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러시아 만들기
2.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그리고 타타르 국가들
3. 전쟁과 반란, 반란과 전쟁
4. 19세기의 통합
5. 혁명의 전망
6. 1905년 혁명
7. 두 개의 후속 혁명
8. 통합과 붕괴
2. 러시아, 폴란드-리투아니아 그리고 타타르 국가들
3. 전쟁과 반란, 반란과 전쟁
4. 19세기의 통합
5. 혁명의 전망
6. 1905년 혁명
7. 두 개의 후속 혁명
8. 통합과 붕괴
본문내용
에 1929년과 1938년 사이의 거듭된 숙청 사태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반란은 한 번도 야기되지 않았다. 이러한 중앙으로부터의 통제는 가공스런 비밀 정치 경찰을 포함한 경찰력의 급속한 성장으로 한층 강화되었다.
제국에서 떨어져 나간 국가들도 1918-1921년에는 소련과 유사하게 1917년 혁명 투쟁의 연장전을 벌였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 3국과 폴란드와 핀란드 이 다섯 나라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되어 있음을 선언하곤 했다. 독일의 점령 하에 있던 발틱 3국은 독일의 패배 이후 러시아의 탈환 시도를 막아 내었으며 처음에 토지 재분배와 민주화를 실험하기도 했으나 결국에 가서는 똑같이 우익 쿠데타를 경험하게 되었다. 폴란드의 경우 전쟁 기간중 대체로 독일의 지배 아래 있다가 1918년 독일의 항복 때 완전한 독립을 획득한 후 예전 지배했던 인근 영토들의 환수에 힘을 쏟았는데, 이로 인해 리투아니아, 소련과의 전쟁을 벌였으며 1926년 필수드스키가 우익 쿠데타를 주도해 정권을 잡은 후 1939년 독일 침공 때까지 유지되었다. 핀란드의 경우 백군과 적군 사이의 내전이 1918년부터 시작되어 두 번의 군사 쿠데타 실패, 권위주의, 민족주의 운동의 압력 등으로 1930년대 내내 분열상을 드러냈다. 이와 같이 소련과 그 북동쪽 국경 너머 신생 독립국들 간의 정치적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졌으며 이후 강제적 군사동맹 등은 다시 관련 당사국들의 성격 자체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8. 통합과 붕괴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매혹적인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중앙집권적 직접 통치가 공격적인 기세로 확대되었고 1930년대에는 체계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1937년과 1938년의 악명 높은 숙청 파동은 통합 이면에 숨은 강압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 독일의 재무장이 가시화되자 소련은 군수품 생산을 위한 산업 시설 확충에 더 많은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소련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물적 손실, 산업 시설 파괴 등의 피해를 보았으나 한편으론 전쟁을 위한 비상 동원과 나치 세력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 그리고 중유럽 지역으로의 영향력 확대 등에 힘입어 소련 국가의 위엄과 전망이 한층 강화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 소련은 이후 동유럽 국가들과 강제 전후 협약을 맺고 이를 통해 자국의 세력을 서부 방면으로 더 멀리 확장해 나갔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대응으로 바르샤바 협정을 만들어 중유럽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지배를 공고화하였다. 또한 군대의 위세가 더욱 강화되었으며 전후 재건 작업을 통해 몇 년만에 효율적인 군수 생산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위성을 쏘아 올리고 미국 무기에 대항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전후의 소련을 상대로 하는 혁명의 가능성은 미국 및 그 동맹 세력과의 냉전에 의해 조성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소련은 대외 간섭, 즉 동유럽 위성국 또는 유럽 이외의 국가에 대한 개입을 통해 혁명적 상황을 접했다.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의 이탈 세력 진압을 위해 소련 군대를 사용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통해 미국과 간접 대결을 벌이는 등의 규모가 큰 개입을 하였던 것이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이내 글라스노스치(개방), 즉 공공 생활의 자유화 강령을 발표하고 이를 시행에 옮겼다. 반체제 수감자들의 석방이나 유대인들의 출국 비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준 것이 구체적인 예다. 1987년 고르바쵸프는 이같은 정치적 자유화에 덧붙여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강령을 통해 생산을 군사 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전환하고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키기 위한 경제 구조 조정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는 신중하게 군사 시설 감축과 소련 외부 지역에 대한 군사력 개입 자제, 소련 내의 종교적, 인종적, 정치적 자율권 요구에 대한 무력 탄압을 중단하는 그런 방향으로 국가를 움직여 나갔으며 자신의 강령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화 정책을 널리 알리고 합작 벤처 기업에 대해 나라를 개방하며, 1990년과 1991년에는 미국 주도의 반 이라크 동맹에 협력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국제 사회의 도움과 지지를 호소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경제적으로 군수 산업 우대 정책의 수혜자들과 신형 분배망에 접촉하지 못한 소비자들, 기왕에 보유하던 권력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처지에 있는 공직자들을 모두 소외시킨 가운데, 정치적으로는 비판 세력과 경쟁자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을 활짝 열어놓았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경쟁 관계에 있는 개혁 인사들, 정치적 자유 방임주의자들, 구체체 옹호자들 모두와 충돌을 빛게 되었고 종교적, 정치적 자유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져 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 출범한 체제를 상대로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각종 민족 집단의 돌격이 관측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체제를 파괴하였던 것이다.
소련은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원 대상 소수 민족에 대해 양면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소련 내 민족들의 민족성은 정치적 사실로서 큰 실체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 동안 공산주의자들은 간접 통치라고 하는 고전적 방식으로 이들을 다스려 왔다. 그런데 고르바초프와 정치 개방론자들은 기존의 방식에 반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였고 이것은 소련 내 이런 민족들을 갑작스레 자극하여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1990년 새로운 연방 조약을 제안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이것은 오히려 연방의 분열을 더욱 확인시켜주는 결과가 되었다.
1991년 8월, 고르바초프를 크림 반도의 휴가 별장에 억류하는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소련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비록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으나 고르바초프가 서기장 직을 사임하고 당의 활동이 중지되는 등의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이것은 소련의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6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이 시기에 발생한 이러한 혁명은 유럽에서 가장 독특한 축에 드는 혁명이었으며 상당히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것은 소련 국가의 독특한 조직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었다.
제국에서 떨어져 나간 국가들도 1918-1921년에는 소련과 유사하게 1917년 혁명 투쟁의 연장전을 벌였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등 발틱 3국과 폴란드와 핀란드 이 다섯 나라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러시아로부터 독립되어 있음을 선언하곤 했다. 독일의 점령 하에 있던 발틱 3국은 독일의 패배 이후 러시아의 탈환 시도를 막아 내었으며 처음에 토지 재분배와 민주화를 실험하기도 했으나 결국에 가서는 똑같이 우익 쿠데타를 경험하게 되었다. 폴란드의 경우 전쟁 기간중 대체로 독일의 지배 아래 있다가 1918년 독일의 항복 때 완전한 독립을 획득한 후 예전 지배했던 인근 영토들의 환수에 힘을 쏟았는데, 이로 인해 리투아니아, 소련과의 전쟁을 벌였으며 1926년 필수드스키가 우익 쿠데타를 주도해 정권을 잡은 후 1939년 독일 침공 때까지 유지되었다. 핀란드의 경우 백군과 적군 사이의 내전이 1918년부터 시작되어 두 번의 군사 쿠데타 실패, 권위주의, 민족주의 운동의 압력 등으로 1930년대 내내 분열상을 드러냈다. 이와 같이 소련과 그 북동쪽 국경 너머 신생 독립국들 간의 정치적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졌으며 이후 강제적 군사동맹 등은 다시 관련 당사국들의 성격 자체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8. 통합과 붕괴
스탈린 치하의 소련은 매혹적인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중앙집권적 직접 통치가 공격적인 기세로 확대되었고 1930년대에는 체계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1937년과 1938년의 악명 높은 숙청 파동은 통합 이면에 숨은 강압의 실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후 독일의 재무장이 가시화되자 소련은 군수품 생산을 위한 산업 시설 확충에 더 많은 힘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소련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물적 손실, 산업 시설 파괴 등의 피해를 보았으나 한편으론 전쟁을 위한 비상 동원과 나치 세력에 대한 최종적인 승리 그리고 중유럽 지역으로의 영향력 확대 등에 힘입어 소련 국가의 위엄과 전망이 한층 강화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다. 소련은 이후 동유럽 국가들과 강제 전후 협약을 맺고 이를 통해 자국의 세력을 서부 방면으로 더 멀리 확장해 나갔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에 대한 대응으로 바르샤바 협정을 만들어 중유럽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지배를 공고화하였다. 또한 군대의 위세가 더욱 강화되었으며 전후 재건 작업을 통해 몇 년만에 효율적인 군수 생산 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위성을 쏘아 올리고 미국 무기에 대항할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전후의 소련을 상대로 하는 혁명의 가능성은 미국 및 그 동맹 세력과의 냉전에 의해 조성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소련은 대외 간섭, 즉 동유럽 위성국 또는 유럽 이외의 국가에 대한 개입을 통해 혁명적 상황을 접했다.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의 이탈 세력 진압을 위해 소련 군대를 사용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통해 미국과 간접 대결을 벌이는 등의 규모가 큰 개입을 하였던 것이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이내 글라스노스치(개방), 즉 공공 생활의 자유화 강령을 발표하고 이를 시행에 옮겼다. 반체제 수감자들의 석방이나 유대인들의 출국 비자를 지속적으로 늘려준 것이 구체적인 예다. 1987년 고르바쵸프는 이같은 정치적 자유화에 덧붙여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강령을 통해 생산을 군사 부문에서 민간 부문으로 전환하고 생산성을 대폭 향상시키기 위한 경제 구조 조정을 골자로 하는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는 신중하게 군사 시설 감축과 소련 외부 지역에 대한 군사력 개입 자제, 소련 내의 종교적, 인종적, 정치적 자율권 요구에 대한 무력 탄압을 중단하는 그런 방향으로 국가를 움직여 나갔으며 자신의 강령에 대한 민중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화 정책을 널리 알리고 합작 벤처 기업에 대해 나라를 개방하며, 1990년과 1991년에는 미국 주도의 반 이라크 동맹에 협력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국제 사회의 도움과 지지를 호소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경제적으로 군수 산업 우대 정책의 수혜자들과 신형 분배망에 접촉하지 못한 소비자들, 기왕에 보유하던 권력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처지에 있는 공직자들을 모두 소외시킨 가운데, 정치적으로는 비판 세력과 경쟁자들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을 활짝 열어놓았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경쟁 관계에 있는 개혁 인사들, 정치적 자유 방임주의자들, 구체체 옹호자들 모두와 충돌을 빛게 되었고 종교적, 정치적 자유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점차 높아져 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 출범한 체제를 상대로 자신들의 지위를 확보하려는 각종 민족 집단의 돌격이 관측되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구체제를 파괴하였던 것이다.
소련은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원 대상 소수 민족에 대해 양면적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소련 내 민족들의 민족성은 정치적 사실로서 큰 실체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 동안 공산주의자들은 간접 통치라고 하는 고전적 방식으로 이들을 다스려 왔다. 그런데 고르바초프와 정치 개방론자들은 기존의 방식에 반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였고 이것은 소련 내 이런 민족들을 갑작스레 자극하여 일대 혼란을 가져왔다. 이에 고르바초프는 1990년 새로운 연방 조약을 제안하여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으나 이것은 오히려 연방의 분열을 더욱 확인시켜주는 결과가 되었다.
1991년 8월, 고르바초프를 크림 반도의 휴가 별장에 억류하는 쿠데타가 발생하는 등 소련은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비록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으나 고르바초프가 서기장 직을 사임하고 당의 활동이 중지되는 등의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이것은 소련의 해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6년에서 1992년에 이르는 이 시기에 발생한 이러한 혁명은 유럽에서 가장 독특한 축에 드는 혁명이었으며 상당히 독특한 형식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것은 소련 국가의 독특한 조직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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