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조사] 문학과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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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분석/조사] 문학과 정신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사랑의 정신분석학

2. 사랑의 노래

3.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와 「떠도는 능기」

4. 문학과 정신분석학의 관계

5. 어머니 담론의 정신분석

6. 왜곡된 기억의 정신분석

7. 실재계를 적중시키는 해석과 새로운 역사 쓰기

본문내용

이해할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장면을 재구성하게 된다. 실재계란 아직 상징화되지 않은 것, 말로 옮겨지지 않은 그 어떤 것이다. 이런 상징화는 그 인물들에 투자된 막대한 양의 감정들을 배출시켜 준다. 실재계를 적중시키는 해석은 기존의 진실을 드러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진실을 창조해내는 일이다. 왜냐하면 진실은 오로지 언어 속에서만 존재하며, 말할 수 없는 것은 아직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진실은 해석에 의해 발견되거나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는 것이다. 화자는 수차례 성조 형님을 만나 진실의 주위를 맴돌기만 하면서 그 진실의 청취만을 기다려왔던 셈이다. 십대 중반에 마을을 떠난 화자는 육십 고개를 훌쩍 넘겨 아들 덕분에 어릴 적 옛집을 고쳐 세우는 일로 고향을 다시 찾게 된다. 그새 집 주인이 몇 번씩 바뀌어 옛날 기억과는 다른 데가 많을 거라는 전언과 함께 성조 형님이 보해준 설계도면에서 옛날 지하실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면서, 그의 “한 생애가 통째로 거기 묻혀 흔적이 지워지고 만 듯한” 상실감을 느낀다. 그가 정작 그 밀실을 되살려내고 간직해가고 싶은 것은 그 지하 밀실이 사람의 생사 갈림길을 숨겨 안기도 했던 ‘보다 위태롭고 은밀한 내력’ 때문이다.화자는 성조 형님과의 대화에서 마지막 정곡을 찌르고 드는 병삼씨 이야기로 돌입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둘도 없는 이웃사촌인 병삼씨의 배신행위에 대한 어머니의 치명적인 두려움과 분노가 그 지하실에 서려있기 때문이다. 성조 형님은 그가 말하지 않았어도 간밤부터 무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병삼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언젠가 성조씨의 조부님께 이 집의 지하실 이야기를 흘렸던 생각이 난데다 일행 중 어느 누가 그날 어둠 녘에 조부께서 이 집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병삼씨가 앞장서 쫓아와 조부님을 지켜드린 것이라 했다. 화자로서는 ‘뜻밖의 사실’이다. 그러나 성조 형님의 말을 듣고도 그날 밤 병삼씨의 일은 쉽게 생각이 바뀔 것 같지 않다.성조 형님이 화자의 생각을 바꾸게 하려는 목적은 병삼씨의 결백이나 지하실의 복원 여부가 아니다. 그때의 일을 그대로 그냥 저 지하실 어둠 속에다 묻어두고 넘어가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마지막 본심은 무엇일까? 그 지하실을 되살려놓으면 지금까지 잊고 지내온 험한 내력들을 죄다 되살려놓는 셈이고 새삼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지하실’ 이야기는 화자의 미련에 쐐기를 박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맺고 있다. 윤호의 아버지가 그날 밤 그 지하실에 은신해 있다가 나왔다는 사실을 이 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알아챘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런 마음속 의심을 입 밖에 내어 말한 일이 없었다. 화자는 성조 형님의 어조에서, 눈길을 바꿔보면 세상일이란 사람 따라 세월 따라 다 그렇게 달라 보이는 법이라는 말을 예감하게 된다.「지하실」은 지하실이란 구멍을 싸고도는 시니피앙들을 즐겨볼 만한 작품이다. 그 지하실이 원죄처럼 어두운 ‘기억’으로 남아있었기에 오랜 세월 동안 그 집 자체를 마음에서 외면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 지하실은 오랜 세월 ‘망각’의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어느 날 제법 그럴 듯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성지’로까지 여겨진다. 그러나 그 지하실은 “이젠 내 앞에 껌껌한 입을 벌리고 다가드는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특히 애틋한 윤호의 기억, 그 짧은 삶의 흔적까지도 한동안은 다시 그 망각의 어둠 속으로 묻히면서 지하실은 이제 다시 제 어둠 속으로 사라질 운명을 맞고 있다.정신분석에서는 망각을 ‘알 수 없는 것’ 즉 무지(無知)의 여러 형태들 가운데 하나로 여긴다. 망각이 구멍은 구멍이지만 ‘기억의 구멍’은 아니다. 어떤 장면이나 그 의미나 이미지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며 되돌아오지 않는 회상도 아니다. 프로이트를 따르면, 망각은 시니피앙의 결핍이다. 시니피앙으로 둘러싸이고 시니피앙으로 표시된 구멍이다. 사라진 시니피앙을 다른 시니피앙들이 치환하기 위해 그 구멍으로 몰려오기 때문에 시니피앙의 결핍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시니피앙은 사라지고 지워 없어지며 치환될 수 있다. 바로 여기서 흔적과 삭제란 개념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흔적이 지워지면서 의미를 갖게 이유는 그 지워진 장소에 십자표시를 해두고 ‘내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달아나는 시니피앙’의 자리에 다른 시니피앙이 찾아오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달아나는 시니피앙은 치환하러 찾아오는 새로운 시니피앙과 압축된다. 바로 이런 치환과 압축이란 은유의 메커니즘 덕분에 새로운 시니피앙이 만들어진다.화자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들었던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막연한’ 기억들이 말로 표현되면서, 다시 말해, 상징화를 통하여 그 사람들과 사건들에 투자된 막대한 감정들이 배출된다. 특히 병삼씨에 달라붙어 있던 배신감과 분노와 같은 고착현상이 상징화로 풀어져 나간다. 이처럼 실재계를 적중시키는 성조씨의 해석을 들으면서, 지난 일이 소중하다면 내일 또한 지난날이 될 오늘 일이 우리한테 더 소중하다는 ‘무지렁이’ 분석가의 엄연한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된다.그러나 직관적인 설명만으로는 그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해석이 진실을 만들어내려면 그를 위한 토대가 미리 마련되어야 한다. 윤호와 그의 아버지의 일화 같은 것들이 보여주는 주변자료가 먼저 해명되어야 하고 분석가와의 관계가 공고해져야 한다. 분석가는피분석자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피분석자는 분석가의 선언적인 해석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이렇게 해서 어두운 지하실을 나와 죽음의 자리로 꿋꿋이 걸어 나간 자존심의 인물이 성조씨의 조부가 아니라 윤호의 아버지라는 새로운 진실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지하실의 역사도 새롭게 써질 수 있다.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와 그 당장엔 이해가 전혀 불가능하고 오래도록 마음의 숙제로 남아온 그의 ‘실재계’가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 그와 함께 화자의 마음속에서는 저승까지 담고 가셨을 어머니의 원망과 그런 어머니의 오해를 풀어드리지 못한 채 세상을 뜨고 말았던 병삼씨의 새로운 역사가 구성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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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9.11.09
  • 저작시기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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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6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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