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첸 카이거 감독
2. 내용요약 및 분석
3.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
4.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본 미학의 본질
5. 패왕별희에 투영되어 있는 중국의 굴절된 현대사
6. 한국영화 서편제와의 비교
7. 맺음말
2. 내용요약 및 분석
3.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
4.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본 미학의 본질
5. 패왕별희에 투영되어 있는 중국의 굴절된 현대사
6. 한국영화 서편제와의 비교
7. 맺음말
본문내용
왕을 비난하고 만 우희이지만 데이는 불완전한 극이라해도 끝까지 연기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이고, 또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다시 전장으로, 중국의 현대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 샬루에게 데이가 줄 수 있는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기도 하므로.
3.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
영화란 과연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역사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왜! 무엇 때문에!! 영화란 과연 역사를 보여주는 드라마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예술은 과연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물인가? 역사의 단면을 도출시키는 파편물 같은 것일까???
나는 예술을 안다고 감히 말한다. 영화 패왕별희에서 나는 거대한 예술의 한줄기가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예술은 사상이고 철학이며 역사며 그 모든 것의 합을 뛰어 넘는 총체다. 예술을 통해서 예술 그 자체를 해부해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패왕별희를 통해서 과거를 보았다. 그것은 패왕별희가 담아내는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사랑을 보고, 그 사랑은 인간 관계를 도출시키고, 그 인간 관계는 역사를 엮어 낸다. 하기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재 있는 것도 흔하지는 않지만 서도... 그 역사란 것과 예술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어느 때는 역사와 예술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면서도 어느 때는 마치 쌍둥이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것이 지니는 양면적인 속성 때문이다.
그 양면적인 속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데이]와 [샬로] 라는 두 인물의 인간성이다. 그들의 인간성과 예술관을 탐색해 보도록 하는 것이 내가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작업의 첫발이다. 그리고 [주샨]의 모습을 통해서, 그 둘간의 관계와 역사와 현실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다.
4.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본 미학의 본질
데이로 분한 장국영의 연기의 탄성을 지르거나 말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데이 -또는 도즈의 인생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역시 중요한 매개체로서 [칼]의 암시는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칼] - 육손이라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한 인간. 원시사회에서는 정상적이지 못했던 사람들은 따로 격리해서 수공업에 종사시키거나 (향, 소, 부곡의 존재를 이런식으로 규정한다면 독단이 되는 건가) 또는 제사장의 역할도 맡아서 수행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정신병자들은 배에 태워져 힘든 노동에 혹사당했어야만 했었다. 흔히,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이 예술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 육손이였다는 것은 도즈란 한 인간의 역사가 정상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한다.
칼로 손을 잘리운 도즈, 손을 잘린다는 것은 사회와의 단절을 이야기한다. 그 때부터 그의 여행이 시작이 된다. 어머니에 의해서 손을 잘리워 사회와의 단절이 이행되고, [시토]에 의해 자기 정체성을 잃고서 [우희]라는 자신의 역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 스스로 갇히고 만다. 그는 그렇게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희로서 존재한다. 원대인과의 호모섹스를 즐기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깊은 장면이였는데, 그 순간에서조차 데이는 우희로서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사랑은 우희로 존재하는 동안에 진행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문화혁명으로 인하여 재판받게 된 그 순간 - 다른 모든 배우들은 손을 후들거리면서 자신의 분장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에도 데이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우희로 분장시키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나아간다.
데이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순수한 예술] 이라고 생각해 왔던 예술의 [유미주의자적 자세]이다. 항상 상황과 자신을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힘에 의해 존재하는 순수함의 고귀함. 그러나 감독은 여기서 분연히 고발하고 있다. 그렇게 순수하다고 믿어 왔던 예술이라는 것이 실은 그 화려한 가면뒤에 가리워진 허상이라는 것을, 정작은 원대인이라는 부르죠아지와 결탁되어 순수한 예술을 빙자한 자기 자신만의 세계속에서 역사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왔다. 데이는 보는 관객이 그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았고, 자신의 예술을 환영해 주는 자이면 누구든지 환영했다. 그의 삶속에서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이 탈각된 채 오직 완벽한 미적 세계를 구현하는 - 여기서는 완벽한 우희의 재현에 그 최대의 미적 가치가 걸려 있는 것이겠지만 - 것에만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
3.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
영화란 과연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나는 역사란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왜! 무엇 때문에!! 영화란 과연 역사를 보여주는 드라마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예술은 과연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물인가? 역사의 단면을 도출시키는 파편물 같은 것일까???
나는 예술을 안다고 감히 말한다. 영화 패왕별희에서 나는 거대한 예술의 한줄기가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예술은 사상이고 철학이며 역사며 그 모든 것의 합을 뛰어 넘는 총체다. 예술을 통해서 예술 그 자체를 해부해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 사람들은 패왕별희를 통해서 과거를 보았다. 그것은 패왕별희가 담아내는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 때문이다. 영화속에서 사랑을 보고, 그 사랑은 인간 관계를 도출시키고, 그 인간 관계는 역사를 엮어 낸다. 하기는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재 있는 것도 흔하지는 않지만 서도... 그 역사란 것과 예술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어느 때는 역사와 예술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모습이면서도 어느 때는 마치 쌍둥이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예술이라는 것이 지니는 양면적인 속성 때문이다.
그 양면적인 속성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데이]와 [샬로] 라는 두 인물의 인간성이다. 그들의 인간성과 예술관을 탐색해 보도록 하는 것이 내가 지금부터 시작하려는 작업의 첫발이다. 그리고 [주샨]의 모습을 통해서, 그 둘간의 관계와 역사와 현실간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다.
4. 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본 미학의 본질
데이로 분한 장국영의 연기의 탄성을 지르거나 말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데이 -또는 도즈의 인생의 시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역시 중요한 매개체로서 [칼]의 암시는 무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칼] - 육손이라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한 인간. 원시사회에서는 정상적이지 못했던 사람들은 따로 격리해서 수공업에 종사시키거나 (향, 소, 부곡의 존재를 이런식으로 규정한다면 독단이 되는 건가) 또는 제사장의 역할도 맡아서 수행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정신병자들은 배에 태워져 힘든 노동에 혹사당했어야만 했었다. 흔히, 정상적이지 못한 사람이 예술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 육손이였다는 것은 도즈란 한 인간의 역사가 정상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한다.
칼로 손을 잘리운 도즈, 손을 잘린다는 것은 사회와의 단절을 이야기한다. 그 때부터 그의 여행이 시작이 된다. 어머니에 의해서 손을 잘리워 사회와의 단절이 이행되고, [시토]에 의해 자기 정체성을 잃고서 [우희]라는 자신의 역할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 스스로 갇히고 만다. 그는 그렇게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희로서 존재한다. 원대인과의 호모섹스를 즐기는 장면이 무척이나 인상깊은 장면이였는데, 그 순간에서조차 데이는 우희로서 존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의 사랑은 우희로 존재하는 동안에 진행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문화혁명으로 인하여 재판받게 된 그 순간 - 다른 모든 배우들은 손을 후들거리면서 자신의 분장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에도 데이는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우희로 분장시키고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나아간다.
데이가 상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순수한 예술] 이라고 생각해 왔던 예술의 [유미주의자적 자세]이다. 항상 상황과 자신을 분리하여 독자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의 힘에 의해 존재하는 순수함의 고귀함. 그러나 감독은 여기서 분연히 고발하고 있다. 그렇게 순수하다고 믿어 왔던 예술이라는 것이 실은 그 화려한 가면뒤에 가리워진 허상이라는 것을, 정작은 원대인이라는 부르죠아지와 결탁되어 순수한 예술을 빙자한 자기 자신만의 세계속에서 역사의 흐름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아왔다. 데이는 보는 관객이 그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았고, 자신의 예술을 환영해 주는 자이면 누구든지 환영했다. 그의 삶속에서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것이 탈각된 채 오직 완벽한 미적 세계를 구현하는 - 여기서는 완벽한 우희의 재현에 그 최대의 미적 가치가 걸려 있는 것이겠지만 - 것에만 최선을 다한다. 그렇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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