서 잘못을 찾는 일이 있다. 성경의 종말론, 특히 바울의 종말론에 대한 경시와 비판에 작용한 둘째 요소는 윤리와 종교에서 자율성을 찾는 현대적 추구에서 나온다. 여기서도 비판되는 요소는 바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종교의 전범위를 포괄하는 것인데 위에서 말한 경향과 일치하여 종교적 정신에 깊이 뿌리 박힌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가르침 중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라는 두 가지 대원칙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의 자율성이라는 불경건한 개념을 일격에 배제해 버린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 개념 말고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에 호소하셨는데, 이는 그 자체로 본래적인 권리의 주장과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그 행동이 원칙상 비종적이고, 비윤리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은혜의 정의와 함께 얽힌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배제하면서 나타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도 피조물의 자율적인 열망이 우세한 원칙이 되었음을 함의한다. 특히 종말론 영역에서 자율성과 타율성의 두 개념이 날카롭게 대조되어 나타난다. 성경적 종말론의 전에 상급이란 특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요소는 때때로 은밀한 중에 하는 기도에 대한 상급의 약속과 같은 가장 부드러운 종교적 배경 가운데서도 나타난다. 이런 예수의 상급 개념은 바울에서 놀라운, 가장 종말론적인 유사성을 나타내준다. 이 개념은 그 마지막 때에만 한정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바울은 그의 종말론적 구조 안에 상급의 원칙을 인정하고 유지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으로 남는다.
사도의 종말론적 가르침에 대한 또 다른 종류의 비판이 있어 왔다. 종말론 자체가 원칙상 정죄되지 않고, 그 개념과 그 주변 개념들을 포괄하는 사도의 정신적 자세의 질이 날카롭게 검토된다는 데에 있다. 그리하여 바울식의 사고 내용이 가지는 어조와 색채만이 아니라, 그 종교적, 도덕적 정신까지도 전혀 종교라는 이름 아래에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열등하고 저열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비난은 바울이라는 사람에 대한 비난이다. 사도의 종말 의식 안에 자기의 중심주의가 있었는가 아니면 이타주의가 있었는가에 대한 철저한 논의는 바울에게 있어서 ‘영원한 상태’의 내용이 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실재와의 밀접한 연관 없이는 완료될 수 없다. 그 두 가지 실재란 ‘삶’과 ‘영광’이다.
제4장 주의 ‘강림’ 과 그 전조들
종말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두 가지 종국적 사건은 부활과 심판이다. 종말론적 과정은 사람을 죄와 사망이 들어오기 전에 그가 서 있던 위치로 되돌려 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상태 이전에는 얻지 못했고, 또한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그 시험이 없이는 얻을수 없는 더 높은 삶의 지평에로 높이는 것이다. 구약에서는 여러 번 심판과 변혁에 의한 사물의 종결이 메시야적 도움없는 여호와 자신의 현현과 연관되었다. 사실 종말의 그 큰 두 사건을 메시야적 인물의 ‘강림’으로 성격지우는 것은 구약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신약 계시의 첫 국면에만 해도 다른 식의 표현인 ‘하나님 자신의 강림’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다가 예수와, 특히 바울의 가르침에서 이 용어는 상당한 변화를 겪었다. 마지막 위기를 하나님의 개입으로 묘사하는 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강림이란 말이 주로 사용된 것이다. 예수의 파루시아(강림)란 뜻으로 사용하는 데 익숙한 것처럼, “강림”이란 용어가 실제적으로 종말론적 종결화에 대한 전문 기술적 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체의 색조와 의미가 여호와 하나님 현현 사상으로부터 메시야적 사유로 급격히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이후에는 대게 기다리는 큰 ‘오심’이 메시야의 오심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강림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파루시아”(parousia)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사건으로서의 파루시아는 격변적(catasrophic)이다. 그 개념 내적 발전이나, 그 사건의 이중화나 삼중화의 흔적은 그 어디서나 찾아 볼수 없다. 그러므로 파루시아는 단지 그것이 중간 통치를 지칭하는 것으로 발견된다면, 용법의 강조에 의해서 천년왕국적 희망과 밀접히 연관되고 그 이상의 영원성이란 전망을 흐리게 하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파루시아는 아주 궁극적 사건을 지칭하므로, 결과적으로 이 파루시아에 의해 열려지는 것은 종교적 의식에 최고의 절대적인 중심점을 줄 것임이 분명하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강림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둘째 용어는 ‘계시’란 용어이다. 이 개념은 예수께서 승천하심으로써 그의 숨기워진 삶이 시작되었고, 마침내는 마지막 날 그가 다시 공개적으로 나타나심을 통하여 그쳐지게 되리라는 신념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계시’란 용어에 전문적 의미를 부과하여, 이를 자주 초자연 영역으로부터 지상적 영역에로 위대한 것들이 내려오는 것에 적용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강림을 지칭하는 세 번째 용어는 ‘헤 헤메라’란 말이다. 그 날은 심판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상에 부가된 대개의 경고 외에, 여기서는 빛과 구원의 상태, 즉(문자적 의미에서의) 낮으로서의 미래 상태의 선도에 대한 언급이 있다. 날이 빛과 연관됨을 통해서 질적인 개념이 된 것이다. 즉 이 말이 윤리 종교적인 의미, 선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런 몇가지 용어들에 나타나는 놀랄만한 특징은 이 용어들이 그것이 묘사하는 위기의 앞서는 것들과 병행하는 것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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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5
  • 저작시기2009.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56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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