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에 대한 다양한 평가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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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정희에 대한 다양한 평가 정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똑똑한 국민 역시 필요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자신의 권력을 지속하기위해 군대식으로 길들여진 말 잘 듣는 국민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박정희는 안보와 안정이라는 명분 하에 반공을 내세우며 이념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사고와 생각마저도 획일화 시켜나갔다. 사람들의 생각의 자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이 사회와 나라의 기준이었으며, 최고의 가치였고, 자신에게 어긋나는 사람은 친공주의자 빨갱이로 몰아세우며 제거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주주의는 확립되기 어려웠으며, 박정희는 자신의 권위와 입지를 더욱 견고히 하기위해 헌법과 법률을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더욱 탄압하였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시기부터 살해당했을 때 까지 박정희에게 민주주의는 중요하지만 경제성장과 안보를 위해 잠시 미뤄둬야 할 가치가 아닌 자신의 권력을 확장시키고 지속시키는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일 뿐이었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처음에는 민정이양이라는 혁명공약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군정비판 세력들이 빠른 시일 내에 군정을 끝낼 것을 요구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혁명과업이 완수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미국이 차관 공여를 중지하겠다고 위협하고, 군정비판세력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박정희는 군정연장을 취소하였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민정이양을 한 박정희 정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대통령 및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해 구정치인들을 \'정치정화법‘으로 묶어놓았으며 관료기구와 경찰 , 군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박정희 정권의 만행과 권력 남용, 민주주의에 대한 탄압은 삼선개헌과 유신 체제 수립으로 이어졌다. 1966년 제 6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후 기존헌법으로는 임기 연장이 불가능하자, 대통령 임기 규정을 폐지하는 삼선개헌을 추진했다. 삼선개헌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 다는 명분으로 정당화 되었으며, 북한에 대한 위기의식을 고조하고 경제성장을 내세우며 저항을 무마시키려했다. 이후에도 1971년 10월 19일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켜 비상사태 하에서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비상권한을 부여했고,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 해산, 정당 정치활동의 중지, 현행 헌법 중 일부 기능 중지와 같은 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에 박정희 정권이 유신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웠던 명분인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가 한국 정세를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은 당시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던 한국의 정세로 봐선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유신 체제는 안보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닌 헌법을 이용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한 뒤 자신의 집권을 지속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 밖에 박정희는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전통과 역사를 이용하였다. 권위주의적 정권과 군사주의를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도록 하기위해 이순신과 같은 영웅을 부활시켰으며 충효사상을 강조하고 학교라는 기관을 통해 그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침으로써 자신에게 국민들이 충성을 다할 것을 강요하였다.
1990년대 김영삼 정부의 부패, 도덕성 등과 사람들이 박정희 정권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청렴, 리더십, 경제성장이 비교되면서 사람들은 박정희와 같은 리더와 영웅을 원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갈망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는 한국 사회가 아직 민주주의의 기반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으며, 민주사회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권탄압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고,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인권탄압과 민주주의의 파괴와 같은 문제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나아가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가치보다 물질과 자본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물질 만능주의와 물신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박정희에 대한 지속적인 열광과 갈망은 결국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열정과 투쟁의식, 희생을 간과하고 그 가치를 절하시키며 헛되이 하는 일에 불과하다. 비판과 반성은 사회와 사람을 발전시키는 힘이다. 냉철한 반성과 성찰이 지금 박정희에 대한 국민들의 사고 속에 필요한 시점이다.
Ⅲ. 맺는 말
한국 역사에서 박정희는 커다란 위치를 차지하고 그의 영향은 현재 21세기에도 미치고 있다. 그의 시대는 경제 5개년 개발 계획을 통해 보릿고개를 사라지게 만들었으며, 실업자를 줄였고 넓은 고속도로를 비롯하여 고층빌딩을 지어 우리나라가 산업사회에 진입하고 근대화를 이루도록 한 시대로 기억된다. 또한 그 시대에는 경제 개발 부문 뿐 만 아니라 유적지, 박물관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들이 복원되고 건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면 뒤에는 인권유린, 민주주의 파괴, 노동자에 대한 억압 등 어두운 부분이 존재한다. 안보와 경제 개발을 내세우며 국민들의 기본권 침해를 정당화 하였고, 유신체제를 합리화 하였다. 그러나 김대중 납치 사건, 학생들 구속과 같은 민주주의 탄압이 과연 경제 발전을 위한 선택이라고 말 할 수 있는가? 열악한 노동환경 없이는 경제 발전이 가능 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김대중의 납치, 살인 사건과 같은 반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이 없었더라도 경제 성장은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효율적인 산업화와 빠른 성장을 위해서 강하고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러나 박정희의 모습은 강력하고 탁월한 리더가 아닌 보스의 모습에 불과하다. 강력하고 탁월한 리더십과 탄압, 억압, 감금과 같은 폭력은 구분 되어야 한다.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과 회의를 거쳐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용 하였더라면 정경유착, 대기업 구조, 재벌의 집중도, 수출의 의존적 구조와 같은 부작용을 줄이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완화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미화된 박정희의 이미지에 대한 찬양과 물신주의, 성장제일주의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 개발 정책과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체제의 상관관계를 염두해두고 논쟁을 해야할 것이다. 이 둘을 분리시켜 논쟁하는 것은 결국 피상적인 논쟁이 될 뿐이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되풀이 되는 논쟁의 결과만을 불러 올 뿐이다.

키워드

박정희,   평가,   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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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10.04.23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0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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