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르네상스란?
2. 이탈리아의 배경은?
3. 이탈리아에서의 사상과 문학의 르네상스
4.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예술
5. 북유럽의 르네상스
6. 르네상스 음악
7.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적 업적
2. 이탈리아의 배경은?
3. 이탈리아에서의 사상과 문학의 르네상스
4.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예술
5. 북유럽의 르네상스
6. 르네상스 음악
7.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적 업적
본문내용
한쪽으로만 국한해서 활동하지 않았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서로 앞다투어 음악의 주도권을 잡으려 경쟁했다. 14세기를 거치는 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예술”이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초기의 음악 운동이 성행했다. 15세기는 프랑스적 요소, 플랑드르적 요소, 그리고 이탈리아적 요소가 종합된 시기였다. 그러나 15세기 후반에 북부 플랑드르적 요소가 강해짐에 따라 다소 딱딱하게 되었다. 16세기가 시작되자 프랑스-플랑드르의 작곡자들이 유럽 전역의 주요 궁정과 성당에 나타났으며, 그들은 점차 지역적-국가적 유파를 형성했다. 그들은 대개 플랑드르적 요소에 독일, 에스파냐, 이탈리아의 음악 문화를 가미했다.
16세기의 잉글랜드에서도 음악은 발달했다. 잉글랜드의 음악은 버도(1543~1623)에 이르러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플랑드르 및 이탈리아 작곡자들과 필적하는 실력에 이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르네상스 시기에는 대위법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지만, 오늘날 널리 이용되는 근대적인 화성법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고, 따라서 향후 좀 더 많은 시험을 거쳐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르네상스 음악이 단지 음악 발달의 한 단계로만 그치지 않으며, 최고 수준의 음악가를 보유했고, 그 자체로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음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7.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적 업적
16세기와 17세기 초에는 과학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업적들이 이루어졌다. 근대 과학의 르네상스적 기초로 신플라톤주의의 유행을 들 수 있다. 과학에서 이 철학체계가 지니는 중요성은, 이 철학이 태양 중심설과 기하학적 도형의 신성같은 개념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이런 개념들은 과학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다른 경향으로는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 해석의 확산이다. 르네상스의 기계론은 1543년에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저작이 출간되면서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됐다. 궁극적으로 기계론은 근대 과학 발달에 크나큰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계에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인과 관계의 발견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가 근대 과학의 흥기에 기여한 또 한 가지는 이론과 실제의 영역을 분리했던 중세의 관행을 깼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대단히 존경을 받았던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두 영역 사이에 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제가 통합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로는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쳤던 대학의 위신이 실추되고, 유한 계층에서 연금술과 점성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을 들 수 있다.
천문학에서의 탁월한 업적은 주로 폴란드인 코페르니쿠스, 독일인 케플러, 그리고 이탈리아인 갈릴레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태양 중심설을 주장하고 또 증명하기까지 했다.
르네상스의 의학과 해부학에서의 업적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다. 의사인 파라셀수스(1493~1541)는 우주가 물리적인 힘보다는 영적인 힘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었다. 고대 의학의 권위를 따르는 대신, 그는 널리 여행을 하면서 다른 환경에서 나타나는 질병들의 여러 증상을 연구했고, 여러 약물들을 시험했다.
베살리우스(1514~1564)의 『인체구조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저작에 필적할 만큼 중요성을 지닌 16세기의 과학 논고로서, 1543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고대의 해부학 이론의 상당 부분이 오류라는 올바른 전제 위에서 연구에 착수했다.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책에서 인체 각 부분이 어떤 모습인지를 해설하고, 여기에 덧붙여 인체의 각 부분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을 했으므로, 근대 생리학의 아버지이자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로 간주된다.
유럽 여러 나라들은 서로 앞다투어 음악의 주도권을 잡으려 경쟁했다. 14세기를 거치는 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새로운 예술”이라고 불리는 르네상스 초기의 음악 운동이 성행했다. 15세기는 프랑스적 요소, 플랑드르적 요소, 그리고 이탈리아적 요소가 종합된 시기였다. 그러나 15세기 후반에 북부 플랑드르적 요소가 강해짐에 따라 다소 딱딱하게 되었다. 16세기가 시작되자 프랑스-플랑드르의 작곡자들이 유럽 전역의 주요 궁정과 성당에 나타났으며, 그들은 점차 지역적-국가적 유파를 형성했다. 그들은 대개 플랑드르적 요소에 독일, 에스파냐, 이탈리아의 음악 문화를 가미했다.
16세기의 잉글랜드에서도 음악은 발달했다. 잉글랜드의 음악은 버도(1543~1623)에 이르러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플랑드르 및 이탈리아 작곡자들과 필적하는 실력에 이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르네상스 시기에는 대위법이 이미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했지만, 오늘날 널리 이용되는 근대적인 화성법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고, 따라서 향후 좀 더 많은 시험을 거쳐야만 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르네상스 음악이 단지 음악 발달의 한 단계로만 그치지 않으며, 최고 수준의 음악가를 보유했고, 그 자체로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음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7. 르네상스 시대의 과학적 업적
16세기와 17세기 초에는 과학사에서 지극히 중요한 업적들이 이루어졌다. 근대 과학의 르네상스적 기초로 신플라톤주의의 유행을 들 수 있다. 과학에서 이 철학체계가 지니는 중요성은, 이 철학이 태양 중심설과 기하학적 도형의 신성같은 개념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이런 개념들은 과학 발전에 획기적으로 기여했다.
다른 경향으로는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 해석의 확산이다. 르네상스의 기계론은 1543년에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아르키메데스의 저작이 출간되면서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됐다. 궁극적으로 기계론은 근대 과학 발달에 크나큰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연계에서 관찰 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인과 관계의 발견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가 근대 과학의 흥기에 기여한 또 한 가지는 이론과 실제의 영역을 분리했던 중세의 관행을 깼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대단히 존경을 받았던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두 영역 사이에 다리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론과 실제가 통합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로는 지나치게 이론에 치우쳤던 대학의 위신이 실추되고, 유한 계층에서 연금술과 점성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을 들 수 있다.
천문학에서의 탁월한 업적은 주로 폴란드인 코페르니쿠스, 독일인 케플러, 그리고 이탈리아인 갈릴레이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태양 중심설을 주장하고 또 증명하기까지 했다.
르네상스의 의학과 해부학에서의 업적 또한 대단히 인상적이다. 의사인 파라셀수스(1493~1541)는 우주가 물리적인 힘보다는 영적인 힘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었다. 고대 의학의 권위를 따르는 대신, 그는 널리 여행을 하면서 다른 환경에서 나타나는 질병들의 여러 증상을 연구했고, 여러 약물들을 시험했다.
베살리우스(1514~1564)의 『인체구조론』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저작에 필적할 만큼 중요성을 지닌 16세기의 과학 논고로서, 1543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고대의 해부학 이론의 상당 부분이 오류라는 올바른 전제 위에서 연구에 착수했다. 베살리우스는 자신의 책에서 인체 각 부분이 어떤 모습인지를 해설하고, 여기에 덧붙여 인체의 각 부분이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설명을 했으므로, 근대 생리학의 아버지이자 근대 해부학의 아버지로 간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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