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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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골프총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쳐져 있었다. 모래와 바닷물이 이동을 하면서 남게 놓은 언덕과 작은 계곡 그리고 토끼들과 양떼들에게 뜯기면서도 빽빽하게 자라난 잔디야말로 이 게임을 가능케하는 완벽한 조건들이었다. 대영제국과 아일랜드 공화국의 유명한 코스들은 모두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정기적으로 브리티시 오픈 대회가 개최되고 있는 남동 잉글랜드의 로열 세인트 조지스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래땅을 개발한 코스들이다.
그러나 초창기의 코스들은 오늘날의 코스와는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코스에는 퍼팅 그린이나 티 그라운드(tee ground)가 없었다. 코스도 상당히 거친 데다가 거의 손질이 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홀 역시 매우 원시적인 형태로서 볼이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지점임과 동시에 계속해서 다음 드라이브를 치기 위한 티 그라운드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래를 공급해 주는 곳이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골프를 체계적인 경기형태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즉 골프만을 전문적으로 추구하는 클럽이 탄생되었고 공인된 규칙이 제정되었다. 구체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 최초의 클럽은 젠틀맨 골퍼스 오브 리스로서 1744년에 설립되었다. 로열 블랙히스와 로열 버지스는 모두 자신들이 최초의 클럽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
골퍼기록은 블랙히스를 1608년에 창립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 클럽의 존재를 밝혀주는 기록은 1766년에야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1766년은 로열 블랙히스의 실버 클럽에 처음으로 볼 하나가 부착된 해였다. 18세기에는 각 클럽들이 자체적으로 시합을 벌여 거기서 우승한 사람으로 다음해의 클럽회장으로 선정하는 것을 관례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회장의 이름과 날짜가 새겨진 실버 클럽에 붙여 놓곤 하였다. 소사이어티 오브 세인트 앤드루스 골퍼스는 1754년에 실버클럽을 사들였다. 그들의 비망록에 의하면 이 클럽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모든 클럽들과 시합을 벌일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은 시합을 하기 위해 자신들보다 먼저 설립된 클럽을 수소문해 보았지만 결국 찾을 수 있었던 곳은 젠틀맨 골퍼스 클럽 뿐이었다.
초기의 클럽들은 건전하게 골프를 즐기던 장소로서 함께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곳이기도 했다. 포도주 주전자가 브리티시 오픈의 트로피가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당시의 골프 클럽들은 대부분이 몇몇 작은 동호인 그룹들이 함께 먹고 마시는 각종 모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립되었으며 일단 클럽이 결성되면 회원들은 이 세가지의 같은 취향을 누리며 서로가 쉽게 결합되었다.
1754년에 이르러 22명의 귀족이 모여서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클럽을 결성하였다. 그로부터 각지에 골프클럽이 결성되었는데, 1834년 윌리엄 4세가 세인트 앤드루스 클럽에 로열 앤드 에인션트 골프클럽(The Royal and Ancient Golf Club of St. Andrews,Scotland)이라는 명칭을 붙여줌으로써 이 기관은 전국의 골프클럽을 통할하게 되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13개 항목에 걸친 골프의 규칙이 성문으로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그것을 골프의 메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1860년에 프레스트 위크 코오스에서 처음으로 전영국 오픈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그 후 19세기에서 20세기초게 걸쳐 골프는 완전히 영국에서만 성행했다.
골프에 사용하던 볼은 초창기의 돌멩이나 나무열매, 새털공(가죽 속에 새털을 집어넣어 만든 공)으로부터 1846년 미국인 캔밸이 고안하여 만든 고형 공(카타파챠 공), 1898년 미국인 코번.헤스겔이 고안해낸 고무줄로 중심을 감은 현재의 볼과 같은 것으로 변천되어 갔다.
클럽도 모두 나무로 만들던 것을 철제의 클럽도 쓰게 되었다.
이와같이 영국에서 발달된 골프는 세계의 각지로 보급되어 갔다.
미국의 골프
국에 골프가 들어가게 된 것은 1888년으로 스코틀랜드계 미국인 조지 레드가 허드슨강 유역 뉴욕의 욘가즈에 5홀의 세인트 앤드류스 클럽을 만든 것이 처음이다. 크럽의 명칭은 골프의 메카인 세인트 앤드류스의 이름을 그대로 본단것이다. 그러고 나서 100년도 안되는 동안 골프의 주도권은 미국의 것이 되고 세계에 견줄 나라가 없게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의 골프계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미국의 기술적인 노력과 제1차 세계 대전 때문에 1915년에서부터1919년, 5년간에 걸쳐 골프 경기를 완전히 중지 시킨 영국의 사정으로 착실하게 실력을 쌓은 미국이 세계의 왕좌를 차지 하게 되었다.
1894년에는 미국 골프 협회가 설립되고 그 해에 첫 전미국 오픈 선수권대회가 뉴우욕의 세인트 앤드루스에서 거행되었다 1913년 전미국 오픈 선수권대회에서 20세의 아마튜어 선수인 프란시스.위메트(Ouimet, F.D.)가 영국의 해리.버든,테드.레이 등을 물리치고 우승함으로써 영국의 골프계를 위협했다. 1900년대 초부터 미국 선수들은 영국을 원정하여 영국의 타이틀을 노렸다. 그리고 특히 1920년대부터 1933년까지는 월터.해겐(Hagen,W.),보비.조운즈(jones,B.)등 많은 선수들일 전영국 오픈 선수권을 차지하는 활약을 보엿다. 그중에서도 1930년에는 보비.조운즈가 미영의 오픈과 아마튜어의 네 가지 선수권을 독차지하는 눈부신 성과를 거두어 골프의 패권은 완전히 미국으로 넘어갔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도 미국의 골프는 약진상을 보이고 샘.스니드(Snead,S.),벤.호건(Hogan,B.),아놀드.팔머(Palmer,A.), 잭.니클라우스(Nicklaus,J.)와 같은 많은 명수를 배출했다.
세계의 패자를 다투고 있던 대영제국이 미국에 왕좌를 뺏긴 이유는 영국이 오직 전통적인 정신을 지키고 있는 나라이고 미국은 낡은 껍질을 벗겨나가는 자유로운 성격의 나라라고 하는 점에 그까닭이 있다.
반드시 상의를 입고 클럽을 쥐는 영국사람에 비해 미국인들은 웃옷을 벗어던지고 셔츠, 쉐터를 입고 플레이를 한다. ‘신이 만든’ 자유로운 지형의 코스에서 전통적인 기술을 답습하는 영국인의 자세와 인공적으로 계산된 전략성이 높은 코스에서 모든 기술을 닦기 시작한 미국인, 이 차이가 골프의 패권을 영국에서 미국으로

키워드

  • 가격3,000
  • 페이지수36페이지
  • 등록일2010.06.13
  • 저작시기2003.06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18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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