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존 레논 그는 누구인가
2. 존 레논 그의 음악
3. 존 레논 그의 사랑
4. 존 레논 그의 철학
2. 존 레논 그의 음악
3. 존 레논 그의 사랑
4. 존 레논 그의 철학
본문내용
인 마지막 앨범 ‘Abbey Road(1969)’와 이듬해 ‘Let it be(1970)’ 앨범을 마지막으로 비틀즈는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해체의 길을 선택한다. 해체의 원인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멤버들의 불화가 가장 주목받고 있다. 다시 그 불화의 원인을 꼽아보자면 ‘오노 요코’의 등장,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의 입지 갈등 등이 있다. 하지만 하나를 꼬집어들며 비틀즈의 해체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비틀즈의 해체이후 네 멤버는 각자의 음악가로 각자의 길을 걸어 나갔다. 존 레논은 아내 오노 요코와의 활동으로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결성이라든지 비틀즈의 네 멤버에 비해 유난히 주목을 받았고 음악적 성공도 이어나갔다. 비틀즈의 틀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음악에 완전한 자신의 생각과 메시지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비틀즈라는 그늘에 가리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본 많은 곡들은 존 레논이라는 인물이 누구인가, 어떤 사상을 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었고, 지금도 많은 팬들은 비틀즈와 더불어 그의 곡에 주목하고 있다.
3. 존 레논, 그의 사랑
\'1940년 10월 9일 출생. 1966년 11월 9일 오노 요코를 만남’
이것은 존 레논 스스로가 표현한 단 한 줄의 자신의 프로필이다. 죽기 전까지 그의 절반 혹은 전부는 ‘오노 요코’였다. 아직도 사람들은 이 둘이 운명적 사랑 혹은 낭만적 사랑을 대표한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사랑을 넘어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버린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시작은 마냥 아름다운 것은 못된다. 실제로 존 레논은 그녀를 만날 땐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다. 게다가 부인 신시아 레논과의 사이에 아들도 하나 두었다. 또 요코 역시 결혼은 두 번이나 한 고수였다. 허나 비틀즈를 발굴한 매니저이자 비틀즈의 정신적 구심점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죽음과 비틀즈의 활동으로 인한 심한 정신적 피폐로 인해 사랑 없이 이루어진 결혼 생활은 흔들리고 있었다. 1966년 11월 9일 그날은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의 런던 인디카 갤러리에서의 전시회가 있는 날이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큰 존은 그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본인인 그녀는 일본어 사과(링고)와 이름이 같은 비틀즈의 멤버 ‘링고 스타’의 이름만 겨우 알 뿐 존 레논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들의 첫 만남에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소개한다.
전시품 가운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의 열린 틈에 있는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작품이 있었다. 궁금증을 느낀 레논은 사다리를 올라갔고, 작은 글씨로 쓰인 \'yes\'를 발견한다. 후에 레논은 이 \'yes\'가 의미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큰 충격과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관객이 직접 못을 박는 \'못 박기 회화\'를 보고 레논은 \"내가 해보고 싶다\"고 관심을 보였고. 요코는 \"아직 전시회 오픈 전이니, 내일와서 해보라\"고 거절하다가, 그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럼 5실링을 내고 못을 박아보라\"고 권한다. 그러자 레논은 \"그럼, 내가
비틀즈의 해체이후 네 멤버는 각자의 음악가로 각자의 길을 걸어 나갔다. 존 레논은 아내 오노 요코와의 활동으로 ‘플라스틱 오노 밴드’의 결성이라든지 비틀즈의 네 멤버에 비해 유난히 주목을 받았고 음악적 성공도 이어나갔다. 비틀즈의 틀에서 벗어나게 된 그는 비로소 자신의 음악에 완전한 자신의 생각과 메시지를 그대로 담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비틀즈라는 그늘에 가리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본 많은 곡들은 존 레논이라는 인물이 누구인가, 어떤 사상을 담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줄 수 있었고, 지금도 많은 팬들은 비틀즈와 더불어 그의 곡에 주목하고 있다.
3. 존 레논, 그의 사랑
\'1940년 10월 9일 출생. 1966년 11월 9일 오노 요코를 만남’
이것은 존 레논 스스로가 표현한 단 한 줄의 자신의 프로필이다. 죽기 전까지 그의 절반 혹은 전부는 ‘오노 요코’였다. 아직도 사람들은 이 둘이 운명적 사랑 혹은 낭만적 사랑을 대표한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사랑을 넘어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버린 그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시작은 마냥 아름다운 것은 못된다. 실제로 존 레논은 그녀를 만날 땐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다. 게다가 부인 신시아 레논과의 사이에 아들도 하나 두었다. 또 요코 역시 결혼은 두 번이나 한 고수였다. 허나 비틀즈를 발굴한 매니저이자 비틀즈의 정신적 구심점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죽음과 비틀즈의 활동으로 인한 심한 정신적 피폐로 인해 사랑 없이 이루어진 결혼 생활은 흔들리고 있었다. 1966년 11월 9일 그날은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의 런던 인디카 갤러리에서의 전시회가 있는 날이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큰 존은 그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본인인 그녀는 일본어 사과(링고)와 이름이 같은 비틀즈의 멤버 ‘링고 스타’의 이름만 겨우 알 뿐 존 레논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들의 첫 만남에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소개한다.
전시품 가운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의 열린 틈에 있는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작품이 있었다. 궁금증을 느낀 레논은 사다리를 올라갔고, 작은 글씨로 쓰인 \'yes\'를 발견한다. 후에 레논은 이 \'yes\'가 의미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큰 충격과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관객이 직접 못을 박는 \'못 박기 회화\'를 보고 레논은 \"내가 해보고 싶다\"고 관심을 보였고. 요코는 \"아직 전시회 오픈 전이니, 내일와서 해보라\"고 거절하다가, 그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그럼 5실링을 내고 못을 박아보라\"고 권한다. 그러자 레논은 \"그럼,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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