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 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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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집트에 관한 모든 것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이집트의 자연
*이집트의 지형
*나일강 골짜기와 삼각주
*서사막지역
*동사막지역
*시나이반도지역
*이집트의 기후
*이집트의 지지(地誌)
*나일강골짜기지역
*나일삼각주지역
*서사막지역
*동사막지역
*시나이반도지역
*이집트의 역사
*고대 이집트의 주민과 언어
*이슬람 이전
*초기왕조시대
*고왕국시대
*제1중간기
*중왕국시대
*제2중간기
*신왕국시대
*후기왕조시대
*프톨레마이오스왕조시대
*로마제국령시대
*이슬람 이후
*옴미아드·아바스왕조

본문내용

이집트 제1의 유전지대이며 해저유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집트의 역사
고대 이집트의 주민과 언어
고대 이집트인은 니그로이드를 모체로 함족과 셈족의 피가 섞인 주민이다. 고대 이집트어는 아프리카적 요소에 함어와 셈어가 섞여 발달했다. 아프리카적 요소인 상형문자(히에로글리프)는 셈족의 쐐기문자와 같은 비상형문자로 바뀌지 않은 채 3000년 이상 사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어는 고왕국시대의 고어(古語), 중왕국시대~신왕국시대의 중기어(中期語), 신왕국시대~말기왕조시대의 말기어 3가지로 나누어진다.
신전의 문자나 칙령 등에는 히에로글리프를 사용했다. 한편, 고왕국시대의 신관(神官)은 히에로글리프의 간략서체인 신관문자를 만들었다. BC 7세기에는 도상성(圖像性)이 없는 속필문자(速筆文字)인 민중문자가 고안되어 상업 등에 이용되었다. 콥트어는 3세기 말 이집트어에서 생긴 뒤 새로운 문자체계로 표현되었다. 이슬람교도에게 정복당한 이후는 아라비아어를 사용했으며, 오늘날은 아라비아어의 이집트방언을 사용하고 있다.
이슬람 이전
구석기시대 이집트인은 유목생활을 하였다. 북아프리카와 이집트가 건조화되기 시작한 이후는 강가에 모여 살았다. 신석기시대는 하(下)이집트 파이윰분지에서 BC 5000년 무렵에 시작되었는데 이 문화를 파이윰A라고 한다. BC 4500년 무렵에는 상(上)이집트에 구리를 이용하는 바다리문화가 발생했다. BC 4000년 무렵에는 보다 진보된 나카다 제1기문화가 출현하여 초보적인 이집트문자가 발생했으며, 이어 BC 3500년 무렵 나카다 제2기문화로 발전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마을이 연합하고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에 국가가 생긴 것은 이 무렵이다. 하이집트는 파이윰으로부터 북쪽지역에, 상이집트는 파이윰에서 아스완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초기왕조시대
BC 3000년 무렵 상이집트의 왕 메네스가 이집트를 통일한 뒤 제1왕조가 시작되었다. 수도는 티니스에 있었다. 왕권이 신격화되어 왕관의 형상도 왕권의 상징인 매와 뱀으로 정해졌다. 호루스신을 섬겼으며, 대형 왕묘 구축기술을 갖추었다. 제2왕조 초기의 왕은 수도를 멤피스 근처로 옮기고 왕묘를 세웠으며, 다음 왕 페리브센은 수도를 상이집트의 아비도스로 옮기고, 호루스신의 적(敵)인 세트신을 섬겨 종교상의 변혁을 가져왔다. 제2왕조는 BC 2700년 무렵의 카세케무이왕시대에 몰락했다. 이 제1∼2왕조시대를 티니스시대·고졸시대(古拙時代)·초기왕조시대라 한다.
고왕국시대
BC 2700년 무렵 제3왕조는 멤피스에 수도를 두었다. 조세르왕시대에 국력이 신장되어 최초의 석조피라미드를 사카라에 구축했다. 그 규모는 동서 121m, 남북 109m, 높이 60m였다. 그 뒤의 왕은 이것을 모방하여 피라미드로 왕묘를 만들었다. 제4왕조는 BC 2600년 무렵 스네프루왕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 왕조는 남쪽으로 누비아, 동쪽으로 아시아, 서쪽으로는 리비아로 진출했다. 스네프루왕은 마이둠피라미드·굴절피라미드와 그 뒤 다슈르의 저경사(低傾斜) 피라미드를 건축했고, 아들 쿠푸왕은 기자에 대형피라미드를 세웠다. 카프레·멘카우레 등의 왕들도 각각 피라미드를 구축했으며, 제4왕조에서 라(Ra;太陽神) 신앙은 왕가의 신앙인 동시에 국가의 신앙으로 확립되었다. 또한 이때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도 생겼다. 제5왕조는 BC 2450년 무렵 우세르카프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나스왕의 피라미드에는 사후 왕의 안녕과 영생을 기원하는 피라미드 교서가 내부에 새겨져 있다. 제6왕조 페피 2세시대는 왕권이 쇠약해져 지방호족과 고관이 권력을 장악하다가 BC 2263년 무렵 몰락했다. 제3~6왕조에 이르는 이 시대를 피라미드시대라고도 한다.
제1중간기
고왕국시대 뒤 제1중간기는 혼란기였다. 이 혼란기는 제7~10왕조까지 이어지는데 왕조들은 전국토를 통치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지 못한 지역적 존재에 불과했다.
중왕국시대
제11왕조의 안데프 1세는 BC 2160년 무렵 상이집트 테베를 중심으로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재통일의 기반을 다졌다. 멘투헤테프 2세가 재통일을 완성하고, 상부를 피라미드형으로 만든 대형 장제전(葬祭殿)을 디르알바리에 세웠다. 멘투헤테프 3세는 누비아의 일부를 이집트 지배하에 두었다. BC 2000년 무렵 아메넴하트 1세에 의해 시작된 제12왕조는 수도를 하이집트의 이타우이(지금의 다슈르)로 옮겼다. 그리고 테베지역의 아멘신을 왕가의 신으로 섬겼다. 아메넴하트 1세는 수에즈 지협에 성채를 구축했고, 말년에는 아들 세누세르트 1세와 공동통치를 하였다. 세누세르트 1세는 나일강지류를 개발, 홍해에 연결하였으며, 아메넴하트 3세는 농업을 진흥시키고 하이집트에 댐을 구축했다. 한편, 세누세르트 1세에 의해 식민지가 된 누비아에서는 금이 산출되어 이집트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제12왕조는 행정 및 군사제도를 정비했으며 문화적으로 번영했는데, BC 1785년 무렵 몰락하고 제13왕조가 이를 계승했다. 우카프·소베리호테프·아메넴하트·세켐레스·켄지엘 등의 왕들이 알려져 있으나 통치력은 극히 미약했다. 이 시대는 BC 1750년 무렵에 몰락하였다.
제2중간기
중왕국시대가 끝난 뒤 혼란기인 제2중간기가 시작되었다. 제2중간기 초에는 이집트인을 왕으로 세운 제14왕조가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침입한 힉소스는 BC 1730년 무렵 아바리시(지금의 타니스)를 수도로 제15왕조를 세웠고, 그 뒤 제16왕조까지 이어갔다. 그러나 힉소스는 하이집트만 직접 통치했을 뿐 상이집트는 지방호족을 통해 간접 통치했다. 이런 상황에서 테베에 기반을 둔 영주가 BC 1680년 무렵 제17왕조를 세웠다. 초기에는 힉소스왕조와 공존했으나 5대 세케넨레왕에 이어 그의 아들 카메스왕이 힉소스를 몰아냈다.
신왕국시대
힉소스를 완전히 몰아낸 것은 다음 왕 아메스 1세시대 BC 1580년 무렵이다. 그로부터 제18왕조가 시작되어 수세평화주의(守勢平和主義) 국가에서 공격적인 군사국가로 변했다. 전쟁에서는 힉소스가 들여온 말과 전차를 중요시했다. 그리고 아멘신(神)의 세력이 팽창하여 힉소스를 몰아내고 최고의 국가신이 된 동시에 태양신 라를 흡수하여 아멘라라고도 했다. 또한 아멘신을 위한 카르나크신전·룩소르신전, 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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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0.03.25
  • 저작시기2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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