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와 아리랑의 조사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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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기민요와 아리랑의 조사 채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序 論
1. 民謠의 理解
1-1 경기민요
1-2 아리랑

Ⅱ 本 論
1 조사과정
1-1 조사 동기
1-2 조사 장소
1-3 조사 일시
2. 採 錄
2-1 채록과정
2-2 채록 내용
2-2-1 경기민요
2-2-2 아 리 랑
가 정선아리랑
나 진도 아리랑
다 강원도 아리랑
3. INTERVIEW 內容
3-1 경기민요를 부른 000씨 Interview
3-2 아리랑을 부른 000씨 Interview

Ⅲ. 結 論
1. 조사를 통하여 알게 된 점
2. 조사를 마치며 느낀 점

Ⅳ 添 附

Ⅴ 參 考 文 獻

본문내용

만나 보세 만나보세, 아주까리 정자로 만나보세(후렴)
산중의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나 하나라(후렴)
십오야 뜬 달이 왜 이리 밝아, 산란한 이 마음 달랠 길 없네(후렴)
풀벌레 구슬피 우는 밤에 다다미 소리도 처량하구나(후렴)
아주까리 정자는 구경자리 살구나무 정자로 만나보세(후렴)
울타릴 꺾으면 나온다더니 행랑챌 부셔도 왜아니나와(후렴)
아리랑 고개다 주막집 짓고 정든 님 오기만 기다린다(후렴)
목화송이 따면서 맹서턴 그님 훌훌이 떠난 후 소식이 없네(후렴)
아주까리 동백아 열지를 마라 건너집 수 처녀 다 놀아난다.(후렴)
산중의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정든 님이 로다(후렴)
담넘어갈 적에 우는 개는 인왕산 호랭이 꼭 물어가네(후렴)
구만리장천 우는 닭은 야산 쪽제비 꼭 물어간다(후렴)
꽃본 나비 물본 기러기 탐화봉접인데 임자보고 그냥 갈쏘냐(후렴)
산이 높아야 골이 깊지 조그마한 여자 속이 깊을 수 있나(후렴)
3. INTERVIEW 內容
3-1 경기민요를 부른 000씨 Interview
금강산 타령은 작사자, 작곡자가 알려져 있지 않아요. 누가 작사, 작곡을 했는지 몰라 학자들의 말로는 산에서 스님들이, 스님들도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이잖아요. 그 분들이 하시지 않았을까 하지요. 가사를 현대적으로 고치면 알아듣기 쉬울 텐데요, 고치면 안 되나요? 가사를 현대적으로 고칠 수 있지만 선생님들이 그러시는데 그렇게 하면 소리가 되 바라진데요. 그래서 전해 내려오는 데로 하는 거예요. 이것도 변형된 건가요? 변형이 됐지요. 그런데 장단이 품위 있게 됐어요. 누구에게 사사 하셨나요? 저의 선생님은 중요 무형문화재 경기민요 57호 기능 보유자이신 묵계월 선생님이시고, 그 밑에 김영임씨가 전수자이신데 말하자면 준 인간문화재 이지요. 요즘은 인간문화재라고 하지 않고, 기능 보유자라고 해요. 저는 전수자 밑에 이수자지요. 어려서부터 민요가 좋았어요, 왠지 모르게 그냥 좋았어요. 제 고향은 전남 무안이에요. 어려서 다섯 살 땐가 시조와 민요를 좀 했어요. 성장하면서 엄마가 무척 말렸고, 또 결혼 휴가 등으로 중단했다가, 전문적으로 다시 소리를 하게 된게 스물아홉살 때 부터예요. 시행사에 나가고 고향시 광명시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공연을 앞두고는 하루에 열 시간이상 연습해도 좋아서 하니 지치는 줄을 몰라요. 왜 그렇게 소리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아마 운명인게지요. 인터뷰를 마치고 살포시 수줍게 웃는 모습이 고왔다.
3-2 아리랑을 부른 000씨 Interview
어떻게 아리랑을 부르시게 되셨나요? 내 고향은 충청북도 충주입니다. 고향에 살던 어린 시절 등하교길 들판에서 일하면서 어른들이 부르는, 주막집 근처를 지날 때 들리던 아리랑 소리, 때로는 물길 따라 흘러가며 떼꾼들이 부르는 아리랑 소리를 들을 때면 왠지 어린 가슴에 유난히도 인상 깊게 파고들었어요. 충주는 남한강 물길이 정선의 아우라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하루 생활권이었거든요. 그 때 아리랑을 들을 때는 어려서 마음을 울리는 그 무엇이 뭔지도 몰랐고, 그 후 고향을 떠나 공부와 취직, 그리고 결혼 등으로 점점 멀어져 까마득히 잊고 살았지요. 그런데 정년퇴직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자꾸만 어린 시절에 듣던 아리랑 가락이 자꾸만 입에 맴도는 거예요. 얼마 후 갑자기 상처를 하게 되자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로되어 삶의 의욕조차 잃어버리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사무치는 외로움과 세상 떠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을 아리랑 가락에 실어 풀어내었더니 답답해서 죽을 것만 같았던 가슴이 뻥 뚫려요. 아리랑이 선생님을 살렸네요? 네, 그 후로 아리랑은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었어요. 기쁨도 슬픔도 그리움도 회한도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미움마저도 가사를 지어 아리랑 가락에 실어 풀어내면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남은 인생에 동반자 아리랑이 있어서 이제 외롭지 않습니다.
Ⅲ. 結 論
1. 조사를 통하여 알게 된 점
민요(民謠)에 음악과 문학이 내포(內包)되어 있다고 구비문학에서 배웠지만 민요가 음악인데 왜 문학적 측면에서 연구하는지 별관심이 없었는데 민요의 여러 가지 시원설과 전설 또는 가사 속에 담겨있는 내용들은 정말 무궁무진한 민중들의 가슴속에 묻혀있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한을 승화시키고 울분을 달래주고 노동의 힘겨움을 해소시켜주고 답답한 속마음을 쏟아 낼 수 있는 민요는 생성자이면서 향유자인 민중들에게는 종교와 같은 존재이며 생명체 있는 노래라는 것을 채록현장에서 생생하게 느꼈다
처음 경기민요를 채록하기로 했을 땐 경기민요모두 토속민요인줄 알았다
그러나 경기민요는 토속민요도 있지만 통속민요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월숙 이수자가 좋아한다는 금강산타령이 경기민요정가인줄 알았는데 잡가라는 걸 알고 잡가에 대해 알게 하게 되었다.
민요는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불리워 졌던것에 반해 잡가는 소리를 좋아하는 도시의 소시민층에 의해서 불리워졌다. 그들은 대부분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서 비직업적인 입장에서 잡가를 가르치고 불렀으며 제자에게 소리를 가르칠때 소리채를 받지 않았단는 사실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주고 있다 잡가는 흔히 마을의 공청에서 함께 부르고 즐기는 민요와는 달리 보다 공연예술쪽에 가까운 노래라고 할 수 있고 음악적 내용으로 볼 때 잡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내용의 가사를 절이 바뀔 때마다 음악을 조금씩 변화시켜나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토속민요는 별도의 전승과정 없이 구전되어 누구나 부를 수 있고 독창 또는 여럿이 부르며 메기고 받는 형식이고 후렴이 붙는 짧은 사설을 정해진 선율에 반복하는 유절형태인데 잡가는 반드시 스승으로부터 배워야만 부를 수 있으며 전분적인 소리꾼들에 의해 불려진다. 독창으로 부르며 메기고 받는 형식이 없다 긴사설의 가사에 따라 선율도 바뀌는 통절 형태이다.
<금강산 타령>은 넓은 의미의 경기민요이며 잡잡가에 속하며 1927년 최성식이라 전해지며 금강산타령은 금강산의 절경을 부른 서경시로서 경기 좌창에 속하는 노래이며 모두가 7절로 되어있어 6절까지는 도드리장단에 맞추어 풍등가와 비슷한 창법으로 부르고 7절가선는 노래가락으로 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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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0.19
  • 저작시기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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