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한국 대중가요의 특징
Ⅱ. 해방 이전의 대중가요
Ⅲ. 해방 이후의 대중가요
참고문헌
Ⅱ. 해방 이전의 대중가요
Ⅲ. 해방 이후의 대중가요
참고문헌
본문내용
기대고 있었다. 노래의 주 선율도 이지리스닝이나 트로트왕의 결별을 두드러지게 드러내지 않고 가사도 이지리스닝과 포크의 어중간한 사이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는 록의 담당층들이 처음부터 이를 직업으로 선택하였고 엘리트 의식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양식적 새로움에도 포크에 비해 과감하게 새롭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록은 출발부터 어느 정도 기성가요계와의 어느 정도의 타협으로부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신중현은 록의 1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 중에서 확실히 돋보이는 존재이다. 그의 작품은 양식적으로 뿐만 아니라 선율과 화성과 가사에서도 참신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포크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트로트가 지닌 약간 유치한 듯한 직설적 표현을 더욱 과장하여 오히려 참신함으로 이끌고 있다. 그의 음악은 참신할 수록 더욱 과감하게 대중취향적 특성을 받아들임으로써 넓은 수용층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후 록에대한 성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자 연주 양식에서만 록을 고수하며 노골적인 건전가요를 발표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의 록은 감각과 형식에서는 저항적이었으나 사회적 맥락과 내용에서는 기성가요와 타협적이었다. 이로부터 오랫동안 록은 고유한 내용적 지향을 두드러지게 지니지 못한 채 양적 발전은 하게 된다.
포크가 대중가요계 전체에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대중가요게 전체에서 양적인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하였다. 70년대 초반까지의 표면적 주류는 여전히 트로트와 이지리스닝이었고 약간의 신민요도 유지되고 있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와 이지리스닝의 여왕 페티김은 여진히 그 왕좌를 지키고 있었으며 60년대 말 등장한 남진과 나훈아가 화려한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가요의 상층부를 이지리스닝과 포크에 잠식당한 트로트는 점점 저학력 하층민의 노래가 되어갔다. 게다가 더 이상 새로운 할 말을 찾아내거나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트로트는 70년대 트로트는 확실히 퇴락하는 양식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의 트로트는 익숙한 사랑노래만을 반복하면서 점점 작품의 긴장을 상실해가거나 오히려 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70년대 초의 청년문화, 포크송의 세력은 74년경에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유신체제는 가장 먼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더니 급기야 ‘대마초 사건’으로 당시 최고 인기를 달리던 청년문화의 스타들을 구속하고 활동을 금지시켰다. 유신정권은 젊은이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를 뿌리 뽑고 사회를 다시 전쟁을 앞둔 병영과 같은 긴장으로 몰아넣으려 했다. 그러기에 대중적 영향이 큰 대중문화를 건드리는 것은 참으로 유효한 것이었다. 이 시기를 계기로 청년문화와 포크송의 기세는 완전히 꺾어지게 되고 70년대 후반은 이와 전혀 다른 경향이 펼쳐지게 된다.
75년을 계기로 이전과 같은 포크의 발전은 중단되었다. 그로서 포크는 몇 가지 변화를 보이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향은 이전의 포크가 지니고 있던 청년문화적인 반문화적 분위기를 청산하고 기성 가요계의 경향과 손잡은 것이다. 대마초 파동 속에서 살아남은 몇 명의 포크 가수들은 이전의 대중가요의 관행 속에서 이지리스닝 가수로 변신하거나 트로트 양식과의 결합을 실험하는 등 자신을 조정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초기 포크 중 비교적 사회적 비판이 날카로웠던 김민기의 노래는 금지조치로 대중가요권에서는 사라졌지만 이 노래들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 7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에서는 대중가요의 상업적 유통구조의 밖에서 대중가요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바탕으로 구전이라는 새로운 유통방식으로 성립된 독자적 노래문화가 탄생한다. 이를 후에 민중가요라고 칭하게 되는데 김민기의 노래는 대중가요를 벗어나 민중가요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된다.
70년대 후반은 이렇다 할 만한 새로운 스타가 없었다. 60년대의 스타 이미자는 물론이고 70년대 전반기를 수놓았던 남진, 나훈아, 하춘화도 시들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등장한 새로운 현상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의>와 같이 록그룹 출신들이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이는 포크가 시든 대중가요계에 트로트가 부활할 것이라는 신호탄이었던 동시에 록의 1세대가 쌓아 놓은 가창과 연주의 노하우가 트로트로 유입되리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들의 작품은 일렉트릭기타와 드럼이 주도하는 록 스타일의 연주에 트로트적 선율과 쿵짝거리는 리듬을 결합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80년대 중반에 이르기 까지 트로트의 주도적인 편곡, 연주 관행으로 자리잡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방송국과 대중가요계의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낸 것이 대학가요제이다. 이는 젊은 감수성에 맞는 대중가요를 상업적 이벤트를 통해 생산해내고자 하는 상업적 의도와 대마초 파동과 정치 억압 등으로 젊은 층의 마음을 대신 충족시켜줄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배려가 맞아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포크계열 작품은 초기 포크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 태반이었다. 대학가요제가 가지고 있는 대중가요사적 의미는 이미 쇠퇴에 길에 들어선 포크의 부흥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개화하지 못한 록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 확인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신중현이 이끈 예측 불허의 독창성과 세려됨에는 비교할 바 못되며 록 1세대의 밴드들의 능란함에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연주를 뺀 노래 자체로만 보아도 그 이전의 작품으로부터 그다지 나아간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1세대 록그룹들이 기존 대중가요의 경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었음에 비해, 이들은 좀더 강력한 사운드와 과감한 샤우팅을 구사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 있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기세가 작품의 싱싱함을 유지해주고 있었다. 이들 덕분에 이제 청소년 문화의 주류 경향은 썽에서 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는 이들의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들 2세대는 1세대와는 달리 대학의 캠퍼스 밴드들이었고 따라서 기술 수준은 떨어질지언정 아마추어적 참신함과 기세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초기 포크에 비해 반문화적 기세가 아무래도 약했고 포크는 대학 내에서 민중가요라는 독
그러나 신중현은 록의 1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 중에서 확실히 돋보이는 존재이다. 그의 작품은 양식적으로 뿐만 아니라 선율과 화성과 가사에서도 참신했다. 그러나 그 방식은 포크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트로트가 지닌 약간 유치한 듯한 직설적 표현을 더욱 과장하여 오히려 참신함으로 이끌고 있다. 그의 음악은 참신할 수록 더욱 과감하게 대중취향적 특성을 받아들임으로써 넓은 수용층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후 록에대한 성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자 연주 양식에서만 록을 고수하며 노골적인 건전가요를 발표하게 된다. 이처럼 한국의 록은 감각과 형식에서는 저항적이었으나 사회적 맥락과 내용에서는 기성가요와 타협적이었다. 이로부터 오랫동안 록은 고유한 내용적 지향을 두드러지게 지니지 못한 채 양적 발전은 하게 된다.
포크가 대중가요계 전체에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대중가요게 전체에서 양적인 주류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하였다. 70년대 초반까지의 표면적 주류는 여전히 트로트와 이지리스닝이었고 약간의 신민요도 유지되고 있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와 이지리스닝의 여왕 페티김은 여진히 그 왕좌를 지키고 있었으며 60년대 말 등장한 남진과 나훈아가 화려한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중가요의 상층부를 이지리스닝과 포크에 잠식당한 트로트는 점점 저학력 하층민의 노래가 되어갔다. 게다가 더 이상 새로운 할 말을 찾아내거나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트로트는 70년대 트로트는 확실히 퇴락하는 양식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대의 트로트는 익숙한 사랑노래만을 반복하면서 점점 작품의 긴장을 상실해가거나 오히려 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70년대 초의 청년문화, 포크송의 세력은 74년경에 최고조에 달하게 된다. 유신체제는 가장 먼저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더니 급기야 ‘대마초 사건’으로 당시 최고 인기를 달리던 청년문화의 스타들을 구속하고 활동을 금지시켰다. 유신정권은 젊은이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를 뿌리 뽑고 사회를 다시 전쟁을 앞둔 병영과 같은 긴장으로 몰아넣으려 했다. 그러기에 대중적 영향이 큰 대중문화를 건드리는 것은 참으로 유효한 것이었다. 이 시기를 계기로 청년문화와 포크송의 기세는 완전히 꺾어지게 되고 70년대 후반은 이와 전혀 다른 경향이 펼쳐지게 된다.
75년을 계기로 이전과 같은 포크의 발전은 중단되었다. 그로서 포크는 몇 가지 변화를 보이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향은 이전의 포크가 지니고 있던 청년문화적인 반문화적 분위기를 청산하고 기성 가요계의 경향과 손잡은 것이다. 대마초 파동 속에서 살아남은 몇 명의 포크 가수들은 이전의 대중가요의 관행 속에서 이지리스닝 가수로 변신하거나 트로트 양식과의 결합을 실험하는 등 자신을 조정함으로써 살아남았다.
초기 포크 중 비교적 사회적 비판이 날카로웠던 김민기의 노래는 금지조치로 대중가요권에서는 사라졌지만 이 노래들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지니게 되었다. 70년대 후반부터 대학가에서는 대중가요의 상업적 유통구조의 밖에서 대중가요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바탕으로 구전이라는 새로운 유통방식으로 성립된 독자적 노래문화가 탄생한다. 이를 후에 민중가요라고 칭하게 되는데 김민기의 노래는 대중가요를 벗어나 민중가요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된다.
70년대 후반은 이렇다 할 만한 새로운 스타가 없었다. 60년대의 스타 이미자는 물론이고 70년대 전반기를 수놓았던 남진, 나훈아, 하춘화도 시들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등장한 새로운 현상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의>와 같이 록그룹 출신들이 트로트 가수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이는 포크가 시든 대중가요계에 트로트가 부활할 것이라는 신호탄이었던 동시에 록의 1세대가 쌓아 놓은 가창과 연주의 노하우가 트로트로 유입되리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들의 작품은 일렉트릭기타와 드럼이 주도하는 록 스타일의 연주에 트로트적 선율과 쿵짝거리는 리듬을 결합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는 80년대 중반에 이르기 까지 트로트의 주도적인 편곡, 연주 관행으로 자리잡는다.
이런 분위기에서 방송국과 대중가요계의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낸 것이 대학가요제이다. 이는 젊은 감수성에 맞는 대중가요를 상업적 이벤트를 통해 생산해내고자 하는 상업적 의도와 대마초 파동과 정치 억압 등으로 젊은 층의 마음을 대신 충족시켜줄 무엇인가를 주어야 한다는 정치적 배려가 맞아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포크계열 작품은 초기 포크에 비해 크게 떨어진 것이 태반이었다. 대학가요제가 가지고 있는 대중가요사적 의미는 이미 쇠퇴에 길에 들어선 포크의 부흥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개화하지 못한 록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 확인이었다. 이들의 작품은 신중현이 이끈 예측 불허의 독창성과 세려됨에는 비교할 바 못되며 록 1세대의 밴드들의 능란함에도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연주를 뺀 노래 자체로만 보아도 그 이전의 작품으로부터 그다지 나아간 것이 많지 않다. 그러나 1세대 록그룹들이 기존 대중가요의 경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을 보여주고 있었음에 비해, 이들은 좀더 강력한 사운드와 과감한 샤우팅을 구사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 있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기세가 작품의 싱싱함을 유지해주고 있었다. 이들 덕분에 이제 청소년 문화의 주류 경향은 썽에서 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는 이들의 대학생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들 2세대는 1세대와는 달리 대학의 캠퍼스 밴드들이었고 따라서 기술 수준은 떨어질지언정 아마추어적 참신함과 기세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초기 포크에 비해 반문화적 기세가 아무래도 약했고 포크는 대학 내에서 민중가요라는 독
추천자료
샹송을 통해서 본 한국의 대중음악에 대한 레포토
한국 가요의 발전과 흐름
대중문화와 스타, 한국의 스타시스템-스타, 대중문화의 중핵-
한국의 대중문화
한국의 기독교 문화와 대중문화
[대중문화]한국의 비디오영상문화 - 발전, 예술, 태동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의 대중문화
한국과 일본 대중문화의 상관성 및 문화경쟁력
한국의 대중매체,특히 TV,영화,비디오를 중심으로.hwp
한국 대중음악 속 아이돌 좋아하세요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한국의 대중매체사』를 읽고 _ 강준만 저 [요약 및 독후감,감상문]
대중문화에 대한 한국교회의 전략
국제브랜드관리 C형) 한국의 대중음악(K-Pop)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차별화하기 위해서 어떤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