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5장 본문 구조와 해석
Ⅲ. 5장 본문 주석
Ⅳ. 5장의 신학적 문제 : 무력한 시온(5:1-4)
Ⅴ. 나가는 말
참고문헌
Ⅰ. 들어가는 말
Ⅱ. 5장 본문 구조와 해석
Ⅲ. 5장 본문 주석
Ⅳ. 5장의 신학적 문제 : 무력한 시온(5:1-4)
Ⅴ. 나가는 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승의 무력감, 그것이 문제다. 다니엘 5:1-4의 문제제기는 시온 함락의 충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온전승이 파괴되는 위기에 마주선 디아스포라들에게 묵시문학 다니엘서가 주는 해결책은 자못 상징적이요, 회화적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 그것이다. 화폐가치를 지닌 이 상징은 세상이 지금 이교도 통치 밑에 있기에 암울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세상이 하나님의 수중/계산 안에 있다는 소망을 잃지 않고 있는 묵시문학 다니엘서 저자의 자존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가지고 노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은 디아스포라가 체험. 목도한 신앙적 패배주의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벨사살 왕의 광란을 막는 하나님의 손가락 글씨는 디아스포라의 신앙적 패배주의에 대한 다니엘서 저자의 묵시문학적 처방일 수 있다.(이런 점에서 다니엘 5:1-4의 문제에 대한 묵시문학적 풀이가 다니엘 5:5-31까지라고 말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숨어계신 것이 아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철수해 계실 뿐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시간표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저울(메네, 데겔)에 달려 있다. 또 하나님이 무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역사의 현장에 개입하신다. 지상의 통치자의 통치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통치철학이 중요하다. 역사는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리고 그것을 쓰는 손가락! 이 상징은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묵시문학적 암호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자기가 벌인 자치가 자기의 장례식으로 급락하는 비극을 맛보게 되리라! 문제는 묵시문학적 상징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급작스러운 역사개입이 전통적인 하나님의 현현이나 천둥, 번개, 지진 등을 동반한 나타나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니엘서 저자가 본문에서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반증하는 도구란 단순한 손가락일 뿐이다.
또한 벨사살의 죽음은 그 자체가 메시지다. 벨사살에 필적하는 오만방자한 신성모독을 자행한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치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한 설교-그러한 방자함은 종국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능에 의해서 꺽여질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담은 설교-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오만 방자함이 자동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초래하며 그 자체의 죄의 무게에 의해 넘어진다는 사상은 없다는 것이다. 벨사살을 멸망시키는 것은 어떤 자동적인 인과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W.시블리 타우너. 신정균 역,『INTERPRETATION/현대성서주석-다니엘서』,(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p.119,
Ⅴ. 나가는 말
결론적으로 정리할 때 본문의 문학적 유형은 이야기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왕대일, 『묵시문학과 종말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p. 302.
세분해서 말하면 다니엘과 바빌로니아의 술사들 중 누구의 지혜가 탁월하냐를 겨루는 경쟁 이야기다. 다니엘 5:25의 글씨가 본문을 이끌고 가는 중요 요소인 점을 부각시킬 때, 본문의 유형은 일종의 전설일 수 있다. 또 다니엘 5장의 이야기 속에는 해독(페세르)과 고발문도 들어가 있다.(17-23절)다니엘 5장의 현재 본문은 기원전 2세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못된 짓거리’에 대한 대응(알레고리적 이야기)일 수 있다. 다니엘 5장의 주인공 벨사살이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나 모두 성전의 기물들을 더럽힌 자들이다. 다니엘 5장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편집된 시기는 기원전 2세기 중반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견이 있다. 다니엘 5장의 고발은 성전기물이 우상을 숭배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데 있다. 본문은 우상 숭배에 대한 유대인의 비판이라는 것이다. 만약 본문을 우상 숭배의 허상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본문 저자의 상황은 이스라엘 역사의 포로후기 시대의 어느 때일 수 있다. 우상 숭배에 대한 비판은 어느 한 유형, 어느 한 사회적 배경으로만 국한될 수 없는, 유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전승인 까닭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니엘 5장에 헬라어라고 여겨지는 글자들(예를 들면 7,16,29절의 hamonika‘, 29절의 lanzu)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다니엘 5장의 저술 환경을 헬레니즘 시대로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크게 입증되지 못하고 있다. 왕대일, 『묵시문학과 종말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p. 302.
다니엘 5장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니엘5장이 왕의 무례를 고발하는 다니엘의 예언자적 선포를 보도하려는 글인가? 아니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하여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한 분 하나님을 섬길 것을 권고하고 있는 글인가?전자라고 생각할 경우 본문은 예언자의 말씀 선포를 보도하는 글일 수 있다. 후자일 경우 본문은 일종의 꾸며진 이야기일수 있다. 이방인 왕들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던 유대인들에게, 이방 왕이 비록 하늘의 하나님을 신앙하는 삶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교훈적 설화가 바로 본문의 의도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정확한 때에, 하나님은 스스로 일하실 것이다. Ibid., p. 302.
■ 참 고 문 헌 ■
왕대일, 『묵시문학과 종말론』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04.
W.시블리 타우너,·신정균 역,『INTERPRETATION/현대성서주석-다니엘서』
서울 :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4
에드워드 J,영, 정일오 역,『다니엘서 주석』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존.F.왈부르드, 권명달 역『다니엘서 해석』서울 : 보이스사. 1991
강병도, 『호크마 종합 주석 : 다니엘서』 서울 : 기독 지혜사, 1989
편집부, 『그랜드 종합주석 3권』 제자원: 성서아카데미, 1996.
김순식, 『헤세드 종합자료 시리즈 : 다니엘서』서울 : (주)임마누엘, 1991
포도원, 『FMA 크로스 종합주석』 도서출판 시내, 1993.
J. A. Wharton, 『기독교대백과사전』 서울: 기독교문사, 1997.
시온전승이 파괴되는 위기에 마주선 디아스포라들에게 묵시문학 다니엘서가 주는 해결책은 자못 상징적이요, 회화적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 그것이다. 화폐가치를 지닌 이 상징은 세상이 지금 이교도 통치 밑에 있기에 암울한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세상이 하나님의 수중/계산 안에 있다는 소망을 잃지 않고 있는 묵시문학 다니엘서 저자의 자존심을 드러낸다.
하나님을 ‘가지고 노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것은 디아스포라가 체험. 목도한 신앙적 패배주의를 반영한다. 그렇다면 벨사살 왕의 광란을 막는 하나님의 손가락 글씨는 디아스포라의 신앙적 패배주의에 대한 다니엘서 저자의 묵시문학적 처방일 수 있다.(이런 점에서 다니엘 5:1-4의 문제에 대한 묵시문학적 풀이가 다니엘 5:5-31까지라고 말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숨어계신 것이 아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철수해 계실 뿐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시간표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저울(메네, 데겔)에 달려 있다. 또 하나님이 무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역사의 현장에 개입하신다. 지상의 통치자의 통치철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통치철학이 중요하다. 역사는 여전히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그리고 그것을 쓰는 손가락! 이 상징은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묵시문학적 암호다. 이것을 모르는 자는 자기가 벌인 자치가 자기의 장례식으로 급락하는 비극을 맛보게 되리라! 문제는 묵시문학적 상징이 소개하는 하나님의 급작스러운 역사개입이 전통적인 하나님의 현현이나 천둥, 번개, 지진 등을 동반한 나타나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니엘서 저자가 본문에서 하나님의 역사 개입을 반증하는 도구란 단순한 손가락일 뿐이다.
또한 벨사살의 죽음은 그 자체가 메시지다. 벨사살에 필적하는 오만방자한 신성모독을 자행한 왕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치하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한 설교-그러한 방자함은 종국적으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권능에 의해서 꺽여질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담은 설교-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오만 방자함이 자동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보응을 초래하며 그 자체의 죄의 무게에 의해 넘어진다는 사상은 없다는 것이다. 벨사살을 멸망시키는 것은 어떤 자동적인 인과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W.시블리 타우너. 신정균 역,『INTERPRETATION/현대성서주석-다니엘서』,(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p.119,
Ⅴ. 나가는 말
결론적으로 정리할 때 본문의 문학적 유형은 이야기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왕대일, 『묵시문학과 종말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p. 302.
세분해서 말하면 다니엘과 바빌로니아의 술사들 중 누구의 지혜가 탁월하냐를 겨루는 경쟁 이야기다. 다니엘 5:25의 글씨가 본문을 이끌고 가는 중요 요소인 점을 부각시킬 때, 본문의 유형은 일종의 전설일 수 있다. 또 다니엘 5장의 이야기 속에는 해독(페세르)과 고발문도 들어가 있다.(17-23절)다니엘 5장의 현재 본문은 기원전 2세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의 ‘못된 짓거리’에 대한 대응(알레고리적 이야기)일 수 있다. 다니엘 5장의 주인공 벨사살이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나 모두 성전의 기물들을 더럽힌 자들이다. 다니엘 5장이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편집된 시기는 기원전 2세기 중반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견이 있다. 다니엘 5장의 고발은 성전기물이 우상을 숭배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는 데 있다. 본문은 우상 숭배에 대한 유대인의 비판이라는 것이다. 만약 본문을 우상 숭배의 허상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본문 저자의 상황은 이스라엘 역사의 포로후기 시대의 어느 때일 수 있다. 우상 숭배에 대한 비판은 어느 한 유형, 어느 한 사회적 배경으로만 국한될 수 없는, 유대 전통에 깊이 뿌리내린 전승인 까닭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니엘 5장에 헬라어라고 여겨지는 글자들(예를 들면 7,16,29절의 hamonika‘, 29절의 lanzu)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다니엘 5장의 저술 환경을 헬레니즘 시대로 단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리 크게 입증되지 못하고 있다. 왕대일, 『묵시문학과 종말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p. 302.
다니엘 5장의 이야기가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니엘5장이 왕의 무례를 고발하는 다니엘의 예언자적 선포를 보도하려는 글인가? 아니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향하여 우상 숭배를 거부하고 한 분 하나님을 섬길 것을 권고하고 있는 글인가?전자라고 생각할 경우 본문은 예언자의 말씀 선포를 보도하는 글일 수 있다. 후자일 경우 본문은 일종의 꾸며진 이야기일수 있다. 이방인 왕들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던 유대인들에게, 이방 왕이 비록 하늘의 하나님을 신앙하는 삶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신념을 포기하지 말 것을 가르치는 교훈적 설화가 바로 본문의 의도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가장 정확한 때에, 하나님은 스스로 일하실 것이다. Ibid., p. 302.
■ 참 고 문 헌 ■
왕대일, 『묵시문학과 종말론』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04.
W.시블리 타우너,·신정균 역,『INTERPRETATION/현대성서주석-다니엘서』
서울 :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4
에드워드 J,영, 정일오 역,『다니엘서 주석』서울 :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존.F.왈부르드, 권명달 역『다니엘서 해석』서울 : 보이스사. 1991
강병도, 『호크마 종합 주석 : 다니엘서』 서울 : 기독 지혜사, 1989
편집부, 『그랜드 종합주석 3권』 제자원: 성서아카데미, 1996.
김순식, 『헤세드 종합자료 시리즈 : 다니엘서』서울 : (주)임마누엘, 1991
포도원, 『FMA 크로스 종합주석』 도서출판 시내, 1993.
J. A. Wharton, 『기독교대백과사전』 서울: 기독교문사,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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