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일본의 영화
초창기:서양기술과 전통극의 융합
1920~30년대
1940~50년대
1960년대
1970년~80년대
일본애니메이션의 태동
1990~2000년대
2.일본의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의 정의
일본의 애니메이션
일본 아니메의 시작
관동 대지진 이후의 제 2세대 작가들
전쟁과 애니메이션
관제 애니메이션과 교육 애니메이션의 확대
디즈니 작품의 일본상륙
전쟁에 농락당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도에이 동화의 발족
데즈카 오사무의 참가
텔레비전에서 활로를 개척하다
제 1차 일본산 애니메이션 붐 도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최초 컬러 작품 ‘정글대제’
아웃사이더의 시대
전환점이 된 1970년대
거대한 로봇 애니메이션 붐
소녀물 애니메이션의 황금기
명작 애니메이션의 시리즈화
신세대와 애니메이션
열광적인 애니메이션 팬의 지지
만담 붐과 버블시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약진
신세대의 작품등장
할리우드에 영향을 주다
도에이 동화가 디지털화한 계기
디지털화는 비용장벽으로 시기상조
최초의 디지털 작품 ‘히히히 귀신동자’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세계로 비약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3. 참고문헌
4. 담당분야
초창기:서양기술과 전통극의 융합
1920~30년대
1940~50년대
1960년대
1970년~80년대
일본애니메이션의 태동
1990~2000년대
2.일본의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의 정의
일본의 애니메이션
일본 아니메의 시작
관동 대지진 이후의 제 2세대 작가들
전쟁과 애니메이션
관제 애니메이션과 교육 애니메이션의 확대
디즈니 작품의 일본상륙
전쟁에 농락당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도에이 동화의 발족
데즈카 오사무의 참가
텔레비전에서 활로를 개척하다
제 1차 일본산 애니메이션 붐 도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최초 컬러 작품 ‘정글대제’
아웃사이더의 시대
전환점이 된 1970년대
거대한 로봇 애니메이션 붐
소녀물 애니메이션의 황금기
명작 애니메이션의 시리즈화
신세대와 애니메이션
열광적인 애니메이션 팬의 지지
만담 붐과 버블시대
스튜디오 지브리의 약진
신세대의 작품등장
할리우드에 영향을 주다
도에이 동화가 디지털화한 계기
디지털화는 비용장벽으로 시기상조
최초의 디지털 작품 ‘히히히 귀신동자’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세계로 비약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3. 참고문헌
4. 담당분야
본문내용
스’를 제작하면서 키아누 리브스는 감독에게 3편의 일본 아니메를 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작품들은‘아키라’,‘무사 쥬베이’,‘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이다. ’아키라‘는 1988년 작품이지만, 다른 두 편은 1990년대 작품이다.
1996년에 미국 빌보드지에서 비디오 판매 랭킹 1위에 오른 일은 일본 미디어에서 크게 기사거리가 되었다. 버블경제의 붕괴로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것에 의해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말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등장한다. 텔레비전 게임과 더불어 일본의 아니메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동시에 ‘아키라’의 오토모 가쓰히로도 클로즈 업되어 오시이 마모루, 미야자키 하야오 등과 더불어 재패니메이션의 기수로서 주목받았다. 오시이 마모루는 재패니메이션의 붐이라는 현상이란 ‘아니메가 영화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만화영화’에서 ‘만화’가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실사영화가 상위이고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이라고 인식되었던 영화계의 상식을 뒤집는 일이기도 하였다. 단지 재패니메이션이라는 호칭은 당초 폭력과 성폭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일본의 싸고 다듬어지지 않은 난잡한 아니메를 가리키는 경멸에 가까운 지칭이었으나, 점차 다양하고 우수한 호소력이 인정받게 된다.
<공각기동대>
26. 도에이동화가 디지털화한 계기
1996년, 인터넷 브라우저가 보급되어 개인용 컴퓨터로 홈페이지를 보는 것이 쉬워졌다.
인터넷상에 온라인 매거진도 등장했고 일반인들이 디지털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디지털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였다. 그리고 아니메 업계에서도 디지털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에이동화는 아니메 제작에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도에이동화는 1998년에 회사명을 도에이 애니메이션으로 변경하였다. 그때까지도 부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적은 있으나 제작 시스템 전체 적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27. 디지털화는 비용장벽으로 시기상조
컴퓨터의 도입은 결정했으나 프로젝트 팀은 발족되었으나 암중모색의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먼저 컴퓨터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일본 내의 가전업체 등과 연계해서 연구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아니메 제작에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시키면 좋을지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였다. 구체적인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58년경이다. 그러나 비용면에서 실용화가 불가능했다. 1973년 6월부터 해외 외주제작도 시작되어 막대한 양의 일이 해외로 빠지고 있었다. 이 시점까지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10억엔 이상을 웃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개발투자는 불가능하다는 경영판단으로 1991년에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28. 최초의 디지털 작품 ‘히히히 귀신동자’
시기상조라는 결론이 내려진 1990년대 초부터 컴퓨터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되면서 가격도 점점 내려갔다. 워크 스테이션 시스템으로는 너무 비싸서 실현할 수 없었던 컴퓨터 도입이 서서히 가능성을 띠게 되었다. 1993년부터 텔레비전 아니메 제작공정에서도 실험적으로 부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96년 시범적으로 텔레비전 아니메 제작공정에서도 실험적으로 부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996년 시범적으로 홍보용 작품 ‘히히히 귀신동자’를 디지털로 제작하였다. 원화, 동화를 제외한 마무리작업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그 결과 실용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지하고 본방송용의 작품제작에 착수했다. 제작공정이 단축되어 제작일 수도 감소하였다. 그 후에도 스텝이 익숙해지면서 초기의 노동력절감이라는 목적의 달성과 이제 아니메 제작현장에서 셀*물감*필름 등의 아날로그 소재는 사라지게 된다.
29.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세계가 IT 붐에 들끓고 있던 1997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 공주’가 개봉되었다. 전년도인 1996년은 풀 3D작품‘토이 스토리’(픽서디즈니)가 일본에 공개되어 아니메의 디지털화가 큰 화제가 된 시기였다. ‘원령공주’는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의 근원적인 모순을 묘사한 작품이다. 배급수입은 100억엔을 넘어 ‘ET’의 96억 엔이라는 기록을 뛰어넘었다. 미국 개봉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디어 평가는 높았다. 무엇보다 기존 애니메이션에 만연해 있던 '어린이 취향은 디즈니‘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점에서도 인정받았다. 2001년에는 10세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스튜디오 지브리)이 ’타이타닉‘의 흥행수입 260억 엔을 돌파하여 일본 흥행사상 최고인 304억 엔을 기록했다. 더욱이 제 75아카데미상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분상을 수상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 곰상 수상에 이은 쾌거였다. 또한 같은 해 일본 내에서 모든 영화상을 독점했다.
<원령공주>,<센과 치히로>
30. 세계로 비약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일본의 아니메는 일본 내에서 히트해서 해외로 수출된다. ‘아키라’,‘공각기동대’,‘원령공주’,‘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이 일본 아니메의 명성을 높인 것은 사실이나, ‘철완아톰’이나 ‘마하GOGOGO’를 비롯하여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와 같은 명작들도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넉넉한 기반이 일본 아니메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도에이동화도 1975년부터 ‘요술공주 샐리’나 ‘마징가Z' 등 텔레비전 시리즈의 해외판매를 시작하였고, 그후에도 ’드래곤볼‘,’달의 요정 세일러문‘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신에이동화의 ’짱구는 못말려‘는 스페인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상상 이상의 작품들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판매시장에서는 이른바 재패니메이션을 자막으로 관람하는 열광적인 팬들보다는 자국어로 번역 녹음된 몇몇 작품을 즐기는 일반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수출액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포켓몬스터>
◑참고문헌
김영심 『일본영화 일본문화』 보고사 2006
요모타 이누히코 『일본 영화의 이해』 현암사 2001
야마구치 야스오 『세계를 제패한 일본애니메이션의 기적,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미술문화 2005
1996년에 미국 빌보드지에서 비디오 판매 랭킹 1위에 오른 일은 일본 미디어에서 크게 기사거리가 되었다. 버블경제의 붕괴로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것에 의해 재패니메이션이라는 말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등장한다. 텔레비전 게임과 더불어 일본의 아니메는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동시에 ‘아키라’의 오토모 가쓰히로도 클로즈 업되어 오시이 마모루, 미야자키 하야오 등과 더불어 재패니메이션의 기수로서 주목받았다. 오시이 마모루는 재패니메이션의 붐이라는 현상이란 ‘아니메가 영화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만화영화’에서 ‘만화’가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실사영화가 상위이고 애니메이션은 어린이용이라고 인식되었던 영화계의 상식을 뒤집는 일이기도 하였다. 단지 재패니메이션이라는 호칭은 당초 폭력과 성폭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일본의 싸고 다듬어지지 않은 난잡한 아니메를 가리키는 경멸에 가까운 지칭이었으나, 점차 다양하고 우수한 호소력이 인정받게 된다.
<공각기동대>
26. 도에이동화가 디지털화한 계기
1996년, 인터넷 브라우저가 보급되어 개인용 컴퓨터로 홈페이지를 보는 것이 쉬워졌다.
인터넷상에 온라인 매거진도 등장했고 일반인들이 디지털 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디지털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해였다. 그리고 아니메 업계에서도 디지털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이 발생했다. 도에이동화는 아니메 제작에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도에이동화는 1998년에 회사명을 도에이 애니메이션으로 변경하였다. 그때까지도 부분적으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적은 있으나 제작 시스템 전체 적용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27. 디지털화는 비용장벽으로 시기상조
컴퓨터의 도입은 결정했으나 프로젝트 팀은 발족되었으나 암중모색의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먼저 컴퓨터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는 동시에 일본 내의 가전업체 등과 연계해서 연구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아니메 제작에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시키면 좋을지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였다. 구체적인 형태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58년경이다. 그러나 비용면에서 실용화가 불가능했다. 1973년 6월부터 해외 외주제작도 시작되어 막대한 양의 일이 해외로 빠지고 있었다. 이 시점까지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10억엔 이상을 웃돌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개발투자는 불가능하다는 경영판단으로 1991년에 개발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28. 최초의 디지털 작품 ‘히히히 귀신동자’
시기상조라는 결론이 내려진 1990년대 초부터 컴퓨터 성능이 급속도로 향상되면서 가격도 점점 내려갔다. 워크 스테이션 시스템으로는 너무 비싸서 실현할 수 없었던 컴퓨터 도입이 서서히 가능성을 띠게 되었다. 1993년부터 텔레비전 아니메 제작공정에서도 실험적으로 부분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1996년 시범적으로 텔레비전 아니메 제작공정에서도 실험적으로 부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996년 시범적으로 홍보용 작품 ‘히히히 귀신동자’를 디지털로 제작하였다. 원화, 동화를 제외한 마무리작업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그 결과 실용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지하고 본방송용의 작품제작에 착수했다. 제작공정이 단축되어 제작일 수도 감소하였다. 그 후에도 스텝이 익숙해지면서 초기의 노동력절감이라는 목적의 달성과 이제 아니메 제작현장에서 셀*물감*필름 등의 아날로그 소재는 사라지게 된다.
29. 원령공주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세계가 IT 붐에 들끓고 있던 1997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 공주’가 개봉되었다. 전년도인 1996년은 풀 3D작품‘토이 스토리’(픽서디즈니)가 일본에 공개되어 아니메의 디지털화가 큰 화제가 된 시기였다. ‘원령공주’는 무로마치 시대를 배경으로 인간과 자연의 존재 양상의 근원적인 모순을 묘사한 작품이다. 배급수입은 100억엔을 넘어 ‘ET’의 96억 엔이라는 기록을 뛰어넘었다. 미국 개봉에서는 기대 이상의 성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디어 평가는 높았다. 무엇보다 기존 애니메이션에 만연해 있던 '어린이 취향은 디즈니‘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 점에서도 인정받았다. 2001년에는 10세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스튜디오 지브리)이 ’타이타닉‘의 흥행수입 260억 엔을 돌파하여 일본 흥행사상 최고인 304억 엔을 기록했다. 더욱이 제 75아카데미상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분상을 수상했다.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 곰상 수상에 이은 쾌거였다. 또한 같은 해 일본 내에서 모든 영화상을 독점했다.
<원령공주>,<센과 치히로>
30. 세계로 비약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일본의 아니메는 일본 내에서 히트해서 해외로 수출된다. ‘아키라’,‘공각기동대’,‘원령공주’,‘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이 일본 아니메의 명성을 높인 것은 사실이나, ‘철완아톰’이나 ‘마하GOGOGO’를 비롯하여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와 같은 명작들도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러한 넉넉한 기반이 일본 아니메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도에이동화도 1975년부터 ‘요술공주 샐리’나 ‘마징가Z' 등 텔레비전 시리즈의 해외판매를 시작하였고, 그후에도 ’드래곤볼‘,’달의 요정 세일러문‘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신에이동화의 ’짱구는 못말려‘는 스페인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상상 이상의 작품들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판매시장에서는 이른바 재패니메이션을 자막으로 관람하는 열광적인 팬들보다는 자국어로 번역 녹음된 몇몇 작품을 즐기는 일반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수출액의 5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포켓몬스터>
◑참고문헌
김영심 『일본영화 일본문화』 보고사 2006
요모타 이누히코 『일본 영화의 이해』 현암사 2001
야마구치 야스오 『세계를 제패한 일본애니메이션의 기적,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 미술문화 2005
추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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