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하나님을 세세토록 영화롭게 할 구속받은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그려준다.
성경전체가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 될까? 그것은 바로 창세기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언약신학의 발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마지막 날에 우리가 온전히 변화될 종말에 가서 끝이 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살피면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 언약신학이 성경 전체(신구약) 속에 어떻게 나타나 발전하고 있으며, 그것이 종말과 어떻게 연결되어지는가를 집중적으로 살피게 될 것이다.
성경이 인류와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다분히 미래적인 책이며, 종말론적인 책이다. 여기서 종말론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이 어떤 하나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뜻인데 그 중심에는 구원역사의 과정이 있다.
구원역사의 점진성을 생각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인물들이 있다. 바로 \'아담\'과 \'예수\'이다.
구약의 제일 첫 부분(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세상 속의 대리자로 세우신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담은 대리자로서의 그의 임무에 실패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세상 속의 대리자들을 세우셨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실패를 거듭했다.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또 다른 대리자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실패한 아담의 사역을 감당할 인물은 바로 \'예수\'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둘째 아담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그분이 의도하신 바대로 끝까지 수행하신다. 그리고 이제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 공동체가 대리자로 세워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미\'와 \'아직\'의 현재에 살아가면서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대리자로서의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계시록을 향해 나아가면서 우리는 하나의 종말의 그림을 볼 수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은 에덴 동산의 회복과 함께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 예루살렘의 왕과 제사장으로서 아담과 이스라엘의 역할을 다시 수행하게 될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제일 처음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이며, 하나님과 온 인류가 언약을 맺는 모습이 발견되는 것도 창세기이다.
창조기사가 언급되는 창세기 1-2장을 주목해 보면 하나님께서 주체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좋았다\'라고 번역되는 \'토브\'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창조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좋았다\'라는 평가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그 창조된 우주만물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있었음을 표현한다. 그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창조 이후 7째날에 안식하신다. 이 안식은 그의 사역의 완성을 뜻하는 안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안식 안에 창조된 온 만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는 안착의 개념이 있다는 것이며, 그 속에 인류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창조는 완벽한 상태로 완성된 궁극적인 창조의 모습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이후의 사건들(타락)을 통해 알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고 안착을 해야 하는 인류는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진다. 창조세계 속에 만들어진 동산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그 동산은 바깥 세상과는 구별된 인류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었고 그 속에서 인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그 동산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을 나타내는 성소의 역할을 하는 세상의 구심점이었다. 그런 동산에서부터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동산 밖에 놓이게 된다.
최초의 인류가 동산 밖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동산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사명은 하나님이 주신 동산에서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봉사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유지되도록 살피고 지키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동산 밖에 놓이게 된다는 것은 그들의 사명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났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이 앞으로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안식을 잃어버린 창조세계가 종말 때에 회복되고 완성될 새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회복의 소망이 종말론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망은 조금씩 상징적으로 성취되면서 점점 발전하게 된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언약이다.
언약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베리트\'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6:17-18절에 나타나는 노아와 맺은 언약이다. 중요한 것은 덤브렐은 이 단어를 주목하면서 \'언약을 세우다\'라는 어구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하나님과 노아가 맺은 언약이 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맺어진 언약를 다시 세운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사실은 홍수 이후 하나님과 노아의 언약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서 알 수 있는데, 아담에게 주어졌던 사명이 노아에게 다시 주어짐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노아가 인류와 동물들의 대리자임을 분명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지개로써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증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계획을 노아와 재수립한다는 의미에서 노아의 언약은 충분히 종말론적이다.
그런데 새로운 언약으로 세워진 새로운 공동체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또 한번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는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통일성을 오용하고 말았다. 재밌는 사실은 인류가 세우려 했던 바벨탑은 계시록에 나타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과 대조가 된다는 사실이다.
노아 이후 사람들은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하지만 이후 나오는 족보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소망은 아브람으로 연결되면서 바벨의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재수립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심은 실패한 인간들 사이에 새로운 중심지를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심지에 세워진 이스라엘은 아담에게 부여되고, 노아에게 부여
성경전체가 구속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 될까? 그것은 바로 창세기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언약신학의 발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언약은 마지막 날에 우리가 온전히 변화될 종말에 가서 끝이 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책을 살피면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부분인데 언약신학이 성경 전체(신구약) 속에 어떻게 나타나 발전하고 있으며, 그것이 종말과 어떻게 연결되어지는가를 집중적으로 살피게 될 것이다.
성경이 인류와 사회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다분히 미래적인 책이며, 종말론적인 책이다. 여기서 종말론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이 어떤 하나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는 뜻인데 그 중심에는 구원역사의 과정이 있다.
구원역사의 점진성을 생각할 때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인물들이 있다. 바로 \'아담\'과 \'예수\'이다.
구약의 제일 첫 부분(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세상 속의 대리자로 세우신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처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아담은 대리자로서의 그의 임무에 실패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계속해서 세상 속의 대리자들을 세우셨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그들도 실패를 거듭했다.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또 다른 대리자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실패한 아담의 사역을 감당할 인물은 바로 \'예수\'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의 둘째 아담이 되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그분이 의도하신 바대로 끝까지 수행하신다. 그리고 이제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하나님의 백성들인 교회 공동체가 대리자로 세워진다.
그렇다면 과연 \'이미\'와 \'아직\'의 현재에 살아가면서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대리자로서의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계시록을 향해 나아가면서 우리는 하나의 종말의 그림을 볼 수 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은 에덴 동산의 회복과 함께 창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 예루살렘의 왕과 제사장으로서 아담과 이스라엘의 역할을 다시 수행하게 될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제일 처음 나타나는 것은 창세기이며, 하나님과 온 인류가 언약을 맺는 모습이 발견되는 것도 창세기이다.
창조기사가 언급되는 창세기 1-2장을 주목해 보면 하나님께서 주체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좋았다\'라고 번역되는 \'토브\'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창조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좋았다\'라는 평가는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그 창조된 우주만물 사이에 완전한 일치가 있었음을 표현한다. 그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창조 이후 7째날에 안식하신다. 이 안식은 그의 사역의 완성을 뜻하는 안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이 안식 안에 창조된 온 만물이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는 안착의 개념이 있다는 것이며, 그 속에 인류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창조는 완벽한 상태로 완성된 궁극적인 창조의 모습은 아니었음을 우리는 이후의 사건들(타락)을 통해 알게 된다. 하나님 안에서 쉼을 얻고 안착을 해야 하는 인류는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진다. 창조세계 속에 만들어진 동산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그 동산은 바깥 세상과는 구별된 인류를 위한 특별한 공간이었고 그 속에서 인류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둘째, 그 동산은 하나님의 임재와 현현을 나타내는 성소의 역할을 하는 세상의 구심점이었다. 그런 동산에서부터 타락으로 인해 인류는 동산 밖에 놓이게 된다.
최초의 인류가 동산 밖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동산에서 인류에게 주어진 사명은 하나님이 주신 동산에서 왕이자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봉사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이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유지되도록 살피고 지키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동산 밖에 놓이게 된다는 것은 그들의 사명에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났음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이 앞으로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나아갈 것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안식을 잃어버린 창조세계가 종말 때에 회복되고 완성될 새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회복의 소망이 종말론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소망은 조금씩 상징적으로 성취되면서 점점 발전하게 된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언약이다.
언약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베리트\'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6:17-18절에 나타나는 노아와 맺은 언약이다. 중요한 것은 덤브렐은 이 단어를 주목하면서 \'언약을 세우다\'라는 어구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하나님과 노아가 맺은 언약이 새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맺어진 언약를 다시 세운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사실은 홍수 이후 하나님과 노아의 언약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서 알 수 있는데, 아담에게 주어졌던 사명이 노아에게 다시 주어짐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노아가 인류와 동물들의 대리자임을 분명하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무지개로써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증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계획을 노아와 재수립한다는 의미에서 노아의 언약은 충분히 종말론적이다.
그런데 새로운 언약으로 세워진 새로운 공동체는 바벨탑 사건을 통해 또 한번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류는 하나님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통일성을 오용하고 말았다. 재밌는 사실은 인류가 세우려 했던 바벨탑은 계시록에 나타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과 대조가 된다는 사실이다.
노아 이후 사람들은 또 다시 실패를 경험하지만 이후 나오는 족보는 여전히 우리에게 소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소망은 아브람으로 연결되면서 바벨의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재수립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심은 실패한 인간들 사이에 새로운 중심지를 세우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중심지에 세워진 이스라엘은 아담에게 부여되고, 노아에게 부여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