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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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히타이트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1)현재 터키의 상황
1. 터키의 지리, 기후적 조건과 종교
2. 터키 지역의 역사

본론
2)터키에 나타난 제국(히타이트)
1.헷과 히트와 히팀은 히타이트이다.
2.성서에 나타난 히타이트
3.히타이트 자세히 보기
3)히타이트의 제국의 수도
1.아나톨리아 지역의 전반적인 특색
2.제국의 수도 하투샤
4)히타이트 제국의 역사
1.히타이트 시대의 전․후 역사흐름

결 론
5) 갑작스러운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

본문내용

는 수많은 세계 강대국들이 일어났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활동 무대였다. 그 강대국들 가운데 첫 번째 왕국이 히타이트였다.
당시 누구도 무너뜨릴수 없었던 이중으로된 견고한 성벽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그 잔재들 만이 흩어져 있다.
결론
5) 갑작스러운 히타이트 제국의 멸망
이상에서 바라본 제국의 수도였던 하투샤(보야즈게레)는 지금도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많은 유물들이 아직도 빛은 보지 못한 채로 잠자고 있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안타까운 지역이다.
히타이트 제국에서 그 중심지가 되었던 아나톨리아 지역, 즉 지금 터키의 현재 전반적인 상황과 우리가 알고 있는 터키가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문명 속에서 발생한 수많은 제국과 나라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인류 역사 속에서 사라진 세계최초의 철기 사용국 히타이트 제국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히타이트의 역사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된 배경과 그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에 대해 조금씩 살펴보았다. 하지만 히타이트인 들이 사용한 철기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을 멸족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였던 해상민족에 대해 알아보는 것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지금은 단지 역사적인 의미로 남아있는 하튜샤 지역의 돌무더기와 여러 터, 그리고 성벽과 여러 개의 성문들은 600년이라는 세월을 중근동3대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던 제국 히타이트(하튜샤)의 명성에 맞지 않게 부끄러운 자태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국은 그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하투샤 지역의 땅을 주목하였고 독특한 건축 방식으로 그들만의 성전을 만들었으며, 지형적인 위치를 이용해서 적들이 쉽게 쳐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오랜 세월동안 수도를 방위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자랑거리였던 전차부대로 거대제국 바빌론을 멸망시킨 나라였다. 또한 당시 세계 최강대국 이였던 이집트의 람세스2세 왕과의 전쟁에서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결국 두 나라가 평화 조약을 체결(카데쉬협약)하며 자신의 위세를 드러낸 제국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멸망은 너무나 손쉽게 이루어졌다. 또한 성서에서 나타난 이들의 모습은 지금 현재의 보아즈게레의 모습과 사뭇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성서에서 나타난 이들은 \"헷\"족속으로 그들의 위상과는 달리 비열하고, 다른 나라(다윗의 시대)의 용병으로 있는 비참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라는 체계가 아직 잡히지 못할 때에 그들은 번성 하였다가 수세기후 해양민족으로부터 멸망당하여 사라지면서 히타이트 인들과, 이스라엘 민족과의 시대적 정황이 맞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언어로 남긴 점토판이 발견되면서 세계는 그들의 존재(하티)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히타이트는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왕가의 피나는 혈투로 인해 점점 쇠퇴하게 되며, 소왕국들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서 점점 멸망의 길로 가는 것 또한 보게 된다. 어떤 나라든지 정치적으로 부패하게 된다면 그 나라는 오래 가지 못하며 민심을 잃게 된다. 그들 또한 자신들만의 권력을 위해 싸우며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있을 때 서로 도와주지 않고 모른 체 할뿐 아니라 배신까지 하며, 제국은 아나톨리아 전체의 소왕국들로부터 위협받게 된다. 결국은 하나 되지 못한 히타이트 제국은 정말 너무 갑자기 이루어졌다. 역사학자들은 히타이트를 침략한 민족을 북방민족 또는 해상 민족이라고 적고 있다. 그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만족할만한 규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육상과 해상을 통해 침략자들이 아나톨리아 반도에 들어왔다. 이들 침략자들에 관한 기록은 유일하게 이집트에 남아있다. 히타이트가 패망한 연도는 기원전 1190년대가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샤의 발굴 작업 결과, 하투샤는 완전히 불에 타 폐허가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투샤가 멸망한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히타이트의 마지막 왕인 수필룰리우마 2세의 시대에 하투샤 왕실 내 사정도 불안하였다. 당시 점토판 기록관 대장이 수필룰리우마에게 충성 서약을 하면서 남겨놓은 기록을 보면 왕실에 반대하는 세력에 거세져 왕실의 권위가 세워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하투샤 왕실의 불안정 상황이 계속되고 있을 때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침략 세력에 의해 하투샤는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터키의 고고학자 에크렘 아쿠르갈은 자신의 저서에서 불확실한 히타이트의 마지막 상황을 이렇게 재현해놓았다. \"아나톨리아 서쪽에 있던 트로이 6층 거주지가 기원전 1240년경 폐허가 되자, 오래 전부터 아나톨리아 땅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발칸 민족들이 아나톨리아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발칸 민족들은 먼저 트로이를 멸망시킨 후 난공불락인 하투샤를 그냥 둔 채 먼저 아나톨리아 남동부 쪽으로 진격하였다. 그들은 카르카므쉬를 정복하고 시리아를 넘어 아무르를 지나 이집트로 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해상 민족이 배를 타고 알라시야(키프로스)를 점령하고, 이집트 해안으로 향했다. 홍수와도 같은 이방 민족들의 이주와 공격은 이집트까지 이르는 데 10 ~ 20년이 걸렸다. 말이 끄는 전차와 군대의 물결 속에 우마차에 탄 어린애와 여자들의 행렬도 계속되었다. 마침내 하투샤도 불질러지고 폐허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민족이라 부르지 않고 “고대 오리엔트 제국 히타이트 제국”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참고문헌>
* 김 성. <성서고고학 이야기> 서울:동방미디어. 2002.
* 심종석 <구약 성서의 이해> 서울 : 이컴비즈넷 2004.
* 서진교 오원석 오택현 공저 <터키의 기독교 성지> 서울 : 크리스천헤럴드 2005.
* 앤드류 벨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서울 : 브리태니커 1992.
* 이문칠 <터키> 울산 : 영진닷컴 2003.
* 이시회 <중근동 기독교 성지> 서울 : 예영 커뮤니케이션 1997.
* 이희철.<히타이트(점토판으로 사라졌던 인류의 역사)> 서울:도서출판리수. 2004.
* B. W. 앤더슨<구약 성서 이해> 서울: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0.
* 히타이트- 점토판 속으로 사라졌던 인류의 역사. 이희철. 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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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22페이지
  • 등록일2010.03.02
  • 저작시기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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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8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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