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과 인권말살의 삼청교육대
본 자료는 1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해당 자료는 1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목차

※ 목 차 ※
【버림받은 인권, 삼청교육대의 진실】
□ 쿠데타 세력의 사회개조 프로그램?!

□ 국민 개조 프로젝트 ‘삼청순화교육’

□ 폭력 정화

□ 삼청교육대에서 사회보호법으로...

□ 청송감호소

본문내용

...
계엄포고령은 계엄이 해제되면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 쿠데타 정권은 계엄 해제 후에도 이들을 계속 구금할 명분이 필요 했다. 철로 부설과 제주도 5·16 순환도로 건설 등 국토 건설 사업에 폭력배들을 동원했던 박정희 정권다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순화교육을 마친 수련생들을 근로봉사라는 명목으로 최전방 부대에 격리했다. 말이 근로봉사지 이들은 전방 부대에 철저히 격리 수용되었고, 전방 부대의 도로 준설과 진지 작업 등 군인들의 일에 투입되었다.
계엄 해제를 한 달여 앞두고 1980년 12월 18일에 공포된 사회 보호법은 법적인 근거를 동원해 삼청 교육대 수련생들을 영구히 감금하는 장치였다. 삼청교육대 수련생들에게 주어진 것은 최고 5년까지의 보호감호 처분이었다. 그들에게는 사회보호법 부칙의 경과 규정이 적용되었고, 이는 이는 소급적용이었다. 삼청교육대 수련생의 신분은 한순간에 감호생으로 바뀌었다.
□ 청송감호소
사진1) 청송감호소
사진2) 청송감호소
이들이 처음 구금된 곳은 바로 청송감호소였다. 이는 내륙의 섬으로 외부와 격리되고, 사회적 홍보효과가 큰 곳이다. 지금은 비록 변했지만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 1980년 이곳에 처음 갇힌 사람들은 범죄자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과거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죄를 지어서 그 대가를 치른 사람들이 전혀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그리고 개중에는 전과도 없는 무고한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앞으로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잡혀가 온갖 가혹 행위와 함께 세상의 끝에 와서 갇혔던 사람들이었다.
  • 가격2,000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10.02.22
  • 저작시기2007.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584480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