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괴테의 문학과 열린 정신
2. 작품 내용요약
3. 앞선 시대정신과 정신적 봉기
4. 인간 본연의 감성과 사회윤리와의 대립
5. 자살, 그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
6. 질풍과 노도(Sturm und Drang)의 시대적 조류와 베르테르
7. 맺음말
2. 작품 내용요약
3. 앞선 시대정신과 정신적 봉기
4. 인간 본연의 감성과 사회윤리와의 대립
5. 자살, 그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
6. 질풍과 노도(Sturm und Drang)의 시대적 조류와 베르테르
7. 맺음말
본문내용
학은 그래야만 한다고 배워지던 그 당시의 사회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가져다 준 충격과 그 여파는 정말로 대단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1부에 베르테르와 알베르토의 '자살'에 대한 논란이 나온다. 알베르토는 '자살'이란 괴로운 인생을 굳이 참고 견디느니 죽어 버리는 약자의 행동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반면 베르테르는 '자살'을 인간의 본성이 서로 뒤얽혀 반발하는 온갖 힘의 미궁 속에서 빠져 나올 출구를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알베르토의 '자살'에 대한 정의는 이성에 바탕을 둔 계몽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자살'에 대한 정의는 이성보다는 상황과 감정에 따른 순간적인 행동으로써 앞서 말한 ‘질풍과 노도’의 시대적 조류에 기초하고 있다. 이 외에도 베르테르와 알베르토의 대화를 보면 알베르토는 전형적인 계몽주의자이고 베르테르는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감정적으로 사고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7. 맺음말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하는 이성 때문에 마음이 설레이거나 얼굴이 붉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밤을 지새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과연 청년 베르테르보다 더 진정한 사랑을 하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꿈과 이상없이 기성세대들의 현실적이기만 한 메마른 이성만을 이어받는다면 사회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괴테는 일생동안 많은 사랑을 했다. 그는 74살 때 열 일곱의 소녀를 사랑하기도 했다. 괴테의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알 수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꿈과 이상을 가지는 그의 성격이 그의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킨 것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베르테르처럼 사랑하기를 원하고 로테처럼 사랑받고 싶어할 것이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보아도 끓어오르는 감정이 넘쳐흐르지 않는 곳이 없고, 예리한 관찰로써 일막 일목에도 감격하고,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눈짓에도 환희를 맛보고 절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이 인간 심정을 세련시키고, 일그러지지 않는 인간이나 자연에 대해 감수성을 깨워 주고 생활 내용을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베르테르는 자기의 생명에 대한 의지를 우주에까지 확대하여, 그것과 합일하려고 하며 국한된 현실의 인간 존재와 대립하고 모순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십 대 중반에 이른 나는, 자살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질서정연한 것을 동경하고, 모험보다는 안전한 모든 것을 지향한다. 나는 변했다. 필요한 만큼만 사람을 만나고 정을 주고 믿고, 내가 쳐놓은 금-line-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이라야, 열 여섯, 일곱 살 때의 내가 아주 잠시 신들린 듯이 내 몸 속에 들어와 그만하면 됐다고 말해준다. 그만하면 잘 살아가고 있다고. 발버둥쳐봤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야라고 말이다. 술이 깬 다음 날 나는 다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학원에 나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이면 여자친구를 만나러 그녀의 집 근처로 향한다. 그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누릴 만큼은 누리고 살았고, 나는 늘 여유-어떤 의미로든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무엇인가 서글퍼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다 버리지 못한 욕심이 있는 것일까. 나는 다시 한 번 즉흥적인 삶을 꿈꾸고 있는 걸까. 고백하건대, 나는 오늘 베르테르를 예찬하면서 다소 치기 어린 베르테르가 되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잠시나마 행복했다. 그 누구도 아닌 현실의 내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베르테르여 영원하라!
1부에 베르테르와 알베르토의 '자살'에 대한 논란이 나온다. 알베르토는 '자살'이란 괴로운 인생을 굳이 참고 견디느니 죽어 버리는 약자의 행동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반면 베르테르는 '자살'을 인간의 본성이 서로 뒤얽혀 반발하는 온갖 힘의 미궁 속에서 빠져 나올 출구를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알베르토의 '자살'에 대한 정의는 이성에 바탕을 둔 계몽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자살'에 대한 정의는 이성보다는 상황과 감정에 따른 순간적인 행동으로써 앞서 말한 ‘질풍과 노도’의 시대적 조류에 기초하고 있다. 이 외에도 베르테르와 알베르토의 대화를 보면 알베르토는 전형적인 계몽주의자이고 베르테르는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감정적으로 사고하는 인물이라는 것이 강조되어 있다.
7. 맺음말
누구나 한 번쯤은 좋아하는 이성 때문에 마음이 설레이거나 얼굴이 붉어진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밤을 지새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과연 청년 베르테르보다 더 진정한 사랑을 하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젊은이들이 꿈과 이상없이 기성세대들의 현실적이기만 한 메마른 이성만을 이어받는다면 사회는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괴테는 일생동안 많은 사랑을 했다. 그는 74살 때 열 일곱의 소녀를 사랑하기도 했다. 괴테의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알 수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꿈과 이상을 가지는 그의 성격이 그의 많은 작품들을 탄생시킨 것이리라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베르테르처럼 사랑하기를 원하고 로테처럼 사랑받고 싶어할 것이다. 어떤 페이지를 펼쳐보아도 끓어오르는 감정이 넘쳐흐르지 않는 곳이 없고, 예리한 관찰로써 일막 일목에도 감격하고, 한 마디의 말, 한 번의 눈짓에도 환희를 맛보고 절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작품이 인간 심정을 세련시키고, 일그러지지 않는 인간이나 자연에 대해 감수성을 깨워 주고 생활 내용을 풍성하게 해 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감정을 가지고 베르테르는 자기의 생명에 대한 의지를 우주에까지 확대하여, 그것과 합일하려고 하며 국한된 현실의 인간 존재와 대립하고 모순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이십 대 중반에 이른 나는, 자살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는 생각과 함께 질서정연한 것을 동경하고, 모험보다는 안전한 모든 것을 지향한다. 나는 변했다. 필요한 만큼만 사람을 만나고 정을 주고 믿고, 내가 쳐놓은 금-line-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이라야, 열 여섯, 일곱 살 때의 내가 아주 잠시 신들린 듯이 내 몸 속에 들어와 그만하면 됐다고 말해준다. 그만하면 잘 살아가고 있다고. 발버둥쳐봤자,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야라고 말이다. 술이 깬 다음 날 나는 다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학원에 나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이면 여자친구를 만나러 그녀의 집 근처로 향한다. 그 어떤 것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다. 누릴 만큼은 누리고 살았고, 나는 늘 여유-어떤 의미로든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무엇인가 서글퍼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다 버리지 못한 욕심이 있는 것일까. 나는 다시 한 번 즉흥적인 삶을 꿈꾸고 있는 걸까. 고백하건대, 나는 오늘 베르테르를 예찬하면서 다소 치기 어린 베르테르가 되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잠시나마 행복했다. 그 누구도 아닌 현실의 내 자신에게 말하고 싶다.
베르테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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