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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 1 부 서 론
제1장 교의사의 개설
제2장 교의사의 임무
제3장 교의사의 방법과 분류
제4장 교의사의 역사
제 2 부 교리 발전의 준비시대
제1장 교부들과 그 관리관
제2장 복음에 대한 이해
제3장 교회안에서의 개혁운동
제4장 변증가들과 신학의 시작
제5장 반 그노시스 교부들
제6장 알렉산드리아 교부들
제7장 단일신론
제 3 부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제1장 삼위일체론 논쟁(三位一體論論爭)
제2장 후대 신학의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제 4 부 기독론(基督論)
제1장 기독론 논쟁(基督論論爭)
제2장 후대의 기독론(後代基督論)
제 5 부 인간론(人間論)
제1장 교부 시대의 인간론
제2장 펠라기우스와 아우구티누스의 인간론
제3장 중세기의 인간론
제4장 종교개혁시대의 인간론
제5장 종교개혁 시대 이후의 인간론
제 6 부 속죄론(贖罪論)
제1장 안셀무스 이전의 속죄론
제2장 중세의 속죄론
제3장 종교개혁시대의 속죄론
제4장 종교개혁 시대 이후의 속죄론
제 7 부 구원론(救援論)
제1장 교부시대의 구원론
제2장 스콜라시대의 구원론
제3장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구원론
제 8 부 교회의 성례론
제1장 교회론
제2장 성례론
제 9 부 종말론(終末論)
제1장 중간 상태
제2장 재림과 천년 왕국설
제3장 부 활
제4장 최후의 심판
제1장 교의사의 개설
제2장 교의사의 임무
제3장 교의사의 방법과 분류
제4장 교의사의 역사
제 2 부 교리 발전의 준비시대
제1장 교부들과 그 관리관
제2장 복음에 대한 이해
제3장 교회안에서의 개혁운동
제4장 변증가들과 신학의 시작
제5장 반 그노시스 교부들
제6장 알렉산드리아 교부들
제7장 단일신론
제 3 부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제1장 삼위일체론 논쟁(三位一體論論爭)
제2장 후대 신학의 삼위일체론(三位一體論)
제 4 부 기독론(基督論)
제1장 기독론 논쟁(基督論論爭)
제2장 후대의 기독론(後代基督論)
제 5 부 인간론(人間論)
제1장 교부 시대의 인간론
제2장 펠라기우스와 아우구티누스의 인간론
제3장 중세기의 인간론
제4장 종교개혁시대의 인간론
제5장 종교개혁 시대 이후의 인간론
제 6 부 속죄론(贖罪論)
제1장 안셀무스 이전의 속죄론
제2장 중세의 속죄론
제3장 종교개혁시대의 속죄론
제4장 종교개혁 시대 이후의 속죄론
제 7 부 구원론(救援論)
제1장 교부시대의 구원론
제2장 스콜라시대의 구원론
제3장 종교개혁과 그 이후의 구원론
제 8 부 교회의 성례론
제1장 교회론
제2장 성례론
제 9 부 종말론(終末論)
제1장 중간 상태
제2장 재림과 천년 왕국설
제3장 부 활
제4장 최후의 심판
본문내용
있었기 때문에 구약의 영감과 신약 정경의 내용을 영구적으로 확정해 놓는 일이 교회의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영지주의에 대항해서 행동하는 것은 신학자들이 아니라 \'교회\'였다. 교회는 받아들일 수 있는 책들의 권위 있는 목록을 발전시켰다. 셋째,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하나의 교리적 체계로 볼 수 있다고 하는 영지주의의 논란에 대하여 교회는 그러한 교리가 실제로 어떠한 것인가를 진술함으로써 답변을 주었다. 넷째, 교회의 교리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신앙의 표준\'(regula fidei)이 요구되었다. 지역에 따라서 상당히 다양한 것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신앙의 표준\'으로부터 고대의 기독교적 신조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섯째, 영지주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극대 되기 시작하자, 교회는 유능한 수호자를 요구하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감독이 선두에 나서서 이단 전체를 대항하여 싸우게 되었다. 그 결과로 감독의 우위성이 확보되었으며, 감독직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자극이 주어졌다,
이와 같은 영주지의를 결론을 내린다면, 영지주의는 지나치게 사변적이었다. 지나치게 사변적인 신화론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는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구원론적 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이단 연구가들에 따르면, 영지주의가 구원 종교로서 영적 매력이 있었다고 본다. 영지주의에 대해서 교회가 직면했던 문제는 권위에 관한 물음이었다. 즉, 올바른 가르침을 지니고 있는 것은 성경인가 아니면 영지주의의 교설(敎說)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반 영지주의적 교부들은 영지주의와의 대결에서 정경을 확립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리와 아주 다른 것을 가르치는 영지주의적 가르침이 침입한다면, 교회의 기반은 그 때문에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경(正經)의 확립은 교회가 생사를 건 영지주의와의 싸움에서 생겨난 것이다. 해롤드 브라운은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하버드 앞뜰(Harvard Yard) 입구의 문을 장식한 \'부분적 인용구\'를 언급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한 이 인용구가 시사하듯이, 영지주의는 때로 기독교적 \'의상\'을 걸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교설(敎說)은 성경적 진리와 전혀 무관하거나, 성경 말씀을 자의로 왜곡시켰다. 오늘날에도 고대 영지주의의 근본적 사상을 부흥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동양 사상에 대한 현대의 관심과 비교 종교학의 지나친 응용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뉴에이저들(New Agers)은 유사한 형태의 지식을 강조한다.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영적 전쟁터에서 거짓된 교설과 주장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의 궤계(詭計)를 간파하기 위해 교회 역사에 나타난 이단의 정체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이다.
제 3 장 교회 안에서의 개혁운동(改革運動)
1. 마르시온(Marcion)과 개혁 운동
마르시온(Marcion)과 그의 개혁운동은 순전히 구원론적 관심에 이끌리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식이 아닌 순복음과 신앙만을 강조했다. 바울식 복음을 따라, 바울이 율법주의적(律法主義的)이요, 자유은총을 부정하였다고 생각한 그 교회들을 개혁하려 하였던 것이다. 마르시온(Marcion)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갈라디아서에서 찾았는데 복음이 율법과 혼합됨으로써 부채하였다고 확신하였다. 구약을 유대인의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로 보았으며, 그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하고 신약의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어 마르시온(Marcion)은 바울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한 참 사도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신약의 정경은 누가복음과 이방인의 대 사도가 쓴 열 서신 뿐이라고 하였다.
2, 몬타너스파의 개혁운동(改革運動)
몬타너스주의(Montanism)는 그노시스파의 혁신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몬타누스와 두 여인, 프리스카와 막시미라는 자신들을 예언자라고 선언하였다. 몬타너스주의(Montanism)에 의하면 계시의 마지막 시대는 보혜사의 강림과 함께 열려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시대는 영적 은사의 시대요, 특히 예언의 시대라고 보았다. 세계종말이 가까왔음을 강력히 주장하고 도덕적(道德的)인 생활을 요구하고 한번 결혼과, 금식과 도덕적(道德的) 훈련을 할 것과, 순교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박해를 피하는 것을 절대로 금하고 교회 안에서 특별히 예언하는 능력을 찬양했다. 이들이 그노시스파의 사상을 반대한 것과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을 성경적 입장에서 강조한 점, 예언하는 은사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한 것, 신자가 세상 악에 물들지 말아야 할 필요성등을 강조했지만, 신약의 계시보다 더 고도의 계시를 요구하고 광신적(狂信的)인 요소의 믿음은 큰 무리를 낳았다.
[참고]
※ 마르시온(Marcion)
초대교회가 겪어야 했던 각종 기독교 메시지의 해석들 가운데서 폰투스(Pontus)의 시노페(Sinope)에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시온(Marcion)의 해석만큼 위험스러운 것은 없었다. 부요한 선박 소유자로 139년경 로마로 이주하여 교회에 거액의 구제금을 희사했으나 주후 144년경에 교회의 배척을 받고 쫓겨났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르시온파 교회를 세움으로써 정통 기독교에 가장 위험스런 존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각종 영지주의의 선생들은 학파를 건설하는 데 불과했으나, 마르시온은 기성 교회를 대적할 교회를 세웠으며, 그 교인 숫자가 한 때는 급격히 성장함으로써 정통파와의 대결에서 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될지 그 결과가 심히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제3세기 이후 마르시온주의는 서서히 쇠퇴하였다가 로마의 서방제국 내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전까지는 참으로 어려운 도전자였다.
마르시온은 전통적으로 영지주의자 가운데 하나로 여겨 왔었다. 그러나 마르시온은 독창적인 사상가로서 영지주의자들보다도 더 분명하게 기독교의 본질적 가르침을 포착했기
이와 같은 영주지의를 결론을 내린다면, 영지주의는 지나치게 사변적이었다. 지나치게 사변적인 신화론에도 불구하고 영지주의는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구원론적 관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독교 이단 연구가들에 따르면, 영지주의가 구원 종교로서 영적 매력이 있었다고 본다. 영지주의에 대해서 교회가 직면했던 문제는 권위에 관한 물음이었다. 즉, 올바른 가르침을 지니고 있는 것은 성경인가 아니면 영지주의의 교설(敎說)인가 하는 물음이었다. 반 영지주의적 교부들은 영지주의와의 대결에서 정경을 확립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성경의 진리와 아주 다른 것을 가르치는 영지주의적 가르침이 침입한다면, 교회의 기반은 그 때문에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경(正經)의 확립은 교회가 생사를 건 영지주의와의 싸움에서 생겨난 것이다. 해롤드 브라운은 영지주의와 기독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하버드 앞뜰(Harvard Yard) 입구의 문을 장식한 \'부분적 인용구\'를 언급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문맥을 무시하고 인용한 이 인용구가 시사하듯이, 영지주의는 때로 기독교적 \'의상\'을 걸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교설(敎說)은 성경적 진리와 전혀 무관하거나, 성경 말씀을 자의로 왜곡시켰다. 오늘날에도 고대 영지주의의 근본적 사상을 부흥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동양 사상에 대한 현대의 관심과 비교 종교학의 지나친 응용 때문이다. 영지주의자들이 그러했듯이 뉴에이저들(New Agers)은 유사한 형태의 지식을 강조한다. 2세기의 그리스도인들처럼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영적 전쟁터에서 거짓된 교설과 주장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탄의 궤계(詭計)를 간파하기 위해 교회 역사에 나타난 이단의 정체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 가운데 하나이다.
제 3 장 교회 안에서의 개혁운동(改革運動)
1. 마르시온(Marcion)과 개혁 운동
마르시온(Marcion)과 그의 개혁운동은 순전히 구원론적 관심에 이끌리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식이 아닌 순복음과 신앙만을 강조했다. 바울식 복음을 따라, 바울이 율법주의적(律法主義的)이요, 자유은총을 부정하였다고 생각한 그 교회들을 개혁하려 하였던 것이다. 마르시온(Marcion)은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갈라디아서에서 찾았는데 복음이 율법과 혼합됨으로써 부채하였다고 확신하였다. 구약을 유대인의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로 보았으며, 그 하나님은 신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구약의 하나님은 열등하고 신약의 하나님은 선하시고 자비로운 하나님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어 마르시온(Marcion)은 바울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한 참 사도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신약의 정경은 누가복음과 이방인의 대 사도가 쓴 열 서신 뿐이라고 하였다.
2, 몬타너스파의 개혁운동(改革運動)
몬타너스주의(Montanism)는 그노시스파의 혁신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났다. 몬타누스와 두 여인, 프리스카와 막시미라는 자신들을 예언자라고 선언하였다. 몬타너스주의(Montanism)에 의하면 계시의 마지막 시대는 보혜사의 강림과 함께 열려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현시대는 영적 은사의 시대요, 특히 예언의 시대라고 보았다. 세계종말이 가까왔음을 강력히 주장하고 도덕적(道德的)인 생활을 요구하고 한번 결혼과, 금식과 도덕적(道德的) 훈련을 할 것과, 순교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박해를 피하는 것을 절대로 금하고 교회 안에서 특별히 예언하는 능력을 찬양했다. 이들이 그노시스파의 사상을 반대한 것과 세상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것을 성경적 입장에서 강조한 점, 예언하는 은사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한 것, 신자가 세상 악에 물들지 말아야 할 필요성등을 강조했지만, 신약의 계시보다 더 고도의 계시를 요구하고 광신적(狂信的)인 요소의 믿음은 큰 무리를 낳았다.
[참고]
※ 마르시온(Marcion)
초대교회가 겪어야 했던 각종 기독교 메시지의 해석들 가운데서 폰투스(Pontus)의 시노페(Sinope)에서 감독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시온(Marcion)의 해석만큼 위험스러운 것은 없었다. 부요한 선박 소유자로 139년경 로마로 이주하여 교회에 거액의 구제금을 희사했으나 주후 144년경에 교회의 배척을 받고 쫓겨났다. 그리고 나서 그는 마르시온파 교회를 세움으로써 정통 기독교에 가장 위험스런 존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각종 영지주의의 선생들은 학파를 건설하는 데 불과했으나, 마르시온은 기성 교회를 대적할 교회를 세웠으며, 그 교인 숫자가 한 때는 급격히 성장함으로써 정통파와의 대결에서 누가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될지 그 결과가 심히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물론 제3세기 이후 마르시온주의는 서서히 쇠퇴하였다가 로마의 서방제국 내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그전까지는 참으로 어려운 도전자였다.
마르시온은 전통적으로 영지주의자 가운데 하나로 여겨 왔었다. 그러나 마르시온은 독창적인 사상가로서 영지주의자들보다도 더 분명하게 기독교의 본질적 가르침을 포착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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