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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표현한 것이다. 당연히 문명 비판과 새로운 문명사의 건설을 위한 이념 탐구는 모든 모더니즘의 내용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더니즘의 본질은 30년대 한국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당대의 한국은 문명사의 종말을 운위할 만큼 자본주의 산업화가 이루어져 있지도 않았고 모더니즘의 정신적 맥이라고 할 서구의 기독교적 전통과는 더더욱 무관한 것이었다. 오히려 한국은 서구의 모더니스트들이 그들의 새로운 문명사의 이념의 하나로 추구하고 있는 불교 혹은 유교 문화권에 속해 있었다. 자연히 서구를 모방하는 차원에서 시도된 30년대 한국의 모더니즘은 그 기법상의 새로운 발견과 후대에 끼친 여러 가지 형태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당대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애초부터 안고 있었다.
30년대 한국의 시사에서 이에 반동해 일어난 것이 \'생의 구경적 본질\'을 탐구하려는 소위 \'생명파\' 시인들의 운동이다. 생명파는 1936년 동인지 《시인부락》을 중심으로 결집되었는데 그 중요한 시인으로는 서정주, 김동리, 유치환, 신석초, 김달진, 함형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가식 없는 언어로 직정적인 생의 목소리를 시에 담고자 했다. 그들의 세계관에는 니체나 쇼펜하우어류의 일종의 생철학적 관점이 있었다.
서정주는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해 《시인부락》동인으로 시단활동을 한 시인이다. 그는 아직 생존해 있고 60여 년의 긴 시작생애를 통해 수많은 작품과 다양한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다만 그의 30년대적 경향에 국한한다면 그것은 보들레르적인 화사한 감각으로 인간의 내면적인 고뇌와 본능의 몸부림을 아름답게 형상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에는 악이나 추함까지도 하나의 미학으로 정립된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 밤새 울었다.(<문둥이>)와 같은 시에서 볼 수 있는 세계가 그러하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1941년에 간행된 그의 첫 시집《화사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의 <화사> <봄> <자화상> <웅계> <부활> 등과 같은 작품들은 한국 시사에서 빼어난 명작들이다.
유치환은 1931년 《문예월간》<정적>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하게 된다. 시집으로 《청마시집》(1940),《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등을 펴냈으며 대표작으로는 <깃발> <일월> <생명의 서> <바위> <울릉도> 등이 있다. 유치환 역시 생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서정주와 같이 생명파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본능이나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의지나 사유의 문제였다. 그의 시는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의지와 이를 초극하려는 정신을 형상화해 보여 준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의 시는 선이 굵고 또한 남성적이다. 언어표현 역시 사변적인 요소가 많다. 그의 시의 이와 같은 특성은 <생명의 서>의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와 같은 시행에서 잘 나타난다.
신석초는 한계상황에 갇혀 있는 생의 본능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몸부림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묘사해 낸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바라춤>이 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시인은 이외에 김현승, 김광섭, 노천명, 이용악, 백석 등이다. 김현승은 1934년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는 《김현승시초》(1957), 《옹호자의 노래》(1963) 등이 있다. 그는 초기에 서정적인 시들을 창작했으나 후기에 들어 지적이면서 사변적인 언어로 존재를 탐구하는 시들을 많이 썼다.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는 고독이었으며 시적 개성은 단단한 구조에 명증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데 있었다. 김광섭은 1935년부터 《시원》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 《동경》(1937), 《마음》(1949), 《성북동비둘기》(1969)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꿈> <동경> <명상> 등이다. 이 시기의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생론적 고백이 주조를 이루었으며 해방 이후에 잠시 붓을 놓았다가 만년에 이르러 생활과 사회에 관심을 보인 작품들을 썼다.
노천명은 1932년 《신동아》에 <방의 찬미>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장한 시인이다. 시집으로 《산호림》(1938), 《별을 쳐다보며》(1953) 등, 대표작으로 <사슴> <고향> <장날> <길> 등이 있다. 한국의 근대 여류시는 노천명에 와서 비로소 확고한 문학적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그의 시는 잘 다듬어진 서정을 향토적인 소재로 형상화했다. <사슴>과 같은 시에서는 이를 한 차원 넘어서서 인생론적 성찰에 다다른다. <사슴>은 물을 마시던 사슴이 호수에 어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일상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의 소외된 거리에서 기인되는 존재론적 슬픔이 이 시의 미학을 이룬다.
이용악은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분수령》(1937), 《낡은 집》(1938),《오랑캐 꽃》(1947) 등의 시집이 있으며 대표작은 <오랑캐 꽃> <전라도 가시내> <국경> 등이다. 이용악은 식민지 치하의 뿌리뽑힌 향토민의 삶을 노래했다. 그가 애정을 보인 것은 짓밟히면서도 잡초처럼 일어서는 민중의 생명력이었다.
백석은 30년대 시인들 가운데서 특이한 존재이다.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하기 시작한 그는 평안도 지방의 향토적인 생활과 민속을 객관적 태도로써 리얼하게 그렸다. 여기에는 물론 식민지적 상황에서 유랑하는 민중의 삶도 주요한 테마가 된다. 백석은 단지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그 정서, 언어, 감수성 등에서도 향토적인 것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한국 근대시는 백석에 이르러 비로소 \'향토시\'라는 장르의 성립이 가능해졌다. 그의 시집으로는 《사슴》(1936), 대표작으로는 <가즈랑 집> <여우난
30년대 한국의 시사에서 이에 반동해 일어난 것이 \'생의 구경적 본질\'을 탐구하려는 소위 \'생명파\' 시인들의 운동이다. 생명파는 1936년 동인지 《시인부락》을 중심으로 결집되었는데 그 중요한 시인으로는 서정주, 김동리, 유치환, 신석초, 김달진, 함형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가식 없는 언어로 직정적인 생의 목소리를 시에 담고자 했다. 그들의 세계관에는 니체나 쇼펜하우어류의 일종의 생철학적 관점이 있었다.
서정주는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해 《시인부락》동인으로 시단활동을 한 시인이다. 그는 아직 생존해 있고 60여 년의 긴 시작생애를 통해 수많은 작품과 다양한 시 세계를 보여 주었다. 다만 그의 30년대적 경향에 국한한다면 그것은 보들레르적인 화사한 감각으로 인간의 내면적인 고뇌와 본능의 몸부림을 아름답게 형상화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시에는 악이나 추함까지도 하나의 미학으로 정립된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보리밭에 달 뜨면/애기 하나 먹고//꽃처럼 붉은 울음 밤새 울었다.(<문둥이>)와 같은 시에서 볼 수 있는 세계가 그러하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1941년에 간행된 그의 첫 시집《화사집》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의 <화사> <봄> <자화상> <웅계> <부활> 등과 같은 작품들은 한국 시사에서 빼어난 명작들이다.
유치환은 1931년 《문예월간》<정적>을 발표하면서 시작활동을 하게 된다. 시집으로 《청마시집》(1940),《생명의 서》(1947), 《울릉도》(1948) 등을 펴냈으며 대표작으로는 <깃발> <일월> <생명의 서> <바위> <울릉도> 등이 있다. 유치환 역시 생의 본질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서정주와 같이 생명파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본능이나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의지나 사유의 문제였다. 그의 시는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의지와 이를 초극하려는 정신을 형상화해 보여 준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의 시는 선이 굵고 또한 남성적이다. 언어표현 역시 사변적인 요소가 많다. 그의 시의 이와 같은 특성은 <생명의 서>의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하게 될지니/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와 같은 시행에서 잘 나타난다.
신석초는 한계상황에 갇혀 있는 생의 본능과 그것을 초월하려는 몸부림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묘사해 낸 시인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바라춤>이 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시인은 이외에 김현승, 김광섭, 노천명, 이용악, 백석 등이다. 김현승은 1934년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는 《김현승시초》(1957), 《옹호자의 노래》(1963) 등이 있다. 그는 초기에 서정적인 시들을 창작했으나 후기에 들어 지적이면서 사변적인 언어로 존재를 탐구하는 시들을 많이 썼다. 그가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는 고독이었으며 시적 개성은 단단한 구조에 명증한 이미지를 구사하는 데 있었다. 김광섭은 1935년부터 《시원》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시집으로 《동경》(1937), 《마음》(1949), 《성북동비둘기》(1969)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꿈> <동경> <명상> 등이다. 이 시기의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성찰과 인생론적 고백이 주조를 이루었으며 해방 이후에 잠시 붓을 놓았다가 만년에 이르러 생활과 사회에 관심을 보인 작품들을 썼다.
노천명은 1932년 《신동아》에 <방의 찬미>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등장한 시인이다. 시집으로 《산호림》(1938), 《별을 쳐다보며》(1953) 등, 대표작으로 <사슴> <고향> <장날> <길> 등이 있다. 한국의 근대 여류시는 노천명에 와서 비로소 확고한 문학적 토대를 구축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그의 시는 잘 다듬어진 서정을 향토적인 소재로 형상화했다. <사슴>과 같은 시에서는 이를 한 차원 넘어서서 인생론적 성찰에 다다른다. <사슴>은 물을 마시던 사슴이 호수에 어린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잃어버린 자아를 되찾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일상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의 소외된 거리에서 기인되는 존재론적 슬픔이 이 시의 미학을 이룬다.
이용악은 1935년 《신인문학》에 <패배자의 소원>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다. 《분수령》(1937), 《낡은 집》(1938),《오랑캐 꽃》(1947) 등의 시집이 있으며 대표작은 <오랑캐 꽃> <전라도 가시내> <국경> 등이다. 이용악은 식민지 치하의 뿌리뽑힌 향토민의 삶을 노래했다. 그가 애정을 보인 것은 짓밟히면서도 잡초처럼 일어서는 민중의 생명력이었다.
백석은 30년대 시인들 가운데서 특이한 존재이다.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에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문단활동을 하기 시작한 그는 평안도 지방의 향토적인 생활과 민속을 객관적 태도로써 리얼하게 그렸다. 여기에는 물론 식민지적 상황에서 유랑하는 민중의 삶도 주요한 테마가 된다. 백석은 단지 소재에 국한되지 않고 그 정서, 언어, 감수성 등에서도 향토적인 것을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다. 한국 근대시는 백석에 이르러 비로소 \'향토시\'라는 장르의 성립이 가능해졌다. 그의 시집으로는 《사슴》(1936), 대표작으로는 <가즈랑 집> <여우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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