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의 삶,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말하고 있는데 이점은 눅 3:7-14에서 잘 언급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역을 단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일”로 폄하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리와 죄인들이란 오직 불결한 자들로서 그들은 이러한 소외계층의 비애를 알지 못하고 이들에 대한 돌봄(치유와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소외된 계층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돌봄[자비]의 사역’이 주님의 주된 사역임을 누가는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누가가 강조하는 식탁교제의 모티브는 이점을 잘 제시한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누가가 강조하며 보여주는 소외된 계층(세리와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돌봄의 사역(용서[영접]와 접대의 사역)을 우리의 주된 교회사역으로 삼아야 한다. 최근 밥퍼의 사역이나 감자탕 교회의 이야기, 그리고 중국에서 나병환자들을 섬기며 사역하는 김요섭 목사의 돌봄의 사역은 이러한 실천의 아름다운 한 모습이다.
끝으로 본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질문(33절)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신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와 함께 다른 두 비유로 종결되고 있다. 예수님이 언급한 혼인잔치의 비유는 이미 눅 4:18에서 언급한 탕감과 해방(자유)을 선언하는 ‘주의 은혜의 해’와 같은 구원의 새 시대의 축제적인 모습이다. 이 축제(잔치)의 분위기는 눅 15장의 세 비유들을 통해서도 잘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비유 역시, 메시아의 시대는 옛 시대와는 달리 질적으로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이 구원의 시대에는 인종적, 계층적, 성적 차별을 넘어서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죄용서와 영접을 받고 주님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예수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이 메시아의 시대는 질적으로 새롭고(kainos), 시간적으로 새로운(neos) 시대를 의미한다. 주님의 비유처럼 이 시대는 새 옷으로 꾸며진 시대이며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로 이루어진 시대이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새 시대의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특히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라고 하는 39절의 누가의 역설적인 경고는 우리로 하여금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범한 잘못처럼 단지 지금의 종교적 관행에만 젖어 진정한 새 시대의 삶(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깊은 경각심을 갖게 해 준다.
바리새인들은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역을 단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일”로 폄하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리와 죄인들이란 오직 불결한 자들로서 그들은 이러한 소외계층의 비애를 알지 못하고 이들에 대한 돌봄(치유와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소외된 계층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돌봄[자비]의 사역’이 주님의 주된 사역임을 누가는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누가가 강조하는 식탁교제의 모티브는 이점을 잘 제시한다. 오늘 우리의 교회도 누가가 강조하며 보여주는 소외된 계층(세리와 죄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돌봄의 사역(용서[영접]와 접대의 사역)을 우리의 주된 교회사역으로 삼아야 한다. 최근 밥퍼의 사역이나 감자탕 교회의 이야기, 그리고 중국에서 나병환자들을 섬기며 사역하는 김요섭 목사의 돌봄의 사역은 이러한 실천의 아름다운 한 모습이다.
끝으로 본문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질문(33절)에 대하여 예수님이 하신 혼인잔치에 대한 비유와 함께 다른 두 비유로 종결되고 있다. 예수님이 언급한 혼인잔치의 비유는 이미 눅 4:18에서 언급한 탕감과 해방(자유)을 선언하는 ‘주의 은혜의 해’와 같은 구원의 새 시대의 축제적인 모습이다. 이 축제(잔치)의 분위기는 눅 15장의 세 비유들을 통해서도 잘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비유 역시, 메시아의 시대는 옛 시대와는 달리 질적으로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왔음을 의미한다. 이 구원의 시대에는 인종적, 계층적, 성적 차별을 넘어서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죄용서와 영접을 받고 주님의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예수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이 메시아의 시대는 질적으로 새롭고(kainos), 시간적으로 새로운(neos) 시대를 의미한다. 주님의 비유처럼 이 시대는 새 옷으로 꾸며진 시대이며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로 이루어진 시대이다. 교회는 바로 이러한 새 시대의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특히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라고 하는 39절의 누가의 역설적인 경고는 우리로 하여금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범한 잘못처럼 단지 지금의 종교적 관행에만 젖어 진정한 새 시대의 삶(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깊은 경각심을 갖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