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사형제도의 역사 및 현황
1. 사형이란
2. 사형제도의 정의
3. 사형제도의 역사
4. 건국이후 920명 사형
5. 한국의 사형제도
6. 사형 폐지국 및 존치국 현황
Ⅱ. 사형제도의 존폐 논란 및 필요성과 불필요성
1. 사형제도 존폐 논란
2. 사형제도의 불 필요성
3. 사형제도의 필요성
Ⅲ. 사형제도의 문제점 및 모순 논리
1. 비인간성
2. 인종차별과 사형
3. 무죄한 이들에 대한 사형
4. 사형의 자의적 적용
5. 사형제도의 무자비함
6. 정치적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형제도
7. 사형제도의 모순 논리
Ⅳ.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 의견
1.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의견1
2.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의견2
Ⅴ.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
1.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의견1
2.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의견2
3.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의견3
Ⅵ. 사형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 (폐지)
1. 사형집행 마지막 식사 메뉴
2. 사형집행 오판의 가능성
참고자료
1. 사형이란
2. 사형제도의 정의
3. 사형제도의 역사
4. 건국이후 920명 사형
5. 한국의 사형제도
6. 사형 폐지국 및 존치국 현황
Ⅱ. 사형제도의 존폐 논란 및 필요성과 불필요성
1. 사형제도 존폐 논란
2. 사형제도의 불 필요성
3. 사형제도의 필요성
Ⅲ. 사형제도의 문제점 및 모순 논리
1. 비인간성
2. 인종차별과 사형
3. 무죄한 이들에 대한 사형
4. 사형의 자의적 적용
5. 사형제도의 무자비함
6. 정치적 억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사형제도
7. 사형제도의 모순 논리
Ⅳ.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 의견
1.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의견1
2. 사형제도에 대한 찬성의견2
Ⅴ.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
1.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의견1
2.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의견2
3.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의견3
Ⅵ. 사형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 (폐지)
1. 사형집행 마지막 식사 메뉴
2. 사형집행 오판의 가능성
참고자료
본문내용
이란 이제 구식에 불과합니다. 특히 민주주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사형이라니요. 우리는 발달된 과학을 이용해야합니다. 요즘에는 전자팔찌도 사용되고 있죠. 그건 또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게 달아주는 거죠. 또 찾아보면 연쇄살인범, 흉악범 등을 제압, 또는 감시할 수 있는 것들이 상당히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많이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여준다면 더 이상 사형제도는 필요하지 않겠죠.
범죄란 법, 사형제도가 있다고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소외된, 또는 우리와 다르게 특별, 또는 특이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멀리하게되면 변하게 되죠.(임수영님)
Ⅵ. 사형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 (폐지)
1. 사형집행 마지막 식사 메뉴
초콜릿 쿠키, 치즈 케이크, 오이 절임. 정말 별 것 없는 음식들이지만, 동시에 사형수들의 배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음식들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식사로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다. 사형수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 아니면 그들에게 우회적으로 마지막을 알리려는 걸까. 이유가 어떻든 상당히 섬뜩한 주문이다. 내가 사형수라면, 나는 진짜 맵다는 고추를 한 다발 주문할 것이다. 죽기 직전이라는데 음식이 입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진짜 매운 고추를 입에 한 가득 물고 울고 싶을 것 같다. 그건 억울하거나 죄책감이 들어서라기보다, 무서워서일 것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사형을 당하건 죽는다는 건 분명 무서운 일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사형제도는 잔인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해하면서 범죄자들의 고통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악질의 범죄자도 죽음은 무섭다. 아니, 무섭거나 아픈 것 이상의 상실이다. 사형제도는 그런 상실을 합법적으로 되풀이할 뿐인 것이다. 형벌의 목적은 예방과 교화에 있다. 하지만 사형제도는 전혀 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통계에는 공개사형 이후 오히려 범죄율이 증가한 사례도 있다. 물론 사형을 당할 만큼 중한 범죄자를 그저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죽는 것’과 ‘살아서 벌을 받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혹자는 종신형과 같은 벌이 사형보다 더 비인간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살아있는 한 누구나 행복을 누릴, 희망을 되찾을 가능성을 가진다. 그리고 범죄자에게 그런 행복과 희망을 주는 것도 사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형제도는 그런 가능성을 무시한다. 한편, 사형이 쉽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듯, 범죄도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범죄는 사회 전체에 그 책임이 있다. 사회는 그래서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자를 교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화의 가능성’을 누가 옳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사형제도는 그런 면에서 나태한 형벌이기도 하다. 시간과 노력, 또 다른 희생자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사회의 책임을 태만하는 제도이다. 이렇듯, 사형제도는 문제가 많은 제도이다. 또, 그 장점도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묻는 것은, 분명 그들을 배려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식사인 만큼, 결코 인간적인 일일 수는 없다. 사람이 누리는 쾌락 중 먹는 일도 큰 편에 속한다. 어떤 범죄자는 누군가의 그 행복을 빼앗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또 하나의 행복을 더 빼앗을 이유는 없다. 피해자의 아픔을 생각해 사형제도를 시행해온 우리이다. 이제 우리는 그 ‘동정심’을 범죄자에게까지 돌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사형집행 오판의 가능성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벌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가 사형제도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형제도는 절대자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당연한 관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형제도는 큰 문제점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판의 가능성이다. 간단히 말해, \'죽여놓고 보니, 잘못 죽인 거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한 일은 없다. 물론 사형을 결정하는 데에도 여러 절차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히 고려한다 해도, 결국엔 오판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데이비드 게일\'이라는 영화에서도, 사형을 결정하는 외부인들이 보기에 주인공의 혐의는 너무나 확실하다.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니 연루된 사람들이라 해도 진짜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오판에 대한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바로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판은 2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60년간 오판이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오판의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괜찮다\'라는 결론일까? 아니다. 방금의 위험한 발상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 번째로, 이는 악용를 정당화할 바탕이 될 수 있다. 오판과 마찬가지로 악용은 시대를 거듭해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에는 거의 악용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또, 단 한 번의 악용이라도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런 악용이, \'단지 잘못 결정한 것이다. 이 전에도 그럴 가능성은 있었잖은가.\'라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는 분명 생명을 경시한 발상이다. \'거의 없으니까 괜찮다\'는 것은, \'자주 없으니 한 두번 쯤은 넘어가도 괜찮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수로 따질 수 없는 부분이다. 한 두번의 오판이라도, 불필요한 살인을 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이를 그저 몇 번의 묵념과 파문으로 끝내는 것이야말로 사회 전체적인 범죄인 것이다. 살인의 오판이 앞서 말했듯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분명히 존재한다. 이 오판은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고, 그 이전에 이미 하나의 범죄이기도 하다. 이미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서 오판한 사형의 모순을 보여줬다. 극단적이지만 오판으로 스스로가 희생당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하루 빨리 예전의 악습을 버려 이 괴로움을 인류에게서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서울법대 한인섭 교수
하이퍼센트
위키백과
기사 일부 발췌
범죄란 법, 사형제도가 있다고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소외된, 또는 우리와 다르게 특별, 또는 특이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멀리하게되면 변하게 되죠.(임수영님)
Ⅵ. 사형제도에 대한 나의 생각 (폐지)
1. 사형집행 마지막 식사 메뉴
초콜릿 쿠키, 치즈 케이크, 오이 절임. 정말 별 것 없는 음식들이지만, 동시에 사형수들의 배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음식들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식사로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있다. 사형수들에 대한 마지막 예의, 아니면 그들에게 우회적으로 마지막을 알리려는 걸까. 이유가 어떻든 상당히 섬뜩한 주문이다. 내가 사형수라면, 나는 진짜 맵다는 고추를 한 다발 주문할 것이다. 죽기 직전이라는데 음식이 입에 들어갈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진짜 매운 고추를 입에 한 가득 물고 울고 싶을 것 같다. 그건 억울하거나 죄책감이 들어서라기보다, 무서워서일 것이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사형을 당하건 죽는다는 건 분명 무서운 일일 테니까. 그런 면에서 사형제도는 잔인하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이해하면서 범죄자들의 고통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악질의 범죄자도 죽음은 무섭다. 아니, 무섭거나 아픈 것 이상의 상실이다. 사형제도는 그런 상실을 합법적으로 되풀이할 뿐인 것이다. 형벌의 목적은 예방과 교화에 있다. 하지만 사형제도는 전혀 이런 기능을 하지 못한다. 통계에는 공개사형 이후 오히려 범죄율이 증가한 사례도 있다. 물론 사형을 당할 만큼 중한 범죄자를 그저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죽는 것’과 ‘살아서 벌을 받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혹자는 종신형과 같은 벌이 사형보다 더 비인간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은 살아있는 한 누구나 행복을 누릴, 희망을 되찾을 가능성을 가진다. 그리고 범죄자에게 그런 행복과 희망을 주는 것도 사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형제도는 그런 가능성을 무시한다. 한편, 사형이 쉽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듯, 범죄도 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결국 범죄는 사회 전체에 그 책임이 있다. 사회는 그래서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자를 교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교화의 가능성’을 누가 옳게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사형제도는 그런 면에서 나태한 형벌이기도 하다. 시간과 노력, 또 다른 희생자를 걱정한다는 이유로 사회의 책임을 태만하는 제도이다. 이렇듯, 사형제도는 문제가 많은 제도이다. 또, 그 장점도 쉽게 납득하기 힘들다.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식사를 묻는 것은, 분명 그들을 배려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 식사인 만큼, 결코 인간적인 일일 수는 없다. 사람이 누리는 쾌락 중 먹는 일도 큰 편에 속한다. 어떤 범죄자는 누군가의 그 행복을 빼앗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또 하나의 행복을 더 빼앗을 이유는 없다. 피해자의 아픔을 생각해 사형제도를 시행해온 우리이다. 이제 우리는 그 ‘동정심’을 범죄자에게까지 돌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 사형집행 오판의 가능성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형벌을 꼽으라면 그 중 하나가 사형제도일 것이다. 당시만 해도 사형제도는 절대자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당연한 관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형제도는 큰 문제점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오판의 가능성이다. 간단히 말해, \'죽여놓고 보니, 잘못 죽인 거면 어떡하냐\'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한 일은 없다. 물론 사형을 결정하는 데에도 여러 절차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신중히 고려한다 해도, 결국엔 오판의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데이비드 게일\'이라는 영화에서도, 사형을 결정하는 외부인들이 보기에 주인공의 혐의는 너무나 확실하다.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들은, 아니 연루된 사람들이라 해도 진짜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오판에 대한 정확한 수치가 아니라, 바로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오판은 2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60년간 오판이 한 번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오판의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괜찮다\'라는 결론일까? 아니다. 방금의 위험한 발상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첫 번째로, 이는 악용를 정당화할 바탕이 될 수 있다. 오판과 마찬가지로 악용은 시대를 거듭해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오늘날에는 거의 악용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 또, 단 한 번의 악용이라도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런 악용이, \'단지 잘못 결정한 것이다. 이 전에도 그럴 가능성은 있었잖은가.\'라고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이는 분명 생명을 경시한 발상이다. \'거의 없으니까 괜찮다\'는 것은, \'자주 없으니 한 두번 쯤은 넘어가도 괜찮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은 수로 따질 수 없는 부분이다. 한 두번의 오판이라도, 불필요한 살인을 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된다. 이를 그저 몇 번의 묵념과 파문으로 끝내는 것이야말로 사회 전체적인 범죄인 것이다. 살인의 오판이 앞서 말했듯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분명히 존재한다. 이 오판은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고, 그 이전에 이미 하나의 범죄이기도 하다. 이미 수많은 영화와 소설 등에서 오판한 사형의 모순을 보여줬다. 극단적이지만 오판으로 스스로가 희생당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처럼 괴로운 일이 어디 또 있을까. 하루 빨리 예전의 악습을 버려 이 괴로움을 인류에게서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서울법대 한인섭 교수
하이퍼센트
위키백과
기사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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