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예술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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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헌법]예술의 자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목 차 >
Ⅰ. 서 론

Ⅱ. 본 론
제 1 장 법과 예술
1. 예술의 의의
2. 예술의 자유의 성격
3. 학문, 예술의 자유의 특수성
4. 학문, 예술적 표현의 자유와 헌법질서
5. 예술의 자유의 주체
6. 법학과 예술과의 관련성
7. 저작권의 대상으로서 예술
제 2 장 내 용
1. 예술의 자유의 내용
2. 다른 자유와의 구분
3. 문화국가의 원리와 예술의 자유
4. 예술의 자유의 국제적 보장
5. 예술의 자유의 보호범위
6. 우리헌법상의 자유권적 기본권의 의의와 법적 성격
7. 예술의 법적 성격
8. 예술의 자유의 헌법적 보장의 내용
9. 표현의 자유와의 관계
제 3 장 예술의 자유의 한계와 제한
1. 예술의 자유의 한계
2. 예술표현의 자유의 한계에 관한 쟁점사항
3. 예술의 자유의 제한
4. 예술의 자유의 헌법적 판단에 대한 비판과 대안
제 4 장 예술의 자유와 관련된 현황 및 사례
1. 소 설
2. 영 화
3. 만 화
4. 음 반
5. 외국 사례
6. 기 타
제 5 장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
1. 미국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제한법리
2. 사전제한금지의 원칙---일반론
3. 언론ㆍ출판에 대한 사전제한
4.‘표현의 자유’의 침해에 대한 대응과 전망
5.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

Ⅲ. 결 론

< 참고 문헌 >

본문내용

국현대예술사대계Ⅲ』, 시공사, 2002, p. 259-260에서 재인용
이러한 의지 표명과 더불어 그동안 국전의 중심인물로 군림하던 몇몇 원로들을 퇴진시키고 이경성, 방근택과 같은 평론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가시키는 한편, 유영국, 김영주, 권옥연, 문학진 등의 추상작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진입시켰다.
또한 구상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왔던 작품경향을 벗어나 서양화부를 ‘구상’, ‘반추상’ ‘추상’으로 나누어 접수함으로써 ‘추상’을 한 장르로 대접한다. 이에 대해 이인범은 “5.16 군사쿠데타가 장면정권의 현실안주, 우유부단과 무능으로 많은 실망과 체증을 안고 있었던 미술계에 새로운 혁신의 분위기를 제공하였으며, 결국 밑으로부터의 개혁의 열망은 아이러니컬하게도 4.19가 아니라 5.16을 통해 작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평하고 있다. 이인범, 앞의 책, p.259-260
그러나 민주화 운동인 4.19와 민주화에 역행하는 5.16은 이처럼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없으며 국가 주도하에서 정책의 일환으로 성립되는 국전의 성격을 감안한다면, 절대 권력의 군사정권 안목에 소위 ‘퇴폐적인 미술’로 비쳐질 수 있는 격정의 추상성이 오히려 장려되었던 이유는 현실과 유리된 채 미술 내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추상미술이 그들의 정권유지에 해가 될 것이 없음을 판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앵포르멜”적 추상미술은 1964년 제 2회 「악뛰엘전」을 기점으로 하여 소강국면에 접어든다. 「악뛰엘전」은 “앵포르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난 것이 아니었으며”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사-1900년 이후”, 『한국미술의 전개』, 열화당, 1979, p.95 - 서성록, 앞의 책 p.132에서 재인용
이 전시를 계기로 동어반복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앵포르멜” 미술이 자진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평가되어 진다. 제 2회 「악뛰엘전」이 개최되었던 1964년은 한일회담에 대한 극심한 반대시위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5,000여명이 가담한 3.24데모에 이어, 12,000여명이 참가한 6.3시위가 있었던 해이다. 연일 계속되는 시위로 삼엄한 경비 하에 경복궁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개최 당일 재발한 데모 때문에 경복궁미술관 일대에 군대가 주둔하게 되었고 일반인은 접근이 용이치 않았다. 당시 신문 보도 사진에는 ‘군인들만 구경하는 경복궁 미술관의 악뛰엘전’이라는 캡션이 붙어 있었다. 이에 대해 김미경은 「악뛰엘전」을 통해 오브제가 새롭게 도입 되었다는 사실을 제기하며 앵포르멜의 근본적인 종말 원인을 그 자체의 포화상태뿐만 아니라 새롭게 제시된 오브제에 대한 자기확신의 부족과 자기선언의 부재 그리고 비상계엄령이 내려졌던 시국의 상황에 의해 전혀 관객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점에서 찾고 있다. 김미경, 앞의 책, p.27
그러나 일반대중의 새로운 미술경향에 대한 관심의 부재는 군중이 모여드는 곳에 삼엄한 경계와 통제를 했던 군사정권의 통치방식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현대조형을 지향하는 저 ‘하이브로우’의 제 정신과의 교섭” <현대미협> 제 1회전 서문
만을 당면한 과제로 여겼던 당시 미술가의 사회의식 부재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적 현실감각을 상실한 채 미술관에 고립을 자처한 미술경향은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비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강화해 나가는 군사정권의 주시의 대상도 될 수 없었다.
1961년 파리청년작가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후 1년간 파리에 체류하며 유럽미술의 동향을 파악한 박서보는 그곳에서 “앵포르멜”적 추상회화가 포화상태에 이르렀음을 목격한다. 박서보, “쎄느 강변을 좌우로, 최근의 파리 화단”, 동아일보, 1961. 12. 30
이 후 추상미술은 1963년 결성된 그룹 <오리진>을 필두로 하는 기하학적인 차가운 추상과 70년대의 단색조의 추상회화로 이어진다.
② 해프닝, 퍼포먼스, 설치미술 - 미술 안의 전통에 대한 반동
이일은 1966-67년의 미술동향의 특징을 “추상표현주의의 쇠진과 아울러 이를 극복할 새 세대의 무기력 내지는 부재”라고 보았으며, 1968-70을 “1950년대 말기에 젊은 작가들에 의해 국제적 미술조류와 과감한 대결의식이 있은 후, 두 번째의 국제적 전망에 대한 도전의 시기”이자 상반된 듯이 보이는 다양한 표현형태가 공존하는 “확산과 환원”의 시기로 보았다. 그는 이러한 양상의 출발점으로 1967년 12월 개최된 「한국청년작가연립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일, “변화와 모색 그리고 실험”, 공간, 1976. 11, p. 42-48
‘탈앵포르멜’이라는 입장에서 공동의 연대감을 갖고 있던 <오리진>, <무동인>, <신전동인>의 세 단체들은 「청년작가연립전」을 통해 기하학적인 추상, 오브제의 도입, 해프닝, 가두시위 등 이전 세대와는 구별되는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인다.
전시가 열리기 한 달 전에 <청년작가연립회>주최로 가졌던 세미나에서는 추상미술의 본질적 의의와 추상 이후의 동향으로 신형상주의, 신현실주의, 팝아트에 대한 이일의 강의와 토론이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청년작가연립회>는 전시가 끝난 다음 해(1968), 경북공보관화랑에서 ‘지방순례강좌’를 개최했다.
이 강좌에는 최붕현, 정찬승, 강국진과 당시 『공간』의 편집장이었던 오광수가 참가했고 비엔날레 참가작품 105점과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가작품 20점, <청년작가연립회>의 작품 100점도 소개되었다. 그것은 자신들의 작품이 더 이상 기괴하고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 공신력 있는 국제 비엔날레의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전위로서 국내에서 인정받고자 했던 시도였다. 김미경, 앞의 책, p. 46-47
앞선 세대의 집단적 조형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위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양식의 필연성이나 당위성보다는 자신들의 표현형식이 당시의 서구 미술과 비슷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당시 미술계의 상황을 반영해 주는 일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작가연립전」에 대해 이일은 “이제까지 있어온 추상에 대한 반동이며 세계적 물결을 탄 것이다. 추상일변도였던 전위운동을 박찼다는 점에서 개개인의 작품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기 이전에 우리나라 미술의 전망을 터주었다”고 평했으며 이일, “생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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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자유,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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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9.12.15
  • 저작시기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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